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적거리는 종로 속 한적한 운현궁과 우정총국

서울에서 옛 전통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대표적인 장소는 어디일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사동, 삼청동 그리고 북촌의 한옥마을 정도를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꼭 대표적인 명소가 아니더라도 서울 도심 곳곳에서 옛 정취를 느낄 수 있다. 가까운 주변에도 역사적이고 특별한 장소들이 숨어있기 때문. 높게 솟은 고층 건물들,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 그리고 시끄러운 소음 사이에서 오랜 시간 조용히 그러나 꿋꿋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그곳’을 찾아가봤다. 그 첫 번째 장소는 바로 안국역 근처에 숨겨진 ‘운현궁’과 ‘우정총국’이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갈 수 있어요

지하철 3호선, 다양한 사람들이 우르르 안국역에서 내렸다. 혹시 이 많은 사람들 중 한 명이라도 운현궁에 가는 사람이 있을까 싶어 두리번거렸지만 사람들은 모두 너나 할 것 없이 카페나 주변 건물로 들어갔다. 기자는 홀로 4번 출구 근처의 운현궁으로 향했다. 운현궁에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입장권을 사는 것. “몇 년생이냐”는 매표원의 질문에 “93년생”이라고 답하자, 그는 “300원만 주면 된다”며 천 원짜리 지폐를 내민 기자의 손에 700원을 거슬러 줬다. 수백 년의 역사가 담긴 장소를 고작 몇 백 원으로 방문할 수 있다니! 한때는 흥선대원군 이하응의 집이었고, 조선 26대 임금인 고종이 등극하기 전에 살았던 거처인 이곳을 거의 공짜로 구경하는 셈이다.

소소한 매력이 가득한 운현궁

운현궁은 왕실문화의 전당이라는 그 별칭과는 달리 사람들도 별로 없고 휑했다. 주변의 소음과 건물이 낯설게 느껴질 정도였다. 안내판을 따라 ‘이로당’으로 먼저 발걸음을 옮기니 정갈하고 커다란 건물이 보였다. 고종과 명성황후의 안채로 쓰인 이곳은 금남지역으로 바깥 남자들이 쉽게 들어오지 못하도록 미음 자 모양으로 만들어져 있다. 옆에는 또 다른 안채의 역할을 했던 ‘노락당’이 자리한다. 안으로 들어서니 명성황후를 비롯한 옛 여인들의 모형이 관람객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곳에서 명성황후가 왕비 수업을 받고 고종과 결혼식을 하는 장면이 눈앞에 보이는 듯 했다.
감탄사와 함께 음식상을 구경하던 중 옆에서 한 할아버지가 “나도 지금 다시 와보니까 또 감회가 참 새롭네”라며 혼잣말을 했다. 그 할아버지는 60년 전에도 이곳을 방문한 김기문(68)씨다. 그는 운현궁에 대한 애정을 한껏 드러냈다. “내가 1961년도 5월 즈음인가 여기 안국동 44번지에 독립운동가 출신인 방주혁 선생님을 모시고 와서 실제 운현궁 마마께 큰 절을 한 적이 있었거든. 죽기 전에 다시 한 번 와보고 싶어서 왔는데 밖은 온통 건물들 다 세워지고 뭐가 많아졌어도 운현궁만큼은 그대로구만.”
이어 전시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기획전시실 앞에서 한복 체험을 하는 남녀 한 쌍이 다정하게 사진을 찍고 있었다. 이곳을 찾은 경현석(36)씨는 “여자 친구가 인도네시아 사람인데 한복 체험을 하고 싶다고 해서 우리나라의 전통 문화도 직접 보여줄 겸 데려왔다”며 환하게 웃었다. 경씨 옆에서 한복을 곱게 입은 채 수줍게 미소 짓고 있는 데쉬라우마(25)씨는 그 어떤 왕비보다 아름다워 보였다.
 

우정총국에서 짚어보는 ‘우정’의 발자취

많은 사람들이 앞만 보며 걸어가지만 천천히 주위를 살피면 기와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바로 안국역 6번 출구에서 5분 거리에 위치한 ‘우정총국’이다. 당신은 이 장소가 바로 갑신정변이 일어났던 장소라는 것을 아는가. 핫도그 집과 회색 건물들 사이에서 우정총국의 초록 빛깔과 붉은 빛깔이 은은하게 풍겨온다. 옛날 건물답게 큼직한 한옥 지붕에 옛 정취가 가득하다.
우정총국에 가면 새빨갛고 큰 ‘느린 우체통’에 주목해 보시길. 느린 우체통은 사랑하는 이에게 소중한 마음을 1년 후에 전해준다. 편지봉투와 편지지가 무료로 제공돼서 사람들이 좀 더 쉽게 느린 편지를 보낼 수 있다. 느린 편지는 편지를 쓴 날부터 1년 후에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좀 더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또 단돈 6천200원으로 자신이 원하는 사진을 넣은 ‘나만의 우표’도 만들 수 있다. 오랜 시간 전통을 지켜온 우정총국은 그 나름대로 새롭게 사람들에게 역사적인 역할을 해나가고 있다.
우체국과 관련된 다양한 전시품들도 또 하나의 볼거리다.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옛날부터 지금까지의 실제 우표들. 또한 세계의 다양한 우체통의 모습과 우정총국의 역사적 연대기도 볼 수 있다. 우정총국을 찾은 도현지(22)씨는 “늘 책으로만 배우던 보빙사의 사진과 미국과 맺었던 조약이 적힌 옛 문서들을 구경하니 감회가 새롭다”며 “옛 지도들까지 전시돼 있어서 경성에서 실제로 우체통이 설치된 곳이 어디인지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틈새 사이로 정겨움이 어우러지다

우정총국 근처 길가에 위치한 호떡 포장마차들과 액세서리 노점상은 지나가는 행인들의 발목을 잡는다. 좀 더 걸어가니 사람들이 건반을 치며 감미롭게 노래를 부르고 다른 쪽에선 드럼을 리드미컬하게 연주하며 거리 공연을 해 흥을 돋운다. 이런 모습들이 우정총국, 운현궁과 어우러져 소소하고 정겨운 풍경을 만들어낸다. 오늘도 안국역 근처는 바쁜 사람들로 복잡하지만 여전히 운현궁과 우정총국은 조용히 도심 속에서 우리 역사의 한편을 지켜나가고 있다.


글·사진 홍문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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