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13일 정부가 의료법인의 자회사 허용방안을 발표하면서 의료 ‘민영화’ 또는 ‘영리화’에 대한 열띤 논쟁이 진행되고 있다. ‘민간(private)’에 대한 규정이 되어야 ‘민영화(privatization)’를 논의할 수 있게 된다. 문제는 ‘민간’의 정의가 단순하지 않는 점, 그리고 어느 한 지점을 정하고 이를 경계로 ‘민영화’ 여부를 규정하기에는 의료를 둘러싼 사안이 복잡하고 스펙트럼이 넓다는 점이다.

첫째, 소유/설립/운영 주체(ownership)에 따른 구분 즉, ‘민간이 소유/설립/운영하는지’ 여부다. 이 또한 분명치만은 않다. 공사나 정부투자기업과 같이 민간과 공공의 중간 지대는 넓게 펼쳐져 있다. 최근 민영화 논란으로 뒤끓고 있는 철도의 경우 10여 년 전 지금의 코레일 체제로 전환할 때도 ‘민영화’ 반대 투쟁이 컸다. 지금 다시 수서발 케이티엑스를 분리하는 문제를 놓고 정부와 노조 사이에 민영화 여부의 해석 싸움이 벌어지고 있다. 의료기관은 현재 5만8천개에 달한다. 규모 면에서도 상급종합병원에서부터 의원까지 다양하고, 설립주체도 국공립, 학교법인, 의료법인, 개인 등 다양하다. 철도처럼 운영기관 몇 개의 성격을 놓고도 해석이 분분한데, 이 많은 기관의 성격을 싸잡아 ‘민영화’, ‘영리화’ 논의로 연결시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둘째, 기능(function) 및 재원조달(financing)에 따른 구분이다. ‘사적 시장의 기능과 가격결정방식에 의존하는 것’인지 여부다. 하지만, 현실형(Idealtypus)은 ‘민영보험에 대한 허용이나 역할 확대’에서부터 ‘강제가입 공보험의 폐지’ 내지 ‘자유진료수가의 허용’에 이르기까지 넓은 스펙트럼을 가진다.

의료법인의 영리자회사는 첫째의 구분인 소유/설립/운영 주체의 문제이다. 의료법은 의료기관의 설립주체를 규정하고 있다. 여기에서 빠져 있는 것이 ‘영리법인’이다. 혼동해서 안 될 것은, 의사 개인이 설립할 수 있도록 한 소위 ‘개인병원’은 법적으로 ‘영리병원’이라는 점이다. 현재 병원의 절반 이상이 개인병원이다. 2만7천개에 달하는 의원도 거의 다 의사 개인이 운영한다. 이들 기관은 이익이 나면 원장의 수입으로 할 수도 있고 의업에 재투자할 수도 있다. 세금만 제대로 내면 이익을 어떻게 활용하고 누구에게 귀속시키든 법적으로 하등의 제약이 없다. 즉, 우리 의료제도는 소유주체 면에서 민간과 영리가 지배하고 있는 상황이다. 의원들이 ‘민영화’ 또는 ‘영리화’ 반대라는 프레임으로 집회를 하는 것은 너무도 정치적이다. 많은 국민들이 헷갈려 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영리법인’ 허용은 시장경제에 대한 믿음이 조금 더 강한 경제관료들의 입장이었다. 하지만 이는 보건의료노조나 시민사회단체의 반대에 부딪쳐왔다. 경제관료들은 경제자유구역 내에서의 ‘투자개방형 병원’이라는 이름으로 끊임없는 ‘영리법인 허용’의 시도를 해왔다. 하지만, 경제자유구역 내에서의 허용이라는 점도 있지만, 공적 건강보험에 의해 수요와 가격을 통제하고 있는 체제가 유지되는 한 우리의 보건의료제도에 ‘영리법인’ 허용이 미칠 영향은 ‘찻잔 속의 태풍’ 정도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금번에 ‘의료법인’에게 영리자회사를 허용하겠다는 정부의 발표는 ‘영리법인’과는 다른 차원의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다수의 의료법인은 의료업의 영속성에 비중을 둘 것이므로, 영리자회사의 수익이 난다면 이를 의료업에 활용하는 순기능을 가질지 모른다. 하지만, 만의 하나라도 의료법인이 영리자회사를 기본자산 빼돌리기의 창구로 활용하게 된다면 어떻게 할까? 상속세 혜택을 받고 의료법인을 통해 물려받은 재산이 사실상 ‘자회사의 투자자금’으로 전용될 우려는 없는가? 정부는 일부 공익법인의 자법인을 예로 들고 있지만, 차제에 이들에 대해서도 투명한 회계 운영을 통해 자금의 흐름이 공적으로 모니터링 되고 있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사실상 개인소유물로 인지되고 있는 전국 수백 개의 중소규모 의료법인들에게 선의만을 기대할 수 있는지, 일탈하는 기관에 대한 통제가 가능한지 깊이 생각해볼 일이다. 경제관료들의 낭만주의적 낙관에 휘둘릴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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