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이 절박해진 사회의 그늘, 블랙기업

▲ 블랙기업은 청년들을 마음껏 쓰고 버린다.

청년세대의 취업난. 지긋지긋한 우리들의 이야기다. 청년들에게 취업은 인생이 달린 매우 절박한 현실이지만, 우리 사회에는 이를 약점으로 잡아 이용하는 블랙기업이 존재한다. 최근 ‘열정페이’라는 논란이 된 ‘주식회사 이상봉’과 수습사원 전원 해고로 기성언론을 떠들썩하게 했던 ‘위메프’가 그 예가 될 수 있다. 치열한 취업의 경쟁에서 인턴과 같은 실무 경력은 차별화된 무기가 될 수 있기에 블랙기업은 청년들에게 스펙을 쌓게 해준다는 빌미로 과도하게 노동을 착취한다. 원하는 일자리를 얻기 위해 많은 난관을 건너가야 하는 지금, 이런 현실 속에서 많은 청년이 참고 견디다 지쳐가고 있다.


청년의 삶을 파괴하는 블랙기업


블랙기업이란 청년들을 일회용품처럼 마음껏 쓰다가 버리는 기업들을 나타내는 상징적인 표현이다. 이들 블랙기업은 심각한 취업난 속에서 청년들의 절박함을 악용해 그들에게 과도한 노동을 강요하고 있다.
블랙기업은 일본에서 건너온 신조어로, 청년들의 노동조합인 청년유니온이 ‘한국판 블랙기업 운동’을 시작함으로써 우리 사회에 알려졌다. 청년유니온 정책국장 정준영(29)씨는 “청년의 노동문제가 단순히 불행한 개인의 일이 아니라 청년세대의 삶을 파괴하는 절망적인 징후라고 생각해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에 청년유니온은 현재 블랙기업 신고사이트를 운영하고 있으며, 블랙기업 운동의 일환으로 오는 7월에는 문제의 기업들을 공개적으로 발표하는 ‘블랙기업 시상식’을 진행할 예정이다.
청년유니온의 분석에 따르면, 블랙기업의 문제는 ▲고용 불안정 ▲장시간 노동 ▲직장 내 괴롭힘 ▲폐쇄적인 소통 구조 등 네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우선, 고용의 불안정과 장시간 노동이 문제가 된다. 블랙기업은 근로계약 자체의 질서가 정립돼 있지 않으며, 인턴·수습·실습 채용을 남용한다. 지난 2014년 1월에 발표된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1.2%의 청년이 1년 이하의 계약직으로 직장생활을 시작하고 있으며, 이 수치는 지난 2008년 11.2%에 비해 약 두 배 정도 증가한 수치다. 또한, 블랙기업은 야근과 주말근무와 같은 초과근무가 잦고, 그에 따른 추가수당을 제대로 지급하지 않는다는 문제점도 있다.  
실제로 휴학 후 경력을 쌓기 위해 마케팅 기업에서 인턴으로 6개월째 일하고 있는 박모씨의 회사는 직원의 반 이상이 인턴으로 구성돼 있다. 박모씨가 입사할 당시 회사에는 근로계약서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 박모씨는 “내가 문제를 제기한 후에야 근로 계약서가 생겼다”며 “입사한 지 한 달이 지나 근로 계약서를 작성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입사 이후 박모씨는 회사에 대한 적합도 평가라는 명목으로 2주 동안 무급으로 일하기도 했다. 영상디자인을 전공한 박모씨의 담당 업무는 영상편집이지만, 일손이 모자랄 경우 디자인과 촬영에 이어 잡일까지 모두 박모씨의 일이 된다. 그리고 자신에게 주어진 할당량을 다 하지 못하면 회사에서 밤을 지새울 때가 허다하다. 하지만 박모씨는 야근수당과 주휴수당은 받지도 못한 채 120만 원을 월급으로 받고 있다. 관련 기술이 없는 인문계열 학생들의 경우 최저임금에 턱도 없이 못 미치는 50만 원을 받고 일한다. 많은 대학생이 소위 ‘열정페이’로 일하고 있는 것이다. 박모씨는 “회사에서 받는 돈은 교통비도 안 되고, 밥 또한 사비로 먹지만 인턴 경험을 쌓기 위해 일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렇게 우리 사회에서 많은 대학생들이 이력서에 한 줄의 스펙을 더하기 위해 노동을 착취당하고 있다.  온라인 취업포털 '사람인'이 기업 152개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신입 채용 시 인턴십 과정 거치는 여부’를 조사한 결과 42.1%가 ‘그렇다’고 대답했다. 기업 10곳 중 4곳은 인턴과정을 거쳐 신입사원을 선발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한신대 사회학과 노중기 교수는 “기업만의 잘못이 아니라 청년고용 확대를 명목으로 인턴 제도를 도입한 정부 정책이 블랙기업을 만들었다”며 “인턴은 현재 1, 2년짜리 값싼 심부름을 시키는 노동으로 전락한 경우가 많다”고 비판했다. 우리나라의 법은 기업들이 인턴을 마음껏 뽑아 쓰다가 버리는 것이 가능하도록 허용하고 있어서 블랙기업이 양산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우리가 일회용품 인가요?

