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세월호 특별법 집회 현장을 담다


세월호 침몰 사고가 발생한지 4개월이 지났다. 짧지 않은 시간이 흐르는 동안 바다가 삼킨 아이들과 그 진실은 국민들에게 점차 잊혀가는 듯했다. 그런 국민들에게 잊지 말아달라고, 기억해 달라고 외치는 사람들이 있다. 아픈 가슴을 부여잡고 가라앉아 사라지려는 진실을 다시 밝히려는 사람들. 유가족들은 지금도 광화문 광장 한복판에서 처절하고 외로운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기자는 그곳에서 처연하게 펄럭이는 노란 물결을 담아왔다.

▶▶피켓을 들고 서 있는 집회 참가자들


집회 현장의 분주한 아침

 

지난 8월22일 아침 10시, 기자는 ‘수사권과 기소권이 보장되는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위한 서명운동과 단식투쟁이 벌어지고 있는 광화문 광장에 도착했다. 그날은 고(故) 김유민 양의 아버지인 김영오 씨가 40일 째 이어온 단식 끝에 쓰러져 병원에 실려 간 날이었다. 기자는 광화문 광장 입구에서 ‘세월호 참사 유가족 단식 40일째, 특별법 제정하라’ 라고 쓰여 있는 플래카드와 사람들의 지친 표정을 볼 수 있었다. 아직 이른 시간이라 사람들이 많이 모이지 않았고 봉사자들은 광장의 천막들 사이로 뜨거운 태양을 피할 그물망을 설치하느라 몹시 분주했다. 입구 쪽에는 아침부터 나와 지나가는 시민들의 서명 운동을 독려하려는 봉사자들이 서 있었다.
서명 운동 부스에서 기자가 봉사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사이, 할머니 한 분이 서명을 하시더니 봉사자들에게 소정의 돈이 담긴 봉투를 건넸다. 화곡동에서 왔다는 이영순(62)씨였다. 이씨는 “얼마 전 교황님이 오셔서 사랑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을 보며 감동했다”며 “얼마 안 되는 돈이지만 여기서 고생하시는 분들에게 조금이라도 보탬이 됐으면 좋겠다”라고 전했다. 세종대왕 동상 뒤편에서는 두 명의 여인이 ‘더 이상 죽이지 마라!’라고 쓰여 있는 팻말을 들고 있었다. 20년 지기 친구와 함께 나왔다는 한광주(52)씨였다. 기자가 무슨 계기로 오게 되었냐고 묻자 한씨는 눈물을 흘리며 “사람이 죽었는데도 그 원인을 제대로 모른다는 것이 한탄스러워서 조금이라도 힘을 보태기 위해 나왔다”며 “내 자식이 아니더라도 생명이 죽은 것에 대해서는 모두가 공감해야 한다”고 말했다.
 

뜨거운 발걸음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아침이 지나고 해가 중천에 뜨자 집회 현장은 사람들로 가득 찼다. 북적이는 사람들 틈에서 기자는 천호선 정의당 대표를 만날 수 있었다. 집회에 참여한 소감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천 대표는 “현재 세월호 특별법에 많은 시민들이 서명했다”며 “3일 동안 집회에 참여하면서 각양각색의 많은 시민들이 마음을 모아주는 것을 보고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어서 천 대표는 “내 생각에는 아이를 가진 부모들이 집회에 가장 열성적이지 않나 싶다”며 “부모들이 자발적으로 모임을 만들어 집회에 참여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천 대표의 말처럼 현장에는 유독 부모들의 발걸음이 끊이질 않았다. 판교에서 온 신민정(37)씨는 “두 아이의 엄마로서 이번 사고가 남 일처럼 느껴지지 않는다”며 “이번 사고를 그냥 넘어가면 언젠가 내 아이에게도 일어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분당에서 고등학교 교사를 하고 있다는 문진숙(36)씨도 어린 딸과 함께 단식에 동참하고 있었다. 문씨는 “우리 아이도 이런 사고를 당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할 수 있는 건 많지 않지만 이곳에 힘을 보태기 위해 왔다”고 말했다. 문씨처럼 단식을 이어가고 있는 또 다른 시민도 보였다. 3일째 단식 농성에 참여 중인 박성환(44)씨는 “단식에 참여하기 위해 직장에 휴가를 내고 참여했다”며 “많은 사람들이 희생당한 참사인데도 불구하고 조속한 진실규명과 후속대책이 이루어지지 않아 답답하다”고 말했다.
이들 외에도 현장에는 다양한 시민들이 함께하고 있었다. 그 중엔 김영오 씨의 초상화를 들고 서있는 화가 오재형(30)씨도 있었다. 오씨는 “평소 직장과 광화문 광장이 가까워 자주 집회 현장을 봐 왔다”며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이러한 광경을 외면하기 어려워 화가로서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학생들의 참여도 눈에 띄었다. 대구대 영어교육학과 이수정 씨는 “오늘 새벽에 유민이 아버지의 사진을 보고 대구에서 급히 올라왔다”며 “단식 농성장 분위기가 생각보다 무겁지 않아 놀랐다”고 말했다. 한양대 정치외교학과 오도현 씨는 “이 곳에 온 것은 시민으로서 당연한 일”이라며 “국민들이 다 같이 하나로 뭉쳐야 한다”고 말했다. 1인 시위 릴레이에 참여 중이었던 고려대 수학교육과 김종일 씨는 “고통받는 사람들이 정말 많다”며 “힘은 없지만 옆에서 함께 있어줄 수는 있다는 마음으로 왔다”고 말했다.

