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커머스 ‘쿠팡’의 김철균 부사장을 만나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스마트폰을 켜고 간밤에 친구들이 SNS에 올린 소식부터 읽고 있는 당신, 불과 10년 전만 해도 이 일이 일어나리라고는 감히 상상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인터넷과 스마트폰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만큼 일상 속에 깊이 자리 잡았지만, 이러한 변화가 생긴 것은 사실 오래되지 않았다. 우리나라에 본격적으로 정보통신기술이 보급되면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그 변화의 중심에서 이를 지켜봐 온 사람이 있다. 통신 1세대에서 시작해 청와대 국민소통비서관을 역임하고 지난 1월부터는 모바일 커머스 쿠팡에서 홍보와 대외업무를 총괄하고 있는 쿠팡 부사장 김철균 동문(경제·83)을 만나봤다.

공학도에서 학보사 기자가 되기까지

학창시절 늘 신문을 읽고 미디어에 관심이 많았던 그였지만 그가 다니던 고등학교의 방침에 따라 지난 1981년, 김 부사장은 서울대 공학계열에 입학했다. 하지만 공학계열은 김 부사장의 적성과 맞지 않았고, 여기에 입학생 중 일정 비율을 탈락시키는 졸업정원제까지 맞물리면서 결국 입학한 지 1년 반 만에 학교를 나와야 했다. 김 부사장은 다시 입시를 준비했고, 1983년 우리대학교 경제학과에 입학했다. 김 부사장은 “문과 공부를 해 본 적이 없어 인문계열의 기초 학문이 경제학이라 생각하고 진학했다”며 “하지만 경제학 공부 역시 나에게 별로 맞지 않아 학업에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고 밝혔다.


학과 공부에 싫증을 내던 김 부사장은 지난 1983학년도 2학기에 우리신문사인 연세춘추에 입사해 2년 반 동안 활동했다. 김 부사장의 대학 시절 기억 대부분은 우리신문사에서 기자생활을 한 것이다. 우리신문사는 보통 3학기를 활동하면 기자 임기를 마치지만, 일에 대한 열정과 학보사에 대한 애정으로 남들보다 1년 더 남아 있었으니 그럴 만도 하다. 김 부사장은 “학과에서는 사람들이 내가 누군지 잘 모를 정도로 「연세춘추」를 열심히 만들던 학생이었다”며 “마음 같아서는 한 학기 더 하고 싶었지만 남아 있는 후배들이 싫어할까 봐 참았다”며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언론통제가 심했던 1980년대에는 기성언론보다 오히려 대학언론이 더 자유로운 목소리를 전달할 수 있었던 공간이기도 했다. 지난 1984년, 김 부사장은 서울대 학생들이 대학생 4명을 학생으로 위장한 형사로 오인해 구타·물고문 등을 가했던 ‘서울대 프락치 사건’을 기사로 쓰기도 했다. 김 부사장은 “기사를 쓰고 몇 년 후 당사자들이 내가 쓴 기사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해 재판부에 끌려다닌 적도 있었다”며 학생 기자 시절 겪었던 특별한 기억을 전했다.
김 부사장이 경제학과에 있을 때 순수한 경제학뿐 아니라 회계와 같은 응용학문을 함께 배운 덕에 졸업 후 기업에서 일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됐다. 하지만 그가 일해 왔던 곳들이 정보서비스와 미디어에 관련된 분야였던 만큼, 연세춘추를 통해서 배운 것들 또한 훗날 김 부사장에게 든든한 자양분이 된 듯하다.

25년 발자취에 녹아있는 우리나라 정보화 역사

지난 1988년 여름, 졸업을 앞둔 김 부사장에게 한 제안이 들어왔다. 9월부터 서울에서 열리는 올림픽 경기 결과를 송신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는데, 여기서 수신자들이 제공받는 화면을 정보 중심으로 편집하는 일을 해 보는 게 어떻겠냐는 것이었다. 우리신문사에서 신문 판을 짜며 편집을 해본 경험이 있었던 김 부사장은 이를 흔쾌히 받아들였고, 그의 첫 사회생활은 정보올림픽이라고도 불렸던 88올림픽과 함께 시작됐다. 이후 김 부사장은 20여 개에 달하는 근무지를 옮겨 다니며 매번 새로운 곳에서 일해 왔다. 지난 25년 동안 우리나라 정보서비스 산업 자체의 변화가 컸고, 그 과정에서 수많은 회사가 새로 생겨나고 통폐합됐기 때문이다. 잦은 이직으로 어려움은 없었는지 궁금해 하던 기자에게 “직장을 옮기는 과정에서 생기는 공백은 잠깐 쉬는 것으로 생각했다”며 “오히려 바뀐 직장에서 새로 만나는 사람들이 계속 생겨나고 새로운 문화에 적응하는 것이 어려웠다”고 답했다.
이렇게 다양한 기업에서 일해 오던 김 부사장은 지난 2008년, 청와대 국민소통비서관으로 발탁됐다. 그가 비서관으로 발탁됐을 시기는 이명박 전 대통령 취임 직후로,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가 불거지면서 촛불시위가 벌어지고 항의 집회가 잦았던 때다. 김 부사장은 “아마 청와대에서 인터넷을 통한 소통의 중요성을 느끼고 이를 담당할 비서관실을 만든 것 같다”며 “새로운 일을 경험할 기회라 생각해 일을 맡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대통령 지지율이 낮아 부정적인 여론이 지배적이었고, 김 부사장 또한 좋지 않은 말을 들을까 하는 주변의 우려도 적지 않았다. 김 부사장은 “그럴수록 국민의 이야기를 더 많이 듣고 공감하겠다는 의지를 다졌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김 부사장은 25년간 현장에서 직접 느껴 온 우리나라 정보서비스의 변화를 한 마디로 “자유로워졌다”고 요약했다. 정보서비스가 처음 제공될 당시에는 통신업계가 주로 맡았기 때문에 제공자와 수신자가 명확했고 정보 전달 과정 또한 일방적이었다. 하지만 인터넷의 상용화로 인해 쌍방향의 소통이 가능해지면서 일반인들도 자신의 목소리를 얼마든지 낼 수 있게 됐다. 김 부사장은 “2000년대 말을 기점으로 우리나라에서 모바일 기기를 기반으로 한 SNS가 활성화돼 이제는 개개인 스스로 미디어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역지사지, 많이 듣고 공감하기

