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계의 대기업 독과점 문제

한국영화 사상 최대 흥행작이라 불리는 『명량』은 총 1천761만 명을 극장으로 불러 모으며 1천만 관객을 넘어 우리 영화계의 새 장을 열었다. 또한 지난 2014년 12월 23일 영화진흥위원회의 영화관 입장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한국영화를 관람한 관객 수는 약 1억 20만 명을 넘어서며, 지난 2012년에 이어 3년 연속 관객 수 1억 명을 돌파했다. 이는 우리 국민 한 명 당 한 해 2회 꼴로 한국영화 관람을 위해 영화관을 찾은 격이다. 이처럼 한국영화는 건국 이래 최대의 호황기라 불릴 만큼 질적으로나 양적으로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영화계가 건강한 상태인지를 두고는 논란이 있다. CJ와 롯데 등 대기업들과 함께 커온 우리 영화 시장이지만 제작사와 배급사를 겸업하는 이들이 거대한 자본을 바탕으로 독과점 체제를 구축하면서 중소 규모의 제작사와 배급사들은 시장에서의 설 자리를 점차 잃어가는 형국이다.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영화?


지난겨울 개봉된 영화 중 가장 이슈가 되었던 작품 중 하나를 고르자면 단연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을 꼽을 수 있다. 지난 2014년 12월 31일 개봉된 이 영화는 김혜자, 최민수, 강혜정 등 쟁쟁한 출연배우들이 연기한 가족 영화로 화제를 모으며 평단의 호평을 받았다. 하지만 개봉 첫날 전국 205개 상영관에서 735회 상영되는 데 그쳤으며, 개봉 3주차를 맞았을 땐 전국 23개 상영관, 상영 횟수는 36회로 떨어졌다. 무려 1천500개가 넘는 상영관에서 관객을 맞은 『명량』과는 출발선 자체가 달랐다. 관람을 원하는 관객입장에서는 가뜩이나 상영관 수도 부족한데 상영 시간마저 아침이나 심야 시간대로 배정돼 영화를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웃지 못 할 상황이 연출된 것이다. 결국, 영화는 누적 관객 수 30만 4천892명이라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은 채 막을 내렸다. 그렇다면 이 영화는 도대체 왜 제대로 된 상영기회조차 갖지 못한 채 흥행에 참패한 것일까?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의 배급사 ‘리틀빅픽쳐스’는 지난 2013년 6월, 한국 영화산업의 불합리한 환경을 개선해 건강하고 공정한 경쟁 관계를 조성해 보자는 취지로 영화 제작자들이 모여 설립한 중소 배급사다. 그간 『소녀괴담』, 『카트』등의 영화를 배급해왔지만, 제작사와 배급사를 겸영하는 대기업들의 배급력에 밀려 정상적인 상영관 확보에 어려움을 겪어왔다. 끝내 지난 1월 리틀빅픽쳐스 엄용훈 대표는 영화의 흥행 실패에 책임을 지고 사임했다. 사임 직후 SNS에 올린 입장 전문을 통해 엄 대표는 ‘영화의 호평에도 불구하고 여러 불리한 조건에 개봉을 시작했다’며 ‘대기업 배급사와 함께 일하고 좀 더 충분한 시간과 자본을 줬다면 더 좋은 완성도와 더 강력한 배급력을 확보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미련을 가져보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러한 문제와 관련해 한국영화제작가협회 사무국 고광영씨는 “투자배급사와 극장을 모두 보유한 대기업들이 독과점 환경을 조성한 뒤 자사 영화 밀어주기와 불공정한 거래를 하고 있다”며 “이와 관련해 지난 2014년 12월 공정거래위원회가 제재를 내렸는데도 불구하고 대기업들의 불공정 행위는 아직 시정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상황이 일파만파로 커지고 독과점 대기업에 대한 여론의 질타가 이어지자 대기업 CJ의 영화관 체인 CGV는 부랴부랴 자사의 독립영화 전용관인 ‘아트하우스’를 통해 영화를 재개봉했다. 하지만 상업영화*로 분류되는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이 독립영화** 전용관에서 개봉한 것을 두고 또 다른 논란이 일었다. 다수의 독립영화를 연출한 신연식 감독은 보도자료를 통해 ‘독립영화 전용관은 영화의 다양성을 보장하는 데 가치를 두고 만들어진 극장’이라며 ‘상업영화인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이 15개 이상 상영관을 배정받은 것은 독립영화계에 엄청난 폭력’이라 말했다.
 

