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 문학상-시 분야) 심사평

정명교
문과대 국문학과 교수
 
시가 정서의 표현인 것은 맞지만, 그것을 극복하는 방식으로 겪어서 드러내는 것이라고 말해야 할 것이다. 자신의 감정과 싸우는 사람만이 시에 전념할 수가 있다. 김은비의「속박」은 현실과 대적하고자 하는 의지를 열심히 표내고는 마지막에 그 대결의 밑바닥에 숨어 있는 건 ‘나’ 자신과의 문제라는 깨달음을 대립구도의 간명한 변환을 통해 깔끔하게 환기시키고 있다. 재치가 돋보이지만 관념의 유희이기도 하다. 심은영의「행간의 좌초」는 글쓰기의 괴로움을 특정한 인생사의 실제 상황처럼 핍진하게 묘사하고 있다. 그래 놓고는 꼬리를 사리다 보니 뒤가 허망하다. 추운 가을날 낙엽을 관조하고 있는 이경후의「덮다」는 관찰이 섬세하다. 그럼으로써 외부의 풍경을 세계와 갈등하면서 화해를 모색하는 절실한 내면의 드라마로 변환하는 데 성공하고 있다. 세목들 사이를 좀 더 유기적으로 연관시키는 연습을 해야 할 것이다. 문지호의 「밀복」은 세계의 지배 질서에 의해 먹이로 삼켜지는 사람들을 밀복으로 비유하고, 복이 품은 독을 살아내고자 하는 독한 꿈으로 치환하면서, 세계와 사람들의 잔혹한 전쟁을 비극적으로 그리고 있다. 은유의 착상이 참신하고 정황을 실감나게 전달하고 있다. 다만 갈등의 구체적인 정황을 암시하는 매개물이 없어, 이 정경을 사회적 성찰로 끌고 가기에는 부족하다. 반면 조주형의「가난의 굴레」는 가난한 사람들을 ‘사육’하는 사회를 직설적으로 비판하는 시다. 생각은 단순하지만 그 생각을 표출하는 비유들은 강렬하고 제 스스로 움직여 사회적 대립 바깥을 감싸는 괴물스런 자연을 형성한다. 세상의 문제를 좀 더 깊이있게 성찰할 수 있다면 좋은 시인으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밀복」과 「가난의 굴레」를 저울에 올려 놓고 고민하다가 「가난의 굴레」를 당선작으로 정한다. 함께 투고한 작품들의 수준이 마지막 결정에 도움을 주었다.
 
