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헌법상 경제질서와 경제민주화

한국 헌법 제119조 제2항은 국가가 “경제주체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음”을 선언하고 있다. 이 선언은 대한민국의 경제질서의 기본을 “개인과 기업의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함”에 두고 있는 같은 조 제1항과의 조화로운 해석을 통해 그 규범적 의미를 이해해야 한다. 즉 대한민국의 경제질서를 어떻게 이해하느냐의 전제 위에서 경제민주화의 구체적 의미가 확정되어야 한다.

개인과 기업의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하는 경제질서는 기본적으로 개인의 사유재산권과 경제활동의 자유를 보장하는 질서를 의미한다. 그러나 사유재산권과 경제활동의 자유를 보장하는 질서는 그 ‘절대적’ 보장을 추구하는 자유방임경제질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사유재산권의 보장을 위해 그 어떤 공익적 가치에 기반한 국가의 개입도 부정하는 자유방임경제질서는 사회양극화와 빈곤의 악순환을 초래하여 국민경제의 조화로운 발전을 저해하고 궁극적으로 사회통합을 근본적으로 훼손한다는 평가를 받아 역사적 뒤안길로 사라진 질서이다. 자유방임경제질서의 부활로써의 이미지가 있었던 신자유주의의 광풍이 드세던 시절에도 독과점규제와 같이 ‘자유’로운 시장질서를 교란하는 경제활동은 원칙적인 국가적 규제를 회피할 수 없었던 것도 다 이러한 인류사 발전의 결과에 따른 것이다.

따라서 재산권과 경제활동의 자유를 보장하는 경제질서는 개인과 기업이 공정하게 경쟁할 수 있는 질서를 갖춘 시장경제질서를 의미하게 된다. 이런 경제질서는 ‘사회적’ 시장경제질서 혹은 ‘수정자본주의적’ 경제질서라고 불린다. ‘사회적’ 혹은 ‘수정자본주의적’이란 의미는 경제질서가 약육강식의 약탈 상태로 방치되어 경제영역의 자유와 창의를 보장하는 질서가 근본적으로 교란되지 않도록 재산권과 경제활동의 자유가 사회전체의 공공복리에 적합하도록 행사되도록 요구하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사회적’ 통제는 공익의 담지자인 국가의 규제와 사익의 향유자인 개인과 기업의 절제에 의해 실현된다. 한편 국가중심의 계획경제질서는 재산권과 경제활동의 자유를 국가가 규제하는 수준을 넘어 그 실질을 국가가 결정하게 된다는 점에서 대한민국의 경제질서로 용인될 수 없다.
 

경제민주화의 의의에 대한 해석론

대한민국의 경제질서를 사회적 시장경제질서 혹은 수정자본주의적 경제질서로 이해한다고 하더라도 그 내용으로서의 경제민주화가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서는 많은 논란이 제기되고 있는데 크게 세 가지 해석론으로 정리할 수 있다.
첫 번째 해석론은 경제민주화 규정을 단순한 선언적 의미밖에 가지지 아니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이 해석론의 핵심논거는 민주주의의 원리는 정치영역에 한정되는 원리이고 그 외의 경제․사회․문화 영역에는 적용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런 입장은 경제영역에서 각 경제주체의 자유와 권리에는 누구도 침해할 수 없도록 절대적 보호가 필요한 본질적 내용이 있으므로 경제영역에 민주적 통제를 허용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예컨대 이 입장은 근로자의 경영참여권을 보장하는 법제는 기업가의 기업경영이나 인사의 자유의 본질적 내용이 침해되므로 헌법상 허용될 수 없다고 주장하게 된다.

두 번째 해석론은 민주주의에 대한 견해에는 기본적으로 첫 번째 해석론에 동조하면서도 경제민주화 규정이 단순한 선언적 의미를 넘어 사회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입법자의 ‘사회정책적’ 결정권을 확인하는 의의를 가질 수 있음을 인정하는 견해이다. 이 견해에 따르면 근로자의 경영참여권을 보장하는 문제는 민주주의의 원리를 경제영역에 확장하여 근로자의 공동경영권을 헌법적으로 보장하는 의미를 가질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경제영역에서 발생하는 폐해와 부작용을 해결하기 위하여 사회정책적 공공복리를 달성하기 위해 법률상으로는 허용될 수도 있다는 입장이다.

