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년만에 경찰의 ‘학내 시위 진압’

지난 2월 4일 서강대에서 금속노조 서울지부 남부지역지회 마리오아울렛 분화 조합원·금속노조 서울지부 조합원(이하 금속노조)과 일부 대학생의 주도하에 마리오아울렛 홍성열 회장의 명예박사학위 수여를 반대하는 집회가열렸다. 금속노조와 대학생들은 홍 회장이 ▲노동자 부당 해고 ▲체불임금 미지급 문제와 연루돼 있기 때문에 명예박사학위를 받을 자격이 없다고 주장하며 서강대 정문 인도에서 집회를 연 것이다. 이 과정에서 금속노조와 서강대 학생들이 경찰과 몸싸움을 하는 등 충돌이 있었다.

 


2003년 창원대 총학생회장 검거·연행 사건, 2008년 조선대 학생회관 기습 사건 등 2000년대에도 ‘검거·연행 목적’의 학내 경찰진입은 다양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이번 사건은 ‘집회와 시위를 진압한다는 이유’로 16년 만에 경찰이 학내에 진입한 사건이어서 더욱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자율성의 공간에 진입한 경찰



마포경찰서 정보보안과 관계자는 “금속노조·대학생들의 집회 신고 장소는 서강대 정문 인도 부근”이라고 말했다. 명예박사학위 수여식 행사 시간은 낮 4시였으며 금속노조·대학생들은 낮 3시에 모여 집회를 했다. 서강대 발전홍보팀 권영일 팀장은 “행사 40분 전에 행사장 근처로 집회자들이 이동하기 시작했으며 집회 장소를 벗어났다고 판단해 학교 측이 경찰에 지원을 요청했다”고 전했다. 바로 이 과정에서 경찰과 학생 간의 충돌이 발생했다. 권 팀장은 “경찰 측은 행사 진행·시설물 보호 요청을 받고 집회자들에게 퇴거할 것을 요청했다”고 설명했다. 이후 낮 4시에 행사가 시작되자 행사장인 교내 성당 앞에서 학생 3~5명은 행사가 끝날 때까지 기습 피켓시위를 벌였다. 이 과정에서 시위를 제지하던 경찰과 또다시 몸싸움이 벌어졌다.
이러한 갈등은 홍 회장의 명예박사학위 수여 자격에 대한 이견에서 발생했다. 서강대 대학원 행정실은 “홍 회장이 IT산업뿐 아니라 전통산업에서도 기업가 정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몸소 보여줬으며, 그 본보기를 확실하게 입증해 보인 20대 창조 기업인으로서 명예박사학위를 수여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금속노조 측은 홍 회장이 기업가 정신을 제대로 구현하지 못했다고 주장하며 학위 수여에 반발하고 있다. 지난 2월 3일 금속노조는 보도자료를 통해 “명예박사학위는 사회·학문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한 사람에게 수여하는 학위이며 홍 회장은 노동자 해고와 체불임금 미지급 문제를 일으켜 사회에 공헌하지 않았기 때문에 학위 수여는 부당하다”는 견해를 밝혔다. 노동자 해고 문제에 대해 금속노조는 “마리오아울렛은 내부 시설 관리를 외주업체에 맡기면서 노동자 24명에게 권고사직 처분을 내리고 임금 30%를 삭감했다”며 “이에 반대하는 노동자 5명은 정리해고 처분을 받았다”고 언급했다. 또한, 체불임금 미지급 문제의 경우 “노동자 4명에게 야간 연장 근로를 시켰지만, 추가 근로 수당을 지급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반면 권 팀장은 “이 사건은 형법상으로는 무혐의 처리된 상태이며, 민사상 문제는 아직 논의가 계속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학위 수여 당시 해당 문제에 대해 검토했는가에 대한 질문에 김 팀장은 “학교 측에서 해당 문제에 대해 추가 자료를 요청했으며, 이에 대해 추후 확인이 이뤄졌다”며 “하나의 문제가 부각됐다고 박사학위를 당장 취소할 수 없는 것은 사실”이라고 전했다.
 

