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산 자락에 자리잡은 그곳에 다녀오다

 '벌써 5월 다 지나가네…', '아 여행 가고 싶은데 시간이 안 난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여기를 주목해라. 서울 도심에서 생명력이 충만한 초여름의 싱그러운 자연을 마음껏 느낄 수 있다. 바로 도심 속으로의 여행, 성북동 투어! 성북동의 번지르르한 건물들 사이에서 여행하면 자연을 제대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자! 여행을 시작해보자.

바람 따라 풍기는 풀 향기, 최순우 옛집*

4호선 한성대입구역 5번 출구로 나와 성북 03번 버스나 지선 1111번, 2112번 버스를 타고 홍익사대부중·고에서 내리면 ‘최순우 옛집’으로 가는 이정표가 보인다. 이때 주의할 점은 정류장 사이의 간격이 꽤 짧아서 노래를 들으며 풍경을 만끽하다 보면 어느새 내릴 곳을 놓칠 수도 있다는 것. 그러니 풍경은 감상하되 이어폰은 저편에 두고 안내방송에 집중하길!
혜곡 최순우는 미술사학자이자 4대 국립 중앙박물관장으로 우리나라 박물관 발전에 크게 기여했을 뿐만 아니라 한국의 미를 재발견하고자 노력했다. 최순우 옛집도 인근 지역의 재개발 추세로 한때 허물어질 위기에 처했었으나 한국내셔널트러스트**에서 시민 성금으로 매입해 현재는 재단법인 내셔널트러스트 문화유산기금으로 관리‧운영되고 있다.
최순우 옛집에 발을 들여놓자마자 아름다운 정원이 눈앞에 펼쳐졌다. 직접 모은 물건과 마당의 나무, 석물들을 보고 있노라면 그가 자연과 가까운 생활을 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만약 당신도 그의 저서 『나는 내 것이 아름답다』를 읽고 이곳을 찾는다면 뜰에 있는 꽃, 나무, 풀 향기와 함께 그의 목소리가 들려올 것이다. 현판 또한 단원 김홍도의 글씨로 한 글자 한 글자 획의 미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법정스님의 무소유를 실천하고 있는 길상사

길상사는 길상화(법명) 김영한씨가 법정스님의 무소유를 접하고 감동받아 당시 음식점이던 대원각 건물과 부지 등의 부동산 일체를 기증해 만들어진 곳이다. 잠깐! 이곳에 참배하기 전 주의사항이 있다. 지나치게 노출이 심한 옷(민소매, 짧은 치마 등)을 입거나 슬리퍼를 신고는 경내에 들어갈 수 없다. 또한 애완동물을 데리고 들어가거나 자전거를 갖고 들어가는 것, 안에서 음식을 먹는 것도 안 된다.

이 순간을 헛되이 보내지 말라.
이런 순간들이 쌓여
한 생애를 이룬다.
날마다 새롭게 시작하라.
묵은 수렁에서 거듭거듭 털고 일어서라.
- 법정스님

석가탄신일을 맞이해 형형색색의 연등으로 꾸며진 사찰은 기자의 눈을 사로잡았다. 이 연등에 한 번 기원문을 달아볼까 시도했지만 가난한 대학생인지라 3만 원이 부담스러워 결국 포기했다. 대신에 사람들은 어떤 바람을 적었는지 눈으로 읽었다. 그곳에는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의 극락왕생을 염원하는 흰색등도 같이 있어 안타까움을 더했다.
길상사에는 종교 간의 화합·교류를 의미하는 석조물들이 많다. 먼저 흰색등 옆에 길상7층보탑이 자리 잡고 있는데 이 탑은 조선 중기에 건립된 것으로 길상사와 성북성당, 덕수교회가 무상으로 기증한 것이라고 한다. 또 다른 작품은 성모 마리아를 닮은 관세음보살상! 관세음보살은 자비로 중생을 구제하고 왕생의 길로 인도한다는 불교의 보살로 천주교신자인 조각가 최종태 씨가 만들었다. 사찰에 천주교 색채를 지닌 불상이 있다는 것이 인상적이지 않은가!
참배를 한 뒤 본격적으로 길상사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이곳저곳에 작은 부처들의 조각상이 놓여있고, 신도와 스님들을 위한 수행실도 마련돼 있었다. 기자는 불교신자가 아니지만 숲 그늘 아래서 명상을 하니 일상의 스트레스가 치유되는 듯했다.

