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 조정부, 그들이 배를 타는 이유

까맣게 그을린 피부, 다부진 두 팔과 다리. 전국대학 조정대회를 대비해 지난 6월 29일부터 합숙훈련을 시작한 우리대학교 조정부의 모습은 평범한 대학생이 아닌 영락없는 조정 선수들의 모습이었다. 물 위에서의 마라톤이라 불릴 정도로 강한 체력과 정신력을 요하는 조정. 이런 조정과 함께 누구보다 뜨거운 여름을 보낸 그들의 하루를 따라가 보자.

지난 7월 22일, 기자는 조정부가 합숙 훈련을 하고 있는 미사리 조정 경기장에 찾아갔다. 금방이라도 비가 올 것 같은 날씨에 혹시 연습을 쉬진 않을까 걱정을 안고 찾아간 경기장에선 기자의 걱정이 무색할 정도로 많은 선수들이 구호에 맞춰 노를 젓고 있었다. 배를 타고 있는 선수들을 지나 경기장 옆 훈련실에서 우리대학교 조정부 부주장 정민영(경영·11)씨를 만났다. 이런 날씨에도 연습을 하냐는 기자의 질문에 정민영 씨는 “뜨거운 햇빛 때문에 더운 것 보단 오히려 약간의 비가 오는 편이 선수들이 연습하는 데에 더 낫다”고 답했다. 기자가 도착한 낮 네 시는 오전 훈련을 마친 우리대학교 선수들이 낮잠을 자고 있는 시간. 정민영 씨는 “워낙 훈련이 고되다보니 낮잠은 필수”라며 이후 있을 훈련들에 대해 간략히 소개를 해준 뒤 훈련 준비를 위해 자리를 비웠다. 낮잠 시간이 끝나가는 낮 네 시 반이 되자 훈련실에 선수들이 삼삼오오 모이기 시작했다.

쉬지 않고 이어지는 훈련, 또 훈련


낮 다섯 시, 본격적인 오후 훈련이 시작됐다. 오후 훈련의 첫 순서는 스쿼트나 달리기 같은 여러 종류의 운동을 쉬지 않고 돌아가면서 하는 서킷 트레이닝이었다. 서킷 트레이닝은 유산소 운동과 무산소 운동이 결합된 조정에는 안성맞춤인 훈련이지만 그만큼 훈련의 강도도 높아 훈련이 초단위로 이뤄지곤 한다. 선수들은 10초에서 20초 단위로 운동을 바꿔가며 총 5분을 하는데 혹자는 겨우 5분이냐고 할지 모르겠지만 훈련 모습을 직접 보게 되면 절대 그런 말은 못할 것이다. 1분이 채 되기도 전에 땀을 비 오듯 흘리는 선수들을 지켜보고 있자니 기자에게도 5분이 15분처럼 느껴졌는데 선수들은 오죽했을까. 고된 훈련에 몇몇 선수들은 힘이 들 때마다 큰 소리로 기합을 넣기도 했는데 이에 대해 김용학(정외·09)씨는 “기합을 넣는 것은 서로 조금 더 파이팅하기 위해서”라며 “또 그렇게라도 해야 힘든 훈련을 버틸 수 있다”고 말했다.

서킷 트레이닝이 끝나자 선수들은 바로 배가 있는 창고로 향했다. 8명의 선수들이 구호에 맞춰 배를 들고 날라서 조심스럽게 수면 위에 띄웠다. 선수들이 일사불란하게 노를 젓기 시작하자 배는 미끄러지듯 수면 위를 나아갔다. 겉보기엔 배가 손쉽게 나아가는 것 같지만 실제로 이 과정까지는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다고. 김씨는 “서킷 트레이닝이 아무리 힘들어도 배를 제대로 타면 매 순간 체력의 한계를 경험하게 되기 때문에 서킷 트레이닝보다 배를 탈 때가 훨씬 더 힘들다”고 말한다. 개인적으로 트레이닝을 하면 중간에 잠시나마 힘을 뺄 수 있지만 배를 탈 때는 한순간도 쉬어선 안 된다는 것이 그 이유. 이어 김씨는 “일단 배를 타다가 힘을 빼게 되면 계속 노를 젓던 리듬이 깨져서 다시 배가 나아가기가 쉽지 않다”며 더불어 “내가 힘을 빼면 다른 멤버들이 그보다 더한 노력을 해야 하기 때문에 절대 힘을 빼선 안된다”고 말했다. 정민영 씨는 “그래서 배를 탈 때는 항상 같이 배를 타는 멤버들의 얼굴을 생각하며 노를 젓는다”며 “내가 편하자고 쉬면 이 친구들이 얼마나 힘들지 알기 때문에 이를 기억하려고 노력한다”고 덧붙였다.

