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수록 성행하는 자소서 대필시장, 그 원인과 해법

 날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는 취업 현실은 50만 취업 준비생(아래 취준생)과 더불어 취업 8대 스펙*, 인구론**, 그리고 페이스펙*** 등의 기상천외한 취업 신조어들을 낳고 있다. 그리고 최근 취업의 당락을 결정하는 요소로 자기소개서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새롭게 태어난 신조어가 있다. 이는 바로 자기소개서의 준말인 자소서와 소설의 합성어인 ‘자소설’이다. 자소설이란 자기소개서가 서류전형에서 지원자들의 인성과 잠재력을 평가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으로 주목받으면서 취준생들이 자기소개서를 과장하거나 직접 쓰지 않는 현상을 가리키는 말이다. 자소설의 광풍 속에 취준생들의 자기소개서를 타인이 대신 써주는 자기소개서 대필이 성행하고 있다.

 
자소설, 어떻게 탄생하나
 
 자기소개서 대필은 많은 경로를 통해서 이뤄지고 있다. ▲주변 지인에게 부탁해 자기소개서를 쓰는 것 ▲자기소개서 전문 대필 업체를 이용하는 것 ▲카페 또는 블로그를 운영하는 개인에게 자기소개서 대필을 의뢰하는 것까지 다양한 방법이 있다. 위의 세 경우 모두 취준생들이 대필 작가에게 자신과 관련된 정보를 제공하고 대필 작가들은 이를 토대로 글을 쓰는 식의 과정을 거친다. 이를 위해 전문 대필 업체의 경우엔 애초에 필요한 정보를 작성해 넣을 수 있는 양식을 마련해 놓은 곳도 많다. 실제로 모 대필 업체가 마련해놓은 대필 신청양식은 지원자의 최종학력부터 수상 내역, 가족 관계, 성격 등의 정보를 항목별로 기입할 수 있도록 만들어져있고 이외에도 취준생이 따로 대필 업체에 바라는 사항을 작성할 수 있는 항목도 포함하고 있다. 말 그대로 ‘맞춤형 자기소개서 대필’인 것이다.
 자기소개서 대필을 위해 취준생들이 대필 작가나 업체에게 지불하는 비용은 3만원부터 50만원까지 다양하다. 특히 자기소개서 대필 업체의 경우엔 자기소개서 별로 작성해야 하는 문항 수나 그 길이에 따라 요금을 체계적으로 책정한다. 이렇게 필요한 정보를 보내고 비용을 결제하면 대략 3일 뒤 취준생의 정보는 하나의 ‘자소설’로 재탄생한다. 하지만 대필에 걸리는 시간도 결국엔 요금에 따라 정해지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의 대필업체들은 급한 자기소개들에 대해선 추가요금을 받고 더 빨리 작성해주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고 어떤 취업 컨설턴트는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추가요금을 내면 5시간 안에 자기소개서를 써 줄 수 있다고 홍보를 하고 있다. 
 지금까지 소개된 내용을 보면 자기소개서 대필시장은 나름의 체계를 갖추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아무리 취준생이 본인에 대해 자세한 정보를 제공한다 해도 자기소개서를 대필해주는 이는 자신이 겪어보지 못한 일에 대해 ‘아는 척’ 자기소개서를 쓸 수밖에 없다. 그리고 요즘 이렇게 자기소개서를 대필해주는 이들은 인터넷상에서 주로 ○작가님이라는 호칭으로 불리는데 이는 결국 이들의 손에서 탄생하는 자기소개서가 어디까지나 ‘자소설’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 아닐까?
 
▶ 자소서 대필 업체 '레쥬메 월드'에서 제시한 대필 절차
 
자기소개서 대필, 왜 점점 성행할까
 
 지난 7월, 취업 포털 ‘인크루트’에서 자기소개서와 관련해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400여 명의 취준생 중 약 77%가 자기소개서 대필을 받아보고 싶다고 대답했고, 4.1%는 이미 자기소개서 대필을 받아본 적이 있다고 대답했다. 포털 사이트에 ‘자기소개서 대필’을 검색하면 대필을 전문적으로 하는 사이트가 20여 개가 검색되며, 이외에도 비공식적으로 자기소개서 대필을 해주는 카페나 블로그가 수없이 나오는 것을 볼 수 있다. 자기소개서 대필이 성행하고 있다는 점은 이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 된 것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자기소개서 대필이 성행하게 된 까닭은 무엇일까? 가장 먼저 꼽을 수 있는 이유는 기업들의 채용에서 자기소개서가 그 어느 때보다도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됐다는 점이다.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스펙을 초월한 채용이 많은 기업들의 최근 채용 기조가 됨에 따라 각 기업의 인사담당 부서들은 지원자들의 자기소개서를 양과 질 모두에 있어서 더욱 까다롭게 평가하고 있다. 특히 금융권 기업들의 자기소개서는 취준생들 사이에서 악명이 높을 정도다. 대표적인 금융 기업인 신한은행은 2014년 상반기 구직자들에게 200자 원고지 40매 분량의 자기소개서를 요구해 ‘신한문예’라는 별명을 얻었고 국민은행은 ‘자신의 철학·역사·예술 등에 관한 고민과 경험을 적시하라’는 문항으로 수많은 지원자들이 골머리를 앓게 했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인크루트’에서 실시한 또 다른 설문에선 전체 472명의 취준생 응답자 중 75.6%에 해당하는 357명의 응답자가 특정 기업의 자기소개서 항목이 너무 어려워서 지원을 포기한 적이 있다고 답했을까. 
 자기소개서 대필 업체들은 이렇게 갈수록 어려워지는 자기소개서 작성에 부담감을 느끼는 취준생들의 심 리를 이용하곤 한다. 한 대필작가는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결국 전문 작가가 아닌 취준생들이 직접 쓴 자기소개서에는 표현상의 한계가 있다”며 스스로의 자기소개서에 대한 취준생들의 자신감을 떨어뜨리고 있었다. 또 “모든 것을 떠나 자기소개서의 퀄(퀄리티)을 위해 대필을 맡기는 것이 차라리 현명하다”는 식의 말들로 벼랑 끝의 취준생들을 자기소개서 대필로 유혹하고 있기도 했다. 약 1년간의 준비 끝에 지난달 취업에 성공한 우혜진(경제·10)씨는 “기업들이 요구하는 자기소개서가 점점 어려워지는 만큼 자기소개서 작성에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 것이 취준생들에게 가장 큰 부담으로 다가온다”며 “이러한 부담과 중압감 때문에 자기소개서 대필을 요청하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는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자기소개서 대필, 근절할 방법은?
 
