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의 바닷속 내 정보는 과연 잊혀질 수 있을까


인터넷은 결코 망각하지 않는다. 우리의 과거는 우리 디지털 피부에 문신처럼 아로새겨지고 있다

- J.D.라시카


인터넷이 설치된 가구가 전체 가구 중 81.6%를 차지하는 시대인 지금, 인터넷을 빼곤 일상을 설명하기가 힘들 정도다. 컴퓨터뿐만 아니라 스마트폰 무선 인터넷 서비스로 온종일 인터넷과 붙어있는 사람들은 인터넷으로 다른 이들과 소통하고 다양한 지식을 얻는다. 모든 분야에 걸친 자세한 지식을 얻을 수 있는 인터넷은 종종 감탄을 자아내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장점 뒤에는 지우고 싶은 정보까지 망각하지 않는다는 단점 또한 숨어있다. 그리고 이 단점은 부메랑처럼 사용자들에게 고스란히 돌아오게 된다. 최근엔 이렇게 절대로 망각하지 않는 인터넷의 시스템에 반대해 ‘잊혀질 권리’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인터넷은 내 과거를 알고 있다


‘신상털이’나 ‘구글링’이란 단어는 이제 더 이상 생소한 단어가 아니다. 인터넷을 통한 인물검색이 매우 평범한 일이 돼가고 있기 때문이다. 검색 한 번이면 그 사람의 개인정보뿐만 아니라 과거에 올렸던 글, 그가 가입돼있는 사이트까지도 찾을 수 있다.
이런 검색엔진의 능력 때문에 자신이 올린 게시물들이 독이 되어 돌아오기도 한다. 실제로 김모씨는 자신이 올렸던 사진 때문에 큰 곤욕을 겪어야 했다. 성형상담이 무료라는 말에 친구와 함께 성형외과 사이트에 올렸던 자신의 사진이 성형외과 홍보물에 등장한 것이다. 김씨는 남자친구와 재미삼아 자신의 이름을 인터넷에 검색해보던 중 이 사실을 알게 됐고 성형을 했다는 오해를 피할 수 없었다. 화가 난 김씨는 성형외과 측에 해당 사진을 삭제할 것을 요구했지만, 이 요구는 끝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김씨처럼 인터넷에 남은 자신의 흔적을 걱정하는 사람들은 상당수이다. 인터넷에서 흔적을 지워주는 업체인 산타크루즈캐스팅컴퍼니(아래 산타크루즈)의 통계에 의하면 사진·동영상 삭제 의뢰와 글 삭제 의뢰를 합한 양이 총 의뢰 중 약 50%를 차지할 정도로 많은 사람이 과거에 대해 걱정하고 있다. 백석예대 김지현(공간환경디자인·14)씨는 “옛날에 싸이월드에 썼던 일기들이 인터넷에 검색되는 것을 발견했다”며 “혹시 나중에 무슨 일이 생길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한참 동안 들어가지 않던 사이트의 비밀번호까지 찾아 글을 삭제하려 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자신의 모습이 담긴 음란물이 검색되는 상황은 위와 같은 상황보다 더 큰 우려를 낳게 된다. 사회적인 평판에 더 큰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방송통신위원회에 따르면 지난 2014년 인터넷에 게시된 자신의 성행위 동영상을 삭제해달라는 요청이 1천404건 접수됐던 것으로 밝혀졌다.




인터넷에서 ‘나’를 없애드립니다


이처럼 잊고 싶은 과거까지 모두 기억하는 인터넷으로 인해 연예인부터 평범한 일반인까지 사회생활에 어려움을 빚는 일이 많아지고 있다. 심하게는 과거를 들킨 당사자의 앞길에 엄청난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인터넷 속에서 나의 존재를 모두 삭제해주는 ‘디지털 장례 서비스(아래 디지털 장례)’가 인기를 끌고 있다. 산타크루즈 김호진 대표(47)는 “한 달간 사이트 접속자만 1만 7천여 명”이라며 “비방성 댓글이나 글 삭제, 사생활 동영상 삭제 요청이 굉장히 많다”고 밝혔다.
이러한 디지털 장례 업체들은 일반적인 게시물부터 시작해서 성행위가 찍힌 동영상까지 삭제해주는 서비스를 시행하고 있으며 기업에서 들어오는 평판관리 의뢰도 받고 있다. 이들은 법에 근거해서 게시물 삭제의 당위성을 인정받는데, 이에 주로 이용되는 법은 「개인정보보호법」, 「저작권법」 그리고 「정보통신망법」이다. 실제로 「개인정보보호법」 제4조 3항에는 ‘정보주체는 개인정보의 처리 정지, 정정·삭제 및 파기를 요구할 권리를 갖는다’고 명시돼 있기에 삭제를 정당하게 요청할 수 있다. 디지털 장례 업체인 뉴스케어 관계자는 “국내 사이트에 올라간 동영상을 삭제하기 위해선 웹하드 측에 연락해 동영상을 계속 게시하는 것이 법에 저촉되니 삭제해 달라고 메일을 보내고, 해외사이트의 경우 동영상이 올라간 사이트 자체가 검색이 안 되게끔 요청한다”고 말했다.
디지털 장례의 비용은 검색의 양과 동영상 유출정도에 따라 0원부터 500만 원까지로 매우 다양하다. 김 대표는 “비용을 지불할 능력이 없는 미성년자에게는 무료로 삭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며 “최소한의 책임감을 지우는 것과 더불어 남용을 방지하기 위해 자원봉사 증명서 제출을 삭제 조건으로 제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수면위로 올라온 잊혀질 권리


