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트릭스: 수학_순수에의 동경과 심연’을 다녀오다

 ‘수학’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무엇일까? 복잡하다, 계산적이다, 냉철하다…등등 다양하다. 하지만 아마 ‘예술적’이라는 이미지가 가장 먼저 떠오르진 않을 것이다. 예술과 수학, 사실 잘 연결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누군가는 수학과 숫자들을 본인과는 먼 세계의 것이라고 생각하듯, 어떤 누군가는 숫자와 수학이 가진 아름다움을 발견해 줄곧 예술로 느낄 수도 있지 않을까? 이름부터 다소 심오한 이 전시회, ‘매트릭스: 수학_순수에의 동경과 심연’에서는 예술가들이 수학에서 발견한 예술성을 우리에게 전해준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2015년 1월 11일까지 열린다는데. 특히 수학이 늘 어려웠던 이들은 뼛속까지 문과인 기자와 함께 이들의 색다른 접근에 빠져보자. 

▲▲전시회 모습


수리영역, 지출 정보, 그리고 수학연습장이 예술이라고?

 

약간의 긴장감과 설렘을 가지고 전시회에 들어가면 가장 먼저 반기는 건 30개의 기하학적인 작품들이다. 왼쪽 상단엔 번호가 차례대로 매겨져 있고 각각의 작품에는 여러 개의 직선들과 도형들이 그려져 있다. 언뜻 보면 특별한 의미 없이 단순해보이지만, 놀라지 마시라. 이는 ‘슬기와 민’ 작가가 1997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수리영역의 30문제를 추상적으로 표현한 것. 어쩐지 17번 작품이 순서도의 모습과 닮은 이유가 있었다. 수능 사상 가장 어려웠다던 97년도 수능의 수리영역을 작품의 대상으로 삼다니 수학을 정말 잘했을 것 같지만 작가는 오히려 ‘스스로 풀어낼 가능성이 거의 없기에 수리영역 문제들을 선택했다’고 한다.

30번 작품 옆에는 한 쪽 벽면을 꽉 채워 서울시의 다양한 일자별 지출 정보를 시각화시킨 ‘랜덤웍스(Randomwalks)’의 작품이 있다. 이 작품은 작가가 서울시를 움직이는 정보, 즉 숫자를 통해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도시를 이해하는 작업을 시도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그저 정보의 시각화에서 멈추지 않고 숫자와 그 숫자를 이용하는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이해하려는 작가의 노력이 담겨있다. 랜덤웍스의 작품 옆에는 ‘수학자와 큐레이터의 추천책’이라는 제목 아래 수에 관한 책들이 비치돼 있다. 이 전시회에서는 단순히 보는 것에서 더 나아가 숫자를 통해 사람들을 이해하기 위한 노력을 관람객들에게도 요구하고 있는 것. ‘수학자와 큐레이터의 추천책’이라니, 이 얼마나 자상한가!

첫 번째 전시관을 다 둘러보고 다음 전시관으로 넘어가는 통로에는 온통 수학 연습장으로 도배돼 있는 공간이 있다. 고시생과 수험생들이라면 더없이 공감할, 수학자의 고뇌가 담긴 연습장들을 작품화한 것이다. 한 쪽에는 수학책들과 필기도구가 놓여있는 수학자의 책상이 있다. 이 작품은 ‘송희진’ 작가의 「진리의 성(城)」으로서 실제 고등과학원 수학과 최재경 교수의 수학연습장 10권을 예술적으로 재해석한 것이다. 꽉 채워진 연습장들에는 조그마한 낙서들과 시, 그림들이 보인다. 교수나 우리나 고민하며 답을 찾아가는 모습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작가는 이렇게 고뇌하며 노력하는 과정이 어떠한 수학공식보다 가치 있고 인간적이며 따뜻하다는 것을 우리에게 전해준다.

 

일상 속 비움과 채움, 그리고 다양한 수학적인 패턴

 

다음 전시관의 한 가운데에는 나무토막들로 이루어진 커다란 건축물이 전시돼 있다. 이 건축물이 대체 무엇인고 하니, ‘국형걸’ 작가의 「파트 투 홀(Part to whole)」이다. 건축가이기도 한 국 작가는 건축물들이 총체적인 하나의 대상이 아니라 개별 요소들이 하나의 전체를 이루는 것으로 여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는 건축적 소재들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들, 즉 ‘비움 또는 빈 공간’이라는 요소 역시 건축물을 이루는 중요한 부분이라는 것이다. ‘벽돌들만 건축물의 요소가 아니라 벽돌들 사이의 빈 공간들도 그 건축물의 요소’라는 국형걸 작가. 그의 생각을 이해하고 나니 이 커다란 나무토막 건축물이 ‘비움과 채움’이라는 두 가지 중요성을 모두 표현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작가에 따르면 이 건축물이 수학과 연관성을 가지는 지점은 바로 여기다. 1과 2, 2와 3와 같이 명시된 숫자 사이는 ‘비워져 있는(비움)’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 안은 무수히 많은 숫자들로 ‘채워져 있는(채움)’ 것처럼 건축물 역시 마찬가지라는 것. 영화 『매트릭스』에서 “가장 중요한 자들은 보이지 않는 곳에 있지”라고 했던 것처럼 비움이라는 보이지 않는 요소가 건축물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국형걸 작가의 작품 건너편에는 사람들이 투명판을 작품 앞에 든 채 요리조리 살펴보고 있다. 이 모습이 눈에 띄어 가보니, 다양한 패턴들이 그려진 작품들이 있다. 이 투명판은 전시회에서 관람객들이 직접 작품을 느낄 수 있도록 비치해 놓은 것으로서 작품 앞에서 흔들면 패턴들이 마치 움직이는 것처럼 보인다. 이는 ‘카스텐 니콜라이(Carsten Nicolai)’라는 독일의 전자음악 뮤지션이 사운드 작업을 하는 도중 에러가 났을 때 발생하는 수학적인 패턴 등을 예술적으로 시각화한 것이다. 실패하는 순간을 수학으로 연결시켜 예술로 인정받고 있는 카스텐 니콜라이의 작품. 매우 수학적이면서도 한편으론 지극히 예술적인 그의 작품을 보며 애초에 수학과 예술은 그 경계가 모호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전시회를 다 관람하고 나오면 입구 앞에 복잡한 수학 기호들이 큰 벽면을 꽉 채운 것이 또 다른 예술가의 작품이었음을 그제야 알 수 있었다. 수학 기호들을 무질서하게 배열해 현대 지식 사회의 복잡한 양상을 보여주기 위함이라는 ‘베르나르 브네’ 작가. 그뿐만 아니라 다른 작가들 역시 일상 속에서 다양한 수학적 요소들을 찾아 이를 예술적으로 표현한 전시회였다. 수학이 예술로 변하는 순간은 생각보다 우리 가까이 있다.

홍문령 기자
lalalala24@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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