한용운의 의지가 녹아있는 심우장

민족시인인 만해 한용운은 1919년 3월 1일 일본의 식민지배로부터 우리나라의 독립을 선언한 민족대표 33인 가운데 한 사람으로, 우리에게는 『님의 침묵』의 작가로 잘 알려져 있다. 그가 살았던 ‘심우장’은 그 이름이 깨우침을 찾아 수행하는 과정을 소를 찾는 일에 비유한 불교 설화에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
심우장은 대로변에 설치된 만해의 동상을 보고 금방 찾을 수 있다. 손을 꽉 쥔 채 행인들을 보고 있는 만해는 마치 그의 사상이 후대에 전해지길 기원하는 듯 강렬한 눈빛을 뿜는다. 한참 동안 그의 햇볕 아래에서 동상을 보고 있으니 땀이 나 얼른 심우장에 올라가 더위를 식힐 생각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이런 기자의 생각을 비웃기라도 하듯 가파른 돌계단을 계속 올라가야 했다. 가장 뜨겁다는 낮 3시의 햇빛 아래서 올라가자니 숨이 턱턱 막혔다. 하지만 기자의 눈을 사로잡은 것이 있었으니 바로 벽에 재개발과 관련한 낙서와 함께 펄럭이는 태극기! 태극기가 심우장으로 가는 길을 알려주는 것 같았다. 당신도 태극기를 따라가다 보면 심우장 문 앞에 도착할 수 있을 것이다.
심우장은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만 관람이 가능하다. 하지만 기자는 낮 3시에 도착했음에도 불구하고 심우장 안은 전체적으로 빛이 안 들어와 어두웠다. 즉 심우장은 일반적으로 잘 짓지 않는 북향집이라는 것! 이는 남향으로 집터를 잡으면 조선총독부와 마주 보게 돼서 이를 거부한 만해의 의지라고. 전체 규모가 5칸이 넘지 않는 작은 집이지만 그 나름대로의 소박하고 검소한 그의 면모를 찾아볼 수 있었다.

자연과 성곽이 어우러진 북정마을

심우장을 나온 기자의 눈을 사로잡은 것이 있었으니!

알림. 위로 조금만 올라오시면 성곽과 마을이
아름다운 북정마을과 북정미술관이 있습니다.
안보고 가시면 평생 후회 하실 것입니다.
- 북정마을 주민 일동-

이 글을 보고도 누가 지나칠 수 있겠는가! 심우장에서 더위를 식힌 기자는 당장 북정마을로 발걸음을 옮겼다. 성곽과 자연이 어우러진 이곳은 곳곳에 벽화와 성북동의 상징인 성북동 비둘기가 그려져있다. 뿐만 아니라 벽면에 가죽 주머니를 설치해 식물들이 자랄 수 있도록 자연친화적인 환경을 조성해 놨다. 북정미술관에는 성북동의 과거부터 현재까지의 모습이 사진으로 전시돼 있다. 당신도 그곳에서 성북동의 변화된 모습을 두 눈으로 확인해보시길.
이 외에도 성북동은 조선시대에 새우젓 장사로 갑부가 된 이종석의 별장, 의친왕이 살던 별궁의 정원인 성락원, 『달밤』, 『황진이』 등의 문학작품을 집필한 상허 이태준의 가옥 수연산방, 매년 음력 3월의 길한 사일(뱀날)에 누에농사의 풍년을 빌던 곳인 선잠단지 그리고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사립박물관이자 국보 70호인 훈민정음 해례본이 있는 간송미술관***등 가볼만한 곳이 많다.

하루 날 잡고 우리의 역사가 남아있는 성북동일대를 돌아다녀보는 것은 어떨까. 기자가 다닌 코스는 약 3시간 정도 걸렸다. 바쁘게 보낸 후 찾아오는 꿀 같은 주말, 도심을 벗어나 북한산의 좋은 공기를 마시며 우리의 역사 발자취를 따라가보자.


* 최순우 옛집 : 최순우 옛집은 4~11월 중 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개관한다. 운영 시간은 아침 10시부터 낮 4시까지. 요금은 무료.
** 한국내셔널트러스트 : 내셔널트러스트란 시민들의 자발적인 모금‧기부‧증여를 통해 보존가치가 있는 자연과 문화유산을 확보하여 시민주도로 영구히 보전‧관리하는 시민운동이다. 최순우 옛집은 한국내셔널트러스트에서 관리하고 있다.
*** 간송미술관 : 한국 최초의 민간 박물관으로 국보와 보물급 문화재가 다수 있다. 올해 간송미술관은 간송미술문화재단 설립 기념으로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에서 오는 9월 28일까지 전시한다고 하니 헛걸음하지 마시길!

글·사진 염지선 기자
jsyeom@yonsei.ac.kr
그림 조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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