경찰의 학내 진입 역사


하지만 이 사건이 사회적으로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이유는 학위 수여 자격 여부보다도 시위 진압을 목적으로 경찰이 학내에 진입했다는 사실 때문이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2000년대 이후로는 ‘시위 진압’을 목적으로 하는 학내 경찰 진입은 없었다는 점에서 이례적이라고 할 수 있다.
1970년대부터 80년대 초까지 일반인으로 위장한 사복경찰이 대학 내에서 활동한 바 있다.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이성우 강사는 “학내에서 동향을 감시하고 파악하면서 학내집회 등을 감시하는 것이 사복경찰의 일반적인 활동이었고, 유신 시절에는 학내 유인물 배포자 등을 바로 잡아가기도 했다”고 전했다. 학내에서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나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과 같이 전국단위 학생단체들이 대규모 집회를 열거나, 전국민주노동자총연맹 등 노동자단체들이 학내에서 대규모 집회를 열 경우 혹은 교외 거리시위를 나올 때 이를 진압하거나 막는 과정에서 학생들이 연행되기도 했다.
1983년 전두환 정권이 학원 자율화 조치를 시행하며 교내 사복경찰은 철수했지만, 경찰의 교내 진입은 계속됐다. 이 강사는 “경찰은 ‘프락치’라고 불리던 정보원을 심어 동향을 파악하기도 했다”며 “학생들이 프락치를 적발해 취조하다가 이들에게 폭행을 가하거나 숨지게 하는 등의 공안사건이 크게 발생하기도 했다”고 80년대 후반의 상황을 설명했다. 실제로 1984년에는 서울대 학생들이 외부인 혹은 학생을 프락치로 오해해 감금하고 폭행했다는 ‘서울대 프락치 사건’이 불거지기도 했다. 서울대 프락치 사건의 진위나 책임 여부에 대한 논란은 계속되고 있지만 이러한 공안사건이 자주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대목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은 90년대까지 지속되다 1999년 서울지하철 노조의 서울대 점거 시위 진압을 마지막으로 ‘시위 진압’을 목적으로 한 경찰 학내 진입은 없었다. 이 강사도 “80~90년대 이후에는 학내 동향 파악 이후 수배자 또는 학생회장 등이 학교 외부로 나갔을 때 검거나 연행을 하는 것이 일반적인 경우”라고 말했다.
 

대학 내 경찰 진입과 대학의 자율성 훼손


일반적으로 대학은 ‘자율성이 보장되는 공간’이라는 인식이 두드러진다. 이와 같은 이유로 경찰 관계자는 “일반적으로 대학 내에 경찰이 투입돼야 할 경우, 상대적으로 더 신중을 기하게 된다”고 전했다. 이어 그는 “이번 서강대 진입 사건은 특수한 상황이었기에 일반적이지 않은 대처를 했다”고 전했다. 경찰 측에서도 학내 진입에 대해서는 신중하면서도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대학 내에 경찰이 진입하는 것이 대학의 자율성을 훼손한다는 점은 분명하다. 이 강사는 “이번 경찰의 학내진입은 학교와 경찰의 과잉대응이 아닌가 생각한다”며 “대학의 자율성과 위상을 저하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시위 진압에 조금 더 신중했어야 한다”고 말했다. 
 

서강대 학생들, 서울시내 대학 돌며 목소리 내는 중!


지금 서강대 학생들은 목소리를 내고 있다. 경찰의 학내 진입을 규탄하는 내용의 대자보가 우리대학교를 포함한 서울 시내 주요 대학에 붙여지고 있다. 서강대 정희수(철학·14)씨가 작성한 대자보에는 홍 회장의 박사학위 수여의 부당성 제기와 교내 경찰 진입에 대한 비판을 골자로 신동엽 시인의 「봄의 소식」을 인용해 경찰진입에 대한 비판적 시각이 드러났다. 나서서 목소리를 내지 않더라도 대부분의 서강대 학생들은 캠퍼스 내에 경찰이 진입을 한 것에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12학번 서강대생은 “집회자들이 시위 장소를 벗어난 것과 대학생들이 노조와 함께 시위를 해 집회의 순수성을 흐린 점은 문제지만, 대학은 교육이 가장 큰 목적이며 의견을 자유롭게 표출하고 의견을 수렴하거나 대안을 도출하는 과정을 겪으면서 학생들이 발전해가는 곳”이라며 “경찰이 교내 학생 시위를 진압하는 것은 학생들의 사상의 자유를 막는 행위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또 다른 14학번 서강대생은 “과거에도 대학에 경찰이 진입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생각이 강했는데, 이번 사태의 경우 교내 진압의 강도가 강했다”며 “학교 측이 대화의 의지가 없다는 의사를 표시한 것으로 볼 수 있으며, 학생들을 믿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행위라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의견들이 SNS와 인터넷을 통해 빠르게 전달되면서 서강대 외부인들 또한 다양한 의견들을 개진하고 있다. 우리대학교 이한주(경제·14)씨는 “양측에 모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며 “노조와 학생 측이 신고 장소를 벗어나서 무단으로 교내로 들어간 것도 법규 위반으로 볼 수 있다”고 평가했다.  이어 이씨는“학교 측도 반고용행위 때문에 국회 국정감사까지 불려간 사람에게 명예박사학위를 주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홍익대 컴퓨터공학과 김동찬씨는 “시위하다가 다칠 위험이 있기 때문에 막아야 할 것은 막아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하지만 폭력이 개입된 것이 아니라면 진입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편, K대 15학번 이모씨는 “경찰이 학교에 진입한 것을 보며 유신정권이 떠올랐다”며 “학문의 전당인 대학에서 무력시비가 일어났다는 사실이 충격적이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시위 진압을 위한 16년 만의 학내 경찰 진입’이라는 이례적인 사태에 학생들과 시민들 모두 충격을 금치 못하고 있다. 학내 경찰 진입 문제의 책임은 교내를 침범한 공권력과 그 속에서 목소리를 내지 않고 있는 ‘대학생들 자신’ 모두에게 있다고 할 수 있다. 앞으로 서강대 학생들의 목소리가 어떤 변화를 이끌어낼지가 주목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박상용 기자
 
 doubledragon@yonsei.ac.kr
<자료사진  정희수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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