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알루미늄’의 라제건 대표, 정상에 오르는 그만의 노하우를 듣다

요즘 캠핑 열풍이 한창인 대한민국! 여행 좀 한다는 사람이라면 너도나도 아웃도어 장비를 장만하고 있다. 여러 요소들을 따져가며 구매하는 요즘의 똑똑한 소비자들 사이에서 대한민국의 자존심이라 불리는 한 회사가 있다. 이는 바로 텐트의 뼈대인 텐트 폴부터 트레킹 폴까지 다양한 아웃도어 가구들을 생산하고 있는 ‘동아알루미늄’이다. 동아알루미늄의 제품은 그 강도와 무게, 편리한 디자인 면에서 다른 회사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품질을 자랑해 명실상부 세계 1위라는 타이틀을 갖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동아알루미늄의 대표는 우리대학교 동문인 라제건 씨. 우리대학교 상경대에 위치한 각당헌이 그의 아버지인 라익진 박사의 호를 기리며 지어진 만큼 우리대학교와 특별한 인연이 있는 그가 이런 성과를 이룬 데에는 특별한 그만의 노하우가 있었다고 한다. 세계 1위를 목표로 삼은 뒤 앞만 보고 달려왔다는 그를 만나 그의 대학시절과 회사 설립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최고가 되고 싶었던 이유, 애국심

1954년생인 라 대표가 태어난 해는 한국전쟁 직후. 어린 라 대표의 기억 속 우리나라는 해외 원조에 의존하는 국가였다. 외국 선교사들로부터 밀가루와 구제품들을 지원받는 우리나라 사람들을 보면서 라 대표는 “어린 마음에 그게 그렇게 자존심이 상했다”며 “그때부터 우리나라도 일어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는 열망을 갖게 됐다”고 이야기했다. 또 선교사들과 가까웠던 어머니 덕에 미국학생들과 같이 지냈던 중학생 시절 이런 그의 생각은 더욱 확고해졌다. 라 대표는 미국 학생들을 보며 ‘모두 같은 사람들인데 미국은 되고 우리나라는 안 될 이유가 없다’는 생각에 항상 우리나라를 일으킬 최고가 된 자신의 모습을 그리곤 했다.
우리대학교 사학과를 진학하면서 그의 애국심은 더욱 커졌다. 그는 대학교에서 사학을 전공한 것에 대해 “우리의 역사적 배경에 대해 알고 있었던 게 이후 미국에서 유학할 때 나의 정체성을 찾는데 많은 도움이 됐다”며 “사학과에서의 공부가 지금의 나를 이끌고 있는 민족적 자존심과 자부심의 근원인 것 같다”고 말했다. 그에게 대학 시절은 어릴 적 다짐을 항상 되새길 수 있는 기회였던 것이다. 사학과 공부는 이후 그의 기업 경영에도 영향을 미쳤다. 이때 얻은 역사적 시각이 곧 라 대표가 항상 21세기의 기업이 역사 속에 맡아야 할 역할이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하게 된 근원이 됐기 때문이다.
전공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알루미늄 사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 역시 우리나라에서도 세계최고가 나올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MBA과정을 막 마치고 난 후 창업을 생각하던 라 대표는 자신이 세계최고가 될 수 있는 분야를 찾던 중 알루미늄 제조업이 한 회사에 의한 독점시장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누군가는 이를 듣고 포기했겠지만 세계최고를 꿈꿨던 라 대표에게 이는 기회였다. 그 회사 하나만 제치면 세계 정상에 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 당시 “우리나라를 업계 1위로 만들겠다는 의지 하나로 시작했다”는 그는 망설임 없이 알루미늄 제조업에 뛰어들었다.

최고가 되기 위한 첫 번째 방법, 남들과는 다른 생각!

대학에서 인문학을 전공한 라 대표에게 전문적인 지식 없이 무작정 뛰어든 알루미늄 제조업은 만만치 않았다. 라 대표는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었던 만큼 많은 밤을 지새우며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었다”며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에 그저 제품만을 끊임없이 들여다봤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렇게 힘든 와중에 라 대표가 스스로와 약속한 한 가지는 바로 최소한 남들과 같은 제품은 만들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이런 그의 소신은 동아알루미늄의 독자적 브랜드인 ‘헬리녹스’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헬리녹스가 도전한 첫 제품은 등산객들의 필수품인 트레킹 폴이었는데, 라 대표는 타 제품보다 가벼우면서도 오히려 내구성은 더 높은 제품을 만들고자 했고 그 시도는 성공했다. 하지만 이런 차이를 만들어내는 것이 결코 쉽지는 않았다. 이 제품을 만들어내기 위해 라 대표는 무려 17년의 세월동안 고민해야 했다. “17년 내내 트레킹 폴 하나만을 제작하기 위해 몰두한 것은 아니지만 다른 제품보다 확실히 더 좋지 않으면 시장에 내놓기 싫었다”며 라 대표는 “남들과 비슷하게 만들긴 쉬웠지만, 그렇게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며 그만의 고집을 드러냈다.
또 남들과 다른 제품을 만들겠다는 그의 의지는 텐트 개발에 있어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라 대표는 더욱 완성도 높은 텐트 개발을 위해 아웃도어 업계 최초로 공장 내에 풍동실험실 설비를 마련했다. 풍동 실험실은 시속 162Km, 초속 45m의 바람을 구현해내는 실험실로 텐트의 성능을 실험하기 위해선 필수적인 시설이다. 풍동실험실을 보유하지 못한 아웃도어 업체는 주로 자동차 회사나 항공우주 연구소의 실험실을 빌리게 되는데 이는 많은 시간과 돈이 필요하다. 반면 동아알루미늄은 풍동실험실을 보유해 원하는 시간에 자체적으로 실험을 할 수 있다. 라 대표는 “전 세계 아웃도어 업계 중 풍동실험실을 보유하고 있는 곳은 우리가 유일하다”며 “풍동실험실을 통해 미국, 일본 중심이었던 텐트 개발의 주도권이 한국으로 넘어오게 됐다는 점에서 상징적이기도 하다”라고 자부심을 내비쳤다. 이렇게 동아알루미늄의 차별화된 제품에는 개발 과정에서부터 차이를 두려는 라 대표의 노력이 녹아있는 것이다.

