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대학에 입학했던 내게 작년 한 해는 특별했다. 내가 발 디디고 있는, 그러나 막연하게만 알고 있었던 우리의 학생사회가 어떻게 운영되는지 학생대표자로서 가까이서 지켜보고 경험할 수 있었던 소중한 기회가 주어졌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래서 이 기고가 더욱 조심스럽고 망설여지기도 하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지만, 그럼에도 이렇게 글을 적어 내려가는 이유는 학생대표자였기에 느끼는 아쉬움이 그 이상으로 큰 탓이다.

지난 15일에는 국제대의 학생총회가 있었다. 안건은 ‘반체제 개편방식 자율화 (Nullification of restriction in terms of formation of homerooms)’로 작년 학생총회를 통해 의결된 반체제를 무효화하고, 반체제 개편권한을 학우들의 손에서 다시 학생회와 운영위원회로 이전하자는 것이었다. 학생총회 개회 직후 한 학우가 정족수가 부족한 것이 아니냐는 질문을 하였고, 이에 대하여 회장단은 '정족수를 만족하며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답했다. 만약 표결 이후 정족수가 부족한 것이라면 어떻게 되는 것이냐는 질문에 '그것은 어디까지나 가정일 뿐'이라고 답변했다. 개회 당시에는 119명의 학우들이, 표결 시에는 130명의 학우들이 자리에 있었다. 다음날 학생복지처를 통해 확인한 국제대의 재적생은 1천 354명이었다. 국제대 학생회칙 제29조 제1항은 ‘의안의 내용과 관계없이 회원의 10분의 1 이상을 학생총회의 개회⋅의결 정족수로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사실 정족수를 만족하지 못했기에 총회가 성립될 수도, 표결이 진행될 수도 없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이 안건을 학생총회에 올리기까지 학생대표자들의 많은 고민과 충분한 논의가 있었을 것이다. 국제대는 11학번의 국제캠퍼스 이전을 시작으로 작년의 학부 통폐합에 이어 올해에도 학부가 신설되는 등 매년 양적으로 급격하게 팽창하고 있다. 이번 안건은 이처럼 급변하는 환경 속에서 국제대가 진정으로 내실 있는 학생사회를 꾸려나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학생대표자들이 내놓은 고심의 결과물이다. 학우들 간의 유대관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반체제'가 신촌과 국제캠퍼스라는 물리적 거리를 뛰어넘어 새로운 힘을 얻게 할 수 있게 하려면 많은 논의가 필요하다. 이러한 고민을 학생총회를 통해 학우들과 공유하고자 한 것은 박수 받아 마땅한 일이다. 그렇기에 이번 학생총회의 무효는 더욱 안타깝기만 하다.

학생총회라는 최고의결기구가 소집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주최 측의 실수로 인한 정족수 부족, 개회 직후 그에 대해 제기된 의문에도 불구하고 총회 강행, 결국에는 총회와 의결안 모두 무효로 이어진 충격적인 결말은 결국 그 자리에 참석했던 학우들의 목소리에 대한 무심함, ‘과정과 절차’에 대한 안일함으로 비춰져 불편하기만 하다. 더불어 나흘이 지난 오늘까지도 아직 소식이 없는 사과문을 생각하면 씁쓸함이 좀처럼 가시질 않는다. 늘 완벽할 수는 없지 않느냐는 말로 위안을 삼기엔 조금만 더 기본에 충실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미련이 남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학생회는 연세인의 의사에 따라 민주적으로 운영되어야 한다.’ 연세대학교 총학생회 회칙 전문에 등장하는 구문이다. 작년 한 해 동안 스스로 가장 많이 되뇌었고, 아마도 많은 학생대표자들을 끊임없이 고민하게 하는 말일 것이다. 흔히들 민주주의를 '목적이 아닌 과정'이라고 한다. 어떠한 ‘결(結)'에 도달하는 것이 아니라 ‘논(論)'의 과정에서 민주주의의 참된 가치와 의미를 찾을 수 있다는 뜻이다. 우리의 학생사회도 이와 다르지 않기에, 학생사회의 구심점 역할을 하는 학생대표자들은 과정과 절차에 있어서 민주적인 학생사회를 위해 노력한다. 학생총회는 이런 ‘논(論)'의 가치를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자리가 될 수 있었다. 그러나 기본적인 것들이 지켜지지 못해, 결국에는 아쉽게 무산되고 말았다.

성공하면 많은 것을 배우지만 실패하면 모든 것을 배운다고 하지 않았던가. 총회가 되지 못한 이번 총회가 국제대 학생자치의 디딤돌이 되고 연세 학생사회에도 경종을 울릴 수 있길 바란다. 우리의 학생사회가 과정과 절차에 대한 기본적인 존중을 바탕으로 한층 성숙해가는 가을이 되기를 소망하며, 무엇보다 때로는 무관심 속에서 또 때로는 응원 속에서 오늘도 묵묵히 항상 학생사회를 위해 애쓰는 연세의 모든 학생대표자께 진심을 다해 수고하신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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