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누리 정신과의원 이호분 원장을 만나다.


우리나라에서 정신과에 대한 이미지는 조금 부정적이다. 하지만 정신과는 일반 병원과 다를 바 없이 우리의 건강을 위해 찾을 수 있는 곳이다. 우리대학교 동문인 연세누리정신과의원 이호분 원장(의예‧84)은 이러한 편견을 없애고 정신과의 문턱을 낮추는 일에 앞장서고 있다. 의대생 시절부터 남들보다 사회에 대한 관심이 많았던 이 원장은 지금도 TV 출연과 저서를 통해 정신과에 대한 인식을 바꾸기 위해 노력해왔다. 이 원장의 대학시절부터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까지,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공부보다 사회에 관심이 많았던 의대생

‘의대생’이란 단어를 들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의사가 되기 위해 공부에 모든 걸 쏟는 공부벌레를 상상한다. 하지만 대학시절 이 원장은 이런 전형적인 공부벌레는 아니었다. 의예과 재학시절 동안 이 원장은 우리신문사인 『연세춘추』 활동을 포함해 풍물 동아리 등 다양한 활동을 했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지만 의사의 행복은 성적순’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경쟁이 치열한 본과에 진입해서도 이 원장은 다양한 활동들을 이어갔다. 그중 이 원장이 가장 열심히 참여한 활동은 우리학교의 기도학생회인 SCA였다. SCA는 이 원장에게 공부만 하다 보면 멀어질 수 있는 사회적, 신학적 관심사들에 대해 선후배와 토론을 할 수 있는 장을 제공했다. 더불어 SCA에선 경기도 안성에 찾아가 의료봉사와 농촌 활동을 하기도 했는데 이 원장은 “의료봉사는 주로 선배들이 하고 우리는 지역 청년들과 여러 가지 사업을 했다”며 “당시 안성에 굉장히 깨어있는 청년들이 많아 지역사회를 위해 내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여러 가지를 그들로부터 보고 배울 수 있었다”고 말했다. 단순히 학과 공부에만 매달리지 않은 대학시절은 오늘날 의사에게 주어진 사회적 책임감을 고민하는 이 원장의 밑거름이 되었다.
 

정신과는 한 사람의 인생을 바꾸는 곳

그렇다면 이 원장은 왜 수많은 의사 중에 정신과 의사가 되기로 택한 것일까? 이에 대해 이 원장은 정신과는 한 사람의 인생을 바꿔놓는 곳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녀는 “모든 걸 다 갖춘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세상을 보는 관점이 남들과는 달라서 자존감도 낮고 스스로를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며 “정신과 진료로 그 관점을 바꿔주는 일이 이 사람의 남은 인생을 결정할 만큼 정신과 진료가 하는 역할이 크다”고 말한다. 이 원장이 2년간의 수련을 더 거쳐 소아정신과 전문의가 된 이유도 비슷한 맥락에서다. 이 원장은 사람의 마음을 도자기에 비유하며 “이미 유약을 발라서 구워놓은 도자기의 모양을 바꾸기는 쉽지 않지만 아이들의 마음은 아직 굽지 않은 반죽 같아서 조금만 치료를 해줘도 눈에 띄게 변화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고 한다.
물론 그런 만큼 더 세심한 노력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성인의 정신 질환 치료 과정에 비해 아동의 정신 질환 치료 과정은 더 총체적인 접근을 필요로한다, 아동의 경우엔 정신 질환의 원인을 찾기 위해 아동의 부모부터 친구들, 선생님까지 만나봐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원장은 “이렇게 총체적인 접근을 하는 만큼 아동들은 치료의 효과가 빨리, 또 분명하게 나타난다”며 “정신과 진료가 말 그대로 아이의 평생을 좌우한다는 점에서 큰 책임감과 보람을 느낀다”고 말한다. 더불어 정신과에서 치료를 하면서 치유를 받는 건 환자만이 아니다. 이 원장은 “정신과 의사로서 연구를 하다보면 계속해서 스스로의 내면에 대해 생각해볼 기회가 생긴다”며 “나이를 먹을수록 이에 맞춰 정신적으로 성숙하는 것이 쉽지 않은데 정신과 진료를 하면서 나의 내면도 같이 성숙하는 것을 느낄 수 있어 좋다”고 이야기한다.

