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시 새로운 한 해가 다가왔다. 그러나 부푼 가슴으로 희망찬 한 해를 맞이하기에는 지난 해의 깊은 상처가 아직 시리다. 팽목항의 시계는 여전히 멈춰있고, 서민들 역시 지난 빚에 한숨만 내쉬고 있을 뿐이다. 대학 사회의 풍경 또한 크게 다르지 못하다. 2014학년도를 끝으로 졸업을 코앞에 둔 ㄱ아무개씨는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취업전선에 뛰어들 계획이지만 높은 취업난과 스펙전쟁에 눈앞이 캄캄하다. ㄱ아무개씨는 “취업시장이 녹록치 않아 걱정이 앞선다”며 “가뜩이나 어려운 가정형편에 보탬이 되기는커녕 스펙 쌓기를 위한 비싼 학원비나 축내게 생겼으니 부모님께 죄송할 뿐”이라며 답답한 심경을 드러냈다. 용돈벌이라도 하기 위해 시간을 쪼개서 할 수 있는 일자리를 알아보고 있다는 ㄱ아무개씨, 그의 모습이 남일 같지만은 않다.


시간선택제 일자리란?

이렇듯 학업 및 취업준비, 육아, 점진적 은퇴 등의 이유로, 유연한 근로시간이 보장되는 일자리에 대한 수요는 늘 존재해왔다. ‘고용률 70% 달성’이라는 박근혜 대통령의 핵심 공약을 실현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던 정부는 이러한 수요를 감지하고, 근로자가 자신의 여건에 맞게 근로 시간을 선택할 수 있는 ‘시간선택제 일자리’(아래 시간제 일자리)를 마련했다. 고용노동부와 노사발전재단이 지난 2013년에 발행한 <시간선택제 일자리 도입·운영 안내서>에서는 시간제 일자리를 ‘근로자의 자발적 수요에 부합하고 기본적인 근로조건이 보장되며, 근로조건에 있어 불합리한 차별이 없는 일자리’로 정의하고 있다. 근로자가 ▲일과 가정의 양립 ▲점진적 퇴직 및 재취업 ▲일·학습 병행 등을 위해 사업주와 협의해 근로시간, 업무의 시작과 종료 시각, 근무요일 등을 선택할 수 있는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이 이 제도의 주된 목표다. 이지만 교수(경영대·매니지먼트)는 “시간제 일자리 도입 배경에는 급속한 저출산, 고령화, 경제 양극화, 저성장 시대로의 진입 등 우리 사회가 직면한 사회 경제적 현실이 자리하고 있다”며 “따라서 우리 사회가 직면한 과제를 해결하는데 있어 고용률 70% 달성을 핵심 국정과제로 설정한 것은 당연하고, 그 중심에 시간선택제 일자리 창출이 있다”고 전했다. 지난 2013년 11월 ‘시간선택제 일자리 활성화 추진계획’이 발표된 이후, 정부는 공공과 민간부문에서 양질의 시간제 일자리 창출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노동 시장의 비효율성을 제고하기 위한 야심찬 정책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유연한 근로시간이 보장되는 일자리에 대한 수요가 시간제 일자리의 도입에 큰 영향을 미쳤다. 고용노동부 시간선택제 일자리 창출 지원단 이수영 단장은 <시간선택제 일자리 창출 추진 방향>에서 “현재 우리나라 노동시장은 주5일, 1일 8시간 이상 전일제 위주의 일자리로 채워져 있어 근로시간에 대한 구직희망자의 다양한 수요를 맞추기 어려운 구조”라며 현재의 노동시장 시스템을 지적했다. 실제로 근로시간이 연평균 2천92시간(2012년 기준)인 우리나라는 다른 OECD 국가들의 근로시간이 연평균 1천705시간(2012년 기준)임을 비추어 볼 때 상대적으로 장시간 근로를 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국노동연구원주최로 진행된 ‘장시간 노동 실태와 노동시간 단축 토론회’의 보도자료에 따르면, 장시간의 노동은 낮은 고용률, 생산시스템 업그레이드 지체, 직장과 가정의 관계, 생애주기, 노동과 여가 문화, 건강과 산업재해 등에서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또한 장시간 전일제 고용을 전제로 하는 노동시장 구조는 상대적으로 여성들에게 차별적으로 작용한다. 즉, 사회풍토 상 육아와 가사에 비교적 무거운 책임감을 갖는 여성들이 전일제 일자리만을 고집하는 노동시장에서 근로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려운 것이다. 정부가 제시한 로드맵대로 양질의 시간제 일자리가 수요에 맞게 공급된다면 장시간 근로의 비효율성을 해결하고 지나치게 남성위주로 구성돼 있는 노동시장을 변화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시간제 일자리, 이제는 질적으로 성장할 때


