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 로드숍의 도입과 상인들의 목소리

지난 1월 ‘연세로 대중교통전용지구 조성사업’(아래 조성사업)이 완공된 이후, 신촌의 거리는 눈에 띄게 달라졌다. 기존의 비좁던 인도는 2배 이상 넓어져 보행자들의 숨통을 트였고, 주말에는 ‘차 없는 거리’의 전면실시로 각종 문화행사가 꽃피기 시작했다. 또 한 가지 달라진 것이 있다면 바로 길을 따라 늘어서 있던 포장마차들이 사라진 것이다. 오랫동안 한 자리를 지키며 장사를 해온 비닐포장마차들은 조성사업의 일환으로 지난 5월부터 규격화된 가판대로 탈바꿈했다. 아담한 크기에 깔끔한 디자인으로 미관상 깔끔하다는 평을 받고 있는 이 가판대의 이름은 ‘스마트 로드숍’(아래 로드숍)이다. ‘산뜻’한 외관의 로드숍, 과연 그 안에서 장사하는 상인들의 마음도 ‘산뜻’할까? 로드숍의 탄생 과정과 상인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로드숍, 어떻게 탄생했나?

조성사업 이전의 연세로에는 가판·구두 수선대 11개와 노점상 31개를 합쳐 총 42개의 거리점포들이 장사를 했다. 당시 이들 노점들에 대해 ▲점용면적 과다로 인한 시민들의 보행권 침해 ▲비규격·노후 시설로 도시미관 훼손 ▲장기간의 무단점유로 인한 인근 상점의 피해 ▲위생의 사각지대라는 문제점이 제기된 상황이었다. 신촌동 주민 조아무개(46)씨는 당시의 노점들에 대해 “걷기만 해도 사람들과 부딪치던 좁은 인도에 노점들이 굉장히 큰 면적을 차지해 불편했다”고 회상했다. 이에 서대문구청(아래 구청)에서는 조성사업 후 깨끗해지고 넓어진 인도에 기존의 포장마차 방식을 유지할 수 없다는 방침 하에 ‘신촌상인 번영회’(아래 번영회)와 노점상 연합과의 1년 반에 걸친 3자 협의 과정을 통해 키오스크* 형태의 가판대를 만들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합의과정이 원만했던 것만은 아니다. 지난 2012년 8월 연세로가 대중교통전용지구로 지정된 이후로 로드숍의 영업이 개시되기 전까지 구청과 노점상들 간에는 크고 작은 갈등이 있었다. 특히 조성사업이 착공된 지난 2013년 9월 민주노점상연합(민노련) 소속 노점상 80여 명은 “연세로 공사로 노점들이 장사를 못하게 되면 생존권의 위협을 받는다”며 연세로 차선을 점거하고 공사를 막기도 했다. 이에 구청은 민노련과 지속적인 협의 과정을 거쳐 합의안을 도출해냈다. 합의 내용은 공사 시작시점부터 노점상들이 우리대학교 건너편 굴다리 주변으로 옮겨가 장사를 한 후, 차후 새로 단장된 연세로에서 키오스크 형태의 가판대를 제공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
 

합의에 이르기까지의 가장 큰 난항은 장소문제였다. 노점상 측은 로드숍을 “독수리 빌딩에서부터 홍익문고 위치까지 집중적으로 배치하자”고 주장했고 이에 반해 번영회 측은 “신촌로터리부터 굴다리까지 배치 범위를 확대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결국, 6차례에 걸친 협의 끝에 지난 2월 27일 “유플렉스 광장을 제외하고 굴다리서부터 신촌로터리까지 로드숍을 양분해서 배치하자”는 합의가 이뤄졌다. 이어 3월 25일 구청 강당에서 점포 자리배분에 대한 공개추첨이 진행됐고 자리를 배분받은 노점상들은 연세로에서 5월 10일에 영업을 개시했다.
 

현재 연세로에는 25개의 로드숍만이 운영되고 있다. 기존 연세로에 있던 서울시 소유 11개의 가판·구두 수선대는 모두 다른 지역으로 이전했고, 그 외 6개의 노점도 다른 지역으로 옮겨가거나 분양을 포기했다. 로드숍 상인들은 서울시 노점 판매대 규격(가로 2.0m, 세로 1.5m)보다 다소 넓은 가로 2.5m, 세로 1.7m의 키오스크를 제공받아 연평균 60여만 원의 도로사용료와 연 90여만 원의 임대료를 내고 장사를 하고 있다. 도로사용료는 점포의 가장 가까운 지번의 공시지가를 따른 금액이며, 임대료는 로드숍 제작비에 대한 상인들의 부담금이다. 이전에 불법포장마차 형태로 운영되던 이들 가게는 이제 합법적인 점포로서 사업자등록과 카드 등록 모두가 가능해 상인들이 떳떳하게 장사할 수 있다. 한편 이들의 상업행위는 구청과 노점상 대표, 신촌 번영회 3자가 합의한 ‘연세로 거리가게 상생운영·관리 규정’(아래 운영규정) 하에 이뤄지며 위반 시 벌칙규정이 적용된다. 이러한 노점환경 변화에 따라 연세로를 자주 찾는 학생들은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박현우(사회·11)씨는 “거리 외관이 많이 깨끗해졌고, 이전에 노점상들이 유동인구가 많은 신촌 거리를 불법적으로 이용했던 것과 달리 현재 일정한 금액을 지불하고 합법적으로 장사하는 모습이 보기 좋다”고 전했다.

