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희극배우이자 작가인 제리 싸인필드(Jerry Seinfeld)는 “서점은 사람들이 여전히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몇 안 되는 증거 중 하나”라고 언급한 바 있다. 우리나라 대학가 서점의 상징이었던 오늘의 책이 신촌 대학가를 파고든 시장경제의 상업주의와 유흥문화에 밀려 지난 2000년 폐점한 지 14년의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2012년, 지난 반세기 동안 신촌의 대표적 ‘만남의 장소’로 알려진 홍익문고가 재개발로 인한 철거위기 속에 시민들의 반대로 가까스로 살아남았다. 인공호흡기에 의지해 연명하는 모양새다. 혹자는 온라인 서점의 보편화와 IT기기를 이용한 독서인구의 증가로 오프라인서점의 종말은 이미 예견되었다 말한다. 2010년, 그동안 연평균 16%의 폭발적 성장세를 유지하던 인터넷서점의 매출이 감소세로 돌아서더니, 2012년 급기야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 우리 주위 서점들이 이처럼 빠른 속도로 사라지는 사이 우리의 '사고(思考)'는 안녕하신가? 묻지 않을 수 없다.

공자가 주역을 반복해 읽어 책의 가죽끈이 세 번 끊어졌다는 위편삼절(韋編三絶)이란 고사성어도 있건만, 책이 우리의 손에서 멀어져 가는 현상은 비단 교문 밖의 문제만은 아니다. 미국의 최대 인터넷서점 아마존닷컴은 지난 몇 년 간의 도서판매량 기준으로 미국에서 책을 가장 많이 읽는 도시 20곳을 선정하여 발표하고 있다. 그 결과, 매년 약간의 순위변동은 있으나 대체적으로 캠브리지, 버클리, 그리고 앤아버와 같은 미국 유명대학 소재지에서 책 소비가 가장 많음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주요 일간지나 지자체에서 실시한 근자의 여러 조사 결과를 보면 미국의 사정과는 확연한 차이가 있다. 한 인터넷서점이 실시한 시도별 도서판매량 순위에서 서울은 매년 1위를 차지해 최대 독서 인구를 자랑하지만, 올해 서울시의 발표를 보면, 서울 시민의 연간 독서량은 11.96권으로 지난 2008년에 비해 7.52권이나 감소했다. 한 달에 책 한 권도 읽지 않는 사람이 많다는 이야기다. 무엇보다 대학 도서관에서 대출되는 도서의 양이 절대적으로 줄었다. 한 일간지가 작년에 우리학교를 포함한 서울 주요 대학도서관 6곳을 조사한 결과, 최근 3-4년 새 도서 대출이 26.6%나 감소했다. 특히 철학, 문학, 역사 등의 인문사회과학 분야의 도서 대출이 절반 가까이 줄었다.

물론, 각종 IT기기를 통해 손쉽게 전자책을 내려 받아 읽는 디지털 시대에 도서 대출을 기준으로 학생이나 시민들의 독서 실태를 파악하는 것은 독자의 지식 수용매체를 ‘종이책’에 한정하는 문제점이 있다. 현재 보편화된 인터넷 중심의 디지털 문화에서 저자의 창작 및 독자의 독서환경이 과거 유례없는 변화를 맞은 것은 사실이다. 전문가들 역시 대학생들의 도서 대출 건수 급감의 주요 원인으로 스마트폰이나 아이패드 등의 IT기기를 지목한다. 그리고 IT 선진국인 미국에서는 볼 수 없는 우리 대학사회의 이러한 현상을 두고, 학생들이 SNS에 치중하여 독서를 경시하면 사고력이 약화되고 집중력이 떨어진다고 우려한다. 하지만 ‘종이책’을 대신해 카톡을 즐기든 킨들로 독서를 하던 간에, ‘책’이 우리로부터 멀어지는 현상의 본질은 IT기기를 이용한 지적 활동이 과거 ‘종이책’을 통한 그것과 동일한 효과를 가지는가의 문제이다. 학교 안팎에서 동시에 진행되고 있는 ‘책’의 실종은 대학공동체를 비롯해 우리사회에 심화되고 있는 독서문화 부재현상의 지표이자, 깊은 통찰력과 비판적 사고에 바탕을 둔 지적 활동이 등한시 되고 있음을 알리는 ‘증후’이기 때문이다. “깊은 사고가 결여된 독서는 소화하지 않고 먹는 것과 같다”고 언급한 에드먼드 버크(Edmund Burke)의 격언이 그래서 더 와 닿는다.

대학생들의 독서량 감소현상을 학생들의 기본 소양 부족으로만 탓할 문제는 아니다. 2013년 교육부와 한국학술정보원이 발표한 자료를 보면, 대학규모 상위 20개 4년제 대학의 도서관 평균 장서규모가 207만권으로 ‘북미연구 도서관협회(ARL)’에 가입된 주요 대학의 최하위 수준에 머물고 있다. 이들 대학의 재학생 1인당 평균 자료구입비는 18만 원으로 ARL 평균인 40여만 원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최근 국내 대학들은 매년 실시되는 국내외 대학평가 지표관리를 위해 도서관이나 각종 교육시설에 막대한 투자를 하며 급격히 몸집을 키워왔다. 그러나 내실 있는, 즉 깊이 있는 사고를 배양할 수 있는 질적 교육에 대한 투자는 여전히 세계적 기준과 거리가 멀다. 학생수 감소, 반값등록금 여파, 이로 인한 대학재정의 경색 등 현 대학사회에 가중되는 교육환경의 불확실성은 상아탑으로서의 대학을 실적 경쟁 및 외적 성장 중심의 시장논리로 물들이고 있다. 하지만 그럴수록, “교육은 많은 책이, 지혜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톨스토이의 말을 되새겨, 우리 대학사회가 교육의 본질과 기본을 백년대계의 관점에서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14년 전 오늘의 책이 우리 시야에서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 것은 아니다. 80~90년대를 이어온 한국 민주화 운동의 지적 요람으로 인식됐던 이 서점은 96년에 이미 폐점의 위기를 맞고 ‘오늘의 책 살리기 운동’을 통해 극적으로 회생했다. 그로부터 4년 뒤, 대학이 상아탑으로서의 자존심을 힘겹게 유지하던 당시, 잉게 숄의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에서 절대권력 앞에 처연히 죽음을 맞이했던 자들의 경험이 그러했듯, 너무나도 조용히 사라지고 만다. 키케로가 “책 없는 방은 영혼이 없는 육체와 같다”라고 말할 때의 그 ‘책’은 분명 대학가에서 사라진 책방이나 대출되지 않는 대학도서관의 책만을 지칭한 것은 아닐 것이다. 노예제의 속박에서 자신을 해방시킬 수 있는 유일한 무기가 ‘책’임을 깨달았던 프레드릭 더글라스(Frederick Douglass)가 “교육은 속박된 인간의 영혼을 자유롭게 하는 영광의 진리로 이끄는 빛이자 해방”이라 하지 않았나. 그 ‘책’은 대학 구내서점에 범람하고 있는 또 다른 ‘책’, 즉 자기계발서, 어학교재, 각종 수험서 등이 대신할 수 없는, 현실에 대한 비판적 사고를 통해 얻어지는 참된 ‘진리와 자유’의 은유적 수사이다. 소크라테스의 말처럼 “책은 정신의 음식”일 진데, 오늘날 우리 대학생들이 물질적 풍요 속에서 정신적 기근이나 지적 거식증에 시달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염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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