병원 밖으로 나간 의사

이 원장의 활동은 병원에 찾아오는 아이들을 진료하는데서 그치지 않는다. 그는 SBS의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에 출연해 방송에 나오는 아이들을 진단하고 신문매체에 다양한 칼럼을 기고한다. 이 원장의 칼럼은 주로 우리사회의 문제점들이 어떤 정신질환을 유발할 수 있는지, 혹은 어떤 사회 문제들이 정신 질환으로 이어지고 있는지에 대해 다룬다. 이렇게 그녀가 병원 밖에서도 다양한 매체를 통해 활동하고 있는 이유는 두 가지이다. 첫 번째는 정신과 질환은 결국 여러 방면에서 우리 사회와 상호적으로 연관되어있기 때문이다. 이 원장에 따르면 ‘묻지마 범죄’나 정치인들의 스캔들 등 다양한 사회문제의 원인 중 하나는 개인의 정신질환이다. 또 반대로 청년실업과 같은 사회문제가 때론 많은 사람들에게 우울증과 같은 정신질환을 야기하기도 한다. 정신 질환이 사람들의 마음과 관련이 있는 만큼 사회와 정신과는 서로 영향을 주고받을 수밖에 없는 밀접한 관계인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 원장은 자신이 우리사회를 위해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 끊임없이 고민하며 다양한 시사 프로그램에 자문을 하고 있다.
두 번째는 이렇게 중요한 정신과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 만연한 편견 때문에 정신과가 제 역할을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녀를 본격적으로 다양한 매체로 끌어들인 것은 약 5년 전 정신과 진료를 받으면 보험 가입이 어렵다고 쓴 한 유명 언론사의 기사였다. 이 원장은 “당시 그 기사는 몇몇 사실이 아닌 내용까지 써가며 우리나라에서 그나마 나아지고 있던 정신과에 대한 인식을 한층 더 부정적으로 만들었다”며 “이는 정신 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들이 제대로 된 치료방법을 찾을 수 없게 만든 정말 안타까운 일”이라고 말했다. 이때 이 원장은 매체를 통해 정보가 퍼지는 게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를 느꼈다. 그리고 그녀는 한층 더 높아진 정신과의 문턱을 낮추기 위해 스스로가 직접 TV와 언론사로 나섰다. 이 원장은 “TV를 통해 실제로 아이들이 변하는 모습을 보면서 사람들이 정신과 치료를 통해 나아질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으면 좋겠다”며 “특히 이러한 정신 질환은 그 씨앗이 더 커지기 전인 어릴 때에 정신과를 방문해야만 더 큰 질환을 막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렇게 이 원장이 단순히 환자를 치료하는 것 이외에도 다양한 활동을 하게한 원동력은 대학교 때 활동한 SCA의 선후배들이 만든 기독청년의료인회다. 이 원장은 지금까지도 매주 수요일 기독청년의료인회를 통해 의료인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토론과 다양한 세미나에 참여하고 있다. 이 원장은 “가끔은 개인의 삶에 안주하고 싶다가도 수요일에 있는 모임에 나가면 다른 동료들이 항상 나를 각성시켜주곤 한다”며 “대학교를 통해 이렇게 나이가 들어서도 서로를 보고 배울 수 있는 사람들을 만난 게 참 행운이라고 생각한다”고 이야기했다.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 고민해보세요

정신과 전문의로서 이 원장은 다양한 대학생 환자들도 만나곤 한다. 이원장이 취업에 대한 고민 때문에 병원을 찾는 대학생들을 보며 느끼는 것은 우리 사회가 외면을 꾸미는 데에 너무 치중한 나머지 내면을 성숙시키는 데에는 충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 이 원장은 “기업의 입장에서 보면 스펙도 중요하지만 결국 함께 일하고 싶은 사람은 내면이 건강한 사람일 것”이라며 내면의 아름다움을 강조했다. 더불어 그녀는 최근 대학생들의 우울증이 급격하게 늘고 있는 현상에 대해 “이렇게 눈에 띄는 증가는 결국 사회적인 문제가 원인일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취업이 안돼서 찾아오는 대학생들을 만나다보면 가끔 이 원장은 스스로도 무기력해질 정도로 요즘 대학생들의 사정이 어렵다는 것을 느낀다.
하지만 이러한 현실이 당장 바뀌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이 원장은 대학생들에게 ‘진짜 행복이 무엇인가’에 대한 깊은 고민을 해볼 것을 권한다. 자신의 행복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끊임없이 경쟁에 치여 살다보면 아무리 그 경쟁에서 살아남는다 해도 결국 스스로가 불행하다고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 이 원장은 “취업을 하고나서도 행복하지 않아 정신과를 찾는 사람이 많다”며 “남과 비교해서 얻는 승리감이 아닌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을 찾으라”고 조언했다. 이어 이 원장은 “지금의 기성세대는 이러한 경쟁의 구도에서 살아온 사람들”이라며 “대학생들이 이러한 경쟁의 패러다임을 바꿔나가는 첫 번째 세대가 됐으면 좋겠다”는 자신의 바람을 밝혔다. 이 원장에 따르면 모두가 행복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것은 지금의 경쟁의 패러다임이 아닌 협동의 패러다임이다. 그녀는 “젊은 세대들이 이에 앞장서 우리사회를 협동하는 사회로 바꿔나가 달라”고 당부했다.

‘정신과 의사’라는 직업을 떠나 한 명의 선배로서 이원장은 “연세대학교에 들어왔다는 것은 사실 이미 좋은 인프라를 갖고 시작하는 것”이라며 “내가 관심만 가지면 얼마든지 훌륭한 선배나 후배를 만날 수 있다”고 조언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원장은 “후배들이 자신들이 얼마나 혜택 받은 사람인지를 깨닫고 이를 십분 활용하되 혜택 받은 사람으로서 스스로의 사회적 역할에 대해서도 생각해봤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정신과 전문의로서 스스로 우리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 지에 대해 고민하는 이 원장처럼 말이다. 이 원장의 꿈은 현대인의 스트레스가 정신 질환이 되는 것을 예방할 수 있도록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힐링 센터를 만드는 것이다. 그녀의 꿈이 이뤄지는 게 우리 사회의 마음도 건강하게 만드는 길이라는 생각은 기자에게만 드는 것일까? 그녀의 꿈과 함께 조금 더 많은 사람들이 행복해질 우리 사회를 기대해 보자. 
 


글·사진 김예린 기자
yerinee@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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