2012년을 기준으로, 시간제 근로자(15세 이상)는 전체 임금근로자의 10.2% 수준인 183만 명이다. OECD국가의 시간제 근로자 비율은 전체 임금근로자의 16.9%로, 선진국에 비해 우리나라의 시간제 고용 비중은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다. 하지만 이와 관련된 박람회를 꾸준히 개최하는 등 정책 활성화를 위한 정부의 다양한 활동을 볼 때 앞으로 시간제 일자리의 비중은 점차 높아질 전망이다.
하지만 시간제 일자리의 양적인 성장이 질적 성장까지 동반하지는 못했다. 구직자들 사이에서 시간제 일자리는 직장 내 인식 면에서나 실제 처우 면에서나 기존의 아르바이트와 다를 바가 없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2013년 8월에 집계된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시간제 일자리는 산업별로는 서비스 부문(90.5%)에서 압도적으로 많이 활용되고 있으며 직업별로는 단순노무 및 서비스·판매(68.9%)에 집중적으로 포진돼 있다. 즉, 시간제 일자리는 상대적으로 낮은 숙련수준을 요구하는 직종에만 치우쳐 있는 것이다. 허종문 수석 연구원은 <금융경제동향>에서 “고용의 질적인 면에서 볼 때 우리나라 시간제 일자리는 고용시장 내 취약계층, 저숙련 직종에 집중되어 있으며 임금 사회보험 등 근로조건에 있어서도 열악한 수준”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러한 문제점들에 대해 고용노동부 이재흥 고용정책실장은 “시간제 일자리의 질적 성장을 위해 최저임금의 130%이상, 무기 계약직 등의 요건을 설정하고 있다”며 “시간제 근로자 한 사람 당 80만원씩, 1년간 지원하는 제도를 운영해 시간제 일자리의 촉진을 꽤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이 실장은 “시간제 일자리의 도입이 상대적으로 용이한 일자리는 피크타임이 있는 직종”이라며 “병원, 은행, 콜센터 등과 같이 특정 시간대에 높은 집중력을 요하는 직군에 시간제 일자리 도입을 촉진해 시간제 일자리의 직군을 다양화하고자 한다”고 전했다. 한편, 정부는 지난 2013년 11월, 질 낮은 시간제 일자리에 대해서 근로조건 보호 등을 통해 양질의 일자리로 개선될 수 있도록 지원할 것이라 발표하기도 했다.
 

시간선택제 일자리의 미래 


<시간선택제 일자리 창출 추진 방향>은 ▲공공부문 선도 ▲민간부문 시간제 일자리 확산 지원 ▲사회적 인식개선을 시간제 일자리 창출을 위한 방안으로 꼽았다. 정부가 어떤 전략을 구상하고 있든, 시간제 일자리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 개선과 함께 지금까지의 시간제 일자리가 갖고 있던 여러 문제점들을 실질적으로 해결해야 할 것이다. 물론 시간제 일자리는 정부 혼자만의 노력으로는 결코 활성화되기 어려운 제도이다. 우리 사회 곳곳에 양질의 시간제 일자리가 포진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촉진 정책이외에도 기업과 근로자의 자발적인 참여가 매우 중요하다. 이수영 단장은 <시간선택제 일자리 창출 추진 방향>에서 “기업은 적합한 직무를 적극 발굴해서 양질의 시간제 일자리를 많이 만들고, 근로자 역시 짧은 시간을 일하더라도 업무를 더 효율적으로 수행해 생산성을 높이려는 노력을 더해야 지속가능한 일자리가 될 수 있다”며 “노·사·정은 더 많은 국민들이 개인의 수요에 따라 원하는 양질의 시간제 일자리를 찾아, 보람 있게 일할 수 있도록 지혜를 모아야 할 것”이라고 당부했다. 또한 이지만 교수는 “고도 성장기에 정착된 ‘27~54세 남성 선호 전일제 일자리 중심 노동시장’과 ‘장시간 근로시간 풍토’를 개선하고 노동시장 친화적 시간제 일자리 창출과 고용 및 근로조건의 질 향상을 동시에 추구하는 데 지혜를 모아야 할 때”라고 전했다.

우리 정부가 이루고자 하는 ‘고용률 70%’는 단순히 숫자가 아니다. 이 숫자를 채우는 것은 누군가의 아버지이거나 누군가의 아내, 혹은 누군가의 아들, 딸이라는 사실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우리나라 정부가 롤모델로 삼은 네덜란드, 독일, 영국 등의 시간제 일자리는 이미 자국의 노동 시장에서 상당한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 이들 국가에서는 변호나사 의사와 같은 전문직 종사자들 중에서도 시간제 일자리 근로자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앞으로 한국형 시간제 일자리가 양질의 일자리를 많이 공급하는 본래의 역할을 수행함으로써 고용률 70%라는 수치 속의 한사람, 한사람에게 보다 나은 삶을 제공하는 정책으로 거듭나기를 기대해본다. 


강달해 기자
dalhae7070@yonsei.ac.kr
그림 황주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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