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양4종합복지관의 사회복지사 정성원씨를 만나다

2014년이 가고 2015년 새해가 밝았다. 연말, 연초에는 다양한 기부와 나눔이 이뤄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올 겨울은 경기 침체와 세월호 참사 등의 여파로 광화문 ‘사랑의 온도탑’의 온도가 지난 2013년에 비해 6도 정도 낮다고 한다. 그런데 모두가 어려운 이 순간에도 묵묵하게 이웃과 함께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사회복지사들이다.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기 위해 우리대학교 산하 기관인 가양4종합사회복지관(아래 가양4복지관)의 정성원 부장(사회복지·석사3학기)을 만났다.

사회복지사는 내 운명

정씨는 우리대학교 사회복지학과를 졸업하고 사회복지사로 16년째 일하고 있다. 하지만 놀랍게도 정씨의 원래 꿈은 경찰이었다고. 경찰대에 재수한다는 조건으로 아버지가 원하는 우리대학교 사회복지학과(당시 사회사업학과)에 입학한 정씨. 정씨는 입학 후에도 경찰을 꿈꾸며 재도전했지만 결국 다음 해에도 경찰대에 합격하지 못했고 우리대학교에 계속 다니게 됐다.
전공에 큰 흥미 없이 대학을 다니던 정씨는 입대해서 신병교육대 조교로 복무했다. 정씨는 군대에서 마음이 유독 약했던 한 훈련병을 맡게 돼 다른 조교들이 그러하듯 강하게 군기를 잡았다. 그러나 그 훈련병은 적응하지 못하고 반복적으로 탈영을 시도하다가 결국 정신질환 판정을 받아 병원으로 보내졌다. 정씨는 “창살에 갇힌 그 친구가 웃으며 손을 흔드는데 순간 내가 군인이기 이전에 사회복지학과 학생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감싸주고 이해해주는 게 더 나은 접근이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한동안 후회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 일을 겪고 정씨는 그 훈련병에 대한 죄책감을 계기로 사회복지사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시작했다.
정씨는 제대한 뒤 가양4복지관에서 실습을 하면서 사회복지사가 돼야겠다는 결심을 굳혔다. 정씨는 “누군가를 위해 밤새 고민한 것은 처음이었는데 정말 재미있었다”며 “내가 사람을 돕는 선한 일에 열정을 보인다는 점이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게 했다”고 그 이유를 밝혔다. 이어 정씨는 “지금 생각해보면 아버지가 사회복지학과를 권유하고 군대에서 그 친구를 만난 것 모두 운명이었던 것 같다”고 덧붙였다.

세상의 행복한 반전을 꿈꾸는 남자


사회복지사로서 보람을 느낄 때가 언제냐고 묻자 정씨는 자신이 공동체의 일원이라는 느낌이 들 때라고 대답했다. 정씨에게는 단순히 자기 자신을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은 조금 낮은 곳에 있더라도 사람들이 더불어 살아갈 수 있도록 세상을 살맛나게 바꾸는 것이 더 의미 있다. 정씨는 친구들과 만나서 일 이야기를 해보면 행복한 것은 자신뿐이라며 “수많은 사람들이 출세하고 자아를 실현해 원하는 것은 결국 다른 사람과 함께하는 것인데 사회복지사는 돈을 받으며 그 일을 하는 직업이라던 아버지 말씀을 이제는 이해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정씨는 자신이 행복감을 느끼는 순간에 대해 구체적으로 빚이나 알코올 중독 등으로 힘들어하던 사람들이 복지관의 프로그램에 참여한 후 새롭게 살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얻고 다시 태어난 것 같다고 표현할 때라고 말했다. 정씨는 마을 주민들을 대상으로 진행했던 리더십 프로그램인 ‘다짐지기* 아카데미’에 대해 “참여자들이 모여 발표하고, 서로를 격려하며 다 같이 어울리는 과정을 통해 자존감을 높여 스스로의 잠재력을 끌어냈던 프로그램”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정씨는 “무언가를 보고 믿는 게 아니라 있다고 믿어야 나오는 게 잠재력”이라며 진정성을 강조했다.
가양4복지관이 위치한 가양4단지는 영구임대아파트 단지로, 쉽게 말하면 주민들에게 ‘내 집’이 될 수 없는 곳이다. 정씨는 “가양4복지관 회원의 대부분인 지역 주민들은 가난으로 인한 마음의 상처가 많은 사람들”이라며 “극적으로 상황이 나아지는 것은 아니지만 사람들이 행복해지고 미래에 대한 꿈을 꾸기 시작하는 것을 보면 나 또한 행복하다”고 말했다. “어려운 상황을 당장 해결할 수는 없지만 조금씩 세상을 바꾸다보면 반전을 일으킬 수 있지 않을까”라며 웃는 정씨에게서 묘한 자신감이 느껴졌다.

