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운 주거 계약, 표준계약서 2장으로 가능해져

지방에서 올라온 새내기 연돌이는 자취를 결심하고 집을 구하기 위해 연희동 골목골목을 돌아다녔다. 그러던 중 전봇대에 붙은 전단지를 발견해 전화를 걸어 집주인 아주머니를 만났다. 하지만 아주머니가 설명하는 내용은 도통 이해가 안 됐고 계약서는 어렵기만 했다.

주택임대차표준계약서란?

이는 오늘날 대다수 대학생들이 집을 구할 때 쉽게 볼 수 있는 모습이다. 전·월세 계약에 대해 잘 알고 있는 학생이라도 직접 부딪히면 당황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이렇게 초보세입자들은 주택임대차계약을 체결할 때 계약에 관련한 법 조항을 잘 몰라 불안해하거나 중개인만 믿고 모든 것을 중개인에게 맡기곤 했다. 그러다 보증금을 받지 못하거나 수리비로 수십만 원을 쓰게 돼 집주인과 다툼을 겪은 사례도 허다하다.
이러한 초보세입자의 어려움을 예방하고 집주인과 세입자 간 분쟁을 없애기 위해 서울시는 법무부와 국토교통부, 학계 전문가들과 함께 주택임대차표준계약서를 만들어 배포했다. 주택임대차표준계약서(아래 표준계약서)란 전세나 월세를 대상으로 건물이나 방을 빌리는 세입자가 그 물건의 사용으로 인해 발생되는 수익을 가지는 조건으로 집주인에게 대가를 지불한다는 내용의 계약서를 말한다. 서울시 주택제도팀 서혜진 주무관은 “표준계약서에는 당사자, 권리 순위, 중개대상물 설명 등 주요 확인 사항이 누구나 확인할 수 있도록 쉽게 명시돼 있다”며 “초보세입자도 조금만 알아보면 쉽게 사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표준계약서는 서울시 전월세보증금지원센터 홈페이지(http://cb-counsel.seoul.go.kr)에서 서식을 받아 미리 확인할 수 있고, 계약서 분량도 2장으로 간소화돼 있어 계약 내용을 간단히 점검한 후 계약을 진행할 수 있다. 지난 2014년 표준계약서로 월세 방을 계약한 한성대 홍지수(국문·11)씨는 “표준계약서를 통해 미리 계약 조항을 인지하고 중개업소를 찾아가 쉽게 원하는 방을 계약할 수 있었다”며 표준계약서 사용이 장려돼야함을 강조했다.

간단한 표준계약서로 분쟁은 이제 안녕

서울시 통계에 따르면 지난 2013년 전월세보증금지원센터에 접수된 분쟁사례는 누수 관련이 21%, 동파 10%, 보일러 수리 25% 등으로 집의 유지·보수와 관련된 분쟁만 56%에 달한다. 이는 기존 계약서 양식에 수리비에 관한 항목이 포함돼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 2013년 12월까지 1년 동안 연희동에서 거주한 이경준(정경경영·11)씨는 월세 계약 후 두 달간 거주하다 갑자기 난방이 되지 않아 집주인에게 수리를 요구했다. 하지만 계약서에 명시된 사항이 아니라는 이유로 수리를 받지 못했고 결국 사비로 보일러 보수를 해야만 했다. 이에 이씨는 “사전에 수리, 보수에 대한 항목이 계약서에 명시돼야 하는지 몰랐다”며 억울함을 토로했다. 이러한 사례는 대학가 원룸촌에서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서울시는 이와 같은 문제를 사전에 예방하기 위해 표준계약서에 수리, 보수 항목을 추가했다. 티에스 법률사무소 이승주 변호사는 “표준계약서에 집주인과 세입자 간 권리를 확인하는 조항이 추가돼 마찰 요소를 줄일 수 있다”며 “표준계약서가 주택 시장이 밝아지는 데 한 몫을 할 것”이라고 전했다.
표준계약서는 계약 종료 1개월 전까지 집주인의 통보가 없으면 자동으로 계약이 갱신된다는 내용과 갱신될 때 임대료를 지불해야 한다는 내용을 포함했다. 이는 쌍방의 분쟁을 막을 수 있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이다. 그뿐만 아니라 갱신에 대한 공지 없이 자동으로 계약이 연장될 경우 세입자가 계약을 해지하더라도 새로운 세입자와의 임대차계약에 따른 중개수수료 부담이 없다는 항목이 명시됐다. 일반적으로 세입자가 중개수수료를 부담해야 해야 한다는 통념을 없앤 것이다. 강원대 부동산학과 김승희 교수는 “다양한 분쟁에 관한 규정을 명확히 해 세입자의 권리가 향상됐다”며 “이를 통해 장기적으로 주택 거래가 활발해져 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표준인 듯, 표준 아닌, 표준 같은 계약서

하지만 배포된 지 2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표준계약서는 실제 거래에서 잘 쓰이지 않고 있다. 서 주무관은 이에 대해 “상대적으로 ‘갑’인 집주인이 ‘을’인 세입자에게 유리한 표준계약서를 쓰고자 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표준계약서는 양측의 권리를 확인하는 단계가 추가돼 집주인과 세입자 간의 권리가 비슷해졌다. 즉 세입자의 권리만 강화돼 집주인의 경우 표준계약서를 꺼려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이에 공인중개사들도 집주인과의 마찰을 피하기 위해 표준계약서를 지양한다. 공인중개사 이영자(59)씨는  “집주인을 바로 앞에 앉혀두고 난방이나 상·하수도, 전기 등 세세한 사항들을 하나하나 설명하기에 표준계약서는 어려운 부분이 많다”며 “책임 관계를 따지다 계약이 성사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또한 대부분의 공인중개사들은 한국공인중개사협회의 부동산 정보망 ‘케이렌’이나 사설 부동산정보망에서 배포하는 계약서를 사용하는 것이 익숙하고 편리하다는 이유로 표준계약서를 기피한다. 세명대학교 부동산학과 채명종 교수는 “아무래도 계속 쓰던 계약서를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라며 “표준계약서에 대한 홍보와 더불어 표준계약서 사용을 위한 규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서울시는 표준계약서의 사용을 장려하기 위해 공인중개사협회와 지속적인 협의를 하고 있다. 서 주무관은 “서울시에서 중개업소 개설을 하려면 공인중개사 자격증 취득 후 법무부에서 주관하는 실무 교육을 이수해야 한다”며 “실무 교육이 진행될 때 서울시에서 담당 공무원을 파견하여 표준계약서의 사용을 홍보하고 있다”고 전했다. 한편 법무부에서도 홍보 만화를 제작해 각 지자체(읍·면·동사무소 포함) 등에 책자를 배포하면서 홍보에 힘쓰고 있다.

표준계약서는 단 2장으로 간편하게 계약을 할 수 있으며 분쟁을 예방하고 상대적으로 약자인 세입자의 권리를 증진시켜 주택 시장 활성화를 도울 수 있다. 하지만 현재 표준계약서는 ‘표준’이라는 단어의 의미가 무색하게 ‘표준’으로 자리 잡은 상황이 아니다. 아무리 좋은 법, 양식을 만들어놨어도 활용하지 않으면 빛 좋은 개살구다. 표준계약서의 홍보와 더불어 자발적인 사용을 통해 ‘표준’이 되는 주택임대차표준계약서가 돼야 할 것이다.

 

신준혁 기자
jhshin0930@yonsei.ac.kr
 

<자료사진  법무부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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