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숨을 쉬어도 내 꿈을 절대 쉬지 못해
-3집 Swan Songs, 2번 트랙 ‘Yesterday’ 중에서

Epik High. 영어의 ‘epic'과 'high'을 결합한 말로 직역을 하면 ‘시에 만취된 상태’ 또는 ‘서사적인 높음’이라는 뜻을 가진다. 이렇게 ‘시에 만취된’ 그들은 2001년부터 지금까지 대중들에게 높은 퀄리티의 힙합곡들을 선물해주고 있다. 에픽하이가 걸어온 발자국들은 노랫말 그대로 ‘한숨을 쉬는’ 순간들이 많았다. 그들의 길을 막는 장애물들이 많았지만 그들은 꿈이라는 도착지를 향한 달리기를 ‘절대 쉬지 못했다’. 쉴 틈 없었던 그들의 아름다운 마라톤 속을 들여다보자.

해뜨기 전이 가장 어두운 법

에픽하이의 시작은 마냥 희망차진 않았다. 지난 2003년에 터진 ‘VIP사건*’ 때문에 에픽하이의 데뷔는 늦어졌고 겨우 발매한 1집은 별다른 수익이 없이 끝나 시작부터 위기를 겪는다. 하지만 지난 2004년 2집 『High Society』부터는 조금씩 상승세를 타기 시작한다. 타블로가 『논스톱』이라는 시트콤으로 유명세를 탄 것에 이어 2집의 수록곡들이 연달아 방송 부적격 판정을 받아 관심을 끌었기 때문. 젊음을 즐기고 인생을 재미있게 살자는 메시지를 담는 「뚜뚜루」의 경우 ‘시속 200km 폭주’라는 가사는 도로주행법 위반이라는 이유로, 「Lesson 2」의 경우 ‘이 땅의 법이 출석부라면 나 결석하리’가 학생들의 결석을 조장한다는 이유로 부적격 판정을 받았다. 그러나 에픽하이는 남의 시선에 굴하지 않고 자신들만의 노래철학을 지키는 것으로 유명하다. 특히 앞서 나온 곡들 중 「Lesson 2」는 일명 ‘Lesson 시리즈’ 곡들 중 하나로, 에픽하이만의 특별함이 담긴 곡이다. 이 ‘Lesson 시리즈’는 각 앨범에 하나씩 사회에 대한 비평을 담은 곡들로, 그동안 자본주의에 대한 진솔한 비판, 자유경제에 대한 생각, 민주주의의 의미 등 다양한 내용들을 다뤄왔다.

음악의 날개를 달고 Fly

2집의 성공 이후 지난 2005년 3집 『Swan Songs』라는 앨범을 발매하게 되는데 에픽하이의 음악경력상 가장 큰 성공의 기쁨을 만끽하게 된다. 특히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곡 「Fly」! 특히 가사 중 ‘낙오감에 빠져도 Never die 날개를 피고 Let's go everybody Fly’라는 말은 아무리 힘들어도 포기하지 않는 그들의 모습을 보여주면서도 다른 사람들에게도 희망의 메시지를 주는 부분이다. 이렇게 에픽하이는 신나는 멜로디로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에너지를 주기도 하지만 「Paris」와 같이 진지한 분위기로 심오한 의미를 내포하는 곡을 보여주기도 한다. 「Paris」에 대한 다양한 해석이 있지만 그 중 하나는 바로 ‘파리스와 헬레네의 사랑’에 관한 이야기다. 「Paris」는 옛날에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가 적국이었던 스파르타 왕 메넬라오스의 아내 헬레네와의 사랑이야기를 바탕으로 하는데 트로이 전쟁을 일으킬 만큼 절실한 사랑을 했지만 이뤄지지 못하는 사랑을 주제로 쓰인 곡이다.
3집의 성공 후 지난 2007년 한국 힙합 역사에 길이 남을 4집 『Remapping the Human Soul』이 탄생했는데 타이틀곡은 「Love Love Love」와 「Fan」으로 당시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특히 「Fan」은 많은 사람들이 Fan의 의미가 ‘팬’, 즉 어떤 가수의 팬들을 지칭할 때 쓰는 말로 이해하곤 하는데, 이것은 오해. 「Fan」은 ‘Fanatic’, ‘열광적인’ 혹은 ‘광적인’이라는 단어에서 온 것으로 미친 사랑을 묘사하려는 의도를 볼 수 있다. 실제로 「Fan」의 가사 중 ‘미친 사랑에 빠진’, ‘바보 같은 사랑’ 등의 문구들은 사랑의 다양한 형태 중 광적인 사랑이란 무엇인지 잘 보여주고 있다.

