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대학교 내 남아있는 서열문화를 진단하다

얼마 전 한 예·체능 계열 대학에서 선후배 간 지켜야 하는 규율이 기성언론에 의해 수면으로 드러나 논란이 됐었다. 그 규율의 항목에는 선배 앞에서 ‘짝다리 짚기 금지’, ‘핸드폰 사용 금지’ 등의 불합리한 내용이 담겨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또 최근에는 서강대 경영대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과정에서 만들어진 규칙에도 선배가 후배에게 성적인 의미가 담긴 행위를 강요하는 내용이 담겨 있어 문제가 됐다. 이 사건들을 계기로, 선후배 간의 서열문화가 사회적 쟁점이 됐다. 이에 우리신문은 우리대학교 학생 사회의 서열문화와 관련해 어떤 문제가 있는지 진단하기로 했다.

 
우리대학교 내에도 여전히 남아있는 서열문화
 
#1   새내기 연돌이는 우리대학교 A 학과의 합격증을 받아 들고 대학 생활을 꿈꾸며 설레는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중 무엇보다 기대되는 것은 역시 동기 및 선배들과 함께하는 즐거운 과 생활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기대와 많이 달랐다. 과 행사에 의무적으로 참여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준다는 경고가 있었고 선후배 간의 만남이 있는 자리에서는 조언을 가장한 꾸짖음이 이어졌다. 이러한 폐쇄적인 A 학과의 문화 속에서 선배들과 유연하고 친밀한 관계를 맺고자 했던 연돌이는 어느새 ‘예의 없는 후배’로 낙인찍히게 됐다.
 
실제로 우리대학교 한 학과에서는 선배들이 자체적으로 예의에 어긋난다고 생각하는 후배들을 학과행사에서 따로 앉히는 등의 차별을 주고 있다는 문제 제기가 이어져 왔다. 논란이 된 학과 학생회장 ㅂ씨는 “선후배들이 한자리에 모여 친목을 다지는 학과 행사가 시간이 지나면서 변질된 점이 있다”며 문제를 인정했다. 그리고 “계속해서 이러한 문제에 대해 신경 쓰고 있으며 개선을 위해 노력하는 중”이라며 학과 내의 불합리한 서열문화를 없앨 수 있도록 힘쓰겠다는 의사를 전했다. 현재 해당 학과에 재학 중인 ㄱ씨 또한 “예전에 비해 이런 불합리한 과 문화들이 많이 개선됐다는 것을 실제로 느끼고 있다”고 전했다.
 
#2  세순이는 부푼 기대를 안고 우리대학교 B 동아리에 들어갔다. 하지만 실제 동아리 생활은 세순이의 기대와는 많이 달랐다. 우선 신입기수 교육이라는 명목 하에 엄격한 선배들의 지도가 이어졌다. 또 동아리 내에서 자체적으로 정해진 생활 수칙을 지키지 않으면 소위 말하는 ‘기합’을 받기도 했다. 기수제를 기반으로 한 선후배 관계도 무척이나 엄격했다. 심지어 선배들에게 인사할 때 쓰는 특정 인사말이 존재하기도 했다. 동아리 뒤풀이 자리에서도 불합리한 일들은 계속됐다. 잦은 술자리만큼이나 술을 강권하는 일도 비일비재했고 이를 거부하면 대놓고 눈총을 받아야 했다. 이런 동아리 문화에서 오는 회의감에 지친 세순이는 동아리를 탈퇴하기로 마음먹었다.
 
서열문화가 남아있는 동아리들에서 제기되는 대표적인 문제점들은 ▲기수제에 기반을 둔 지나치게 엄격한 선후배 관계 ▲부당한 기합 문화 ▲술자리 강권 문화 등이 있다. 실제로 서열문화가 존재했던 동아리에서 활동했었던 C모씨는 “아침 일찍 집합했는데 일부 동기가 늦어도 연대책임을 지워 기수 전체가 혼났다”며 고 증언했다. D모씨 또한 “동아리의 단결력을 기른다는 이유로 선배들이 기합을 주기도 했고 동아리의 목적과 맞지 않는 억압적인 규율이 존재했다”고 말했다. E모씨는 “술을 마실 때는 일단 선배가 주는 잔은 무조건 한 번에 다 마셔야 했다”며 강압적인 술자리 문화에 대해 말했다. 
 
이에 문제가 된 동아리에서 현재 임원을 맡은 F씨는 “동아리 운영 과정에서 효율적인 의견 조율을 위해 기수제를 기반으로 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을 전했다. 이어 그는 “하지만 지나치게 억압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개선해 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 다른 동아리의 대표자 G씨는 “자율적인 음주문화를 지향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음주를 즐기는 구성원의 비중이 많은 문화가 오해를 불러일으킨 것 같다”며 “불필요한 오해의 소지를 남기지 않기 위해 끊임없는 내부 성찰과 발전을 해나갈 것이다”고 말했다.
 
 
서열문화, 왜 아직 남아있을까?
 
많은 학생이 위와 같은 불합리한 서열문화에 대해 부정적인 시선을 가지고 이러한 문화가 개선돼야 한다는 의견을 밝히고 있다. 총학생회장 송준석(정외·12)씨는 “이제는 서열문화가 남아있는 것이 오히려 비상식적인 것으로 여겨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는 입장을 전하기도 했다. 하지만 예전부터 이어져 온 학내 서열문화는 아직도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 고질적인 문제다.
 
우리대학교 김영훈 교수(문과대·사회심리학)는 위계질서에 기반을 둔 서열문화를 ‘특히 동양 사회에서 빈번하게 나타나는 문화적 양상’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김 교수는 “우리는 일상에서 나이와 지위를 통한 위계 서열로 질서를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우리대학교 전모씨는 “서열에 근거한 억압적인 문화가 불합리하다는 것을 우리 스스로 충분히 인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이 순응하게 되는 것 같다”는 의견을 전했다. 
 
한편 부조리한 서열문화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는 일을 ‘튀는 것’이라고 보는 시각 또한 서열문화를 남아 있게 하는 요인 중 하나다. 구성원들이 서열문화에 대한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이를 해결해야 한다는 것에 공감하면서도 주변의 시선이 두려워 막상 이를 실천에 옮기는 것에 부담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실제로 서열문화가 남아있는 학과에서 이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했다는 박모씨는 “서열문화를 개선해 나가려는 자체적인 노력을 했으나 이를 곱지 않게 보는 과 내 분위기를 느껴 마음이 불편했다”고 말했다.
 
우리대학교의 경우 다른 학교에 비해 비교적 학생 사회 내의 문화가 자율적이고 민주적이다. 하지만 몇몇 학과와 동아리 등에서는 아직도 비민주적인 문화를 기반으로 한 불합리한 서열문제가 남아있는 것도 사실이다. 대한항공 회항 사건, 백화점 모녀 사건 등 우리 사회 전반에서도 서열문화에 관해 다시금 생각해보게 하는 사건들이 많이 일어났다. 우리 역시 학생사회 내의 불합리한 요소들을 개선해나가겠다는 적극적인 태도를 보여야 할 시점이다
 
 
 
 
글 이정은 기자
lje8853@yonsei.ac.kr
홍수민 기자
suuum25@yonsei.ac.kr
최명훈 기자
cmhun@yonsei.ac.kr
그림 정서현 기자
bodowoman@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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