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의 아버지’ 애덤 스미스는 그의 저서 『국부론』에서 구성원들이 각자 주어진 경제적 상황 아래서 합리적으로 행동을 하면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시장경제는 자연스럽게 균형 상태에 도달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은 점차 의문에 부쳐지게 됐다. 자본주의에 대해 통렬한 비판을 가했던 독일의 경제학자 마르크스는 『경제학ㆍ철학 수고』에서 “소수의 수중에 자본이 집중되는 결과를 낳게 하는 축적은 여러 자본들이 아무런 규제없이 방임되어 있는 경우에는 하나의 필연적인 결과이다”라며 자유경쟁은 독점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대기업은 대량으로 원료를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고 토지나 생산설비 등의 고정자본을 대규모로 소유하기에 중소기업과의 경쟁에서 항상 우위에 서며 이는 소수 기업의 독점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이러한 마르크스의 주장은 대공황 등을 거치며 상당한 설득력을 얻게 됐으며 이에 따라 유럽과 미국 등지에서는 공정거래법 등을 도입해 독점을 완화하려는 움직임이 생겨났다.

우리나라에서는 대기업이 자유경쟁이 아닌 국가가 주도해 소수 기업에 집중적으로 투자하는 경제정책에 의해 생겨났다는 점에서 서구의 경우와 차이를 보인다. 그렇지만 대기업이 주가 되는 경제구조에 대한 국가의 개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생겨나고 있다는 점에서는 서구와 비슷한 상황에 놓여있다고 할 수 있다. 이에 지난 2013년 취임한 박근혜 정부는 대기업 위주의 경제질서를 바로잡고자 ‘경제민주화’라는 기조아래 규제 개혁을 단행했다. 그리고 경제민주화를 실현하기 위해 폭 넓은 경제활동을 추구하려고 노력해왔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의 경제민주화 정책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박근혜 정부의 경제민주화 정책이 대기업 위주의 경제구조를 개편하는 데에 유효했는지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이와 함께 박근혜 정부의 경제민주화정책이 기업의 활동을 옥죄는 족쇄로 작용했다는 지적도 상당하다. 총체적 난국에 부딪힌 박근혜 정부의 경제민주화 정책, 이 위기에서 경제민주화 정책이 나아가야 할 방향은 무엇일까?

경제민주화란 무엇인가

박근혜 정부의 대표적인 키워드인 창조경제와 함께 또 다른 정책의 화두는 바로 경제민주화이다. 경제민주화는 19세기 사회주의자들이 ‘부의 평등화’라는 뜻으로 처음 사용한 개념이다. 우리나라에서 경제민주화라는 개념은 지난 1987년의 정치민주화 이후 경제부문에서도 민주주의적 가치를 실현해야 한다는 주장 하에 등장하게 됐으며 박근혜 정부 취임 이후 경제정책의 중요한 지향점으로 작용하게 됐다.

정부가 말하는 경제민주화란 경제발전 과정에서 대두된 시장경제의 비대칭을 바로잡고 경제주체 간의 공정한 분배와 조화를 이루기 위한 규제와 조정이라고 할 수 있다. 김정호 특임교수(경제대학원ㆍ경제학)는 “어느 정도의 경제성장은 이루어졌기에 분배를 요구하는 의견이 여론의 주류를 이루게 되었다고 생각한다”며 경제민주화가 사회의 화두로 등장한 배경을 설명했다. 1960년대 이후 신속한 경제성장을 이뤄야 한다는 절박함에 직면한 정부는 한정된 자본을 보다 효율적으로 투자해야 한다는 목표에 따라 소수 기업을 중점적으로 육성하는 경제정책을 펴게 됐다. 이러한 경제정책은 빠른 경제성장이라는 소기의 목적은 달성했으나 이에 따라 자연스레 시장경제 질서가 주요 대기업들에게 편중되기 시작했다. 대기업들의 시장지배력은 점차 커지면서 중소기업과 소상공인들을 위한 시장은 점차 줄어들었고 정경유착이나 불공정한 유통관행 등의 폐단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결국 균형있는 경제의 성장과 공정한 경제질서의 확립을 위해 경제주체 간의 불평등을 해소하는 경제민주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게 된 것이다.

경제민주화와 경제활성화는 반대다?