 그러나 이러한 이유들이 있다고 해도 자기소개서 대필은 엄연히 기업에 대한 불법행위다. 이와 관련해 법무법인 ‘L.K.B&Partners’의 대표 변호사 최은배 씨는 “자기소개서 대필은 설사 그 내용이 사실에 기반을 두고 있다 해도 자신이 직접 쓰지 않은 것 자체가 기업에 대한 ‘위계에 의한 업무방해죄’(형법 제314조)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자기’소개서라는 말 자체에 이미 지원자가 직접 작성해야 한다는 전제가 들어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여전히 대필의 유혹에도 불구하고 진정성을 갖고 본인의 자기소개서를 직접 작성하는 구직자들이 있기에 자기소개서 대필은 정당화될 수 없는 부정행위다. 또한, 몇몇 대필 업체는 대필 비용으로 50만원에 이르는 고가를 요구하고 있는 만큼 자기소개서 대필은 취업시장에서의 또 다른 불평등을 야기하고 있다. 스펙을 초월한 채용이라는 자기소개서의 취지마저 퇴색시키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법적 제재도 결국엔 특정 지원자가 자기소개서 대필을 했는지의 여부를 알 수 있을 때에나 의미가 있다. 많은 기업들이 표절 검색 시스템을 돌리고 있지만 최근의 대필 업체들은 1명의 취준생에게 1명의 대필 작가를 붙여 표절 검색 시스템을 우회하는 등 점점 더 용의주도해지고 있다. 실제로 막상 표절 검색 시스템을 돌려보면 대필 작가 없이 지원자가 직접 쓴 자기소개서의 표절 가능성이 더 높게 나오는 엉뚱한 결과가 나오기도 한다. 이에 몇몇 기업들은 면접에서 대필여부를 검증하는 등 자기소개서 대필을 방지하기 위해 나름의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쿠팡’의 강기문 채용팀장은 자기소개서 대필을 방지하기 위해 “구체적인 직분별로 채용을 실시하고 그에 따라 자기소개서 문항을 더 전문적이고 세부적으로 만들고 있다”며 “단순히 글을 잘 쓰는 사람이 쓸 수 있는 문항이 아닌 자신이 지원하는 분야에 오랜 시간 관심을 갖고 있던 사람이 잘 쓸 수 있는 문항, 그리고 과거 자신의 경험을 진정성 있고 생생하게 전달해야 하는 문항들을 제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기업 지원자 100명 중 최종 합격자 수는 단 3.5명이었다. 이러한 상황 때문인지 ‘인크루트’의 설문에 따르면 자기소개서 대필을 경험한 이들이 대필을 요청하게 된 첫 번째 이유는 바로 ‘자신이 쓴 자기소개서로 이미 너무 많은 기업에서 떨어졌기 때문’이었다. 결국 이들도 처음부터 자기소개서 대필을 선택한 것은 아니었다는 뜻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신의 자기소개서를 남에게 맡기는 것은 이런 상황의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 자기소개서 속의 내가 아무리 멋진 사람으로 바뀌었다 하더라도 결국 기업이 마주하는 사람은 변함없는 자신의 모습일 것이기 때문이다.
 
*취업 8대 스펙 : 대기업에 입사하기 위해 필요하다는 스펙. 여기에는 학벌, 학점, 토익, 자격증, 어학연수, 수상경력, 인턴 경험, 봉사활동이 포함된다.
**인구론 : ‘인문계 졸업생은 90%가 논다’를 줄인 말
***페이스펙 : ‘Face’와 ‘Spec’의 합성어로 얼굴도 하나의 스펙이라는 뜻.
 
 
 
 
김예린 기자
yerinee@yonsei.ac.kr
 
<자료사진 레쥬메 월드, 아이클릭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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