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도핑이란 무엇인지 알아보자

마린보이 박태환의 약물검사 양성반응은 전 국민에게 큰 충격을 불러일으켰다. 그동안 그가 올림픽과 아시안게임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며 국민들의 사랑을 받았던 만큼 그 파급력은 더욱 컸다. 사실 스포츠 스타들의 도핑문제는 어제오늘만의 일이 아니다. 세계적인 축구 스타 마라도나에서부터 캐나다 육상 스타 벤 존슨까지 약물의 유혹을 이겨내지 못하고 추락한 사례들은 즐비하다. 수많은 스포츠 스타들을 나락으로 떨어뜨리는 악마의 유혹, ‘도핑’이란 무엇이며 왜 문제가 되는지 알아보자.

 

도핑, 그것이 알고 싶다

도핑(Doping)이란 ‘스포츠 경기에 참가하는 선수가 경기력 향상을 위해 금지약물을 복용하거나 금지방법을 사용하는 행위’를 말한다. ‘금지약물’과 ‘금지방법’은 매년 세계반도핑기구(아래 WADA)에서 규정한다. 여기서 금지방법이란 ‘약물 투여를 제외하고 사용되는 부정한 방법’을 뜻한다. WADA는 운동능력 향상 효과가 있거나 선수 건강에 위협이 될 수 있는 약물과 방법을 선정해 ‘금지목록 국제표준’을 발표하고 있다. 현재 이 국제표준은 국제올림픽위원회(아래 IOC)와 종목별 국제연맹, 국가별 반도핑기구 등 600개 이상의 스포츠기구에서 채택돼 사용되고 있다.
WADA에서 금지하고 있는 대표적인 약물은 ▲동화작용제 ▲펩티드호르몬·성장인자 및 관련약물 ▲이뇨제 및 은폐제 ▲흥분제 등이다. 이 중에서도 특히 많은 선수들이 사용하는 약물은 동화작용제다. 박태환이 투약한 것으로 알려진 ‘네비도’가 바로 동화작용제인데, 메이저리그의 로드리게스와 사이클 영웅 랜스 암스트롱, 2000년 시드니올림픽 여자육상 3관왕 매리언 존스 등을 나락에 빠뜨린 약물이기도 하다. 2018 평창동계올림픽 조직위원회 최고의료책임자 이영희 교수(원주의과대·스포츠의학)는 “동화작용제는 남성호르몬을 증가시켜 근육을 빠르게 발달시키고 힘을 내게 하는 아나볼릭 스테로이드(anabolic steroid)*계의 약물”이며 “순간적으로 폭발적인 힘이 필요한 육상, 수영, 사이클 등과 같은 종목의 선수들이 유혹에 빠지기 쉽다”고 말했다.
그러나 동화작용제는 남용될 경우 부작용이 매우 크다. 이 교수는 “아나볼릭 스테로이드를 과하게 사용할 경우 심장마비, 전립선암, 뇌졸중, 수면무호흡증 등의 질환을 유발할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이에 더해 동화작용제는 호르몬 계통에 이상을 줘 여성의 남성화와 남성의 여성화를 일으킬 수 있으며, 몸의 효소를 억제해 간염, 간암 등을 유발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와 같은 약물과 더불어 WADA가 금지하는 부정한 방법으로는 ▲산소운반능력향상 ▲유전자 도핑 등이 있다. 우선 ‘산소운반능력향상’은 혈액 도핑을 통해 이뤄진다. 혈액 도핑이란 미리 뽑아낸 자신의 혈액이나 혈액형이 같은 다른 사람의 혈액을 경기 직전에 주입하는 것으로서 지구력을 향상시키는 효과가 있다. 하지만 혈액을 이용하는 것인 만큼 위험성도 높다. 적절한 혈액이 사용되지 않을 경우 알레르기 반응과 신장이상을 초래할 수 있고, 간염이나 에이즈(AIDS) 등과 같은 감염성 질환을 유발할 수 있다.
‘유전자 도핑’은 근육발달 촉진호르몬 등 선수에게 운동능력향상을 유도하는 유전자를 주입해 경기력을 향상시키는 최첨단 도핑방식이다. 현재 유전자 도핑은 검출이 매우 어려워 정확한 검사를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대해 이 교수는 “유전자는 몸에서 정상적으로 나오는 물질이기 때문에 외부 물질인 약물과 달리 검출하기 매우 어렵다”며 “약물검사 과정에서 선수의 존엄성을 존중해야 할 의무가 있기 때문에 유전자를 추출하는 것도 쉽지 않다”고 전했다. 또한 전문가들은 생체물질을 이용하는 바이오 기술 의 발달로 앞으로 유전자 도핑의 사용이 증가할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유전자 도핑은 아직 제대로 검증되지 않은 만큼 향후 인간에게 어떤 부작용을 일으킬지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이 교수는 “유전자를 변형시키는 것은 세포에 이상을 줄 수 있기 때문에 백혈병과 암 등을 유발할 위험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반도핑 체계는 여전히 발전 중