최고가 되기 위한 두 번째 방법, 신뢰.

하지만 라 대표 혼자만의 노력만으로 이 모든 것이 이뤄질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그를 이 자리에 있게 해준 나름의 경영철학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사람 간의 신뢰. 그는 “한국은 신뢰가 무너지면 아무런 힘을 발휘할 수 없는 사회”라며 신뢰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전 유학시절 MBA강의를 듣던 도중 ‘이익 극대화를 위해 사람들을 가족처럼 잘 대해야한다’는 교수의 말에 ‘이익을 위한 눈속임을 10년, 20년 동안 지속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따진 적도 있는 그였다. 그런 그에게 회사를 설립한 이후의 매 순간은 자신이 했던 주장이 옳았는지를 확인하는 과정이었고, 그는 공장을 차린 지 10여 년이 흐른 뒤에야 비로소 자신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신할 수 있었다. 한 번은 라 대표가 직원들에게 월급을 올려줄지 말지를 물어본 적이 있었는데, 이때 돌아온 ‘알아서 해달라’라는 대답이 그에겐 그렇게 감격적일 수 없었다고 한다. 직원들이 진심으로 자신을 신뢰하고 있다는 것을 느낀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그의 신뢰에 대한 철학은 소비자들과의 관계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그에게 제품은 기업 혼자가 만들어나가는 것이 아닌 소비자와 업체가 함께 만들어나가는 것이다. 소비자들은 자신들이 무엇을 원하는지는 아는데 어떻게 구현할 지를 모르고, 기업들은 구현하는 방법은 알지만 무엇을 구현해야 하는지 모르기에 결국 이 둘이 힘을 합쳐야만 성공적인 제품이 나오기 때문. 라 대표가 블로그를 통해 네티즌들에게 제품 개발의 진행 과정을 공개하고 소비자로부터 피드백을 받고 있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물론 직원들은 “어떻게 도면을 올리냐”며 기겁을 하지만 라 대표는 “서로에 대한 신뢰가 있기 때문에 걱정할 것이 없다”며 “생각지도 못하는 아이디어를 제공해주는 소비자들 덕에 블로그에 글을 쓰는 것을 멈출 수 없다”고 웃으며 말했다.

이런 라 대표의 노력은 동아알루미늄을 전 세계 80여 개의 텐트업체에 텐트폴을 공급하는 세계 1위의 자리에 올려놓았다. 특히 자국 제품의 사용을 고집한다는 미군에까지 납품되고 있다니 그 품질은 이미 증명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더불어 최근엔 몇몇 외국 회사들이 소비자와 함께하는 개발에 대해 라 대표에게 자문을 구하고 있다. 세계 1위가 된 지금 라 대표는 ‘발가벗고 길바닥에 나서있는 기분’이라고 말한다. 경쟁회사들이 있을 때는 타 기업의 제품을 비교분석할 수 있었지만 1위가 된 지금은 오히려 타 기업들이 동아알루미늄의 제품을 분석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그는 “책임감을 느끼지만 원하던 것”이라며 “끊임없이 2위와의 차이를 벌려나가겠다”고 강한 의지를 보였다.

그가 전하는 이야기, 불확실성에 도전하라

대학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묻자 라 대표는 학생들에게 “후배들이 미래를 길게 봤으면 좋겠다”며 너무 코앞만 바라보는 학생들에 대해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한번은 우리대학교에서 강의할 기회가 있어 1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진행했는데, 강의에 들어가기 전 담당 교수로부터 ‘학생들이 취업에 관심이 많으니 취업에 관계되는 얘기를 해주시면 안되냐’는 요청을 받았다고. 라 대표는 “입시전쟁을 겨우 끝내고 이제야 대학교에 들어왔는데 벌써 취업을 준비하다니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대학시절 동안은 취업이라는 확실한 미래를 보장 받기 위해 조바심을 내기보다는 불확실한 미래에도 거침없이 도전할 수 있는 담대함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불확실성에 도전할 수 있는 것도 능력”이라며 “동아알루미늄의 성공 역시 이미 성공한 제품을 생산하기 보다는 소비자들의 요구에 맞춰 끊임없이 새로운 제품 개발에 도전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라 대표는 “우리대학교에 입학하던 날이 지금도 생생하다”며 대학시절 내내 ‘평생 그리워할 순간에 지금 내가 있는데 그렇다면 나는 과연 무엇을 해야 하는 것일까?’라는 고민을 하며 지냈다고 한다. “항상 졸업식장에 앉았을 때 자신이 지난 대학생활을 돌아보며 어떤 생각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해 생각하라”는 그의 말에서 후배들이 후회 없는 대학생활을 보내길 바라는 그의 진심이 느껴졌다.

글 김예린 기자
yerinee@yonsei.ac.kr
글·사진 박규찬 기자
bodogyu@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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