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소수자 인권, ‘그들’이 아닌 ‘우리’의 이야기

 

성소수자를 상징하는 무지개 깃발


“Much Madness is Divinest Sense”

19세기 미국의 여류시인 에밀리 디킨슨의 시 제목이다. 그녀의 눈에 당대 미국은 다수에 반하는 소수의 의견을 비정상의 광기로 인식하는 사회로 비쳤음을 알 수 있다. 이는 퀴어*들을 이성애적 규범이라는 보편적 범주에서 배제된 비정상적 성소수자로 인식하는 오늘날 우리 사회와 별반 다르지 않다. 마치 다수가 옳다고 여기는 것이 가장 ‘신성한 분별(Divinest Sense)’인 것처럼 말이다. 사회의 축소판이라 할 대학사회 내에서도 성소수자들은 여전히 이러한 배타적 편견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는 그들의 삶을 조명해 본다.


대학에서 성소수자로 산다는 것


성소수자들은 장애인, 외국인 노동자 등 다른 소수자와 다르다. 이들을 ‘다르게’ 만드는 특징은 드러내지 않으면 아무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아서 알아차리기 어렵다는 점은 이들에게 양날의 검이 될 수 있다. 사람들과 크게 부딪히는 일은 없지만, 목소리를 크게 내기 힘들다는 것이다. 대학 내에서 성소수자들이 느끼는 어려움은 크게 ▲이성애자라는 사회적 전제 ▲부정적인 인식과 편견 ▲공식 활동에서의 아웃팅**위험 ▲언어폭력 등으로 볼 수 있다.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당연하게 자신이 타고난 성별에 맞는 정체성을 확립하고, 이성과 사랑하고 결혼해 가정을 꾸려야 한다는 것을 배운다. 서강대 성소수자 자치연대 ‘춤추는Q’의 닉네임 ‘세이지’씨는 “이러한 전제가 깨질 때 주변 사람들이 나를 받아주지 않을까봐 소외감이 든다”고 말했다. 친구 사이에서 흔히 던지는 ‘남자(여자)친구 없어?’, ‘미팅 나갈래?’라는 질문들도 누군가에게는 불편하게 느껴질 수 있다. 세이지씨는 “너무나 당연하게 이성과 엮으려는 분위기 때문에 힘든 적이 많았다”며 “친구들이 ‘누구랑 데이트했냐’고 물어보면 연인의 성별을 바꿔서 말하곤 한다”고 말했다. 이처럼 일상에서 무심코 던지는 말들이 이성애 중심주의적인 폭력이 될 수도 있다.
성소수자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도 이들이 생활하는 데 어려움을 겪게 한다. 동성애를 혐오하는 호모포비아들이나 트랜스젠더를 혐오하는 트랜스포비아가 성소수자를 반대하는 극단적인 행동을 보이는 경우가 있다. 실제로 작년에 고려대·이화여대·서강대 등에서 성소수자 단체가 붙인 대자보가 훼손되는 일련의 사건들이 일어났고, 이런 일들은 여러 대학가에서 적지 않게 일어나고 있다. 세이지씨는 “일부 기독교 신자들과 학부모들 사이에서 성소수자에 반대하고 걱정하는 목소리가 많다”며 “성소수자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인식하고 마치 증식하는 존재로 편견을 가지고 대하는 것이 불편하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견고한 사회적 편견은 쉽게 깨지기 어렵다. 우리대학교 신모씨는 “군대에서 아웃팅 당한 선임을 대할 때 티내지 않으려고 했지만 샤워 등의 공동생활을 하다 보니 마음과는 다르게 어울리기 힘들었다”고 전했다.
자신의 성적 지향이나 정체성을 드러낸 후에 겪는 부정적인 시선과 여러 문제들 때문에 성소수자들은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면 커밍아웃을 하려 하지 않는다. 그러나 커밍아웃과 다르게 아웃팅의 경우는 성소수자들이 쉽게 막을 수 없다는 점이 문제가 된다. 이에 성균관대 성소수자 모임 ‘퀴어홀릭’의 닉네임 ‘알렉스’씨는 “공식적인 활동을 하다 보면 아웃팅 위험의 부담이 있지만 회원의 신상 보호를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동아리연합회나 총학, 학교 측의 배려가 없는 곳에서는 아웃팅 위험 등의 문제로 공식적인 단체로 인준받기 위해 노력하기 힘든 것이 현실이다.
성소수자들은 자신들을 향해 비난을 퍼붓는 사람들에게만 상처를 받는 것이 아니다. 실질적으로 이들에게 더 많은 상처가 되는 것은 주위 사람들의 의도치 않은 언어폭력이다. ‘게이 같다’, ‘게이샷/레즈샷’ 등의 말은 일상적인 장난으로 쓰이기도 하고, 주변에 성소수자가 있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는 친구들의 언어폭력은 이들에게 비수로 꽂힌다. 세이지는 “단체 카톡방에서 성소수자를 비하하는 발언을 쉽게 하는 것을 보면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고 생각을 전했다.


