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가 앞 오래된 맛집을 찾아가다

 모든 것이 빠르게 변화하고 새롭게 생겨나늠 요즘. 대학가 카페들이나 음식점들 역시 빠르게 사리지고 새로 생기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슬픈 추억일지라도 친한 친구 또는 연인과 함께 했던 혹은 나만의 추억이 깃든 장소를 만들 여유도 없는 오늘날의 우리들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우후죽순으로 생겨나는 대기업 프랜차이즈 가게들 사이에서 처음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한 채 지금까지 추억의 장소로 남아있는 곳들이 있다. 신촌의 '미네르바', 혜화 '학림다방' 그리고 숙대입구 '그때 그 호떡'을 찾아가 봤다. 

처음 모습 그.대.로.

 연세로에서 이대 방향으로 난 길을 따라 걷다보면 별과 달이 그려져 있고 ‘미네르바 since 1975’라고 쓰인 간판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미네르바는 주변의 세련되고 높은 건물들 사이에 오래되고 낡은 건물 2층에 위치해있다. 초라한 겉모습과는 달리 카페로 들어서자마자 귀를 정화해주는 편안한 클래식 음악이 들리고 진하고 향긋한 원두의 향이 코를 자극한다. 실내는 짙은 적갈색이 감도는 목재로 기자의 몸을 따뜻하게 감싸주는 듯한 느낌을 준다. 검고 낮은 소파 의자와 붉은 체크무늬 테이블 덮개 그리고 아기자기한 소품들이 미네르바가 신촌에서 보내온 시간이 오래됐음을 말해주는 것 같았다. 지난 2000년부터 현재까지 미네르바를 운영하고 있는 현인선(53)씨는 “사이폰 커피가 제일 유명하다”며 “사이폰 커피는 1975년 미네르바가 생겨난 이후로 지금까지 남아있는 메뉴”라고 기자에게 자신 있게 추천했다. 
 사이폰 커피가 끓는 동안 기자는 현씨와 미네르바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지난 1975년 당시 미네르바는 원두커피전문점으로서 유럽시골풍 카페를 모토로 문을 열었다. 40여 년이 지난 현재까지 그 컨셉에는 변함이 없다고. “왜 다른 카페처럼 리모델링이나 변화를 꾀할 생각을 하지 않았는가”라는 질문에 현씨는 “40여 년간 한자리를 지켜온 만큼 미네르바에서 추억을 만들고 간 사람들이 많다”며 “많은 사람들의 추억이 담긴 장소에 손을 대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러한 현씨의 생각 덕분에 미네르바는 처음 생겨난 모습 그대로를 지금까지도 유지할 수 있었다.
 오래된 만큼이나 이 공간에 담긴 재미있는 이야기들도 많다. 젊은 시절 미네르바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우리대학교를 다녔던 학생이 교수가 돼 돌아온 이야기부터 학생 때 이곳에서 첫 데이트를 했던 젊은 학생들이 부모가 돼서 다시 찾아오고 또 그들의 자녀가 이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는 이야기까지. 미네르바에는 대를 이은 추억들이 전해지고 공유된다. 현씨는 “개인적으로 욕심을 부리면 충분히 현대적이고 세련되게 바꿀 수도 있었지만 이상하게 그럴 수 없었다”고 말한다. 빠르게 변화하는 신촌에서 그러지 않은 것이 스스로도 놀랍다고. 앞으로의 운영에 대한 기자의 물음에 현씨는 “현재 분위기를 해하지 않는 선에서 깔끔하게 유지할 것”이라고 답했다. 변함없이 한자리를 지키며 많은 손님들을 맞이해 온 미네르바는 앞으로도 그 자리 그 모습으로 손님들을 기다릴 것이다. 그렇게 현씨와 미네르바의 추억을 공유하다보니 커피는 모두 내려지고, 클래식 음악도 다시 들리고, 원두향이 진하게 풍겼다. 격자창문 밖 신촌의 모습은 여전히 분주하고 바빴지만 미네르바에서 만큼은 여전히 여유롭고 따뜻함을 느낄 수 있었다.

