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스를 든 헤르메스, 죽은 자의 메시지를 전하는 법의학

올해는 유독 받아들이기 힘든 죽음들이 많았다. 피어나지 못한 꽃들을 송두리째 익사시킨 세월호 참사, 고(故) 유병언씨의 잠적 뒤 느닷없는 죽음. 그리고 특유의 음악과 독설로 대중의 사랑을 한몸에 받았던 마왕, 고(故) 신해철씨의 의문스러운 죽음. 죽은 자에 대해 느끼는 감정이 분노든, 사랑이든 너무나 갑작스러운 죽음들 앞에서 남아있는 사람들은 늘 같은 질문을 던지기 마련이다.

"왜?"


망자의 두개골을 쪼개고 배를 가르는 한이 있더라도 반드시 알아내야 할 진실이 있을 때 우리는 법의학의 도움을 받는다. 고(故) 유씨의 경우에도, 그리고 고(故) 신씨의 경우에서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아래 국과수)으로 보내야한다’, ‘부검을 해보자’는 여론이 일었다. 국과수에서 행해지는 부검의 기본이 되는 것이 바로 법의학이다. 과연 법의학이란 무엇이고 우리나라 법의학의 현주소는 어떠한지 알아보자.

‘사람’을 생각하는 학문, 법의학

▲ 우리대학교 법의학 연구실 앞

법의학은 그 이름에서 드러나듯 법과 의학, 두 가지 분야와 접점이 있다. 신체와 그 유전 정보를 탐구하는 법의학이 의학과 관련이 있다는 점은 당연해 보이지만 법과의 접점을 가진다는 것은 매우 흥미롭다. 이에 신경진 교수(의과대·법의학)는 “법의학은 분쟁이 생겼을 때 법원이 그것에 대한 판단을 내리는 데 도움이 되는 과학적 정보를 제공한다”고 말했다. 법의학이 직접 법적 판단을 내리는 것은 아니지만 그 판단과 집행에 절대적인 소견과 증거를 제공하는 것이다. 또한 법의학은 고인과 유가족을 대하거나 살아있는 사람의 신체정보를 다루는 학문이기 때문에 인격을 존중하는 자세가 강조된다. 신 교수는 “법의학은 인권 존중을 최우선으로 하는 학문”이라며 “오래전부터 인권 신장에 집중해온 유럽과 미국에서 법의학이 시기적으로 앞선 것도 이러한 점에 기인했다고 볼 수 있다”고 전했다.
이러한 법의학의 기능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먼저 법의학은 사인을 규명한다. 고(故) 신씨 사건이나 고(故) 유씨 사태와 같이 특정 인물이 왜 죽음에 이르게 됐는지에 대한 의문이 생겼을 때 그 단서를 제공하는 것이 바로 법의학이다. 신 교수는 “시체검토를 통해 사인을 추정해보는데 도움이 될 만한 객관적 데이터를 제공하는 것이 법의학”이라며 “중요한 것은 법의학은 단지 사인추정에 도움이 될 만한 객관적이고 권위 있는 소견을 내놓을 뿐, 사인을 직접적으로 설명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법의학의 또 다른 기능은 바로 특정인의 정체를 밝히는 개인식별 기능이다. 이 기능은 전쟁이나 세월호 사건과 같이 대형사고가 터졌을 때 빛을 발한다. 육안으로 개인식별이 어려운 희생자들이 유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하고 사건수습 과정을 실질적으로 점검할 수 있도록 하는 작업이 바로 법의학을 통해 가능해지는 것이다. 이환영(의과대학·생화학) 부교수는 “세월호 사건 당시 국과수 법의관들은 시체검안을 위해 번갈아가며 팽목항에 상주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우리대학교 법의학과의 경우, 6·25 희생자들을 식별해 가족들에게 돌려보내주는 활동에 헌신하기도 했다. 한편, 개인식별의 대상에는 죽은 사람뿐만 아니라 살아있는 사람들까지 포함된다. 신 교수는 “흔히 알고 있는 친자확인 과정 또한 법의학의 영역”이라며 “DNA를 분석해서 친자여부를 매우 과학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고 전했다.
그렇다면 법의학은 어떤 직업군과 관련돼 있을까? 신 교수는 “국과수의 법의관이 되거나 학교에 남아 교수가 되거나 개업을 하는 경우가 있다”고 답했다. 법의학을 전공하고 개업을 하는 경우는 단순 사망에 대한 사망진단서를 발급하거나 논란이 되고 있는 시신이 사법당국이 들어가기 전에 검시업무를 본다.