대학 내 인권센터, 현주소는?


서강대학교 성소수자 자치연대가 캠퍼스에 설치한 현수막


지난 2014년 10월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에서 발표한 「한국 LGBTI*** 커뮤니티 사회적 욕구조사 최종보고서」에 따르면 ‘차별이나 폭력을 직접 경험한 적이 있다’고 41.5%가 답했다. 하지만 그들 중 ‘경찰이나 관계기관, 단체 등에 신고하거나 도움을 요청’한 사람은 5.1%에 불과했다. 성소수자들을 차별과 폭력으로부터 구제하는 것은 현재 우리 사회에 던져진 중요한 과제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현재 대학 사회는 성소수자의 인권을 위해서 어떠한 노력을 하고 있을까? 성소수자가 차별이나 폭력을 겪었을 때 상담센터를 찾아가는 것이 학내에서 도움받을 수 있는 하나의 길이다. 실제로 성소수자들이 직장생활을 하는데 필요한 것으로 ‘성소수자 인권침해 차별에 대한 구제절차나 기구’라고 48.4%가 꼽았다. 학교생활 또한 집단생활이라는 점에서 학내 성소수자들 역시 이를 필요로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에 알렉스씨는 “이성애자와의 마찰이나 개인적인 정체성에 대한 고민 등으로 인한 상담의 필요성을 호소하는 회원들이 매우 많다”고 말했다. 하지만 대학 안에서 이런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마련된 상담센터는 ‘양성평등’, ‘성폭력’ 상담센터라는 이름을 달고 성희롱과 성폭력에 집중해 운영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우리대학교 성평등센터 최지나 연구원은 “성과 관련한 이야기를 찾아와서 할 수 있지만, 성폭력과 성희롱 상담이 특화돼 있다”고 말했다.
상담센터보다 성소수자 인권 문제에 조금 더 적극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인권센터를 설치한 학교들도 있다. 대학 내 인권센터는 인권침해를 당한 학내 구성원의 권리를 보호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역할을 한다. 이에 인권연대 오창익 사무국장은 “어느 사회에나 인권문제가 있기 마련이기에 능동적으로 대처해 피해자를 돕고, 그 이전엔 인권문제의 발생을 줄이기 위해 인권교육 등을 시행할 기관이 필요하다”며 “대학공간은 위계에 의한 지배가 강하게 나타나는 곳이므로 당연히 인권센터가 설립돼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현재 인권센터가 존재하는 전국 4년제 대학은 4곳에 불과하다. 세이지씨는 “성평등상담소가 인권센터의 역할을 대신하고 있긴 하지만 우리가 자체적으로 규탄 대자보나 시정 권고 메일을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학내 구성원들이 인권센터를 바라고 있지만 그것이 제 역할을 하고 있지 못하다는 비판도 있다. 오 사무국장은 “대학 내 인권센터의 위상은 대학 구성원들의 의지와 결부돼 있다”며 “비교적 노력하는 곳도 있고, 아예 무용지물인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아직 많은 대학이 학생사회의 구성원인 성소수자들의 인권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의지를 보여야하는 과제가 남아있다.


