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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너의 길을 걸어라, 그리고 사람들이 말하도록 내버려두어라.청년 이한준의 드림리스트 정복기
  • 남채경 기자
  • 승인 2014.01.18 18:52
  • 호수 7
  • 댓글 0
지난 한 해 동안 당신은 자신과의 약속을 얼마나 잘 지켰는가? 2014년을 맞아 다시 계획 세우기에 열중한 채 지난 실패의 기억을 잊은 당신에게, 여기 그 누구보다도 꿈을 이루고자 노력하는 한 청년을 소개한다. 바로 우리대학교 이한준(정경경제·13)씨다. 이씨는 자신과의 약속을 ‘드림리스트’라는 목록으로 만들고 이를 완성할 구체적인 날짜까지 정해 지킨다. 과연 그의 드림리스트에는 어떤이야기가 담겨있을지 지금부터 살짝 들여다보자.
Q. 처음 드림리스트를 세우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었는지 궁금하다. 이와 관련해 이야기해 달라.
건강상의 이유로 고등학교를 중퇴한 이후 많은 방황의 나날을 보냈다. 하지만 마음을 다잡고 대학입학을 목표로 삼으면서부터 ‘계획 세우는 습관’을 만들어 나가기 시작했다. 이때 몸에 배인 습관이 이후 드림리스트를 시행하는데 큰 도움이 됐다. 드림리스트를 만들기 시작한 것은 병역의 의무를 다하고 24살의 늦은 나이로 대학에 입학하고 나서다. 생각이 많던 그 시기에 나는 돈에 모든 관심이 집중된 세상을 바꾸고 싶었고, 또 내가 좋아하는 것을 통해 나의 젊음을 보여주고 싶었다. 버킷리스트가 아닌 드림리스트라고 부른 이유는 살면서 단순히 하고 싶은 것들이 아닌 후회 남지 않는 하루를 살기 위해 세운 목표들이기 때문이다.
Q. 벌써 많은 드림리스트를 달성했다고 들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무엇인가?
아무래도 장기간 계획했던 것들이 기억에 많이 남는다. 쉽게 도전할 수 없었던 과제였던 만큼 더욱 상당한 노력을 들여야 했다. 바로 36일간의 유럽일주, 자전거 국토종주, 마라톤 풀코스 완주다. 한 가지도 하기 힘들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난 이 세 가지 꿈을 모두 지난해 이루었다. 방법은 간단하다. 이루고 싶은 꿈이 생겼을 때 생각에 머물지 않고 구체적으로 계획하는 것이다. 주변의 많은 친구들이 무작정 도전은 하지만, 이내 좌절하는 모습을 보며 안타까움을 느꼈다. 단순히 도전하는 것에 의미를 두지 말고, 꿈을 이루기 위해 진정으로 노력할 때 목표에 한걸음 더 다가간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Q. 적지 않은 학생들이 방학이면 해외로 배낭여행을 떠난다. 이한준 씨의 유럽배낭여행은 조금은 다르다고 들었는데 어떤 점이 다른지 말해 달라.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행을 계획할 때 “대영박물관은 3시간이면 충분하다”는 식의 여행기나 블로그 글에 의존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어떤 것을 충분히 보고 느끼는 시간은 개인마다 천차만별이다. 단순히 타인의 경험에만 의존해 자신의 여행을 계획하는 것이 매우 안타깝다. 그래서 나는 이번 여행은 철저히 ‘자유’에 초점을 둔 채, 계획을 간소화했다. 스스로 그 무언가를 원하는 순간에 집중하기 위해서다. 나그네처럼 자유롭게 36일 동안 유럽 곳곳을 떠돌았다. 반 고흐의 그림이 너무 좋아 하루종일 그 앞에서 사색의 시간을 보내기도 하는 등 말이다. 그래도 매일 머문 장소에서의 느낌을 일기로 기록하고 그곳에서 만난 많은 사람들의 사인을 받음으로써 소통의 흔적을 남기고자 노력했다.
Q. 콜로세움, 에펠탑 등의 명소에서 각각 5일이라는 적지 않은 시간을 보냈다고 들었다. 굳이 5일이라는 시간을 계획한 특별한 이유라도 있는가?
지난 2013년 7월 4일 설렘을 가득 안고 유럽으로 향한 나는 각 장소마다 나만의 특별한 추억을 만들고 싶었다. 대표 명소마다 5일씩 머무르며 시간대별로 달라지는 모습을 종일 만끽했다. 때론 주변의 시가지도 들러보면서 말이다. 에펠탑 앞에서 사진을 찍고 한 번 올라보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낮이면 유럽을 대표하는 관광지로서 사람들이 북적거리고 밤이면 화려한 빛의 향연을 선사하는 에펠탑의 여러 모습을 발견할 때 진짜 여행은 시작된다. 또한 에펠탑에 오르기보다 파리 시가지 언덕으로 가 에펠탑을 내다보는 것도 한 가지 팁이다.
