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드라마 제목을 인용한다는 게 선뜻 마음 내키는 일도 아니고 또 유행을 쫓아가기엔 너무 늦은 감도 없지 않다. 그러나 경제민주화를 공약으로 내세웠던 정부가 이제는 경제활성화, 규제개혁, 민영화 논리로 경제민주화 공약을 물타기를 하고 있고, 심지어는 대기업 위주 정책을 통해 공세 국면을 만들어내는 상황에서 경제민주화를 재촉구하는 말로는 이만큼 적절한 말도 없지 않을까 싶다. 

경제민주화의 의미
 
우선 경제민주화의 의미를 먼저 살펴보자. 경제민주화라 하면 일반적으로“1인 1표주의”,“기회의 균등”,“공정한 경쟁과 이를 보장하는 대중적 참여와 통제”,“경제력 집중 억제”,“공평한 소득(재)분배”등을 떠올린다. 혹자는 이를 좀 더 추상화하여“시장에 대한 민주적 통제”라고도 하고, 또“자신의 삶과 자유에 영향을 미치는 모든 차원의 의사결정에 시민들이 참여해서 결정할 수 있는 상황”을 의미하는 것으로 받아들인다. 
이처럼 다양한 의미들에도 경제민주화가 구체화되는 수준에서 보면 하나는 기업 수준에서, 그리고 다른 하나는 시장경제의 작동과 그 결과라는 측면에서 얘기해 볼 수 있다. 특히 자본주의가 경쟁자본주의 단계에서 독점자본주의 단계로 이행가면서 기업 내 권력 집중화는 불가피해진다. 이런 점에서 흔히 경제민주화는 이런 집중화된 권력을 완화하거나 제한하는 기업경영 방식이나 원리를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노동 개혁,’‘민주적 기업,’‘산업민주주의,’‘작업장 민주주의’등으로 표현되는 기업 내 경제민주주의 관련 논의들은 전제적인 자본-노동관계와, 기업 내 집중화된 권력을 완화하거나 제한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코즈(R. Coase)라는 경제학자가 지적했듯이 기업은 태생적으로 위계나 명령으로 유지되는 조직이며 이런 기업 내에서 민주주의가 실현되려면 적어도 이론적으로는‘1인 1표주의’에 의한 참여가 보장되어야 한다. 그러나 근대 주식회사의 등장과 자본시장 발달로 기업 민주주의 원리는‘1주 1표주의’라는 원리로 대체되었다. 그러나 언뜻 보기에 민주주의 원리를 실현시키고 있는 이‘1주 1표주의’는 소유와 경영의 분리와 이에 따른 경영 감시 공백 상태를 낳았고 주주들을 통해 기업경영에 수반되는 위험을 다양한 방식으로 회피할 수 있게 됨으로써 기업을 통제하고 감시할 유인은 더욱 줄어들었다. 감시 유인이 줄어든 주주들은 고용조정과 같은‘주주가치 극대화’행동을 묵인함으로써, 참여가 제한된 기업 내 다른 이해당사자(stakeholder)들의 이해를 위협한다. 따라서 자본시장이 발달한 영미 국가들에서 일반적으로 받아들어지고 있는 1주 1표주의에 따른 경제민주주의는 절차적 민주주의의 원리에는 충실할지 모르나, 기업경영에 대한 규율되지 않는 형식적 통제와 다른 이해당사자의 참여를 배제한 제한적인 참여를 의미할 뿐이라는 점에서 한계를 가진다. 
 
경제민주화는 시장 경제의 작동과 그 결과라는 측면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자유시장경제는 자유로운 선택과 그 결과에 책임을 지는 개인들이 시장에 참여하여 공정한 게임 절차나 규칙에 입각하여 경쟁을 하고, 나아가 그 게임의 결과 역시 효율적이라는 것을 전제로 한다. 만약 자유시장경제가 실제 이런 식으로 작동한다면 시장은 그 자체로써 민주주의를 구현한다. 주류경제학의 교과서가 가르치는 바 시장기능에 따른 자원 배분과 생산물 분배의‘민주적’원리는 오히려 정부 개입에 의한 인위적인 배분 원리와 대당을 이룬다. 따라서 개인 선택을 제한하거나 공정 경쟁 규칙을 훼손하는 정부 간섭이나 사전적인 개입은 불필요하다. 나아가 참여자들의 공정한 게임 규칙을 보장해주는 시장 과정의 결과로 출현하는 거대기업과 독점은‘효율적인 것’으로서 굳이 경제민주화를 위한 규제나 개혁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러나 거대 기업과 독점의 출현이 자본주의 기업조직의 자연스러운 진화과정, 그리고 기업간 경쟁을 통한‘시장 선별’결과라 말할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반드시 공정한 시장 경쟁의 결과라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만약 그렇다면 이렇게 형성된 독점은 다시 공정 경쟁을 저해하고, 경제력 집중을 심화시키며, 소비자 희생이나 불공정한 부의 분배를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 칼 폴라니(K. Polanyi)가 이미 자기조정적 시장경제가 초래하는 위험과 불안정에 대해 경고하였듯이 일찍부터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발달한 국가들은 시장경제의 폐해와 이로 인한 경제적 독점에 대하여 다양한 규제와 개입을 통해서 이러한 폐해를 줄이고자 하였다. 여기서 정부 개입은 사회를 벗어나버린(unembeded) 시장 경제의 작동을 제어하고, 이를 사회적 조정과 타협이라는 기제로 보완하는 일이다. 이 경제 체제를‘조정된(coordinated) 시장경제’라 할 수 있는데, 조정된 시장경제는 정부 개입뿐만 아니라 기업간 협력, 노사간 타협과 같은 비시장적 기제에 의해서 보완된다. 
나아가 이러한 비시장적 기제는 회사법, 고용제도, 노동시장, 금융시스템 등 시장경제의 다른 제도들과도 상호보완성을 가진다는 점에서 전(全)사회적이다. 
 