갈수록 치열해지는 경쟁


경기장엔 우리대학교 선수들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간간히 보이는 빨간색 유니폼이 기자의 눈에 거슬렸다. 그리고 곳곳엔 SNU라고 쓰여있는 유니폼도 보였다. 바로 이번 여름에 열릴 경기에서 우리대학교와 경쟁을 하게 될 서울대와 고려대의 조정부 선수들이었다. 각 대학교 선수들은 서로 신경 쓸 겨를도 없이 훈련에 매진하는 듯 보였지만 그 와중에도 묘한 신경전이 느껴졌다. 정민영 씨는 “서로 견제가 심하지만 의식적으로 남자 선수들이 옷을 벗고 몸 자랑을 하는 것을 보면 재밌기도 하다”며 “경쟁을 하다 보니 서로 자극을 많이 받는다”고 말했다. 이러한 경쟁에 코치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한 번은 우리대학교 코치가 타 대학 코치에게 실제 우리 선수들에겐 강도 높은 훈련을 시키고 있으면서도 “학생들은 훈련을 너무 세게 시키면 나가버리기 때문에 살살 다뤄야 한다”며 능청스러운 거짓말도 했다고. 이렇게 치열한 경쟁 속에서도 우리대학교 조정부는 지난 3년간 전국대학 조정대회에서 우승을 거머쥐며 명실상부 조정 강자가 됐다. 이에 대해 정민영 씨는 “지난 경기엔 우리대학교가 너무 압도적으로 이겨서 올해 다른 학교들이 자극을 많이 받은 것 같다”며 “이번엔 조금 더 경쟁이 치열해질 것 같다”고 말했다.

저녁 일곱 시쯤이 되자 모든 훈련 일정이 종료됐다. 훈련 내내 추적추적 내리던 비는 훈련이 끝나자마자 하늘에 구멍이라도 난 듯 쏟아지기 시작했다. 선수들은 배를 창고에 넣은 뒤 저녁식사를 하기 위해 식당으로 이동했다. 기자 역시 정민영 씨를 따라 선수들이 밥을 먹는 식당으로 향했다. 식당에서는 주장 허범(토목공학·12)씨, 그리고 신지현(한국학·석사3학기)씨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 식사가 나왔는데 갖가지 밑반찬과 공깃밥이 나온 뒤 메인 메뉴인 돼지고기 숙주볶음이 커다란 접시에 산처럼 쌓여 나왔다. 놀란 기자에게 신씨는 “조정을 통해 다이어트도 할 수 있다고 해서 들어왔는데 이는 다 거짓말이었다”며 주장인 허씨를 원망스러운 눈초리로 쳐다봤다. 기자도 눈치가 보여 밥은 다 먹겠다는 결심을 했지만 공깃밥을 어찌나 꾹꾹 눌러 담아 주셨는지 한 그릇도 다 먹기 힘들 정도였다.

