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 인생의 낭비인가. 꼭 필요한 것인가.

사당오락(四當五落). 힘겨웠던 고3 수험생활을 이겨내고 우리대학교에 들어온 당신이라면 결코 낯선 단어는 아닐 것이다. 사당오락이란 ‘대학 입시에서 4시간 자면 붙고 5시간 자면 떨어진다’는 말로, 흔히 고3 수험생들을 지도하는 교사들이나 학부모들이 자주 사용하는 말이다.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딴짓만 하고 있는 수험생들을 보며 얼마나 답답했으면 이런 말이 생겼을까 싶지만, 항상 잠이 부족했던 수험생들에게는 야속한 말이다. 고3 수험생활은 끝났지만 잠과의 전쟁은 여전하다. 이를테면 당신이 지금 시험 기간이라면? 혹은 당장 내일까지 제출해야 하는 보고서가 있다면? 아마 일찍 잠자리에 드는 것을 이미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어느 순간부터 우리에게 쟁취할 것이 돼버린 잠. 누군가는 잠을 ‘사치’라 부르고, 누군가는 ‘본성’이라 말한다.

잠은 인생의 낭비

당신은 발명왕 에디슨(Edison)의 연설 장면이 담긴 침대 광고를 본 적이 있을 것이다. 광고에서 에디슨은 ‘잠은 하루에 4시간이면 충분하다’며 잠을 많이 자는 것을 일종의 사치처럼 말한다. 일명 ‘손사탐’으로 잘 알려진 메가스터디의 손주은 강사도 그의 수업시간에 학생들에게 ‘잠을 줄이고 공부를 해라’라고 말한다. 대입 수험생 시절에는 하루에 1시간만 자도 충분하다던 손 강사의 말은 2010년으로부터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당시 수강생들 사이에 회자되고 있다. 하지만 두 사람 모두 잠을 무작정 줄이라고만 말하지는 않는다. 저러한 말 뒤에는 항상 ‘꼭 깊은 잠을 자라’는 말이 따라온다. 즉, 숙면(熟眠)을 취하라는 것. 비효율적으로 7~8시간을 자기보다는 효율적으로 3~4시간을 자는 것이 시간의 효율에 있어서도 좋다는 것이다.
그런 효율성 때문인지, 잠을 자지 않고 그 시간에 다른 활동을 하려는 사람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우리 주변의 수험생들이 대표적인 예. 이들이 잠을 줄여가며 공부를 하는 모습은 안쓰럽기까지 하다. 미국 공인회계사 시험인 AICPA시험을 준비하고 있는 박일섭(경제·11)씨는 “한정된 시간 동안 많은 양의 시험 범위를 공부하다 보니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에너지음료를 자주 찾게 된다”고 밝혔다. ‘잠 안 오는 음료’, 에너지음료의 시장 규모는 2010년대 초반 연간 300%씩 성장하며 지금의 ‘잠 안 드는 사회’를 만드는 데 일조했다.

잠들지 못하는 사회

이렇게 잠을 자지 않기 위한 노력이 끊이지 않는 탓일까. 국민건강보험이 제시한 자료에 따르면 수면장애와 관련한 진료비 청구는 지난 2008년부터 2012년까지 두 배 가까이 늘어났다. 이렇게 우리에게 흔해진 수면장애에 대해 일산병원 신경과 신수정 교수는 보건복지부 보도자료를 통해 ‘수면은 단순히 쉬는 것이 아니라 하루 동안 쌓인 마음과 육체의 피로를 해소하고 기억과 같은 고등 인지기능을 강화한다’고 설명했다. 이렇듯 건강한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것이 바로 건강한 잠이다. 하지만 건강한 잠을 자지 못하는 사람들이 자꾸 늘고 있다는 것은 좋지 않은 현상일 수밖에 없다. OECD 국가 중 최저 평균 수면시간인 7시간 49분을 자랑하는 대한민국. 지금 이 순간에도 대한민국은 잠들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왜 잠을 자야 하는가

이렇게 잠들지 못하는 사회는 병들 수밖에 없다. 자미원의 허정원 원장은 “20대의 경우 수면부족으로 인해 만성질환이나 심혈관 질환보다는 두통, 소화불량, 변비나 설사와 같은 자율신경계의 일시적 변화가 더 자주 나타난다”며 “이유 없는 불안, 무기력감, 우울감과 같은 심리적 변화도 동반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 허원장은 특히 외모에 신경 쓰는 일이 많은 20대 여성들에게 수면 부족은 피부 트러블의 주요 원인 중 하나”가 될 수 있다며 ‘꿀잠’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대한수면학회가 제시한 적정 수면 시간은 6~8시간. 아침에 우리를 깨우는 어머니들의 목소리가 들리면 변명할 거리가 생긴 것만 같다.
이런 의학적 이유뿐만 아니더라도 사람이 잠을 자려는 것은 일종의 본능이라고 할 수 있다. 흔히 인간의 3대 욕구에 대해 언급할 때면 ▲식욕 ▲성욕 ▲수면욕을 빼놓지 않는다. 잠을 자려는 몸의 신호를 거부하는 것은 본능을 거부하는 일일 터. 알람 소리를 듣고도 다시 자는 게 버릇이 돼 아침마다 알람과의 전쟁을 벌이는 것은 비단 기자만의 이야기가 아닐 것이다. 주말이면 10시간 넘게 자는 일이 흔하다는 이도건(경제·12)씨는 “인간적인 삶을 위해선 충분한 잠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며 잠을 자는 시간을 인위적으로 줄이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내비쳤다. 잠을 줄여서 그 시간만큼 다른 활동을 한들 삶의 질이 높아지지 않을 것이다

아침형 인간, 저녁형 인간이 아니라 늦게 자고 일찍 일어나는 ‘아침·저녁형 인간’을 원하는 사회에서 많은 사람은 잠을 포기한 지 오래다. 잠을 자야 하는지, 줄여야 하는지에 대한 논쟁도 여전하며 전문가들이 여러 주장을 펼친다한들 개개인의 상황을 무시하고 수면을 취할 수는 없는 법! 그렇다면 그 상황 속에서 ‘꿀잠’을 자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아닐는지. 시간이 없다고 무작정 잠을 줄일 것이 아니라 ‘꿀잠’의 비중을 한번 높여보자. 한층 개운해진 아침을 맞을 수 있을 것이니. 이래도 잘래? 안 잘래?

 

김민호 기자
kimino@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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