우리에게 경제민주화는?
 
경제민주화가 이런 것이라면 자본주의 생산체제는 항상 경제민주화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과제를 가지고 있지 않는가? 실제로 선발자본주의 국가들의 경험은 경제민주화가 경제력 독점의 심화와 집중이 민주주의적 기초를 위협한다는 우려에 대한 대응으로 나타났고, 그것은 독점금지법으로 구체화되었다. 이러한 대응은 독점과 경제력 집중을 막고 시민권을 회복하자는 데로 나아갔다. 물론 탈집중화를 통해서 지키고자 했던 이 시민권이 이후 소비자들의 연대를 통한 민주주의, 그리고 전후 성장과 분배 정의의 정치경제론에 자리를 내어주고 말았지만, 이와 같은 두 가지 전통은 규제되지 않는 독점과 경제력 집중이 경제적인 데 머무르지 않고 정치, 사회 영역에도 파괴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음을, 그리고 이에 대한 규제나 경제민주화가 지향해야 할 궁극적 가치와 목표가 시민권의 복원이 되어야 함을 말해주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경제민주화가 특별한 이유가 무엇인가? 이미 잘 알다시피 우리의 경우는 자기조정에 실패한 독점과 경제력 집중이 다수 기업들의 결합인 기업집단, 달리 말해 재벌을 통해서 형성되고, 세습되고, 강화되어온 것이기에 그 폐해와 우려는 더욱 심각하다. 2014년 현재 70여 개가 넘는 계열사를 거느린 삼성 재벌은 거대 경제력을 바탕으로 정치권, 검찰, 언론 등 사회의 모든 영역에서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한다.‘갤럭시S5의 의료기기 제외 건’에서도 알 수 있듯이 삼성의 영업에 필요하다면 자신에 유리하게 법조차도 바꾼다. 심지어는“삼성의 위기는 한국경제의 위기”라는 주장이나 이데올로기도 어색하지 않게 만들어 낸다. 그러나 재벌 중심의 경제구조가 만들어내 거대 독점과 경제력 집중은 총수(일가)의 사적 이익 추구와 부(富)의 대물림을 제어할 수 없게 만들어버린다. 또 노동자나 소수 주주들이 피해를 입고, 대다수 협력업체들이 수탈당하며, 중소기업의 건전한 성장이 방해받는다. 나아가 현재의 기업집단은 소속 기업들의 동반 부실과 연쇄 도산을 초래할 수 있고, 이 위험이 현실화될 경우 국민 경제 전체를 위기에 빠지게 할 수도 있다. 재벌개혁이 경제민주화의 출발점이 되어야 하는 이유이다. 
 
응답하라! 경제민주화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라도 있었는지 확인할 길은 없지만, 박근혜 후보 역시 대선 과정에 경제민주화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의미도 불분명한‘창조경제,’재벌 대기업에 친화적인‘돈이 도는 경제민주화’라는 문구로 치장된 경제민주화 공약은 다른 후보들에 비하여 큰 기대를 걸만한 것은 아니었지만 공약대로만 실현되어도 나름 의미가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고 1년도 지나지 않아서 경제민주화는 종료되었고, 그 자리에 경제활성화가 들어섰다. 이 같은 경제민주화 물타기를 배경으로 정부는 대기업에 대한 규제 완화, 의료민영화를 추진하겠다면서 경제민주화에 대한 공세를 취하고 있다.
 
그러나 세월호 침몰이 이전 정부의 규제 완화로 촉발된 것임을, 그리고 원격진료를 핵심으로 하는 의료민영화가 국민건강을 볼모로 대자본만을 이롭게 할 것이라는 것은 비교적 분명하다. 우리 사회의 우리 헌법 119조 2항에 따르면“국가는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 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박근혜 정부는 이러한 정부가 되려고 하는가? 현재까지의 답은‘아니오’다. 그렇다면 문제는 우리 안에 있는 게 아닐까? 
 
최근 이건희 회장의 입원으로 다시 논란의 핵심이 된 삼성 재벌의 예를 들어보자.‘중소기업 몇 개 망하든 말든 우리에게 무슨 상관이야?,’ ‘이재용이 경영권을 물려받는 것이 어때서,’‘하는 짓은 맘에 들지 않고 문제도 있는 것 같지만세계 1등 기업 삼성전자인데...’ 생각은 자유롭게 할 수 있지만 이러한 생각들은 결국 총수의 독단적인 기업경영과 무책임, 무노조 경영, 그리고 온갖 불법적인 노동관행을 용인함으로써 기업 내 민주주의 실현을 더 어렵게 할 것이다. 백혈병으로 유명을 달리한 노동자들과 그 가족을 욕되게 하며,“또 하나의 약속”이나“탐욕의 제국”의 상영을 방해하며, 한순간의 망설임이나 주저함 없이 삼성전자서비스 대리점을 폐쇄해버리는‘대한민국 대표기업 삼성’의 무책임을 키우고 잘못을 덮어줌으로써 경제민주화를 더욱 멀어지게 만들 것이다. 그래서 삼성에 취직도 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 온갖 스펙을 갖추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우리들에게 경제민주화는 우리 안의 모순과 이중성으로부터 우리를 자유롭게 해주는 방법이기도 하다. 그래서 정부에게만 아니라 우리 스스로에게도 경제민주화는 꼭 실현되어야 할 가치이다. 응답하라, 그리고 실현하라! 경제민주화! 
 
경남과학기술대학교 산업경제학과 송원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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