손에 잡힌 물집, 그 안에 담긴 피와 땀

이야기를 하던 중 물을 마시던 신씨의 손이 눈에 띄었다. 마디마디마다 물집이 잡혀있고 껍질이 벗겨져 벌게진 손바닥. 기자가 놀란 표정을 짓자 신씨는 멋쩍어하며 “다들 이렇다”고 말했다. 온 힘을 다해 노를 젓다 보니 선수들의 손은 성할 날이 없다. 노를 밀고 당길 때 손바닥과 손 마디마디에 물집이 잡히고 중간에 노가 회전할 때 엄지와 검지 사이 살갗이 벗겨진다. 그래도 지금은 많은 선수들의 손에 점점 굳은살이 생겨 아무는 중이라고 했다. 대회 때가 되면 굳은살 때문에 아픈지도 모르고 노를 젓게 된다고. 처음 합숙을 시작했을 땐 이제 막 잡힌 물집들 때문에 숙소에 돌아가 선수들이 한 명씩 씻기 시작하면 화장실에서 비명소리가 이어졌단다. 신씨는 “샴푸가 손바닥에 닿으면 너무 아프니까 손등으로 머리를 감는 방법을 터득했다”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노를 저으며 생긴 물집인 만큼 나름의 의미도 있다. 정민영 씨는 “그래도 점점 박혀가는 굳은살을 보며 내가 이만큼 훈련을 열심히 했다는 생각이 들어 희열을 느낀다”며 “손바닥에 생긴 물집과 굳은살이 선수들에겐 훈장과 같은 의미”라고 이야기했다.


물론 조정을 하면서 힘든 점이 손이 벗겨지는 것만은 아니다. 조정을 하면서 가장 힘든 점이 무엇이냐고 묻자 김씨는 체력적인 어려움을 첫 번째로 꼽았다. 생각해보면 원래 체육을 하던 학생들도 아니고 학기 중엔 다른 학생들과 같이 시험공부를 하던 평범한 학생들인데 방학 한 달 동안 이렇게 강도 높은 훈련을 받는 일이 당연히 쉽지는 않았던 것이다. 훈련이 얼마나 힘든지 군대에 갔다 온 조정부 남자 선수들은 아직 군대에 가지 않은 동기들에게 항상 “넌 훈련소는 껌일 거야”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고. 또 정찬민(경제·09)씨는 “정신적인 어려움도 체력적인 어려움 못지않다”고 이야기한다. 배를 타는 팀원 모두와 노를 젓는 속도부터 각도까지 전부 맞춰야 하는 만큼 이를 위한 정신적 에너지 소모 역시 크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들이 조정을 계속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정찬민 씨는 “함께 노를 저을 때 느끼는 일체감이 조정의 매력”이라고 말했다. 조정에 필요한 요소들을 모두 맞추는 것은 물론 힘들지만 이를 맞춰 배가 나아갈 때는 함께 배를 타는 멤버들과 말 그대로 하나가 되는 것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에 덧붙여 김용학 씨는 “한 달 동안 동기들과 합숙을 하게 되면 정말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빨리 친해지게 된다”며 “특히 배를 타면 너무 힘들어서 자동으로 반말이 나오기 때문에 모두가 순식간에 스스럼없는 사이가 된다”고 웃으며 말했다. 조정부 멤버들은 합숙이 끝나고도 함께 망년회나 사적인 모임들을 함께 한다니 더 말할 것이 있을까.

