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파와 비지상파의 무한 경쟁

18.1%, 이 수치는 지난 2010년에 동시간대 지상파 프로그램을 압도한 Mnet 『슈퍼스타K2』의 시청률이다. 수많은 화제를 만들었던 이 비지상파 오디션 프로그램의 성공은 지상파 방송사들이 앞다퉈 유사한 오디션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진풍경을 낳았고, 케이블 방송사가 과거와는 달리 한국 방송계 전체의 흐름을 주도하는 이례적인 현상을 보여줬다. 이후 지난 2011년 종합편성채널들이 개국하면서 종합편성채널과 케이블채널을 포함한 비지상파 방송사와 지상파 방송사들간의 경쟁은 더욱 더 치열해지고 있다. 『슈퍼스타K』 시리즈를 성공시킨 대기업 CJ E&M은 지상파 방송사에서 활동했던 유명 PD들을 스카우트하는 등의 공격적인 투자를 통해 『응답하라 1994』, 『미생』 등의 히트 프로그램들을 지속해서 양산해냈다. 또한 초반에 고전을 면치 못하던 종합편성채널들 역시 부진을 털어내고 『무자식 상팔자』, 『비정상회담』, 『먹거리X파일』 등 수많은 화제작을 만들어내며 동시간대 지상파 프로그램들을 위협하는 수준까지 도달했다. 비지상파 TV에서 시청률 1%만 넘어도 ‘대박 프로그램’이라 분류되던 것은 이젠 옛 말, 지금 비지상파 방송사들은 과거에는 넘볼 수 없었던 지상파 방송사들의 명성에 도전하고 있다.
 

위기의 지상파 방송사


지난 반세기동안 시청자들의 채널 선택권은 극히 제한적이었다. KBS·MBC·SBS로 대표되는 이른바 지상파 3사는 독과점 체제를 구축하며 서로 한정된 시청률 파이를 나눴다. 케이블TV가 탄생한 1994년으로부터 20여 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지만, 기존의 막강한 자금력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성장했던 지상파 방송사들을 당해내긴 역부족이었고 시청자들의 리모컨 역시 지상파 채널에 멈춰있었다.
하지만 최근 이 같은 권력 구조에 변화가 생기고 있다. 시청률 조사기관 AGB닐슨미디어리서치에 따르면 지난 12월 19일 기준 지상파 방송사 인기 프로그램 KBS 『해피투게더』의 시청률은 5.8%로 동시간대 1위의 기록이지만, 2년 전 같은 기간에 10%에 가까운 시청률을 기록한 것에 비해 반 토막 수준으로 추락했다. 하지만 이는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으로, 지상파 방송사가 번번이 비지상파 방송사와의 시청률 경쟁에서 뒤처지는 것이 빈번히 목격되는 형편이다. 지난 해 유명 연예인을 앞세워 시작한 MBC 『별 바라기』나 『매직아이』는 각각 2%와 3%의 초라한 시청률을 기록하며 MBN 『엄지의 제왕』등의 동시간대 비지상파 프로그램들에 밀려 조기 종영의 쓴 맛을 본 바 있다. 참신한 기획을 앞세운 비지상파 프로그램의 약진이 지상파 프로그램의 전체적인 시청률 하락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더불어 KBS 『1박 2일』을 연출했던 나영석 PD가 CJ E&M으로 자리를 옮기는 등 지상파 방송사의 핵심 인력들이 비지상파 방송사로 이동하는 추세는 지상파 방송사에게 크나큰 골칫거리가 아닐 수 없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지상파 방송사의 광고 수익은 점차 감소하고 있다. 지난해 정보통신정책연구원이 발간한 「방송채널사용사업자의 광고 매출 추이 분석」을 보면 지상파 방송사의 광고 매출은 2013년에 2조 733억 원을 기록해 전년 2조 1천876억 원보다 5.2%가 줄어들었다. 하지만 비지상파 방송사의 경우 일반PP*는 1조 2천636억 원, SO**는 1천236억 원, 위성방송은 174억 원으로 전년 대비 각각 0.9%, 12.4%, 20.1% 상승했다. 비지상파 방송사의 광고 수익이 늘어난 반면 지상파 방송사의 광고 수익은 줄어든 것이다.

