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세대 예술인들의 고충과 공적 지원

빈센트 반 고흐, 예술에 관심이 없는 이라도 한 번쯤 들어봤을 이름이다. 그만큼 서양미술사에서 고흐가 끼친 영향은 대단하다. 그러나 후대의 평가와는 별개로 고흐는 불우한 삶을 살았다. 생애 동안 한 차례의 개인전도 열지 못했고 고작 한 점의 그림만을 지인에게 팔았을 뿐이다. 고흐는 동생인 테오 반 고흐에게 재정적으로 의존한 채 예술 활동을 이어나갔다. 각종 정신질환을 앓던 그는 1890년, 37년의 삶을 마감했다. 오늘날 우리나라 청년 예술인들의 공간적, 재정적 여건도 고흐의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예술인의 ‘창작활동 관련’ 월수입, 100만 원 이하가 2/3

 

지난 2012년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실시한 ‘문화예술인실태조사’에 따르면 문화예술인 중 예술 창작 활동으로 월 100만 원이 넘는 소득을 올린 이들은 33.7%에 불과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직업 예술인의 대다수가 본업인 예술이 아닌 부업을 통해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많은 예술인들이 고흐처럼 불우한 여건 속에서 예술창작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한국예술인복지재단 김세영 대리는 “우리나라에서 온전히 창작활동만으로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예술인은 상위 몇 퍼센트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지명도가 비교적 낮은 청년세대 예술인의 경우 평균치보다 낮은 수입을 올리거나, 예술 활동이 아닌 부업에 종사하는 경우가 많다. 갤러리가 밀집된 인사동의 전시실 대관료는 주당 평균 200만 원 선으로 갤러리 대부분이 비슷한 가격에 전시실을 대관하고 있다. 가난한 청년 예술인들에게 비싼 전시실 대관료는 부담스러운 수준을 넘어 불가능한 수준으로 보인다.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의 옥외광고


전시와 창작, 청년은 공간을 요구한다

 

‘청년관을 위한 예술행동’(아래 예술행동)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 청년관을 설립할 것을 요구하는 단체다. 청년관이란 청년 및 신진예술인들이 상시로 프로젝트를 운영할 수 있는 공간으로 예술행동 측에서 제안한 개념이다. 청년 예술인들을 위한 전시공간이 부족하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해 구체적으로 국립현대미술관에 공간을 마련할 것을 요청한 것이다. 예술행동 사무국에서 일하고 있는 서섬씨는 “우리가 요구하는 청년관이란 물리적 공간일 뿐 아니라, 현시대의 청년 예술에 대해 고찰하는 개념적인 공간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같은 맥락에서 예술행동 측은 청년 세대 큐레이터와 평론가 등의 예술계 전문인을 위한 공적 제도의 확충을 함께 요구하고 있기도 하다. 예술행동 측은 오는 4월 1일,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앞에서 청년관 관련 전시를 진행할 예정이다. 

 

예술공간 그리고 무료대관

 

한편, 공적 차원에서도 예술인들이 창작 및 전시를 할 수 있도록 지원이 이루어지고 있다. 서울시에 운영하고 있는 서울문화재단(아래 재단) 소속의 여러 문화예술공간에서는 예술인들에게 작업실과 전시실을 제공한다. 재단에 소속된 금천예술공장의 경우 일부 유료 공간을 제외한 많은 공간의 대관료를 받지 않고 있다. 그러나 청년 예술인들은 이 공간을 빌리기 위한 조건이 까다롭고 경쟁률이 높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대관을 위해서는 문화예술공간에 입주해야 하는데, 공모와 심사 과정을 거쳐 입주한 이후에도 낮게는 2대1, 높게는 10대1의 경쟁률을 뚫고 대관 심사에 통과해야 하기 때문이다. 서울문화재단 창작공간 통합관리팀 박은희 매니저는 “결국 입사하는 이들의 대부분은 예술계에서 어느 정도 경력이 쌓인 예술인”이라며 진입초기 청년예술인들의 녹록치 않은 상황을 설명했다. 다행이도 경제적으로 더욱 열악한 진입 초기의 청년 예술인들만을 지원하는 곳이 존재한다. 재단 소속의 서교예술실험센터에서는 유망예술지원사업을 통해 아이디어가 좋으나 전시경험이 적은 예술인들의 창작 및 전시활동을 돕기도 한다.