세 번째 해석론은 앞선 두 해석론이 보여주는 민주주의원칙에 대한 제한적 해석론에 비판적일 뿐만 아니라 경제민주화의 규범적 의미에 대하여도 매우 적극적인 의의를 부여하는 견해이다. 우선 민주주의의 원리의 헌법적 적용과 관련하여 민주주의가 정치영역에만 국한된 가치만은 아니라는 입장에 선다. 민주주의는 공동체 구성원의 평등한 지위를 전제로 구성원들의 자율적인 의사소통에 의해 공동체의 의사가 결정되는 헌법원리를 의미한다. 이 원리가 국가권력이 행사되는 과정인 정치영역에 직접적으로 적용되는 원리인 점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국가권력을 중심으로 지배와 타율적 복종을 특징으로 하는 수직적 관계와는 달리, 자유롭고 평등한 주체들의 수평적 의사소통을 전제하는 경제·사회·문화 등 일상적인 개인의 생활영역은 재화의 크기(경제), 자연발생적 사회적 권위의 존재와 그 영향력의 크기(사회 및 문화)에 의해 주체들의 평균적인 의사소통질서가 형성되므로 구성원간의 형식적이고 일률적인 평등에 기초한 민주주의의 원리가 그대로 통용될 수는 없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경제영역에 민주주의 원리가 전혀 적용될 수 없다는 것 또한 수용하기 어렵다. 경제관계가 재화(혹은 자본)의 크기에 의해서만 지배되거나 사회관계가 기성 권위의 크기에 의해서만 설정될 때 헌법의 기본가치인 개인의 인간으로서 존엄과 가치가 본질적으로 훼손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경제적 교섭력의 우위를 무기로 부당한 근로계약을 강요하고 부당해고를 일삼거나 기업의 지속적 발전을 저해하고 시장경제질서를 왜곡하는 방향으로 경영권을 행사하는 것은 경제적 자유의 허용범위를 넘어서는 것이다. 전통적 권위를 내세워 자녀를 학대하거나 구성원의 일방적 희생을 강요하는 사회관계 또한 헌법이 보장하는 자유와 권리의 한계를 벗어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필요하다면 경제적 교섭력이 약한 계층이 단결하여 단체를 결성하고 그 단체의 힘을 통해 경제적 교섭을 함으로써 재화의 크기 외에 사회적 연대를 경제관계를 설정하는 주요한 요소로 삼는 것이 필요할 수 있다.

또한 개별사업장에서 인간의 존엄에 바탕을 둔 근로조건이 형성되는 기업경영형태를 근로자들의 경영참여를 보장하는 방식으로 실현할 수도 있어야 한다. 경제의 민주화는 이처럼 경제영역도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사회적 연대와 인권의 본질적 내용을 보장하는 수단으로써 민주주의적 가치가 적용될 수 있는 여지를 가진다. 다만 그 적용의 조건, 범위, 절차나 방법에 있어 정치영역과 차이를 보일 뿐이다.

필자는 경제민주화의 의미를 선언적인 것으로 치부하거나 경제민주주의를 의미할 수는 없다고 보는 견해가 대한민국 헌법상의 다양한 경제사회질서관련 규정들과 조화롭게 해석되지 않는다고 본다.
첫째로 대한민국 헌법은 경제사회질서와 관련하여 다원주의에 입각하고 있다는 점을 적극적으로 새길 필요가 있다. 근로자는 헌법 제33조에 의하여 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이라는 근로3권을 기본권으로 보장받고 있을 뿐만 아니라, 국가는 또 다른 경제주체인 농·어민과 중소기업이 자조조직을 육성하고 그 자율적 활동과 발전을 보장할 헌법적 의무를 부여받는 한편, 소비자보호운동을 보장할 헌법적 의무를 부여받고 있다. 경제정책결정과정에 대한 경제주체들의 참여를 위한 필요조건인 자율적 경제조직의 헌법적 보장을 명문화하고 있는 것 이상으로 경제민주화 규정을 헌법적으로 뒷받침할 수 있는 수단은 상상하기 힘들다.

둘째로 재산권의 내용과 한계를 결국 정치적 결정과정의 산물인 법률에 의해 정하도록 하고 있고 재산권의 행사가 공공복리에 적합하도록 명시적인 의무를 재산권자에게 부여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공공필요에 의해 재산권 수용이 가능하도록 하고 있는 점(헌법 제23조), 나아가 비상사태의 경우 사영기업의 국유화를 가능하도록 하고 있는 점(헌법 제126조)에서 볼 때 경제민주화 조항을 선언적 의미로 파악하거나 경제영역의 민주주의가 아닌 사회정의실현의 수단정도로 파악하는 태도를 수용할 수 없다.