아직 소통이 더 필요해

수년간의 협의과정을 거쳐 탄생한 로드숍. 그러나 여전히 상인들과 구청의 갈등은 현재진행형이다. 특히 상인들의 불만은 운영규정의 적용에서 비롯됐는데, 공통적인 불만은 추운 겨울에 바람을 막아줄 가림막을 설치할 수 없다는 것이다. 로드숍에서 먹거리를 판매하고 있는 ㄱ아무개씨는 “예전과 달리 겨울에 찬바람이 불어도 가게 앞에 가림막을 설치할 수 없어 너무 춥다”며 “구청에서는 운영규정상 가림막 설치를 못하게 한다”고 토로했다. 또한 ㄱ씨는 “가림막이 없으니까 손님들도 추워서 잘 찾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미관상 깨끗해 보이는 로드숍이지만 안에서 장사하는 상인들에게는 나름의 고충이 있었다.
 

ㄱ씨의 말처럼 현재 운영규정은 ‘임의로 거리가게 규격을 확장하거나 가림막 등을 설치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서대문구 지역활성화과 최민하 주무관은 “상인들이 점포를 임대해 합법적으로 장사를 하기 위한 최소한의 규제가 바로 운영규정”이라며 “여러 애로사항이 있지만, 가림막 등의 추가 시설물을 허용하기 시작하면 이후 걷잡을 수 없이 다른 예외들도 생겨나 규제가 어려워진다”고 말했다. 예외를 조금씩 허용해줄 경우 장기적으로 현재의 로드숍 미관을 유지할 수 없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실패 사례로 최 주무관은 노원구와 인천 서래포구를 들었다. 이곳에서도 서대문구와 같이 노점상들에게 판매대를 만들어줬지만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아 상인들이 판매대를 창고로 쓰고 길가에 물건을 펼쳐놓고 장사를 하는 폐단이 벌어졌다. 이에 대해 최 주무관은 “이는 시민들의 보행권을 침해하고 거리의 미관을 해치는 것”이라며 “연세로는 상인들만의 것이 아니라 모든 시민들의 것이기에 작은 불편함이 있더라도 이해해주셨으면 한다”고 양해를 구했다.

갈등 속 상생의 길 모색

이러한 상황에서 협동조합을 만들어 상생의 길을 모색하려는 시도가 일고 있다. 지난 8월 12일 와플, 씨앗호떡, 휴대폰 케이스 등을 판매하는 로드숍 상인 5명이 모여 서울시 최초로 ‘거리가게 협동조합’을 설립했다. 조합원인 ㅈ아무개씨는 “우리 조합은 좀 더 혁신적으로 영업을 하자는 취지에서 만들었다”며 “현재 창고 하나를 공동으로 빌리고 먹거리 재료를 공동 구매 하는 등의 방법으로 비용을 절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ㅈ씨는 “우리 조합원들도 물론 장사에 불편한 점이 있지만 구청과 갈등하기 보다는 소통을 통해 새롭게 풀어나가는 방식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최 주무관은 “상인들이 관청과 대립하기 보다는 서로 소통하며 필요한 것이 있으면 보완해주는 차원이 돼야 한다”며 “그런 취지에서 협동조합의 설립은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이렇듯 로드숍은 오랜 기간 끝에 맺어진 구청과 상인 간의 협의를 통해 탄생했고, 설치된 지 이제 겨우 반년이 지났다. 이전과 달라진 환경에서 아직 적응중인 상인들은 좁고 가림막 없는 로드숍에서 겨울의 칼바람을 처음으로 맞이하게 된다. 이러한 어려움 속에 상인들은 구청과 미묘한 갈등을 이루고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누구도 자신의 이익만을 고집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연세로는 그 누구의 것도 아닌 우리 모두의 공간이기 때문이다. ‘상생’을 목적으로 도입된 로드숍, 상인과 시민의 상생을 통해 연세로의 명물로 거듭나길 바란다.

*키오스크(kiosk) : 본래 옥외에 설치된 대형 천막이나 현관을 뜻하는 터키어에서 유래된 말로서 간이 판매대·소형 매점을 가리킨다.

고석현 기자
shk920211@yonsei.ac.kr
<자료사진 서대문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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