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88년 10월 16일, 서울 북가좌동 한 가정집에서 탈주범 4명이 한 가족을 인질로 삼고 경찰과 대치하다가 10시간 만에 사살되거나 자살하는 유혈극이 벌어졌다. 마지막으로 자살한 인질범은 최후의 순간에 비지스(BeeGees)의 ‘홀리데이’를 들으면서 깨진 유리로 자기 목을 그었다. 당시 인질범이 말한 탈주의 원인은 10년에서 20년까지 내려진 과중한 형량 때문이었다.
반면, 전두환 전 대통령의 동생인 전경환씨는 수십억 원 사기와 횡령으로 1989년 징역 7년형을 선고받고 수감됐으나 실제로는 2년 후 석방됐다.

위 두 사례는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을 만든 ‘지강헌 사건’과 많은 국민의 관심을 끌었던 ‘전경환 사건’이다. 이 사건들처럼 대한민국 사법체계에는 사각지대가 늘 존재했고, 이러한 사건들이 지속해서 반복되자 법무부는 지난 2008년 국민이 배심원으로 참여하는 국민참여재판제도를 도입했다. 국민참여재판은 재판의 투명성과 신뢰성을 높여 정당성을 확보하는 것이 목적이다.


국민참여재판이란


국민참여재판은 「법원조직법」 제32조 1항에 따라 합의부 관할 형사 사건을 대상으로 한다. 즉, 피고인과 검사, 법원이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하겠다고 합의한 형사 사건에 한해 이뤄지는 것이다. 또한, 배심원이 참여하는 만큼 국민참여재판은 일반 재판과 다른 방식으로 진행된다. 일반 재판은 공판을 거쳐 판결을 내리는 2단계 방식이다. 하지만 국민참여재판은 배심원을 선정하고 선정된 배심원이 법정공방을 지켜본 후 피고인의 유·무죄에 관한 자체적 평결을 내린다. 이어 배심원은 적정한 유·무죄와 형량에 대해 논의하고 이를 재판부가 참고해 판결을 내리는 4단계 방식을 거친다. 여기서 유·무죄에 관한 배심원의 평결은 전체의 3/4이 동의한 바로 판결에 반영되며, 이는 권고적 효력만 가질 뿐 법적 구속력은 없다. 배심원은 보통 7명이 참여하며 법정형이 사형·무기징역 또는 무기금고에 해당할 경우 9명이 참여하도록 규정돼 있다.

 


국민참여재판이 풀어야 할 숙제


국민참여재판은 지난 2013년 3월 대법원에서 최종형태가 확정됐다. 그러나 도입 의도와는 다르게 국민참여재판은 시행된 지 7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숙제를 남기고 있다. 쟁점이 되는 사안은 ▲재판에 온정주의나 지역감정이 개입될 수 있어 배심원의 판단이 잘못될 수 있다는 점 ▲배심원의 법적 구속력 부재이다.
법무부 통계자료에 따르면 지난 7년 간 1천391건의 국민참여재판 중 95건을 제외한 1천304건은 판사의 판결과 배심원의 판결이 일치했다. 하지만 판사와 배심원의 판결이 다른 95건의 사건 중 무려 87건에서 배심원은 피고인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이는 배심원의 온정주의가 판결에 큰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짐작케 한다. 이에 대해 이모 변호사는 “배심원 후보자들을 살펴보면 대개 법적 지식이 전무하다”며 “최종 변론 시 감정에 호소해 평결이 뒤바뀌기 쉽다”고 말했다. 이는 국민참여재판에 맹점이 존재한다는 것을 뜻한다.
온정주의뿐만 아니라 지역감정에 대한 문제도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건국대법학전문대학원 김영철 교수는 “특정 이념이나 정치적 이슈에 대한 편향적 의견이 다수를 지배하는 지역에서는 해당 지역에 거주하는 배심원의 판단도 그 지역 정서의 영향을 받는다”며 “사실인정이나 가치판단에 있어 객관적인 자세를 유지하기 어려운 경우를 볼 수 있다”고 전했다. 이어 김 교수는 “실제로 국회의원 총선과 관련된 공직선거법위반 사건이 배심재판에 부쳐졌을 때 여당이 우세한 지역과 야당이 우세한 지역의 배심재판 결과가 정반대로 나타난 경우가 있었다”며 “국민참여재판에서 온정주의나 지역을 기반으로 한 로비가 먹혀들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
국민참여재판은 미국에서 성공적으로 시행되고 있는 미국의 배심원 제도를 본떠 만들어졌다. 하지만 미국의 배심원 제도와 국민참여재판은 배심원이 법적 구속력 소유의 여부에서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미국의 배심원 제도의 경우, 배심원은 피고인이 유죄인지 무죄인지 판단해야 하는 평결의 책임을 지니며 판사는 기본적으로 배심원의 평결을 따르고 피고인의 형량을 결정한다. 이는 배심원이 법적 구속력을 확보함으로써 배심원의 판단에 더욱 힘을 실어주는 동시에 법관의 자의적인 판단을 불가케 한다. 반면 우리나라의 국민참여재판은 배심원의 평결이 권고에 그치기 때문에 사실상의 효력은 없다. 법무부는 이에 대해 “아직 배심원의 평결이 재판에 반영되는 것은 시기상조”라며 “검토 중에 있다”는 말만 반복하고 있다. 이모 변호사는 “배심원이 권고적 효력만 가져서는 말 그대로 국민이 참여하는 재판이라고 할 수 없다”며 배심원의 법적 구속력 확보에 대한 의견을 밝혔다.  
 



국민이 참여하는 진정한 국민참여재판으로 가는 길


국민참여재판에 대해 국민들은 어떠한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지난 2014년 9월 KBS에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국민참여재판에 대해 이름만 알고 있거나 모른다고 응답한 비율이 42.5%에 달한다. 이는 국민참여재판의 인지도가 낮기 때문에 홍보가 더욱 필요하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는 부분이다. 반면 인지도는 낮았지만 국민들의 배심원 참여 의사는 76%로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그러나 참여의사를 밝힌 사람들 중 87%는 배심원의 의견이 법적 구속력을 갖지 못한다는 말을 듣자 참여 거부 의사를 밝혔다. 고재유(전기전자·07)씨는 “사회에 기여한다는 보람을 느끼기 위해 국민참여재판에 참여해보고 싶었지만 배심원의 의견이 재판에서 법적 구속력이 없다는 것을 알고 난 후엔 참여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김 교수는 “우리 시민이 좀 더 정의에 대해 진지해지고 정의를 위한 공적인 약속을 해야 한다”며 “어떤 희생을 무릅쓰고라도 정의감과 사명감이 충만한 국민의 비율이 절대적 다수를 차지한다면 배심원이 법적 구속력을 갖는 방안이 논의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자유와 자유 아님이 갈리는 것은 개인의 자유를 속박하는 법이 어디에서 오느냐 하는데 달렸다. 자유 있는 나라의 법은 국민의 자유로운 의사에서 오고 자유 없는 나라의 법은 국민 중의 한 개인 또는 한 계급에서 나온다.  
  - 김구

김구 선생의 말처럼 진정으로 국민이 참여하는 국민참여재판이 되기 위해서는 모든 국민의 자유로운 의사가 반영돼야 한다. 참여재판에 대한 국민적 관심과 함께 전반적 의식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글 신준혁 기자
jhshin0930@yonsei.ac.kr
그림  이진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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