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직장문화 줴일 힘든 거 눈치 보는 거에욥.”
“중국에선 크리스마알스를 잘 챙기지 않아요.”

요즘 TV에서는 조금은 어설픈 한국어 발음으로 한국과 자신의 나라에 대해 열정적으로 이야기하는 외국인들의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외국인 출연자들을 중심으로 토론을 진행하는 JTBC의 『비정상회담』이 참신하면서도 재미있다는 호평을 받으면서 다른 TV 프로그램들도 너도나도 외국인들을 게스트나 고정으로 출연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패션 잡지 ‘나일론’에서 선정한 지난 2014년 대중문화의 키워드 중에 ‘외국인’이 있었을 정도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외국인들의 방송 출연과 이를 통해 볼 수 있는 우리 사회의 변화를 알아보자.

외국인 방송인 계보, 닮음에서 출발하다

사실 외국인들이 방송에 출연해 화제가 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1990년대에 처음 우리나라 TV에 등장하기 시작한 1세대 외국인 방송인부터 2000년대의 2세대 외국인 방송인, 그리고 최근의 3세대 외국인 방송인까지 항상 방송가에는 외국인 방송인들이 존재해왔기 때문이다. 이렇게 외국인 방송인들을 세대별로 나누는 까닭은 이들의 변천사가 우리나라 대중문화의 흐름뿐만 아니라 다문화에 대처하는 우리 사회의 모습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먼저 199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당시의 1세대 외국인 방송인에는 정겨운 경상도 사투리로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캐나다의 로버트 할리와 프랑스에서 온 ‘울랄라 아줌마’ 이다도시, 배우부터 한국관광공사 사장까지 역임한 독일인 이참 등의 방송인들이 있었다. 1세대 외국인 방송인들의 가장 큰 특징은 세 외국인이 모두 한국에 귀화해 이젠 한국인이 돼버린 외국인이라는 점. 그 때문에 이들은 토종 한국인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의 한국어 실력을 갖추고 있었고 사고방식마저 한국인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었다. 한국인보다 더 한국인 같은 이들의 친숙함에 우리나라 대중들은 열광했다. 로버트 할리의 유행어인 “한 뚝배기 하실래예”가 이러한 친숙함의 단적인 예일 것이다.

2세대 외국인 방송인들의 등장, ‘닮음’에서 ‘다름’으로

이후 2000년대에 들어 드디어 외국인 여성 방송인들이 대거 출연한 KBS의 『미녀들의 수다』(아래 『미수다』)가 방송을 시작했다. 당시 『미수다』는 출연자 개개인의 개성 넘치는 입담으로 일본의 사유리, 이탈리아의 크리스티나 등 다양한 2세대 외국인 방송인들을 배출해내며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외국인 출연자와 한국인 패널들의 몇몇 발언으로 인해 크고 작은 논란을 겪다가 폐지되는 아쉬운 결과를 낳았다.
2세대 외국 방송인부터는 대부분의 외국인들이 자신의 본래 국적을 갖고 방송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이 시기의 프로그램인 『미수다』가 매주 주제를 정해 우리나라와 외국의 생각 차이를 알아보려 한다는 점에서 우리는 한국사회가 점점 차이를 수용해 나가고 있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외국인이라 할지라도 단일민족국가인 우리나라의 문화에 맞춰야한다는 동화주의에서 각각의 문화를 존중해주는 다문화주의로의 변화가 대중매체에도 빠르게 반영되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아직 이러한 사고의 변화가 과도기에 있었던 만큼 『미수다』는 여러 논란을 피할 수 없었다. 한번은 일본인 출연자였던 리에가 일본에서는 고개를 숙여 밥그릇에 가까이 가는 것을 개 같다고 여겨 밥그릇을 들고 먹는다고 한 말이 네티즌들의 뭇매를 맞았던 적도 있었다. 단순히 생각의 차이를 언급한 발언이었음에도 이를 향한 당시 네티즌들의 비난은 다문화에 대한 우리의 인식이 여전히부족했음을 보여준다.

다름에서 오는 그들만의 매력

많은 논란을 야기한 『미수다』 이후 외국인 중심의 방송은 한동안 자취를 감추며 암흑기를 겪었다. 그러나 MBC의『진짜 사나이』에 출연한 샘 해밍턴부터 동 방송사의『나 혼자 산다』에 출연한 프랑스 청년 파비앙 등 기존의 예능에서 개인적으로 활약한 외국인 방송인들에 힘입어 지난 2014년, 외국인들을 주인공으로 한 방송들이 다시 우후죽순으로 생겨나기 시작했다. JTBC의 『비정상회담』과 MBC의 『헬로 이방인』이 바로 그 예이다. 이러한 프로그램들에 출연한 가나의 샘 오취리, 일본의 후지이 미나 등이 ‘3세대 외국인 방송인’으로 새로이 불리고 있다. 이중에서도 특히 『비정상 회담』의 출연자들은 그 대부분이 전문 연예인이 아닌 일반인임에도 불구하고 여러 광고에 출연하는 등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
그런데 사실 이렇게 전례 없는 인기를 끌고 있는 『비정상회담』은 프로그램의 형식상 『미수다』와 큰 차이가 없다. 오히려 『비정상회담』에 출연 중인 3세대 외국인 방송인들은 자국에 대한 자부심으로 충만한 각국의 청년들로 이들의 모습은 시청자들로 하여금 이전보다 더욱 뚜렷한 한국 문화와의 생각 차이를 느끼게 한다. 하지만 지금의 우리 사회는 이들의 ‘다름’을 인정하고 그 차이에서 각 출연자들의 매력을 찾아 열광하고 있다. 어찌 보면 다혈질이라 할 수 있는 중국 출연자 장위안의 성격을 ‘대륙 남자의 호방함’이라 일컫고, 온몸이 문신으로 뒤덮인 호주 출연자 다니엘의 반항 기질을 ‘매력적인 악동’의 일환으로 보는 시선이 그 예이다. 단순히 친근함에 열광하며 다름을 배척하던 90년대와 달리 다문화에 대한 시청자들의 인식이 수용적으로 변한 것이다. 결국 외국인의 방송 출연이 지난 해 큰 인기를 끈 것은 다문화를 재치있게 다룬 문화 콘텐츠와 이를 수용하는 시청자들의 인식 수준이 모두 맞아 떨어진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외국인들의 방송 출연은 아직도 다양한 숙제들을 안고 있다. 여전히 방송에서 조명하고 있는 외국의 문화가 동아시아, 북미, 유럽에 집중돼 있어 유색 외국인들에 대한 부정적인 편견을 개선하기엔 역부족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현재의 우리 사회가 이러한 외국인들의 방송 출연에 열광하고 있고 점점 더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며 여러 문화를 바라보는 시각을 넓혀가고 있다는 것이다. 올해에는 외국인들의 방송 출연이 당면하고 있는 과제를 해결해 한 때의 유행에 그치지 않고 우리나라 대중문화의 한 부분으로 자리 잡기를 기대해본다.

 

글 김예린 기자
yerinee@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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