Q. 유럽 배낭여행에서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서울에서 부산까지 ‘자전거 국토종주’를 했다고 들었다. 그 과정에 대해 이야기해 달라.
보통 전문 자전거로 국토종주에 도전하지만, 이와 달리 나는 귀국 후 10만 원짜리 자전거로 조금은 무모한 꿈을 계획했다. 꿈을 이루는 데에 있어 도구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시작하기도 전에 완주를 의심했지만 지금 이 순간 내가 하는 일이 옳다는 믿음에 의지해 자전거에 몸을 싣고 서울을 떠났다.
여정 중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해발 548미터에 달하는 문경새재의 이화령이다. 힘겹게 이화령을 넘었을 땐 폭우가 내렸다. 미끄러운 거리를 달리는 것은 상당히 위험한 일이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마지막 날에는 25시간 동안 무려 202km를 달렸다. 온몸에 성한 곳 하나 없었지만 ‘부산’이라는 표지판을 봤을 때 그 어떤 고통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 순간의 승리감이란 말로 표현 할 수 없을 정도로 달콤했다.
Q.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했다고 들었다. 대학교 1학년으로서 학교생활과 마라톤 준비를 병행하기 어렵진 않았는가?
마라톤을 준비하는 과정에서의 어려움은 크게 없었다. 사실 특공대로 군복무를 하던 시절 무릎을 크게 다쳐 의사로부터 달리면 안 된다는 말을 들었지만 원하는 것을 포기하긴 싫었다. 내가 출전한 서울중앙마라톤대회는 지난 2013년 11월 3일, 2학기 중간고사 바로 다음 주였다. 하지만 머릿속에는 온통 마라톤 생각뿐이었기에 망설임도 잠시 바로 참가를 결심했다. 나는 이를 목표로 연초부터 차근히 훈련해 나갔다. 특별한 지도 없이 그저 마라톤 관련 서적을 몇 권 읽으며 기본적인 지식을 다진 것이 전부다. 무릎에 보호대를 차고 하루도 빠짐없이 달렸다. 마라톤을 위한 훈련은 여름 유럽여행에도 계속 됐다. 아침마다 동네를 질주하고 들어오는 나를 의아해 하던 민박집 주인아저씨의 얼굴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Q. 죽음의 레이스라고 불리는 마라톤 풀코스 42.195km를 달렸을 때의 기분은 어땠는가?
많은 이들을 제치고 자신감 넘치게 앞서던 초반과 달리, 레이스의 중반을 넘어서면서부터 무릎이 말썽을 부리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완주하겠다는 일념으로 페이스메이커*를 따라 꾸준한 속도로 달렸다. 그러나 체력이 한계에 달한 탓인지 결국 결승선을 조금 앞두고 쓰러지고 말았다. 머릿속이 하얘졌고 몸에서 그 어떤 감각도 느낄 수 없었다.
마라톤 마지막 10KM 구간을 흔히 신과의 싸움이라고 말한다. 응급구조원의 말은 마치 신이 나에게 장난치듯 말을 거는 것처럼 들려왔다. 이 순간을 위해 너무도 노력해왔는데 “포기할거냐”는 물음은 너무 잔인했다. 오기가 생긴 나는 몸을 일으켜 다시 달렸다. 말할 수 없는 힘에 이끌려 결승선까지 질주하던 그 순간의 희열을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이씨의 좌우명은 단테의 ‘너의 길을 걸어라, 그리고 사람들이 말하도록 내버려두어라’다. 그는 “적지 않은 사람들이 눈앞에 펼쳐진 큰 세상보다 손 안에 있는 작은 세상에만 집중하는 것 같다”고 말한다. 당장 눈앞에 놓인 일에 얽매여 정작 자신이 하고 싶은 것들을 자꾸만 미루고 있는 당신에게 이씨는 전한다. 큰 그림을 보라고. 자신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라고. 그리고 행동하라고.
*페이스메이커 : 중거리 이상의 달리기 경주나 자전거 경기에서 기준이 되는 속도를 만드는 선수.
글 남채경 기자
@skacorud2478
사진제공 이한준

남채경 기자  skacorud2478@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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