‘아무나’ 할 수는 없는 직업, 사회복지사

정씨가 사회복지사로 일하는 동안 보람도 많았지만 어려움 역시 많았다. 정씨는 “사회복지사라는 직업이 확실히 아무나 할 수 있는 직업은 아니다”라며 “‘가치노동’이라는 것이 이 직업의 큰 산이다”라고 일할 때 겪는 어려움에 대해 설명했다. 사회복지사는 일하는 내내 ‘내가 하는 일이 옳은 일인가? 이 상황에서 어떤 표정을 짓는 것이 옳은가?’라고 고민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노동이 명확한 성과를 나타내지 못하기 때문에 스스로 하는 일이 옳은 일이라고 믿어야만 성과와 보람을 느낄 수 있다.
‘클라이언트 폭력’도 빼놓을 수 없는 문제다. 정씨는 “밤에 여직원들만 두고 퇴근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젊은 남자 회원이 술에 취한 상황에서 복지관에 들이닥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또한 정씨는 “마음이 어려운 분들이 격식과 예절을 차리기는 힘들다”며 “욕먹는 것은 기본”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인터뷰를 진행하기 전날인 12월 29일에도 57세 직원이 35세 회원에게 행정적 문제로 입에 담지 못할 욕을 듣기도 했다고. 한 달에 한두 번 정도 일어나는 일이지만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사회복지사들은 상처를 받는다.
이 외에 정씨는 하는 일에 비해 적은 보수도 현실적인 문제라고 지적했다. 정씨는 “남자 혼자 사회복지사 일을 하기에는 생활이 어려운 것이 사실”이라며 “보통 아이가 한 둘 생기면 이직을 하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야근에 박봉, 반복되는 가치노동과 감정노동, 얻어맞고 욕먹는 건 다반사인 사회복지사가 쉬울 수는 없다. 이에 정씨는 “힘든 게 사실이지만 1년에 몇 번 있을까 말까한, 가슴을 울리는 감동 때문에 계속 이 일을 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대학시절의 자원봉사 경험은 인생을 좌우해

현재 가양4복지관에서는 연세대 재학생 40명과 아동 청소년 40명을 연결시켜주는 멘토링 프로그램을 1년 단위로 진행하고 있다. 멘토링 프로그램의 성과에 대해 어떻게 생각 하냐는 질문에 정씨는 “성과를 당장 수치로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만족도 자체는 높다”며 “성장한 멘티들이 그 때의 경험을 좋게 이야기 하며 좋은 영향을 받았다고 많이 말하는 것을 보면 멘토링 사업은 꽤 효과적이었다고 생각한다”고 대답했다.
학점을 주는 자원봉사 수업에 대해서도 정씨는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자원봉사 수업을 수강한 학생들이 한 학기가 지난 후에도 봉사를 계속 하는 경우는 10% 미만에 그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씨는 자원봉사 수업에 대해 “학점을 떠나 대학생들이 봉사를 경험해볼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한다”며 “20명 중 1명이라도 ‘봉사를 하며 더불어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어린 친구들이 봉사하러 올수록 복지관에서의 봉사 경험이 앞으로 인생에 있어 봉사를 좌우할 수 있다는 생각에 긴장된다는 정씨는 늘 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타고난 사회복지사다.

인터뷰를 마무리하면서 정씨는 “사회복지사로 일하면서 내게 대통령이 되라는 분도 있었고, 한 때는 팬클럽도 있었다”며 “친구들은 그게 좋으냐고 비웃었지만 어느 누가 대통령을 하라는 소리를 듣고 팬클럽이 있을 수 있겠냐“고 자신이 받는 사랑에 대해 말했다. 쉽지 않은 현실이지만 그 안에서 보람을 찾고 옳은 일을 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정씨를 보면서 기자도 스스로의 가치관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됐다. 자신의 직업에 대해 “실제 세상을 조율하는 프로듀서”라고 자신 있게 말하는 정씨. 아직 뚜렷하게 드러나지는 않지만 정씨가 연출해낼 ‘더 좋은 세상’을 기대해도 좋을 것 같다.

* 다짐지기 : ‘리더’의 순 우리말

글 민선희 기자
godssun_@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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