(박영준 문학상-소설분야) 심사평

한수영
인예대 국문학과 교수
 
신문사로부터 모두 21편의 응모작을 건네 받았다. 웬만한 단편집 두어 권 분량이다. 읽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렸다. 그런데 다행히도 집중해서 읽는 동안 지루하지 않고 재미있었다. 21편이 저마다 개성 있고 재기발랄했다. 첫 번째 정독한 후 8편을 골랐다. 기발하긴 하지만 작위적인 설정이 문제가 되는 경우, 소설보다는 동화 분위기가 두드러지는 것, 너무 짧은 것, 너무 소박하거나 진부한 내용의 응모작들이 1차에서 걸러졌다. 남은 8편은 <고래사냥>, <버뮤다모텔>, <비둘기를 무서워하는 영자>, <적색편이>, <힐링이 필요해>, <관찰일지P>, <남아도는 남자들>, <세상의 모든 만남>이었다. 지면 제한으로 이들 응모작에 대해 하나씩 논평하지 못하는 것을 양해해 주기 바란다.
걸러진 8편의 장단점을 따지며 재차 정독했다. <버뮤다모텔>, <적색편이>, <힐링이 필요해>, 그리고 <남아도는 남자들>이 다시 남았다. <버뮤다모텔>은 시종 차분한 화자의 진술이 ‘모텔’이라는 공간의 이미지와 콘트라스트를 이루도록 구성한 솜씨가 예사롭지 않았지만, 소설 후반부의 ‘잉어’의 상징성이 힘을 얻기에는 전체의 얼개가 조밀하지 않은 점이 걸렸다. <적색편이>의 강점은 뛰어난 묘사력이었다. 천문학의 용어를 운명이나 삶과 죽음에 연결 지어 풀어내는 솜씨도 뛰어나다. 그런데, 소설의 결구가 뭔가 허전하다. <힐링이 필요해>는 작가의 재치 있는 발상법과 유머 감각이 매력적인 작품이다.‘배화교(拜火敎)’를 패러디한 ‘배애도(拜愛道)’도 기발했고, ‘흑마법사’와 ‘백마법사’를 통해‘사랑’에 관한 세태의 비루함을 풍자하려는 의도도 설득력이 있었다. 
나머지 세 편에 비해 <남아도는 남자들>은 여러 면에서 비교되는 응모작이다. 우선, 이 소설을 관통하고 있는 위악(僞惡)과 냉소가 거슬렸다. 욕설과 비어가 난무하는 것도 못마땅하고, 젊은이들의 성풍속도를 너무 자학적으로 그리고 있는 것도 불쾌했다. 진지와 엄숙, 혹은 성(性)에 관한 신성성과 정반대 편에 있으려고 하는(좀 더 노골적으로 말하면, “그런 것들은 개나 줘버려!”라고 말하는 듯한), 소설의‘가벼움’과 ‘속악함’이 거북했다. 그런데, 심사자인 나를 여러모로 불편하게 만든 이 모든 것들에도 불구하고(아니 그것 때문에!) 읽는 내내, 그리고 읽고 나서도 헤어나기 힘든 묘한 마력(魔力)을 느꼈다. 이 소설의 냉소와 위악, 가벼움과 속악함은 사실 치밀하게 계산된 것이다. 그건 ‘제목’인 <남아도는 남자들>에서도 짐작할 수 있다. 작가는, 스무살 짜리들의 성욕과 과장된‘성경험’의 토로를, 연민과 동정의 눈으로 보고 있다. 심리묘사나 대화처리는 응모작 중에서 가장 뛰어나다. 빠르게 전환되는 문장, 대화를 대신하는 핸드폰‘문자’의 적절한 활용 무엇보다도 한두 문장으로 인물의 성격과 내면을 단박에 드러내는 능력은 탁월하다. <남아도는 남자들>에는 젊은 날의 손창섭과 김수영과 김승옥, 그리고 박민규의 개성이 뒤섞인 채 녹아있다. 인물들은 홍상수 영화의 캐릭터들을 떠오르게도 만든다. 그런데, 단순한 모방이나 흉내가 아니라 독특한 자기 세계가 엿보인다. 더 다듬고 정진한다면, 그리고 위악과 냉소, 가벼움과 속악함을 더 치열하게 예술적으로 승화시킨다면(풍속과 트리비얼리즘에 주저앉지 않는다면), 앞으로 좋은 작품들을 많이 쓸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무난한 진지함과  도발적인 치기(稚氣). 어느 쪽을 선택할 것인가 오래 망설이다가, 끝내 치기에 잠재된 예술적 가능성의 손을 들어주기로 했다. 그래서, <남아도는 남자들>을 당선작으로 뽑았다.
 