인간은 수천 년 전부터 운동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약물을 사용했다. 고대 그리스 선수들이 경기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빵을 아편에 찍어 먹었던 것과 고대 로마올림픽에서 검투사들이 지구력 향상을 위해 흥분제를 복용했던 것이 그 예다. 하지만 1960년대 중반까지 사람들은 도핑을 문제로 여기지 않았으며 그 어떤 단체도 선수들의 약물 복용을 금지하거나 규제하지 않았다.
본격적으로 도핑이 국제적 이슈가 되기 시작한 것은 1960년 로마올림픽에서 덴마크의 사이클 선수가 약물 과다 복용으로 경기 도중 사망하면서부터다. 서상훈 교수(교과대·운동생리학)는 “당시 로마올림픽은 올림픽 최초로 경기가 TV를 통해 전파됐기 때문에 전 세계 사람들이 이 충격적인 장면을 목격했고 그 파급력은 엄청났다”고 분석했다. 이후 도핑 방지를 위해 국제적으로 여러 노력이 펼쳐지기 시작했고 본격적으로 1999년에 WADA가 창설돼 세계적인 반도핑 활동의 책임전담기구로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2005년에는 제22차 유네스코 정기총회에서 ‘세계 반도핑규약’이 채택됐고, 2007년 2월부터 국제법으로서 구속력을 가지게 됐다.
우리나라의 경우, 본격적으로 도핑방지를 위한 노력이 시작된 것은 1980년대 후반 우리 땅에서 열린 아시안게임과 올림픽을 준비하면서부터다. 1984년 한국과학기술연구원(아래 KIST)에 도핑컨트롤센터가 설립됐고, 국제올림픽위원회로부터 약물 검사기관으로 공인받아 양대 경기의 약물검사를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그 후 2006년에 한국도핑방지위원회(아래 KADA)가 설립돼 아마추어 스포츠의 약물검사와 프로 스포츠 단체와의 업무협약을 통한 프로 스포츠 약물검사를 실시하고 있다.
 