▲ 블랙기업에 맞서 피켓을 들고 있는 청년들

“2년을 최선을 다했는데, 24개월을 꽉 채워 쓰고 버려졌다”

블랙기업에서 드러나는 또 다른 문제는 직장 내 괴롭힘과 폐쇄적인 소통 구조가 있다. 중소기업중앙회에서 2년 동안 계약직으로 일했던 20대의 권모씨는 위의 말이 적힌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지난 10월 언론에 보도된 바에 따르면 2년간 상사들에게 성희롱을 당했던 권모씨는 자신이 겪은 일에 대해서 한 상사에게 메일을 보낸 후 정규직 전환을 이틀 앞두고 해고당했다. 정규직이 될 수 있다는 희망으로 권모씨는 수차례의 성희롱을 참았지만 참다 지쳐서 보낸 한 통의 메일이 그 꿈을 무산시켜버린 것이다.
이처럼 우리 사회에는 많은 청년이 기업으로부터 쓰고 버려진다. 하지만 이는 단순히 이런 청년들의 하소연에서 그치는 문제가 아니다. 한림대 사회학과 박준식 교수는 “청년들에게 남겨진 아픈 기억과 치명적인 상처는 우리 사회에도 항구적인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사회에 첫발을 딛는 젊은 세대가 우리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겪도록 내버려둬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청년유니온 정책국장 정준영(29)씨는 “기업들이 청년들의 가치를 낮게 평가해 일회용품으로 취급하는 상황이 계속된다면 우리 사회의 미래가 달린 인적자원에 있어 문제가 생긴다”며 “한국의 기업들이 더는 청년들과 함께할 수 없을 것”이라고 답했다. 청년들이 기업의 일원으로서 안정적인 자리를 잡고 성장해 기업에 더 큰 이윤을 가져다줘야 기업과 우리나라의 경제 또한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청년들에게 블랙기업이란

▲ '한국판 블랙기업 운동' 선포식을 개최한 청년유니온


사회의 첫발을 내딛는 청년들에게 ‘블랙기업’은 ‘좌절’을 의미한다. 노 교수는 “블랙기업은 청년을 좌절하게 한다”며 “이러한 좌절은 부당한 사회를 바꾸는 힘으로 나타나지 않고, 무의식적으로 부당한 사회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생각에 기업의 요구에 따라가게 된다”고 블랙기업이 청년에게 미치는 영향을 설명했다. 정 국장 또한 “생애 첫 노동을 경험하는 청년들에게 노동의 좌절은 이후 청년들이 겪는 부당한 권리 침해에 무뎌지고 체념하게 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당장 취업을 눈앞에 두고 있는 취업 준비생(아래 취준생)은 블랙기업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졸업을 앞두고 취업을 준비하고 있는 하모씨는 “청년들을 존중해주지 않고 이용해 먹을 생각만 하는 기업은 나 또한 존중하기 싫지만 취준생들에게는 어느 기업이든지 취직하는 게 중요한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취준생인 이병찬(환경·10)씨는 “취업이 절실한 우리들을 이용만 하는 기업들을 보면 매우 화가 난다”며 “하지만 아무도 우리를 보호해주지 않고 마땅한 방법도 없으니 허탈하기만 할 뿐”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미 많은 청년은 이런 부당함을 인식하고 있지만 어쩔 수 없는 것으로 생각하고, 노동을 경험하기도 이전에 불안에 떨며 좌절하고 있다.

지금 청년세대는 극심한 취업난 속에 약점 잡혀 기업들로부터 이용당하고 있다. 이에 좌절하는 청년들은 우리 사회에서 마냥 참고 견딜 수밖에 없는 것일까. 노 교수는 “청년들 내부에서 블랙기업이 문제라고 인식하는 주체적인 활동이 필요하다”며 “청년들이 뜻을 모아 목소리를 내는 것이 중요한 변화의 출발점”이라고 당부했다.
갈수록 절망적인 현실 속에서 청년들은 한없이 작아지고 있다. 이런 현실 속에서 중요한 것은 당사자인 청년들의 역할이다. 모이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말이 있듯이 지금 청년들이 마주한 문제를 남의 일처럼 외면하지 않고 힘을 모으는 것이 필요한 시점이다.

 

글 문세린 기자 
 peace.maker@yonsei.ac.kr

그림 이진식


<사진제공 청년유니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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