Down에서 UP으로

이후 에픽하이는 지난 2008년 당시 소속사를 벗어나 ‘Map the Soul(아래 맵더소울)’이라는 레이블을 만들었지만 맵더소울 경영진이 돈을 횡령해 흐지부지되고 만다. 거기에 더해 타진요 사건**을 겪으면서 에픽하이는 한동안 암흑기를 걷는다. 이러한 암흑기에 빠져나오는 터닝포인트가 된 게 바로 YG로 소속사를 옮긴 것. 에픽하이는 재기를 다지며 지난 2012년 7집 『99』에 이어 최근엔 8집 『신발장』으로 음악에 열중하고 있다.
7집의 유명한 곡은 「UP」과 「Don't Hate Me」로 타진요사건의 슬픔을 극복하려는 그들의 움직임을 엿볼 수 있다. 타진요 사건이 진행되는 동안 우울했던 혹은 Down됐던 그들은 「UP」이라는 곡을 통해 다시 일어날 것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하지만 『99』는 몇몇 에픽하이 팬들에게 “너무 YG색깔이 들어갔다”며 “에픽하이의 색깔이 없어졌다”는 혹평을 듣기도 했다고. 에픽하이 열성팬 김동엽(TAD·14)씨는 “당시 ’choice37‘과 같은 YG소속 사람들이 많이 편곡을 해서 에픽하이 고유의 느낌이 없어진 것 같다”고 전했다.
새로 나온 앨범 8집 『신발장』은 에픽하이의 색깔을 다시 되찾았다는 평을 많이 받았다. 『신발장』의 수록곡들은 감성적인 비트와 강한 비트의 곡들이 섞여 에픽하이만의 고유한 느낌을 잘 담아내고 있다. 이 앨범 역시 에픽하이의 서사적인 가사가 돋보이는데, 그중 8집 「RICH」는 마음의 부유함을 물질적인 부유함으로 빗댄, 재미있는 역설을 담고 있어 눈길을 끈다. 특히 ‘돈 꾸면서도 살 건 사는데 꿈꾸면서 사는 건 아까운지’라는 부분은 우리들의 모순된 모습을 단번에 보여준다.

에픽하이는 역경과 고난의 연속으로 많은 위기를 견뎌내야 했지만 그들은 꿈을 잃지 않았다. 그들이 포기하지 않는 진정한 이유는 바로 그들의 음악을 사랑하고 공감하는 팬들이 있기 때문. 그들만의 개인적인 이야기가 결국 모두의 이야기가 될 만큼 진솔하기 때문이지 않을까?

*VIP사건 : 당시 CB MASS의 커빈은 동료 프로듀서가 만든 곡을 자신의 명의로 한국저작권협회에 등록하여 저작권료를 대신 받았으며, 회사에서 나온 에픽하이, TBNY의 음반 제작료를 당사자들에게 양을 속이고 나머지를 가로채는 수법으로 돈을 챙겼다.
**타진요사건 : ‘왓비컴즈’라는 네티즌이 타블로가 학력위조를 했다고 주장하며 ‘타블로에게 진실을 요구합니다‘라는 카페를 형성하며 허위사실을 유포하고 타블로의 명예훼손을 한 사건.

 

최재현 기자
choiguitar@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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