연세대학교 조정부? 지원은 동문들만이

이런 선수들의 노력과 열정에도 불구하고 현재 우리대학교 내에서 조정부의 위치는 애매한 상태라고 볼 수 있다. 지난 2001년 신입 선수를 선발하지 못한 이후로 조정부는 잠시 위기를 맞았다가 이후 다시 선수를 모집해 활동을 시작했지만 수상실적이 없어 2005년, 학교 체육부에서 빠지게 됐다. 이후 지금까지도 조정부는 연세대학교 조정부라는 이름을 가지고 활약을 하고 있음에도 학교로부터는 어떠한 지원도 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 정민영 씨는 “다시 조정부를 체육부에 넣고 싶지만 절차가 너무 복잡해 엄두도 못 내고 있는 게 사실”이라며 “연세대학교 조정부라는 이름으로 활동을 하고 있지만 우리가 학교의 동아리도, 체육부도 아니라는 사실이 씁쓸하다”고 말했다. 현재 학교와 조정부를 연결하는 유일한 고리는 지도교수인 설혜심 교수(문과대·영국사) 뿐이다. 정민영 씨는 “조정부 일이라면 발 벗고 나서는 교수님께 항상 감사하다”면서도 “교수님 이외에는 학교에서 조정부에 관심을 가지는 이가 없어 이어지는 우승에도 여전히 조정은 그들만의 리그 취급을 받고 있는 상황”이라며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이렇게 학교에서 아무런 지원도 받지 못하는 열악한 상황 속에서 우리대학교 조정부가 운영될 수 있는 이유는 항상 조정부를 응원하고 있는 숨은 지원군이 있기 때문이다. 바로 조정부에 엄청난 애정을 갖고 있는 동문들. 우리대학교 조정부 선수들이 타는 배를 보면 맨 앞에 우리대학교의 마크가 있고, 그 옆에는 ‘김준수호’라는 배의 이름이 적혀있다. 조정부 선배인 김준수 동문(영문·61)이 조정부에 기부한 배인 만큼 선배의 이름을 따 배의 이름을 지은 것. 배뿐만 아니라 조정부의 합숙에 쓰이는 숙소부터 식사까지 모든 비용의 대부분이 동문들의 지원에서 나오고 있다. 기자가 경기장에 방문한 날에도 역시나 동문 중 한 분이 훈련을 지켜보며 선수들을 응원하고 있었다. 정인성 동문(정외·64)은 “누구보다 열심히 훈련을 하고 있는 후배들의 모습을 보면 참 기특하다”며 “선수들이 얼마나 훈련에 열심히 참여하고 있는지는 배 타는 모습을 보면 바로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이렇게 조정부의 선후배 관계가 끈끈할 수 있는 이유 중 하나는 바로 OB들의 활발한 활동 때문이다. 동문들이 지금까지도 미사리에서 배를 타기 때문에 현역 선수들과 더 많은 교류를 갖고 선수들에게 더욱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것. 정 동문 역시 이번 대회에서 60세 이상을 위한 OB 경기에 출전해 우승을 거뒀다. 이런 동문들의 열정에 대해 정민영 씨는 “동문 분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합숙은 가능하지도 않았다”며 “항상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허씨 역시 “동문 분들의 지원엔 늘 감사하다”며 “주장으로서 기대에 부응해야겠다는 책임감도 느낀다”고 이야기했다.

누군가는 2014년의 여름을 온전히 조정부 합숙에 바치고 있는 선수들을 보며 그게 큰 스펙이라도 되냐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들이 조정을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은 단순한 스펙이 아니다. 정민영 씨에 따르면 “팀원들과 노를 젓는 매 순간 선수들은 체력과 정신력의 한계에 다다르기에 배를 타는 것은 이를 극복하는 과정의 연속”이다. 그렇기에 선수들어게 이런 경험은 한 줄의 스펙보다 이들이 앞으로 살아가는데 있어 더 큰 의미가 있다. 또 조정부를 통해 선수들은 둘도 없는 동기들을 얻는다. “기록도 중요하고 우승도 중요하지만 합숙 기간 동안 동기들과 쌓는 친밀감이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이 점을 다른 동기들도 알아줬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하는 허씨의 말에서 조정부를 통해 이들이 얻는 인연의 소중함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지난 8월 2일, 전국대학 조정대회에서 우리대학교 조정부는 치열한 접전 끝에 6분 42초 96의 기록으로 남자 에이트 종목*에서 우승을 이끌어내며 4연패 신화를 달성했다.

*에이트 종목 : 8명의 크루(crew)와 1명의 타수(cox)가 승선하는 종목으로 조정의 꽃이라 불린다.

 

글 김예린 기자
yerinee@yonsei.ac.kr
사진 송진영 기자
sjy0815@yonsei.ac.kr
<사진제공 연세대학교 조정부> 

저작권자 © 연세춘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