 

청년 예술인의 진입장벽, 미대생 졸업 전시회

 

청년 예술인들은 대부분 예술대학에서 공부한 이후 본격적으로 예술활동에 참여하게 된다. 이때 대학생과 예술인 사이의 관문 역할을 하는 것이 졸업 전시회 혹은 졸업 연주회다. 그러나 졸업 전시회가 졸업을 위한 필수요건임에도 대학 측의 지원이 전무하다는 지적이 학생과 졸업생들 사이에서 나타나고 있다. 홍익대 커뮤니케이션디자인학부를 졸업하고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하고 있는 고은정(27)씨는 “졸업전시회를 위해 총 270만 원 정도의 돈을 소비했다”며 “작업물 제작 이외에도 대관료 등 부대비용이 들기에 부담스럽다”고 말했다. 졸업전시회는 대학교 내의 전시관에서 열리는 경우도 있지만, 전시 공간이 부족하거나 교내에 전시관이 없는 경우 외부 갤러리에서 열리는 경우도 많다. 갤러리에서 졸업전시회가 진행되는 경우에 비용 부담은 온전히 학생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호서대학교 정대현(산업디자인학과·14)씨는 “학과 선배가 졸업 전시회를 준비하며 비용부담 때문에 여러 공모전에 나가 상금을 모으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며 “미대생의 입장에서 큰 비용이 들어가는 졸업전시회는 등록금과는 또 다른 짐”이라고 졸업전시회 준비에 대한 부담을 토로했다. 대부분의 학교가 졸업전시회 참가를 의무화하고도 아무런 지원을 하지 않는 상황에 대한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예술인 복지, 새 길을 찾기 위한 노력

 

그동안 예술인들은 근로자로 취급되지 않았기에 공적 복지의 혜택에서 소외되기 쉬웠다. 그러나 지난 2012년 11월 18일부터 『예술인복지법』이 제정됨에 따라 예술인들도 제도권 복지의 혜택을 받는 범위가 넓어지게 됐다. 산재보험의 경우 일정 근로시간과 작업장이 보장된 근로계약 아래에서 근로해야만 가입이 가능하므로 이런 계약을 맺고 근무하는 경우가 드문 예술인들은 산재보험 없이 작업에 임해야 했다. 그러나 『예술인복지법』이 시행되면서 예술활동증명이 된 경우 임의가입제도*를 통해 산재보험에 가입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예술활동증명은 일정 기간의 예술활동 혹은 예술활동 수입을 기준으로 직업 예술인임을 공인받는 제도이다. 한국예술인복지재단 전략홍보팀 김가진씨는 “예술인 복지가 몇 년 새 크게 확대된 것은 사실”이라며 “법 개정을 통해 예술인들이 4대 보험의 혜택을 받게 하는 것이 재단의 주요 목표 중 하나”라고 말했다. 한편 한국예술인복지재단에서 이뤄졌던 기존의 복지는 예술가가 창작하는 작품에 대한 대가로서 지원이 이뤄지는 식이었다. 하지만 최근 재단을 통해 이뤄지는 지원은 예술인의 생활안정에 실질적 도움을 주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다. 김씨는 “재단에서는 예술인의 생활안정을 우선하기 위해 지원금을 지급하고 이후 창작에 집중할 수 있도록 보조하는 방식으로 지원하고 있다”고 변화된 복지 제도의 의의를 전했다. 예술활동에 대한 직접 지원에서 예술인의 생활을 위해 실업급여 형식의 생활지원금을 지원해 예술활동을 간접 지원하는 방식으로 지원 방식이 변경된 것이다.

청년 세대의 예술인들은 예술에 대한 열정으로 열악한 조건에서도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이들을 뒷받침하기 위한 여러 사회적 제도들이 마련되고 있지만, 아직 그 수혜대상이 적은 실정이다. 청년 세대 예술인 중에는 후대에 고흐와 같이 당대의 인정을 받지 못한 비운의 예술인으로 기억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 원인이 적어도 활동 공간 및 복지 문제가 되지 않도록 제도적 연구가 더 필요해 보인다.

 

*임의가입제도: 산재보험의 의무 가입대상은 아니지만 업무상 재해로부터 보호할 필요성이 있는 경우 신청을 받아 보험에 가입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
 

글 이승학 기자
minor158@yonsei.ac.kr
<자료사진 문화체육관광부 국민소통실 정책포털과 다정다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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