체계적 도핑검사 시스템이 부족한 우리의 현실


여전히 국내 프로스포츠의 도핑 검사 시스템은 미흡한 실정이다. 아마추어 스포츠의 경우 KADA의 관리하에 철저한 검사를 받고 있으며 도핑검사 결과가 규정 위반으로 밝혀지면 선수 자격 정지 등의 중징계를 받을 수 있다. 반면 프로스포츠는 KADA의 도핑방지규정의 적용을 받지 않고 있다. 현재 프로스포츠 단체는 자체 반도핑 규정을 제정하고 KADA와의 업무협약을 통해 검사를 수행하고 있을 뿐이다. 문제는 도핑검사의 계획과 결과 관리를 해당 경기단체에서 전적으로 담당하고 있으며, KADA와 KIST에서는 프로스포츠 단체의 협조 요청에 따라 제한적으로 검사를 하고 있기 때문에 정확한 검사가 어렵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프로스포츠는 소변검사만 실시하고 있기 때문에 혈액검사로 적발할 수 있는 약물을 걸러내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 서 교수는 “2018년 동계올림픽 개최를 앞둔 상황에서 아마추어와 프로를 어우를 수 있는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정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한편,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선수관리 시스템의 도입이 시급하다는 지적도 있다. 우선 국제적 감각을 갖춘 행정체계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는 분석이다. 이 교수는 “현재 우리나라 전반의 스포츠 행정 체계는 열악한 실정”이라며 “선수가 금지약물인지 모르고 약물을 투여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시시각각 변하는 도핑 규정을 꼼꼼히 챙길 수 있는 유능한 코치진들이 많이 포진돼야 한다”고 말했다. 더불어 선수들을 체계적으로 육성할 수 있는 종합적인 관리가 필요하다는 분석이다. 이 교수는 “우리나라 선수들은 어려서부터 좋은 학교에 진학하기 위해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둬야 하기 때문에 몸 상태와 건강이 어떻게 되든 상관없이 몸을 혹사하는 경향이 있다”며 “반면 미국의 경우 ‘15세 미만의 학생들은 야구공을 하루에 50개 이상 던지면 안 된다’와 같은 과학적인 가이드라인을 잘 구축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서 이 교수는 “우리도 선수가 몸이 아플 때만 의학적 관리를 받는 것에서 벗어나 항시 종합적이고 체계적으로 선수를 관리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분석했다.
 

승리를 위한 도핑, 결국은 소탐대실(小貪大失)


이처럼 도핑은 한순간의 승리를 위해 선수의 건강을 심각하게 망가뜨리는 행위다. 또한, 도핑이 적발될 시 선수가 오랫동안 노력해 이룩한 성과들이 한 순간에 물거품이 돼버릴 수 있다. 아울러 도핑 행위는 선수 간에 긴장과 불신을 낳고 공정한 스포츠 정신과 존엄성을 해친다는 점에서 작은 이익을 좇다 큰 손해를 보는 소탐대실(小貪大失) 격이라 할 수 있다. 서 교수는 “승리의 노예가 된 도핑의 대가는 혹독하다”며 “도핑은 선수의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 건강을 위협하고, 모든 선수에게 공평하게 적용되는 스포츠 규칙을 위반해 선수 및 국가 간의 긴장과 불안을 조성한다는 점에서 철저하게 금지되고 규제돼야 한다”고 말했다.
위와 같은 도핑의 위험성에도 불구하고 선수들이 약물에 손을 대게 되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금메달만 기억하는 현실’이라는 지적이 있다. 서 교수는 “1등만 기억하는 우리 사회의 분위기상 선수들이 금메달을 획득해야만 자신의 명예를 드높일 수 있고 우수한 성적은 연봉으로 직결된다”며 “찰나의 순간에 금·은·동이 좌우되기 때문에 운동능력을 향상할 수 있는 약물의 유혹을 뿌리치기란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서 교수는 “승리지상주의, 상업주의 및 스포츠 과학화는 대중의 만족에 부응하는 것을 선수들의 건강보다 더 우선순위로 만들었고, 그 결과 약물의 힘을 빌려 승리하려는 부정적 경쟁형태가 만연하게 됐다”고 지적했다.
최근 박태환 사건으로 인해 도핑은 매체의 주요 이슈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도핑이라는 ‘악마의 유혹’에 노출돼 있는 것은 비단 박태환 만이 아니다. 더구나 체계적인 선수 관리와 반도핑 시스템이 열악한 우리나라에서는 그 유혹이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도핑은 선수의 건강과 공정한 스포츠 정신을 해치는 백해무익의 행위다. 도핑검사 시스템을 발전시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선수가 약물의 유혹을 쉽게 느끼지 못하도록 하는 사회 분위기와 선수 관리 체계 구축도 시급하다.
 
*아나볼릭 스테로이드(anabolic steroid) : 테스토스테론의 구조를 변형시켜 효과를 증강시킨 물질로서, 운동 선수들이 스테로이드를 사용했다고 할 때, 그 스테로이드는 아나볼릭 스테로이드를 지칭한다.

글 고석현 기자
shk920211@yonsei.ac.kr
그림 황주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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