지난 19일 국회 경제분야 대정부 질문에서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은 경제민주화 문제를 놓고 날선 공방전을 벌였다. ‘세월호 여객선 침몰사건’으로 소비자들의 소비의욕이 위축되면서 경제침체가 우려되고 있다. 이에 새누리당은 경제민주화 정책의 시행은 접어두고 기업들에 대한 규제완화로 우선 침체된 우리 경제를 활성화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새정치민주연합은 경제침체에 대한 활성화가 아닌 우리 사회의 불공정한 질서를 빨리 타파하고 서민과 중소기업들이 상생할 수 있는 경제민주화를 실현해 나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일차적으로 경제활성화는 규제완화를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대기업에 대한 규제강화를 골자로 하는 경제민주화와 상충된다고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경제민주화가 경제활성화를 위한 장기적인 정책일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이제민 교수(상경대·경제발전론)는 “기존의 대기업 중심으로 수출하는 경제구도는 이제 한계가 왔다”며 “경제민주화 정책의 시행을 통해 중소ㆍ벤처기업이 중심의 경제구도로 옮겨갈 필요가 있다”고 자신의 견해를 드러냈다. 실제로 창업장려나 세제혜택 등의 경제민주화 정책을 통해 ‘미텔슈탄트(Mittelstand)’라 불리는 강소기업을 육성한 독일이 2009년의 외환위기에도 낮은 실업률과 높은 경제성장률을 기록한 점을 볼 때 중소기업 위주의 경제구도로 전환할 필요성은 충분하다. 그렇기에 경제민주화는 경제활성화를 잠시 접어두고 시행되는 정책이 아닌 장기적인 시각으로 봤을 때 경제활성화를 위한 정책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가 말하는 경제민주화

경제민주화는 박근혜 대통령의 핵심 공약이었던 만큼 박근혜 정부의 경제정책에 있어 핵심적인 목표로 작용했다. 그렇다면 박근혜 정부는 실제로 어떤 경제민주화 정책을 추진해왔을까? 지난 2013년 징벌적 손해배상제 확대, 일감 몰아주기 규제, 신규순환출자 금지 등 총 7건의 경제민주화 과제가 입법 처리됐다. 이렇게 국회를 통과한 법안들은 오는 7월 25일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이러한 박근혜 정부의 경제민주화 정책에 대해 전문가들은 전반적으로 부정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다. 이 교수는 “불공정한 유통관행 개선 등과 같은 성과도 있지만 박근혜 정부가 약속했던 것만큼 경제민주화 정책을 시행하지 못한 것은 사실”이라며 “재벌의 힘이 상당히 강했고 정책을 꼭 실현하려는 정부 차원의 의지가 그다지 강하지 못했다”고 그 이유를 제시했다. 또한 김 교수는 “어느 나라도 우리나라처럼 중소기업 적합업종이나 순환출자 금지 등으로 기업의 손발을 묶지 않는다”며 “중소기업의 경쟁력을 키워서 해결해야 할 문제를 경쟁력 있는 기업의 손발을 묶어서 해결하려고 한다”고 무리한 경제민주화 정책의 추진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드러냈다. 이렇듯 박근혜 정부의 경제민주화는 원래 취지를 제대로 살리지 못했고 여러 부작용을 나타내고 있으며 개선이 필요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대학생들이 생각하는 바람직한 경제민주화,
그리고 나아가야 할 길

경제주체가 될 우리 대학생은 경제민주화에 대해 어떤 시각을 가지고 있을까? 김철홍(법학ㆍ08)씨는 “우리나라 경제의 대기업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대기업의 편의를 계속 봐줘야 하는 것은 아니다”며 “대기업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며 모두가 상생할 수 있는 길을 여는 방향의 개혁이 필요하다”고 경제민주화 구호에 대한 긍정적인 의견을 밝혔다. 반면 경제민주화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도 상당하다. 임계원(경제ㆍ13)씨는 “경제민주화는 당연히 시행돼야 하는 정책이지만 이를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은 선거에서 표를 얻으려는 포퓰리즘이라고 생각한다”며 경제민주화라는 단어가 남용되는 경우를 경계하는 의견을 드러냈다.

이 교수는 “경제민주화 자체는 바람직한 목표지만 이에 대한 올바른 해석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물론 우리나라 경제 환경에서 오랫동안 만연해 왔던 불공정한 관행과 이른바 주요 기업에 대한 ‘봐주기식’ 규제 정책은 반드시 근절돼야한다. 하지만 정부가 경제민주화의 본질을 망각하고 국민의 지지를 얻기 위한 무리한 정책을 시행한다면 전체적인 기업의 경영환경의 위축은 물론 전체적인 서민경제까지 위협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따라서 경제민주화의 의미와 나아갈 방향에 대한 지속적인 논의가 필요하다.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민주주의적 가치는 비단 정치적 측면에서 뿐만 아니라 경제적 측면에서도 해석되고 적용돼야 한다. 정치민주화가 앞선 세대의 시대적 과제였다면 앞선 세대가 많은 희생을 치르며 쟁취한 민주주의의 가치를 계승하고 이를 경제의 영역으로 확장시켜 나가는 것, 즉 경제민주화는 2000년대를 살아가는 대학생들에게 주어진 과제이다. 경제는 삶과 아주 밀접하면서도 중요한 관계를 이루는 사회적 관계의 총체이기에 그 중요성은 정치민주화에 비해서 결코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경제민주화를 단순한 규제강화 등으로 이해하는 태도는 경계해야 하며 나아갈 방향에 대한 고민은 계속돼야 한다. 그렇기에 ‘경제민주화’는 정부 관료들의 문제가 아닌 우리 모두의 문제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김민섭 기자
minseob2580@yonsei.ac.kr
감범경 기자
bicky0808@yonsei.ac.kr
그림 박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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