지난 130년 동안 우리대학교는 지식의 요람으로서 부단한 학문 연구를 이어왔다. 그렇다면 우리대학교의 학문 연구는 어떤 정신 아래에서 이뤄져왔을까? 우리대학교의 학풍을 형성해온 자랑스러운 연세의 학자들을 만나보자. 

130년에 걸쳐 쌓아온 ‘화충’의 학풍

본교는 기독교주의 하에 동서고금 사상의 화충(和衷)으로 문학, 신학, 상업학, 수학, 물리학 및 화학에 관한 전문교육을 실시하며, 종교적 정신을 발양해 인격의 도야를 기하며, 인격의 도야로부터 독실한 학구적 성취를 도모하되, 학문의 정통(精通)에 수반하여 실용의 능력을 겸비한 인재의 배출함을 그 교육 방침으로 삼음.

우리대학교의 학풍은 간단히 말해 학문 간의 조화를 뜻하는 ‘화충’이라고 칭할 수 있다. 우리대학교는 설립 이후부터 동양과 서양 학문 간의 화충, 그리고 정통 학문과 실용성 중심의 학문 간의 화충을 추구해왔다.

선교사의 학교에서 꽃핀 국학 연구

▲ 우리대학교 위당관 앞 정인보 선생 흉상


선교사들의 노력으로 태어난 학교인 만큼, 설립 초기 우리대학교는 기독교 정신을 바탕으로 한 서양학문 수용의 본거지 역할을 했다. 제중원을 이끌어간 교수진은 근대 서양의 학문과 의술로 무장한 선교사들이었고 이들은 서구의 지식을 우리말로 전달했다.
이렇게 서양 중심의 학문과 교육으로 출발한 우리대학교에 본격적으로 동양사상의 조화가 시작된 것은 바로 연희전문학교(아래 연희전문)에 위당 정인보 선생이 영입되면서부터였다. 정인보 선생은 항일 독립운동에 참여하다 1922년부터 연희전문에 출강해 주로 조선 문학과 한학에 대한 강의를 했다. 그의 우리나라 역사와 문화에 대한 연구는 당시에는 일제의 탄압 때문에 ‘국학’이 아닌 ‘조선학’으로 불려야했지만 그는 국학*의 개념을 정립한 학자로, 또한 우리대학교가 일제강점기에 국학을 연구하는 중추로 자리 잡게 한 학자로 평가받고 있다.
외솔 최현배 선생 역시 우리나라의 말과 글에 대한 연구에 매진했다. 최현배 선생은 ‘말, 글, 얼은 한 몸’이라는 신념하에 우리말을 지배하려는 일제의 식민지 정책에 맞서 우리말을 지키고 정리하고 보급하는 방식으로 저항했다. 그리고 이러한 그의 연구는 ‘연희전문에서 이루어진 한글 연구의 결정체’로 평가받는 『우리말본』이라는 결과로 이어진다.
더불어 동양학문이나 서양학문을 가르치는 데 그치지 않고 이 둘의 조화를 이끌어낸 학자로는 용재 백낙준 선생을 들 수 있다. 백낙준 선생은 중국과 미국에서 수학하며 동서양의 학문에 두루 통달했는데 이러한 학문적 배경을 바탕으로 연희전문에서 성경과목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때문에 그의 성경과목은 일반 성경과목과는 달리 동서양의 고전을 접목시켜 가르치기로 유명했고, 동료 교수에 대한 호기심에 그의 수업을 청강한 정인보가 동양 고전을 자연스럽게 끌어와 성경을 해석하는 그의 모습에 감탄했다는 일화도 있다.

자연과학과 경제를 통해
실용성을 겸비하다

다음으로 정통 학문과 실용성 중심 학문의 화충은 우리대학교의 경제 분야와 자연과학 분야가 발달하는 과정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경제 분야와 자연과학 분야의 등장 자체가 기존에 이루어지고 있던 정통 학문의 토대 위에 실사구시 정신에 입각한 교육이 실시되기 시작했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더불어 경제 분야에 있어 연희전문 상과는 경제 원론과 통계원론 등의 이론부터 회사 부기, 은행 부기와 같은 실제에 대한 총체적인 교육을 실시해 학문 연구와 실용성의 화충을 이뤄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우리대학교의 자연과학 분야는 베커나 루퍼스 등의 선교사들이 연희전문에서 가르치면서 시작됐는데, 그 씨앗은 현대에 들어 우리대학교의 이영욱 교수와 황정남 교수라는 열매를 맺고 있다. 이영욱 교수는 구상성단** ‘오메가 센타우리’가 본래 우리은하에 있던 구상성단이 아니라 우리 은하에 흡수된 위성 은하임을 밝혀내 세계 최고 권위의 과학지인 「네이처」에 논문을 게재했다. 이 교수의 연구는 은하 형성 이론 중 은하의 충돌‧병합설에 무게를 실어줬다는 점에서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황정남 교수는 반도체의 핵심 물질인 실리콘 산화물의 생성 메커니즘을 규명해 과학계 유력지인 「사이언스」와 「피지컬 리뷰 레터스」에 논문을 게재했다. 그의 연구는 실리콘과 산소 원자의 조작을 통해 반도체의 크기를 줄이고 성능을 안정화하는 데 일조했다는 의의를 갖는다.
이처럼 우리대학교는 다양한 학문이 조화를 이루는 학풍 속에 분야를 막론하고 많은 석학들을 배출했다. 근대사의 흐름 속에서 이들은 학문을 통해 민족을 이끌었고, 현대에 와서는 세계 속에 우리나라를 빛내고 있다. 대학이 학문의 전당이라는 역할이 희미해져가는 요즘, 우리는 학문을 통해 우리대학교를 빛낸 이들을 기억하며 130년 이후의 역사를 만들어나가야 할 것이다.

*국학 : 전통적인 한국의 어문학, 역사학, 철학, 농학, 법학 등의 학문
**구상성단 : 수십만 개 이상의 항성이 공 모양으로 모여 있는 성단

<참고자료 : 내일을 걷는 연세의 역사/연세대학교 박물관
연세의 발전과 한국 사회/연세의 발전과 한국사회 편찬위원회>

글 김예린 기자
yerinee@yonsei.ac.kr

사진 유자헌 기자
jyoo29@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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