(오화섭 문학상-희곡분야) 심사평  
 
윤민우
문과대 영문학과 교수
 
희곡분야에는 네 편밖에 응모하지 않아 아쉬웠지만, 그나마 「공저(共著)」를 당선작으로 뽑을 수 있어 반가웠다. 응모작 중, 「피오키아」는 아이디어가 발랄했으나, 쇼킹한 주제를 정당화하려는 노력을 거의 기울이지 않았고, 연극적 상황을 전개하는 솜씨가 부족하다고 판단한다. 「샹뜰라메르」는 인어소년과 소녀가 조우하는 아름다운 정경을 돋보이게 하는 연극적 장치에도 불구하고, 단순한 플롯에서 오는 지루함을 결코 이겨 내지 못한다. 마지막으로, 「이웃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는 양과 질의 면에서 습작 수준에 머물렀다. 당선작으로 선정된 「공저」는 셰익스피어 원작  「햄릿」, 그리고  「파우스트」에 등장하는 메피스토펠리스에 관한 자세한 이해를 바탕으로 하여, 현대 작가의 창작과정을 그린 퓨전 작품이다. 이 작품은  「햄릿」의 기본 골격에 많이 의지하고 있어 가치절하될 수 있지만, 저자의 희곡창작의 이해에 있어서는 결코 그렇지 않다. 대사의 발 빠른 처리, 그리고 여러 이야기를 묶어 하나의 플롯으로 만들어내는 솜씨는 확실히 수준급이다. 
     「공저」에는 햄릿, 두 악마, 그리고 작가가 등장한다. 햄릿 이야기가 메피스토펠레스 이야기에 의해 둘러싸여 있고, 이는 또한 작가 이야기에 의해 포용된다. 다시 말하면, 복수자로서의 햄릿 자신이 조작자이지만, 그는 악마의 조작의 희생물이며, 이는 또한 작가와의 공동 작업에 의한 것이다. 그리하여 무대 위에는 세 개의 공간--원형무대, 배우의 분장실, 작가의 작업실--이 마련되어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그러므로 「공저」는 한편으로는 셰익스피어, 「파우스트」의 저자, 「공저」의 저자의 ‘공저’이며, 다른 한 편으로는 두 악마와 작가의 ‘공저’를 뜻한다. 
      「공저」는 어떤 의미에서는 복수자에 대한 코멘트이다. 복수자는 조작하기도 하고 조작당하기도 한다. 이렇게 복수의 악에 물든 햄릿의 혼란된 영혼은 고통과 번민의 단계를 너머 고귀한 인식에 도달하여 숭엄한 죽음을 맞이한다고 흔히 해석된다. 그러나 「공저」에는 고귀한 햄릿의 결말 따위는 없다. 이런 측면에서  「공저」는  「햄릿」에 대한 하나의 해설이다. 영혼을 구원으로 이끌어 가는가, 아니면 오염된 마음으로 남아 파멸하고 마는가는 햄릿에 대한 상반된 해석이다.  「햄릿」을 여느 ‘복수자의 비극’ 장르의 연장선상에서 보면 후자가 우세한 해석이 되며, 「공저」의 저자는 이를 택하였다. 「공저」의 저자는 이 해석을 위해, 하나님과의 내기에서 이긴 메피스토펠레스 이야기를 빌어  「햄릿」을 첨삭하고 재구성하였으며, 또한 작가 이야기를 대폭 삽입함으로써 그러한 각색을 정당화하였다. 
      「공저」는 작가의 글쓰기 과정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메타 드라마이기도 한 것이다. 작가의 처지, 사생활 등 자서전적 감정이입이 햄릿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원동력이다. (여기에는 작가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언급되기도 하는데, 이를 햄릿의 아버지와 어머니에 연관시키는 장치로 약간 더 발전시킬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긴 한다.) 그리하여 작가의 글쓰기가 ‘악마’적 조작이라는 등식이 성립되며, 그러한 조작에는 작가의 사생활이 반영되기도 하며, 글쓰기가 일단 시작되면 작가도 어찌할 수 없이 굴러갈 수밖에 없음이 말해지는 듯하다. 「공저」는 고귀한 햄릿을 만드는 수고, 이를테면 초월적 사유와는 동떨어져 있는 것이다.  
     심사위원으로서는, 해석의 신선함과 무대예술의 실험성, 그러면서도 능숙한 대사 처리 및 플롯구성의 치밀성을 뽐내는 「공저(共著)」를 당선작으로 선정하는 데 아무런 어려움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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