▶▶엄마를 따라 집회에 온 어린 아이


한 순간에 사라진 우리 아이들

집회 현장의 한켠에 자리 잡은 천막들 중에는 유가족들이 따로 모여 있는 공간도 마련돼 있었다. 그 곳에서 만난 세월호 참사 첫 희생자 고(故) 정차웅 군의 어머니 김연실(46)씨는 “얼마 전 아이의 납골당에 갔는데 유리만 만질 수 있다는 현실이 너무 마음 아팠다”며 “하고 싶은 게 정말 많은 아이였다”고 말했다. 이어서 김씨는 “처음에는 실감이 안 났는데 이젠 정말 아이가 보고 싶고 안아주고 싶어서 힘들다”며 침통한 표정을 지었다. 고(故) 임경빈 군의 어머니 전인숙(43)씨도 “행복하게 살아가다가 한 순간에 우리 아이가 사라졌다”며 “이제는 더 바랄 것도 없이 제발 진실만이 밝혀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또 다른 희생자 고(故) 이장환 군의 어머니는 “둘째가 있어서 여기에 매일 오지는 못한다”며 “어서 안전한 나라가 돼 우리 둘째와 다른 남은 모든 아이들을 안전하게 키울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소망했다.

집회 현장의 뒤편엔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소방서 구급대원들과 경찰들이 항시 대기하고 있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구급대원은 “우리는 3~4시간씩 교대로 대기하면서 단식을 하시는 분들의 혈압과 혈당, 맥박을 잰다”며 “농성을 보면 말로 표현 할 수 없을 정도로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어서 그는 “한 쪽에서는 유가족들이 슬픔을 겪으며 투쟁하고 있는데 다른 편 분수대에서는 아이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부모들이 보인다”며 “아이를 가진 부모의 입장에서 이런 광경은 참 씁쓸하다”고 말했다.

 

▶▶촛불문화제에서 불을 밝히고 있는 시민들


모두의 진심과 함께 타오른 촛불

저녁 무렵이 되자 퇴근 시간에 맞춰 더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그 곳에는 염수정 추기경도 있었다. 염 추기경은 40여분 가량 유가족들이 모여 있는 천막에 들어가 그들을 위로했지만 일부 시민들 사이에선 “왜 이제야 나타났느냐”라는 원성이 들리기도 했다. 아마 누구에게라도 하소연하고 싶은 마음에 터져 나온 울음이 아니었을까. 시계가 저녁 한창인 7시를 가리키자 촛불문화제가 시작됐다. 시민들은 삼삼오오 모여 주최 측에서 준비한 촛불을 받아 불을 붙였다. 촛불문화제는 시낭독과 노래 등 각종 공연과 함께 진행됐고 참가자들은 함께 즐기며 슬픔을 희망으로 승화시켰다. 이를 지켜본 김지연(43)씨는 “늦게 와서 죄송한 마음이 든다”며 “세월호 특별법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고 참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나지막이 이야기했다. 성균관대 표상원(전자전기·09)씨도 “현장에 와보니 언론 보도와는 달리 사람이 많아 놀랐다”며 “하지만 집회 현장에서 본질에서 벗어나 이익만을 취하려는 사람들도 여럿 보여 안타깝다”고 소회를 밝히기도 했다.


밤이 깊어지자 촛불 문화제가 끝이 나면서 그 날의 집회 일정이 모두 마무리됐다. 단식을 이어가는 참가자들은 계속해서 집회 현장에 남아있었고 대부분의 시민들은 집으로 돌아갔다. 기자는 집회 현장에서 하루의 처음과 끝을 함께하며 시민들의 하나된 열망을 느낄 수 있었다.
기자가 현장을 떠나온 지 2주일이 훌쩍 넘은 지금, 진실을 향해 묵묵히 전진하는 그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상황은 여전히 제자리에 머물고 있다. 옛 격언 중에 ‘진실은 그 어떤 시련도 두려워하지 않는다’라는 말이 있다. 그 어떤 혹독한 시련이 있더라도 진실 자체는 언젠가 빛을 발할 것이라는 의미이다. 그 진실을 향한, 그리고 떠나간 아이들을 위한 남은 자들의 외침은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글 고석현 기자
shk920211@yonsei.ac.kr
송진영 기자
sjy0815@yonsei.ac.kr

사진 박규찬 기자
bodogyu@yonsei.ac.kr
손준영 기자
son113@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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