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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험로드] 보지 마세요, 미각에 집중하세요블라인드 레스토랑 체험기
  • 박진형 기자
  • 승인 2014.03.16 14:50
  • 호수 8
  • 댓글 0

암흑. 요즘엔 대학생들이 잠을 잘 때를 제외하고는 거의 경험할 수 없는 일이다. 우리의 밤은 어느덧 화려한 대학가의 불빛으로 또 새벽까지 공부하는 학생들 머리 위 스탠드의 불빛으로 점점 밝아졌다. 그렇게 우리는 점점 완전한 어둠, 즉 암흑을 잊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건대 앞에는 영화 ‘어바웃 타임’의 남자주인공과 여자주인공이 운명적으로 만나는 레스토랑처럼 암흑의 매력을 이용한 이색적인 레스토랑이 있다. 우리나라 최초, 그야말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식사를 즐길 수 있는 ‘블라인드 레스토랑.’ 그 암흑 속 레스토랑을 기자가 찾아가 봤다.

   
 

건대입구역 3번 출구로 나와 걷다보면 눈에 들어오는 ‘블라인드 레스토랑.’ 지하에 위치해 있는 이곳을 가기위해 계단을 내려가다 보면 한 게시판이 보인다. ‘지겨워 졌거나 싸운 커플’, ‘데이트 장소가 더 이상 없는 커플’, ‘특별한 경험을 해보고 싶은 사람들’ 등에게 추천한다는 말과 함께 불빛이 있는 물건은 일절 갖고 들어가지 못한다고 적혀있는 게시판. 확실히 게시판만 봐도 평범한 곳은 아니었다. 참고로 이 레스토랑에서 추천하는 고객층에는 ‘커플이 되고 싶은 사람들’도 있으니 솔로인 당신 또한 지금부터 두 눈 크게 뜨고 지켜보길 바란다!

   
 

입장부터 신기한, 하지만 아직은 서투른

들어가자마자 블라인드 레스토랑 대표 유승훈(35)씨가 먼저 주는 것은 사물함 열쇠다. 가지고 온 것들, 특히 빛이 나는 물건들은 모두 사물함에 넣어야 한다. 그 후 예약한 시간이 될 때까지 잠시 대기실에서 체스를 하고 있다 보면 곧 유씨의 식당소개가 시작된다. 건대 블라인드 레스토랑은 특이하게 날에 따라 우주여행, 타임머신 등의 ‘테마’가 있다. 식사를 할 때면 테마에 맞춘 배경음악이 나와서 그 분위기를 한층 북돋아 준다. 오늘의 테마는 심해탐험! “마음을 열고 식사시간인 90분간 잔잔한 물소리가 들리는 심해 속으로 가보자”는 유씨의 마지막 소개인사와 함께 식당으로의 이동이 시작된다. 여기서 잠깐! ‘지금부터는 아무것도 안 보일 거예요’라는 한 직원의 말과 함께 또 다른 직원이 꺼내든 아이템, 적외선 안경. 직원들에겐 어둠 속 안내와 서빙을 위한 필수품이라고 한다. 이제 안경을 낀 직원의 어깨에 의지해 앞사람 어깨에 손을 올리고 같이 입장해보자.
겨우 착석하고 나면 일단 어둠에 적응하기부터 시작한다. 정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 기자도 평소 깜깜함을 나름대로 많이 겪으며 살아왔다 생각했는데 진짜 암흑을 겪는 것은 참 오랜만이라는 생각으로 주변을 더듬거리기 시작했다. 자리에 앉으면 일단 포크, 나이프, 숟가락의 위치부터 확인한다. 그리고 조금만 더 더듬거리다보면 앞의 접시와 오른쪽 물컵도 확인할 수 있다. 그 후 접시에 코를 가까이 해서 유심히 냄새를 맡다보면 에피타이져인 샐러드의 드레싱 냄새가 올라온다. 그럼 지금부터 식사시작!은 커녕 당당하게 포크를 찔러 넣은 기자의 손에 들려있는 것은 숟가락. 처음부터 삐거덕대기 시작한다. 그 후 연달아 사람들의 한탄이 들려온다. “음식들이 안 집혀”부터 시작해서 “왜 남들 두 개 있는 닭가슴살을 나는 하나밖에 못 찾은 거야”까지. 암흑 속에서 처음부터 정상적인 식사가 가능할 리 없다. 그래도 식사하던 사람들의 반응은 유쾌했다. 주변 사람들도 ‘불편해도 한 번쯤 해볼 만하다’며 ‘처음 해보는 경험이 신기하고 재밌다’고 식사를 즐기는 모습이었다.
이제 조금 적응됐다 싶으면 본격적으로 파스타와 같은 요리가 나오기 시작한다. 면이다 보니 난이도는 더욱 상승! 파스타도 없이 포크만 돌리기 일쑤고 때로 운이 좋아 잡는다고 해도 자신이 생각했던 양과는 다르게 엄청난 양의 파스타가 입속으로 들어간다. ‘시각장애인의 고충을 알겠다’, ‘보이지 않으니 음식의 맛에 집중하게 된다’, ‘어차피 보이지도 않는 거 그냥 더럽더라도 어떻게든 먹자’ 등등 다양한 반응들이 터져 나온다. 특히 같이 식사를 하던 이아무개씨는 “평소 파스타의 모습을 보느라 느끼지 못했던 맛을 알 수 있게 된다”며 “미각에만 집중해서 먹었는데 파스타가 정말 맛있다”고 들뜬 소리로 말했다.