성소수자 인권을 위한 움직임


서강대에서 열린 ‘2015 LGBTI 인권포럼’ 포스터


우리나라는 지난 2007년 차별금지법부터 시작해 서울시 학생인권조례와 최근 서울시 인권헌장까지 성소수자 차별금지 조항이 계속 논란이 돼왔다. 이에 UN과 국제사회로부터 성적 지향을 포함한 포괄적 차별금지법의 제정에 대한 지속적인 권고도 이어져왔다. 지난 2012년 OECD에서 시행한 ‘동성애자 관용 수준’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32개국 중 터키를 제외하고 제일 낮은 점수인 19.5점을 받았다. 평균이 65.7점인 것으로 미뤄보아 우리나라의 성소수자 인권 문제는 심각한 수준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부정적인 사회의 시선 속에서 변화의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는 대학도 있다. 고려대는 지난 10월 한국 대학 최초로 회칙에 교내 성소수자 차별 금지를 명기했다. 고려대 총학 사회연대국 박세훈 국장은 “성소수자 차별금지 조항을 학칙에 명문화시키는 것은 상징적인 의미가 있기에 전 총학에서 추진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또한 고려대는 현재 총학 산하 ‘성소수자 특별기구’를 설립할 계획이다. 이러한 움직임은 서강대에서도 꿈틀거리고 있다. 서강대에서는 총학 산하에 있는 ‘춤추는Q’와 서강대 여성주의학회 ‘틀깸’ 등이 연대해서 지난 21일부터 이틀 동안 ‘2015 LGBTI 인권 포럼’을 진행했다. 이에 세이지씨는 “천주교 학교임에도 불구하고 진행된 것에 대해서 의아해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포럼을 준비하는데 학교와의 갈등이 전혀 없었다”며 “오히려 학교 측에서 적극적으로 익명성 보장에 신경 써주었다”고 전했다.
한편, 서울대 인권센터 이혜원 변호사는 “현재 성소수자 차별을 금지하는 내용의 인권헌장 제정을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또한 성소수자에 대한 학내 구성원들의 인식개선을 위해서 활동하고 있는 학교도 있다. 중앙대 인권센터 관계자는 “교내 성소수자 동아리 ‘레인보우피쉬’와 연대해서 인권문화제와 인권 특강을 준비해 진행하고 있다”고 전했다. 대학가의 성소수자 차별과 혐오에 대응해 이와 같은 성소수자 인권을 위한 활동들이 이어지고 있는 것은 대학 내 인권의 밝은 신호이다.

“우리 모두가 동의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인권의 신성함입니다. 양심을 가진 인간으로서 우리는 일반적으로 차별을, 특별히 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을 이유로 한 차별을 거부합니다. 누군가 성적 지향을 이유로 공격받고, 학대받거나 감옥으로 보내질 때, 우리는 반드시 이에 맞서 목소리를 내야 합니다”

지난 2010년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의 연설 중 일부이다. 이는 우리 전체 사회뿐만 아니라 대학 사회에도 해당되는 말이다. 세이지씨는 “우리를 인정한다는 명목으로 관심을 끄지 말아 달라”며 “차별에 대항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사람은 우리뿐만 아니라 여러분도 함께여야 한다”고 전했다. 성소수자 인권 문제는 그들이 해결해야 할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전체의 문제라는 인식을 하고 이에 대한 관심과 해결을 위한 노력이 필요할 때이다.


*퀴어 : 레즈비언·게이·양성애자·트랜스젠더 등 성적소수자를 포괄하는 단어
**아웃팅 : 커밍아웃과는 반대로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자신의 성적 지향이 드러나게 되는 것
***LGBTI : 성소수자 중 레즈비언(Lesbian), 게이(Gay), 양성애자(Bisexual), 성전환자(Transgender), 간성(Intersex)를 합쳐서 부르는 단어



 글 사진 강수련 기자
training@yonsei.ac.kr
글 문세린 기자 
peace.maker@yonsei.ac.kr
<자료사진 국제앰네스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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