결국 헌법상 경제민주화는 경제영역에 있어 거대기업가, 중소기업가, 근로자, 소비자, 농어민 등 다양한 경제주체들이 과도한 경제적 불평등관계를 해소하기 위해 개별 경제관계나 국민경제적 차원에서 서로 협의하고 이해관계를 조정할 수 있도록 국가가 일정한 조건을 형성하는 것을 의미한다. 경제민주화가 개별 경제관계에서 나타나는 경우는 기업차원의 근로자의 공동결정권을 인정하는 정책을 들 수 있고, 국민경제 차원에서 나타나는 경우는 노사정협의회와 같이 국가경제정책 수립과정에서의 공동결정의 형태로 나타난다.

경제민주화 조항의 적극적 해석론의 전제와 한계

경제민주화 조항에 대해 유보적인 견해와 적극적인 견해의 차이는 경제질서에 있어 국가의 역할과 기능에 대한 입장의 차이라는 철학적 기반에서 유래한다. 개인과 기업의 자유와 창의에 초점을 두다보면 자유방임형 경제질서에 수렴되는 경제질서를 지향하게 되고 국가의 경제규제와 조정은 긍정적 측면보다는 부정적 측면에서 평가되는 경향이 있다. 반면 경제민주화에 대한 적극적 의의를 부여하는 경향은 경제영역의 민주화를 통해 정치적 민주화를 보다 높은 수준으로 고양시키고 국민경제의 균형적 발전을 추구하는데 보다 많은 가치를 부여하며 국가를 이런 목표를 실현하는데 필수불가결한 존재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하다. 따라서 경제민주화 조항을 적극적으로 해석하더라도 몇 가지 유의할 점이 있다.

첫째로 경제민주화를 반드시 실시하도록 헌법이 강제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경제민주화에 실질적 의미를 부여하기를 꺼려하는 이유는 재산권과 경제활동의 자유에 대한 과도한 규제로 이어질 것을 걱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경제민주화의 내용은 국민주권의 원리에 따라 민주적 과정 속에서 자유롭게 결정될 수 있다. 예컨대 근로자의 경영참가를 반드시 실시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제119조 제2항이 국가가 경제민주화를 위해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고 하였을 뿐 “하여야 한다”고 강제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둘째로 헌법에 부합하는 국가조정형 사회적 시장경제질서에 부합하는 국가의 위상은 그 긍정적 기능을 존중하면서도 그 부정적 기능에 대한 통제를 인정하는 것이라야 한다. 이러한 균형적 접근법이 선결과제로 전제하는 것은 경제민주화의 요소인 경제주체의 자조조직 스스로가 민주적이어야 하며 헌법적 가치를 존중하여 사회에 대한 책임에 충실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경제정책결정과정에서 경제주체의 자조조직의 참여를 인정하거나 기업차원에서 근로자의 경영참가를 허용하는 입법을 도입한다면 그에 대한 전제조건은 이 자조조직이 내부적으로 민주적 의사결정을 가지고 구성원의 참여권을 보장하면서 그 조직과 활동이 투명하고 합리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자율권의 명분으로 외부적 통제를 거부하는 폐쇄적인 조직과 운용을 하는 상황에서는 이들 조직의 공적 의사결정과정과 사적 의사결정과정에의 참여권을 보장해 줄 수 없다. 굳이 명명하자면 이들 자조조직의 ‘공적 책임하의 자율권’(publicly responsible self-regulation)이 경제민주화 조항의 적극적 해석을 가능하게 하는 충분조건이다. 이러한 공적 책임하의 자율권은 조합주의적 경향을 인정하는 경제민주화 조항의 적극적 해석론이 소홀하기 쉬운 비조직화된 소외계층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전제이기도 하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예를 들어, 정규직을 전제로 하는 노조에만 교섭력이 인정되고 비정규직의 결사권과 교섭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지 않을 때 경제민주화의 적극적 해석론에 바탕을 둔 경제입법은 왜곡된 경제질서를 낳는 부작용에 직면할 수 있다.

셋째로 정치민주화를 확고하게 구축하는 것도 경제민주화의 적극적 해석과 긴밀히 연계되어 있다. 만약 일상적인 대의민주적 정치과정에 경제사회적 수혜계층의 의사가 충실히 반영될 수 있도록 정치민주화가 높은 수준에서 달성되고 있다면 직접적으로 근로자 등 경제주체의 경제정책에 대한 공동결정제를 도입할 필요성은 상대적으로 높지 않을 것이다. 한편 국가의 정치민주화는 국가가 대기업 등 거대민간조직에 포획됨으로써 정경유착이나 관치경제로 귀결되는 것을 막는 방파제 역할을 하기도 한다.
 

 

법학전문대학원 김종철 교수 

<자료사진 우리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홈페이지,
이코노빌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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