   
 

암흑이란 어려움 속에서도 새롭고 재밌는

파스타 먹는 것도 익숙해질 무렵 이제 옆의 사람을 먹여주는 여유가 (물론 식사가 끝나고 옷에 소스가 튄 것을 보며 후회는 하겠지만) 생길 수도 있다. 특히 당신이 커플이라면 이런 일을 해도 암흑 속에서 마음 아파하며 지켜볼 솔로는 없으므로 실컷 꽁냥대도 좋다. 물론 솔로들이 가만히만 있을 수는 없는 법. 보이지 않아도 커플들의 ‘꽁냥댐’이 느껴지는 솔로들이라면 커플들의 음식을 몰래 뺏어 먹어도 보자. ‘꽁냥댐’이든 ‘질투’든 이 모든 것이 어차피 암흑 속 레스토랑의 소소한 재미 중 하나이니까 말이다.
식사를 하다보면 잔잔한 음악이 잠시 멈추고 방송으로 참참참 게임으로 소원내기를 해보라는 말이 나온다. 하지만 어둠 속에서 참참참을 어떻게? 방법은 간단하다. 두 사람이 서로 왼손을 잡고 남은 오른손을 서로의 볼에 댄다. 그 후 참참참을 외치며 한 쪽은 왼손으로 방향을 결정하고 상대방은 고개를 돌린다. 볼에 손을 대고 있어 결과는 쉽게 알 수 있다. 가벼운 스킨십과 함께 소원내기도 할 수 있는 그야말로 커플의, 커플에 의한, 커플을 위한 게임이다.

보이지 않아도 믿을 수 있는,
보이지 않기에 알 수 있는 그 맛

암흑을 즐기다 보면 메인메뉴가 나온다. ‘블라인드 레스토랑’이라는 말을 들으면 항상 사람들이 걱정하는 것 중 하나가 본 요리의 맛. ‘안 보인다고 대충 만들지 않을까?’라는 걱정은 누구나 들 것이다. 하지만 유씨는 “요리의 맛을 우선적인 요소로 생각해 직접 주방장들을 엄선해 요리의 품질을 높였다”며 이런 걱정을 일축했다. 오늘의 메인메뉴인 닭 바비큐 스테이크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어둠 속에서 헛나이프질을 하긴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스테이크는 부드럽고 감칠맛이 났다. 오히려 암흑 속에서 예민해진 미각 덕에 이런 요리의 맛을 좀 더 정확하게 즐길 수 있었다. 어둠 속에서 기습적으로 들어와서 살짝 당황스러웠던 양파와 마늘도 잘 구워진 상태라서 맛있게 먹어줄 마음이 생겼다.

   
 

기념과 추억이 남는 한 끼의 특별한 식사

식사가 끝나갈 무렵 머리 위에서 손님들이 미리 신청한 사연이 방송으로 흘러나온다. 2년차 직장인 커플의 사랑 이야기 같은 훈훈한 사연들이 암흑 레스토랑의 분위기에서 최고의 빛을 발한다. 비록 사연 속 주인공들이 어디 있는지, 누구인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그들에겐 오늘이 많은 사람들에게 축복받은 날인 동시에 둘만 아는 특별한 날이 될 것이다.
방송이 끝나고 직원들이 디저트와 동시에 메모지와 펜을 건넸다. 같이 식사한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적고 가면 나중에 블라인드 레스토랑 방문객 후기 게시판에서 확인할 수 있다고 한다. 어둠속에서 적혀진 편지라 비록 삐뚤빼뚤하긴 하지만 그래도 또 하나의 추억거리로 남는다. 들어갈 때와 비슷한 방법으로 레스토랑에서 빠져나온 후 직원이 찍어주는 사진 한 장과 함께 식사는 진짜 끝이 나게 된다.

시작과 끝인 어둠, 그로인한 특별한 경험과 변화

‘사람은 어둠으로 시작해 어둠으로 끝맺는다.’ 식사가 마무리 될 쯤 나온 방송의 일부다. 깜깜한 자궁 속에서 태어나 결국 눈을 감아 어둠으로 돌아가는 사람에게 어둠은 시작이자 끝이라는 것이다. 어둠 속에 들어왔다가 다시 벗어났을 때, 끝에서 다시 시작으로 이어지는 이 경험을 통해서 주변사람들과의 관계에 무언가 새로운 변화가 있기를 블라인드 레스토랑은 바라고 있는 듯했다.
유씨는 이곳에 대해 ‘전 세계적으로 몇 개 없는 블라인드 레스토랑에서 최고의 이색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라 말한다. 다양한 후기들이 이 말이 결코 거짓말이 아님을 보여주고 있다. 혹시 지금 당신이나 주변사람이 뭔가 색다르고 특별한, 그리고 길이 기억될 추억을 만들고 싶은가? ‘일상’이란 말이 이젠 지겨운가? 그렇다면 우선 지금 밥 한 끼부터 특별하게 바꿔보자. 마치 30분 같은 90분의 식사가 될 암흑 속 레스토랑으로 가보자.

박진형 기자
pjhy928@yonsei.ac.kr

<자료사진 블라인드레스토랑> 

박진형 기자  pjhy928@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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