인터넷상의 정보를 삭제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여론이 거세지자 ‘잊혀질 권리(The right to be forgotten)’에 대한 논의가 우리나라 안에서도 본격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잊혀질 권리는 옥스퍼드대 인터넷 연구소 빅토어 마이어 쇤베르거 교수의 저서인 『잊혀질 권리』에 의해 세상에 처음 등장했다. 법적으로 정보의 생성, 저장, 유통 과정에서 개인의 자기결정권을 보호하기 위해 생겨난 개념이다. 즉, 개인 관련 정보의 유통기한을 정하고 삭제 및 수정, 영구적인 파기를 요청할 수 있도록 하는 권리를 의미하는 것이다.
잊혀질 권리를 찬성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개인정보자기결정권*을 근거로 들어 자신의 정보를 파기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우리대학교 송희권(언홍영·12)씨는 “개인정보자기결정권은 이미 헌법재판소에서 기본권의 한 영역으로 포함시켰다”며 “표현의 자유라는 것은 타인의 법익을 침해하지 않는 한도 내에서만 보장받아야 하므로 공익에 해당하는 정보와는 별개로 개인의 과거는 삭제되어야 한다”고 의견을 밝혔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 방송미디어연구실 전(前)연구원인 황슬하씨는 “개인에 대한 기록이 개인에게 새로운 내일을 살아갈 자유를 빼앗아 가는 사례들이 많아졌다”며 “특히, 인터넷에 퍼진 개인 정보 조각들은 누군가에 의해 수집·재구성돼 악의적으로 활용될 수도 있다”고 대답했다. 즉, 잊혀질 권리는 개인을 보호하기 위해 필요한 권리라는 것이다.
반면 이에 반대하거나 우려를 표하는 사람들은 표현의 자유와 정보 왜곡을 근거로 주장을 펼치고 있다. 잊혀질 권리가 도리어 민주주의의 기본권인 표현의 자유를 해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또한, 범죄자들이나 악덕 기업이 자신들과 관련된 안 좋은 정보들을 지우는 것에 제약이 없어져 정보의 왜곡이 이뤄질 수도 있다. 우리대학교 백태승(법과대·민법)교수는 “잊혀질 권리로 인해 개방성과 자율성을 근간으로 하는 인터넷 문화가 위축되고 흔들릴 수 있다”며 “숨기고 싶은 과거를 세탁하는 남용의 위험 또한 존재한다”고 말했다.
한편, 전문가들 사이에서 잊혀질 권리의 법제화는 아직은 성급하다는 의견이 압도적이다. 황씨는 “잊혀질 권리가 법제화될 때, 이와 충돌하는 법에 대한 명확한 정의나 관계 정립 없이는 정보 왜곡 등 많은 부작용을 낳을 것”이라며 “잊혀질 권리와 충돌하는 알권리와 같은 기본권들과의 비례와 균형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백 교수는 “이를 법제화해 성급하게 권리로 인정하게 된다면 상업적 이용과 같은 폐해가 순기능보다 빠른 속도로 자리 잡을 수 있다”며 우려의 입장을 보였다.

인터넷상에 퍼진 나의 정보와 흔적들은 주워 담으려 해도 담을 수 없는 경우가 많다. 백 교수는 “잊혀질 권리의 법제화보다 더 중요한 것은 타인에 대한 배려심 있는 인터넷 윤리”라며 “사이버 공간에서도 예의와 윤리를 지키지 않는다면 인터넷은 무질서와 범죄의 바다가 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인터넷상에서 잊혀질 권리가 법제화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지만, 그에 앞서 잊혀질 필요 없는 기억만 남기도록 개인적 차원에서 신중을 기하는 것 역시 중요한 시점이다.
 

*개인정보자기결정권 : 자신에 관한 정보를 보호받기 위하여 자신에 관한 정보를 자율적으로 결정하고 관리할 수 있는 권리.

 

오지혜 기자
dolmengemail@yonsei.ac.kr
그림 김혜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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