명색이 소통을 담당하는 비서관이기도 했지만, 매번 새로운 곳에서 일해 온 김 부사장에게 인간관계 유지는 무엇보다도 중요했다. 약 25년간 그가 쌓아온 철학은 바로 ‘많이 듣고 진심으로 공감하는 것’이다. 김 부사장은 “먼저 상대방이 자신의 이야기를 충분히 다 했다고 느낄 때까지 들어주면 훨씬 우호적인 관계로 시작할 수 있었던 것 같다”며 조직이 바뀌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느꼈던 점들을 이야기했다. 굳이 먼저 아는 체하지 않더라도 상대방에 대한 이해와 공감만으로도 스스로 충분히 존중받을 수 있다는 게 그의 신조다. 또 김 부사장은 “자신이 관리해야 하는 인간관계의 영역이 넓어질수록 다양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을 포용할 수 있어야 한다”며 단순히 이야기를 듣는 데 그치지 않고 상대방의 입장에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이 중요함을 역설했다.
그런 점에서 SNS 또한 김 부사장에게는 원만한 관계 유지를 가능하게 하는 공간 중 하나다. 김 부사장은 기자에게 “아침에 일어나면 다들 스마트폰부터 열어 친구들의 메시지를 읽지 않나요?”하고 물었다. 그에게 SNS는 바로 세상을 읽을 수 있는 눈이다. SNS가 자신의 소식을 전달할 수 있는 공간일 뿐 아니라 가까운 사람들이 전해 오는 이야기들과 기삿거리들을 함께 접할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공교롭게도 SNS라는 글자를 한글 자판으로 치면 ‘눈’이라는 글자로 바뀌는데, 참 신기할 따름이다.
김 부사장은 과거보다 미디어 환경이 훨씬 더 자유로워지면서 발생하는 문제들에 대한 해결책으로도 ‘역지사지’를 강조했다. 자신과 비슷한 의견만을 접하다 보면 이들이 세상 전부인 것처럼 느껴질 수 있고, 한쪽으로 치우친 생각과 판단은 결국 사회의 분열을 낳을 수 있다. 김 부사장은 “허위사실 유포, 명예훼손과 같이 정보서비스 환경 변화로 인한 새로운 문제들이 생겨나고 있다”며 “균형적인 시각을 가질 수 있도록 SNS를 자신과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들의 입장에 대해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창구로 활용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변화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나아가라

김 부사장은 졸업을 앞두고 진로를 고민하고 있는 학생들에게 20대들이 사회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을 20년 후를 머릿속에 떠올려 보라고 말했다. 김 부사장이 취업을 준비할 당시에도 미디어에 관심이 있는 학생은 지금처럼 유명한 언론사에 들어가는 것을 선호했다. 하지만 김 부사장은 “똑같이 미디어에 관심이 있었지만 저는 좋은 회사보다는 새로운 곳, 우리 사회가 변화해 가는 곳에 있는 일을 택했다”며 “끊임없이 변화하는 길을 따라가다 보니 지금에까지 올 수 있었다”고 말했다.
김 부사장은 “어느 기업이 월급이 더 많고 후생이 좋은지를 따져 취직을 잘했다 못 했다고 판단하는 건 정말 무의미한 일”이라며 “단기적인 성패를 기준으로 취업에 대해 고민을 하는 것보다 더 큰 사회의 흐름을 읽으려고 노력하라”고 전했다. 그리고 그는 “연세대학교가 좋은 학교라는 확신을 하고, 학교 안에서 어떤 것들을 경험할 수 있을지에 집중하라”고 덧붙였다.

앞으로 김 부사장이 정보서비스 업계에서 하고 싶은 일은 다양한 시각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의견을 나누고 합의할 수 있는 온라인 공간을 만드는 것이다. 김 부사장은 “우리 사회에는 아직 정보서비스 기술의 발달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들을 예방할 수 있는 시스템이 없다”며 “이런 문제가 무엇 때문에 발생하고, 여기에 대한 대안이 무엇인지 합의할 수 있는 실질적인 공간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25년간 정보서비스 업계에서 일해 오면서 늘 변화하는 쪽을 바라보고 달려왔던 그이니만큼, “남은 시간 동안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하고 보람된 일을 하고 싶다”는 김 부사장 또한 그가 원하는 방향으로 달려갈 수 있길 기대해본다.

 

 

                  글 정서현 기자
bodowoman@yonsei.ac.kr
사진 유자헌 기자
jyoo29@yonsei.ac.kr
 

저작권자 © 연세춘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