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TV를 틀면 단연 대세는 정신병이다. 다중인격 장애를 안고 있는 남자 주인공부터 대인기피증을 앓고 있는 여자 주인공까지 드라마 속 인물들이 각자의 정신질환을 극복하는 모습으로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2014년 방영된 SBS의 『괜찮아 사랑이야』에서 시작된 드라마 속 정신질환 열풍이 지금, MBC의 『킬미힐미』, SBS의 『하이드 지킬 나』, 그리고 tvN의 『하트 투 하트』로 이어지며 큰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이다. 특히 그 중에서도 우리에겐 다중인격이라 알려져 있는 해리성 정체감 장애를 소재로 하고 있는 『킬미힐미』와 『하이드 지킬 나』의 경우엔 드라마와 함께 주인공의 정신질환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는 추세이다. 오죽하면 중국의 언론매체 ‘충칭상바오(重庆商报)’는 ‘한국 드라마의 남자 주인공은 정신병환자’라는 이야기까지 했을까. 드라마 속 주인공들의 정신병이 왜 이렇게 인기를 끌고 있는지 그 원인과 영향을 알아보자.


왜 하필이면 정신병일까?


드라마 속 정신질환이라는 설정이 인기를 끌게 된 데에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다. 우선, 주인공의 정신 질환은 재미와 신선함을 갖춘 소재인 동시에, 주인공을 맡은 배우가 마음껏 연기력을 뽐낼 수 있는 기회이다. 또 주인공의 정신질환은 인물 간의 갈등과 더불어 주인공의 내적 갈등을 더욱 극적으로 그릴 수 있다는 서사적 이점까지 겸비하고 있다. 다중인격을 다룬 『킬미힐미』와 『하이드 지킬 나』 모두가 주인격과 주변인격의 대립을 다루고 있다는 점이 이를 보여준다. 『킬미힐미』의 열혈 시청자인 박세희(21)씨는 “다중인격에 대해 어렴풋이 알고는 있었지만 드라마를 통해 처음 접한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남자주인공이 7명의 인격을 오가는 모습이 흥미롭기도 하고 주인공 역을 맡은 지성의 연기력에 감탄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주인공의 정신질환이라는 설정 자체의 신선함과 재미, 그리고 배우의 연기력이라는 조합에 시청자가 반응한 것이다.
그렇다면 드라마 외적으론 어떤 요인이 정신질환을 소재로 한 드라마의 인기에 영향을 끼쳤을까? 이는 각박한 현실에서 정신적 힐링을 갈구하고 있는 현대인들이라고 볼 수 있다. 배국남 대중문화 평론가는 “정신질환을 전면에 내세운 드라마가 봇물을 이루고 있는 것은 물질과 정신의 부조화, 급변하는 사회에의 부적응, 경기침체와 양극화로 인한 정신적 고통의 증가라는 환경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며 “세월호 참사와 같이 수많은 사람들에게 불안감과 트라우마를 안긴 사건사고들이 끊임없이 일어나면서 정신질환을 앓는 사람이 증가한 것도 정신병을 다루는 드라마의 증가로 이어졌다”고 말한다. 여러가지 사회문제로 인해 TV를 시청하는 대중들이 육체적 고통만큼 정신적 고통에도 민감해지면서 이와 같은 소재가 드라마에 등장하고 더불어 드라마 속에서 정신 질환을 이겨내는 주인공을 보며 대중들 역시 스스로의 정신적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있는 것이다.


정신병 드라마의 의미는 킬미? 힐미!


위와 같이 정신질환은 드라마의 재미나 힐링을 원하는 시청자들을 고려했을 때 충분히 매력적인 소재이다. 하지만 드라마가 대중들에게 정신질환에 대한 잘못된 환상을 심어줄 수도 있다는 우려 또한 생기고 있어 논란이 일고 있다. 최근 방영한 『킬미힐미』나 『하이드 지킬 나』에서 정신질환의 사실적인 묘사보다는 주인공들의 로맨스와 다중인격의 코믹한 면을 부각하고 있는 것이 그 이유다. 이와 관련해 이호분 정신과 전문의는 “실제 정신질환은 드라마에서의 모습보다 더 비참하다”며 “드라마를 통해 정신질환이 미화될 경우 청소년들이 이를 모방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더불어 이씨는 “드라마 속 주인공들이 가족으로 인해 정신질환을 얻게 되거나 비정상적인 가족형태를 갖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이러한 묘사는 실제 환자의 가족들로 하여금 죄책감을 느끼게 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결국 정신질환을 소재로 한 드라마가 대중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지는 드라마가 정신질환을 어떻게 그리느냐에 따라 다르다. 지난 2014년 방영한 『괜찮아 사랑이야』가 누구나 정신병 하나쯤은 갖고 있을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해 사람들이 갖고 있는 편견의 벽을 허물은 것이 좋은 예. 당시 『괜찮아 사랑이야』는 방영초기 정신질환 환자들과 가족들의 항의로 몸살을 앓았지만 드라마가 진행될수록 많은 환자들이 드라마를 통해 희망을 얻었다는 평이 많았다. 우리대학교 이한나(아동가족·14)씨 역시 “이전에는 정신질환을 피해야할 대상으로만 여겼는데 『괜찮아 사랑이야』를 보고나서 정신병도 다른 병과 마찬가지로 약이나 다른 방법으로 치료가 가능하다는 것을 알았다”며 “정신병에 대해 훨씬 더 열린 태도를 갖게 됐다”고 이야기했다. 이에 대해 이호분 전문의는 “정신질환을 소재로 하는 드라마들이 대중들과 환자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기 위해선 철저한 감수를 거치는 것이 좋을 것”이라며 “시청자들 역시 이러한 드라마들을 좀 더 비판적으로 바라볼 줄 알아야한다”고 당부했다.

드라마 『괜찮아 사랑이야』의 제작발표회에서 드라마의 극본을 맡은 노희경 작가는 드라마의 목적에 대해 “마음의 상처를 입은 사람들에게 또 다시 폭력적으로 다가서는 우리 사회의 편견과 무지를 깨는 것”이라고 언급했다. 아마 이는 정신질환을 소재로 하는 드라마를 만드는 모든 이들의 마음일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의도를 가지고 시작했다 하더라도 정신질환에 대해 드라마가 자칫 잘못된 묘사를 하는 순간 아픈 이들의 상처를 어루만지겠다던 드라마는 이들을 향하는 칼날이 될 수도 있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안방에서 시청자들을 웃고 울리는 드라마들이 드라마의 재미와 정신질환에 대한 사실적인 묘사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을 찾아 드라마를 시청하는 대중, 그리고 현실에서 정신질환으로 고통 받고 있는 이들 모두에게 진정한 힐링과 희망을 선사하길 기대해본다.


글 김예린 기자
yerinee@yonsei.ac.kr

<자료사진 MBC 공식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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