영화『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포스터



독과점 고리, 이젠 끊어야 한다.

 

영화관에서 사람들이 영화표를 사고 있다



앞서 말했듯 우리 영화 시장은 CJ와 롯데 등 대기업이 지배하고 있다. CJ의 경우 CJ E&M을 통해 영화의 제작과 배급을 동시에 진행하며 자사 영화관 체인 CGV를 운영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롯데 역시 투자배급사 롯데엔터테인먼트와 영화관 체인 롯데시네마를 가지고 있어 자사가 투자, 제작한 영화를 배급하고 상영까지 시킬 수 있는 체제를 구축한 상태다. 우리대학교 영화 토론 소모임 「눈높으시네」를 이끌고 있는 정민주(인예국문·10)씨는 “이러한 독과점 체제가 한국영화의 다양성 저하를 불러일으켜 심히 우려된다”고 말했다.
평균적으로 영화의 관람 수익은 극장과 배급사가 45:55의 비율로 나눠 가지게 된다. 그리고 배급사가 가져가는 수익 비율인 55에서 투자와 배급, 제작 등 영화와 관련된 모든 비용을 정산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극장과 투자배급사를 운영하는 투자, 제작, 배급, 상영 등 영화 생태계 대부분을 장악한 대기업의 수익에 비해 제작사의 몫은 상대적으로 적을 수밖에 없다. 고씨는 “중간 유통 과정에서의 대기업 몫이 큰 환경 속에서 질 좋은 영화를 기대하긴 매우 힘들다”고 말했다.
세계적인 영화 시장을 가지고 있는 미국의 경우 대기업의 극장, 배급사 겸영은 이미 오래전부터 논란이 돼왔다. 하지만 1948년 미 연방 대법원이 영화산업에 대기업 독과점을 막는 이른바 ‘파라마운트 판결***’을 내리면서 이후 영화산업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고 이 판결은 미국 대기업의 영화산업 독점을 막는 근간이 됐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러한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동의대 영화학과 김이석 교수는 “극장 망을 대기업이 장악하고 있는 한국영화계 상황에서 관객들의 인식개선으로는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며 “선진국의 경우 중소 규모의 영화를 보호하기 위한 제도가 시행되고 있어 우리도 스크린 독점 비율 조정이나 예술영화관 확대 등의 제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영화 산업적 측면에서 대기업의 역할은 물론 중요하다. 제작비가 많이 투입되는 블록버스터 영화 제작, 해외 시장 개척 등은 대기업만이 할 수 있는 영역이다. 하지만 예술적, 문화적 측면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대기업이 수익논리를 내세워 예술적 영역마저도 산업적 측면으로만 접근한다면 우리 한국 영화의 다양성은 퇴색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영화는 산업이며 동시에 예술이다. 대기업이 배급하는 영화에 밀려 다양한 영화를 극장에서 볼 수 없다는 것은 소비자의 선택권이 줄어드는 것을 의미하고 이로 인한 피해는 관객의 몫이다.  때문에 이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한다는 목소리가 설득력있게 들린다.


*상업영화 : 흥행 위주,, 수익 창출에 목표를 둔 영화
**독립영화 : 수익 창출의 목적보다는 영화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 모여 만든 영화, 대형 제작사에서 제작하지 않은 영화를 뜻하기도 함.
***파라마운트 판결 : 1948년 미국 할리우드 스튜디오에 대한 반독점 소송에서 법원은 메이저 스튜디오들에게 극장 매각을 명령했다. 미국의 메이저 스튜디오 중 하나인 파라마운트의 이름을 인용한 이 판결은 1950년대 할리우드 스튜디오 시스템의 붕괴를 촉발시킨 기념비적인 사건이다.

 

 


글 송진영 기자
sjy0815@yonsei,ac,kr
사진 손준영 기자
son113@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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