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헌 소지 우려 해소, 강제 사과 아닌 진정성 담은 반성을 위해

우리대학교 ‘성폭력 예방 및 처리에 관한 규정’에서 징계 및 조치와 관련된 제16조 제2항 제1호 ‘가해자의 공개사과’ 조항이 지난 2월 27일 삭제됐다. 변화된 규정은 3월 1일부터 시행되고 있다.
성폭력대책위원회(아래 성대위)는 성폭력 사건을 심의하는 과정에서 피해자의 의견을 최대한 반영해 가해자에 대한 사후조치 이행명령을 내릴 권리를 가진다. 조항 변경 전 성대위에서는 가해자에게 공개사과를 비롯해 ▲반성 차원의 재교육 프로그램 이수 ▲피해자에게 일정기간 접근금지 ▲사회봉사 등을 명할 수 있었다. 또한, 피해자의 요구에 따라 ▲개인적 사과 ▲반성문 제출 등도 강제할 수 있었다.
가해자의 공개사과 조항이 삭제된 이유는 기존 조항과 관련해 ▲위헌 소지 ▲피해자 및 가해자의 신원공개 등의 우려가 제기됐기 때문이다. 공개사과는 피해자의 요청 여부에 따라 가해자가 실명 대자보를 붙이는 방식으로 이뤄져 왔다. 그런데 이러한 방식의 강제적 사과는 진정성 없이도 이뤄질 수 있다는 점에서 헌법 제19조에 명시된 기본권 ‘양심의 자유’에 위배될 수 있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이는 지난 1991년 사과광고가 민법 제764조의 ‘명예회복에 적당한 처분’에 포함되는 것이 위헌이라고 판단을 내린 헌법재판소의 판례에 따른 것이다.
공개사과를 통해 가해자뿐만 아니라 피해자의 신원이 노출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 또 다른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성평등센터 최지나 전문연구원은 “학생사회가 좁다 보니 공개사과 과정에서 피해자나 가해자의 신분이 노출될 것이 우려됐다”고 밝혔다. 이외에도 조항삭제의 배경에는 성폭력 사건 심의과정에서 성대위가 오판으로 인해 과도하게 조치를 취하게 됐을 경우를 만회하기 위한 목적도 있다. 최씨는 “혹시나 성대위의 잘못된 판단으로 인해 관계자들이 입을 수 있는 피해를 최소화하려는 의도”라며 조항삭제가 갖는 의미를 밝혔다.  
그러나 조항변경 과정에서 충분한 논의가 부족했다는 의견도 나왔다. 총여학생회장 정혜윤(철학·12)씨는 “공개사과 조항이 양심의 자유에 위배될 수 있다는 점은 인정하지만, 해당 조항이 가진 역사적 맥락이 반영되지 않은 것 같다”며 “조항삭제가 다수결에 의해 결정된 사안이라 하더라도 이 조항 자체가 삭제를 서면으로 결의할 만한 사안이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최 연구원은 “실제로 피해자들이 적극적으로 공개사과를 주장한 선례가 많지 않다”며 “조항 삭제로 인해 성대위에서 공개사과를 강요할 수 없게 된 것이지, 처벌 자체를 하지 않게 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공개사과 조항 삭제 이후에도 가해자의 반성을 촉구할 수 있도록 하는 후속조치들은 기존과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최 연구원은 “학생들이나 언론에서 공개사과조항 삭제의 의미에 대해 오해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며 “하지만 가해자에게 성폭력의 개념을 정확히 인지시키고 진정성 있는 사과를 하게 하는 것은 변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편 공개사과 조항이 삭제되면서 새로운 보완책들이 제정됐다. 그러나 모호한 용어사용과 많은 단서조항으로 인해 새로운 시행세칙들의 실효성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이 존재하기에 이와 관련된 논란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권아랑 기자
chunchuarang@yonsei.ac.kr
 
저작권자 © 연세춘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