우리나라 법의학의 현주소

『CSI』, 『Bones』 등의 법의학 관련 유명 드라마를 배출해낸 미국에서는 법의학이 그다지 생소한 분야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지난 2011년 방영한 『싸인』과 지난 2014년 8월 시즌4의 방영을 마친 『신의퀴즈』 등 법의학을 소재로 한 드라마를 통해 법의학이 대중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법의학의 교육환경은 열악하고 종사 인력은 아직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신 교수는 “한국에는 법의학을 가르치는 교수가 거의 없다”며 “전국에 의대는 40여 개 정도 있는데 법의학 교수가 있는 학교는 그중 10여개에 불과하다”고 전했다. 이어 신 교수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30명밖에 안 되는 국과수 법의관 정원을 채우기도 어려웠다”며 “그나마 최근 들어 미디어의 영향으로 법의학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고 있다”고 전했다. 박동진(의전원·13)씨는 “많은 친구들이 법의학이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학문이라고 생각하지만 이를 세부전공으로 택하는 경우는 드물다”며 “본과 4년을 통틀어 법의학을 접할 수 있는 기회가 오로지 4시간뿐이었기 때문에 아직 생소한 것이 사실”이라고 전했다.

▲ 우리대학교 법의학 연구실 내부

이처럼 법의학 종사자가 많지 않은 이유에는 까다로운 자격요건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처우가 한 몫 한다. 국과수에서 일하는 법의관이 되기 위해서는 의대 6년, 1년의 인턴을 포함한 병리학 전문의 과정 5년을 거쳐야 하는데 남자의 경우 군의관 3년의 과정을 포함하면 최소 14년이라는 시간이 걸린다. 이렇듯 10년이 넘는 시간동안 해부학과 병리학을 넘나드는 훈련과정을 견디지만 그에 비해 사회적 인식과 처우는 턱없이 부족하다. 신 교수는 “국과수 법의관들은 엄청난 업무량을 견뎌내고 있지만 그에 대한 경제적·사회적 보상은 그리 크지 않다”며 “사명감 없이는 절대 할 수 없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법의학에 대한 대중의 관심과 처우가 부족하다고 해서 학문의 수준까지 저조한 것은 아니다. 이 부교수는 “우리나라 법의학의 수준은 외국과 견주어도 뒤지지 않을 만큼 발전했다”며 “이러한 발전은 전 국민의 지문 정보를 확보하고 있을 정도로 데이터베이스가 잘 갖춰진 덕”이라고 말했다. 최근에는 10년 여 간의 논의 끝에 지난 2011년 7월부터 DNA신원확인정보 이용 및 보호법*이 시행되면서 법의학적 측면에서 상당한 추진력을 얻게 됐다는 평가도 이어진다.

영향력만큼이나 무거운 책임감

분쟁해결에 결정적인 영향력을 갖는 법의학. 법의학은 그 영향력만큼이나 무거운 책임감과 스트레스를 감내해야 하는 학문이다. 법의학자들은 구체적으로 어떤 어려움을 느낄까? 신 교수는 “세월호 사건, 고(故) 신씨 사건을 겪으면서 법의학자들이 알고 있는 전문적인 내용을 일반인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쉽게 설명하는 것에 어려움을 느꼈다”고 전했다. 자신의 전문성과 진정성을 몰라주는 대중과 직면하는 것 역시 힘든 일이다. 신 교수는 “법의학자들은 최대한 사실만을 보려고 노력하며 진정성 있는 소견을 내놓지만 간혹 반대적 의견과 부딪힐 때가 있다”며 “대중의 관심이 뜨거운 사건일수록 이러한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법의학, 앞으로 어디로 향할까?

지난 2010년 전까지 법의학계가 현장에서 채취한 DNA가 누구의 것인지를 추적하는 것에 주력했다면 그 이후부터는 해당 DNA가 우리 몸의 어디에서 왔는지를 정확하게 추적하는 연구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즉 DNA에 대한 체액식별이 가능하게 되는 것인데, 이를 통해 현장에서 채취한 DNA가 정액에서 나온 것인지 생리혈에서 나온 것인지 등을 추정함으로써 범죄행위를 재구성 해볼 수 있다. 법의학의 발전방향에 대해 신 교수는 “DNA 정보를 분석해 조금 더 구체적인 정보들을 얻어내는 데 주력할 것”이라고 답했다. 이 부교수 또한 “앞으로 법의학은 범죄나 사고 현장과 조금 더 가까워지는 방향으로 발전할 것”이라며 “DNA정보를 통해서 범인의 나이와 외형은 물론 성향까지 추정할 수 있는 방법들을 모색 중”이라고 전했다. DNA정보 하나로 범인의 몽타주까지 그려낼 수 있는 시대가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DNA 신원확인정보 이용 및 보호법: 악질 범죄자들을 대상으로 DNA 수집을 강제할 수 있다.


글 강달해 기자
dalhae7070@yonsei.ac.kr
사진 손준영 기자
son113@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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