또한 지상파의 방송광고 매출 점유율은 2011년 65.1%를 기록했으나 2012년에는 61.4%, 2013년 59.6%로 점차 줄어드는 반면, 비지상파 방송사인 일반PP의 방송광고 매출 점유율은 2011년 31.4%에서 2012년 35.1%, 2013년 36.3%로 증가세를 나타내고 있다. 호서대 뉴미디어학과 변상규 교수는 “지상파 방송사가 광고수익이 줄어들면서 CJ나 종합편성채널과 같이 대규모 투자를 쉽사리 결정하지 못하는 실정”이라며 “우리나라의 프로그램 제작 수준이 지상파와 비지상파 모두 평준화가 되어 상대적으로 투자를 많이 진행하는 일부 비지상파 방송사들이 좋은 결과물을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다.


변화하는 지상파, 도약하는 비지상파


상황이 이렇자 오랜 기간 굳건했던 지상파 방송사에 개혁의 바람이 불고 있다. 그동안 비지상파 방송사들은 낮은 채널 인지도를 극복하기 위해 프로그램 홍보에 상당한 힘을 쏟았다. 이 점에 착안해 지상파 방송사  MBC는 지난해 홍보 부서를 제작 부서와 통합시키는 등의 조직 개편을 단행하여 프로그램 홍보에 적극적으로 열을 올리고 있다. 편성 전략 또한 변화하고 있다. 지난 2013년 지상파 3사는 밤 11시대 프로그램의 전체 시간을 75분으로 제한하는 편성 규칙에 합의했지만 비지상파 프로그램의 약진으로 인해 시청률 경쟁에 밀리기 시작하면서 다시 편성 시간을 자유롭게 조정하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최근 비지상파 방송사 tvN의 금토드라마가 큰 인기를 얻자 지상파 방송사 KBS도 올해 1월부터 금요일 밤 9~11시 시간대에 드라마를 편성하기로 결정했다. 지상파 방송사가 변화의 흐름을 받아들여 기존의 틀을 깨고 새로운 시도를 선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비지상파 방송사의 선전은 방송 업계에 많은 변화를 불러오고 있지만 아직 그들이 가야할 길은 멀어 보인다. JTBC를 비롯한 일부 종합편성채널과 CJ E&M 소속 채널들이 가장 두드러지는 활약을 보여주고 있지만 사실 이들의 모든 프로그램이 성공한 것은 아니다. 그리고 영세한 비지상파 사업자들은 여전히 새로운 콘텐츠를 만드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일부 채널들은 1년 내내 지상파 프로그램들을 그대로 재방송하며 콘텐츠를 만들 의지조차 보이지 않는 실정이다. 변 교수는 “비지상파 방송사들이 많이 치고 올라왔지만 아직은 지상파에 역부족인 것이 사실”이라며 “거대 PP뿐만 아니라 영세한 PP들도 좋은 프로그램을 제작하려는 의지와 노력이 필요하고 그에 맞는 SO들의 지원과 대기업들의 투자가 충분히 뒷받침되어야한다”고 말했다.

이미 방송시장은 수많은 채널로 인해 무한 경쟁 체제에 돌입한지 오래다. 여기에 인터넷을 기반으로 하는 새로운 매체들의 등장은 기존 방송사들로 하여금 방송 시장 내 경쟁을 넘어 다양한 매체들과 승부를 겨뤄야 하는 상황에 내몰리게 하고 있다. 이 치열한 싸움에서 승리할 방법은 단 한 가지다. 바로 좋은 콘텐츠를 선보여 시청자들을 다시 TV앞으로 끌어들이는 것이다. 지상파와 비지상파 방송사들은 시청자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는 양질의 참신한 프로그램 제작을 위해 오늘도 고군분투하고 있다. 그리고 시청자인 우리는 역설적이게도 이러한 경쟁을 즐겁게 바라보고 있다.

*PP :  program provider의 약자로 케이블TV나 위성방송에 고유 채널을 가지고, 프로그램을 제작ㆍ편성하여 SO나 위성방송사업자에게 제공하는 방송채널사용사업자
**SO : System Operator의 약자로 지역 종합유선방송사업자, 구역별로 케이블TV를 송출하는 지역방송국

 송진영 기자
sjy0815@yonsei.ac.kr
그림 이진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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