과거부터 현재까지 예술인들의 공방

 최근 인기리에 종영된 SBS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아래 별그대)’에서 도민준(김수현 분)과 장영목 변호사(김창완 분)가 다방에서 장기를 뒀던 장면을 기억하는가? 또 KBS 예능 프로그램 ‘1박2일’ 서울여행 편에서 나왔던 다방을 기억하는가? 방송에 연이어 소개되면서 유명세를 타고 있는 이 카페! 아니 다방! 바로 혜화에 있는 ‘학림다방’이다. 학림다방은 혜화역 3번 출구로 나오면 보이는 종로약국 옆 허름한 건물 2층에 위치해있다. 미네르바와 마찬가지로 좁고 가파른 나무계단을 올라가 세월이 느껴지는 나무문을 삐그덕~ 하고 열면 지난 1956년 다방의 모습이 눈앞에 펼쳐진다. 복층으로 구성된 다방 내부는 60여 년 전 모습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듯하다. 자리 곳곳에는 20대 대학생들부터 60~70대 어르신들까지 다양한 연령층의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커피와 함께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별그대 속 도민준과 장 변호사가 앉았던 자리에는 드라마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게 외국인 4명이 앉아 사진을 찍고 있었다. 한국에 있는 친구를 만나기 위해 중국에서 온 리밍(23)씨는 “별그대 촬영지였던 이곳을 오고 싶었다”며 “자기가 앉은 곳이 극 중 도민준이 앉았던 자리라 신기하다”고 이곳에 온 소감을 전했다.
 이렇게 방송에 소개돼 유명세를 톡톡히 타고 있는 학림다방은 과거 예술인들과 민주화 운동을 주도하던 학생들이 많이 찾던 다방이다. 지난 1956년 과거 서울대 문리대 맞은편에 문을 연 학림다방은 김지하, 이청준, 천상병 등 걸출한 예술인들의 아지트이자 4·19 혁명 당시 지식인과 독재 저항세력들이 모인 곳이기도 했다. 그러나 역사와 추억이 오롯이 새겨진 학림다방일지라도 이곳 역시 대형 프렌차이즈 카페의 유행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다행히 학생 시절 왔던 중·노년층이 꾸준히 찾아온 덕분에 ‘다방’의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친구들과 커피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던 이의재(65)씨는 “나는 40여 년 전에 성균관대를 다니던 학생이었다”며 “동창들과 함께 꾸준히 이곳을 찾는다”고 말했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노년이 된 후에도 다시 이곳을 찾아온 그들의 모습에서 추억이 가지는 힘이 느껴졌다. 28년째 학림다방을 운영하고 있는 이충열 씨는 “과거의 추억을 더듬으며 이곳을 다시 찾는 분들이 많기 때문에 지금까지 그래왔듯 앞으로도 학림의 모습을 유지하기 위해 힘쓸 것”이라고 말했다. 남녀노소 불문하고 다양한 세대들의 아지트로 사랑받고 있는 학림다방. 지금껏 그래온 만큼 새것들 사이에서 앞으로도 그 모습을 유지하길 바라며 삐거덕거리는 나무문을 밀고 나왔다.

그때 그 호떡의 맛을 잊을 수 없어

 꽃망울을 터뜨리며 꽃놀이를 즐기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요즘. 하지만 봄에게 자리를 내주기 아쉬운 겨울이 기승을 부리는 아침·저녁으로 따뜻한 것을 찾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 숙대입구에 30여 년 간 한자리를 지키며 잠시나마 따뜻함을 전하는 호떡집이 있다. 바로 ‘그때 그 호떡’이다. 기자가 방문 했을 때도 이미 많은 사람들로 둘러싸인 채 쉴 새 없이 호떡이 익어가고 있었다. ‘호떡을 판다’ 하면 대부분 길거리 노점상을 생각하기 쉬운데 그때 그 호떡은 번듯한 가게에 어엿하게 간판까지 달고 있다. 호시탐탐 사장님과 이야기를 할 기회를 엿보던 찰나 모든 손님이 빠지자 기자가 가장 먼저 던진 질문은 “여기서 얼마나 장사하셨어요?”였다. 신상수(71)씨는 “30년 넘었으니까… 정확히 33년 됐네!”라고 답했다. 33년째 숙대입구 앞 한 편을 지키며 호떡 장사를 하고 있는 신씨는 기자에게 이야기를 풀어내기 시작했다. 처음 호떡 장사를 시작했을 땐 작은 노점으로 시작했는데 현재의 건물에 입점한 것은 20년 정도 됐다고. 그때 그 호떡은 원래 꿀호떡만 팔았는데 후에 야채호떡을 개발해 팔기 시작했다. 신씨는 “여학생들이 꿀을 옷에 너무 많이 흘려서 야채호떡을 내가 만든 것이여~”라며 야채호떡에 대한 자부심을 드러냈다.
 신씨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던 중 한 아주머니가 찾아와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아이고~ 잘 지냈어? 다음 달에 우리 딸 결혼해~” “국수 먹겠구먼! 우리 아들은 곧 상견례 해~” 주거니 받거니 두 사람은 자신들의 딸과 아들의 이야기를 나눴다. 15년째 이곳을 방문한다는 황인선(58)씨는 “여기 호떡 파는 사장님이랑 서로 모르는 이야기가 없을 정도로 친하다”며 “호떡을 사러 자주 온다”고 말했다. 30년이 넘게 한 곳에서 호떡 장사를 한 만큼 잊지 못할 사람들도 많다고. 파릇파릇 여대생일 때 처음 호떡을 사먹으러 왔던 학생이 귀엽고 예쁜 딸을 데리고 다시 찾아온 사연부터 오랜 외국생활을 하다가 이곳 호떡의 맛을 못 잊어 귀국 후 또 찾아온 사람의 이야기까지. 이곳 역시 사람들의 사연이, 추억이 담겨 있는 장소였다. 너무 오래 서서 일만 해 다리에 병이 생겼다는 신씨는 “다음 달에 장사를 잠시 쉬고 수술을 받기 위해 입원을 한다”고 말했다. 짧은 시간 인터뷰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신씨는 기자에게 “학생도 열심히 공부하고 많은 일들을 해보길 바란다”며 친할머니 같은 덕담을 했다. 숙대입구 앞 그때 그 호떡에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는 원동력에는 단순히 저렴하고 맛있는 ‘호떡 하나’가 아니라 33년 동안 그곳을 지켜온 따뜻한 ‘정’이 아니었을까?

 우리들의 주변은 여전히 급박하게 돌아가고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들이 마냥 나쁘다고는 할 수 없지만 한 번쯤은 '여유'를 갖고 뒤를 돌아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이러한 추세 속에서 처음 그 모습 그대로를 유지하며 항상 우리를 따뜻하게 맞이해주는 그곳으로 한 번쯤 가보는 것은 어떨까?

글·사진 이준호 기자
bonojuno@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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