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북촌이 지겨울 당신에게 들려주는 서촌이야기

  소설 『마지막 잎새』의 배경인 워싱턴 스퀘어의 그리니치빌리지를 기억하는가. 지도 없이는 길을 찾기 힘든 복잡한 골목들, 모퉁이를 돌아 나오면 다시 출발했던 곳으로 돌아오게 되는 길까지. 경복궁과 인왕산 사이에 위치한 서촌 옥인길 일대를 돌아다니고 있노라면 마치 소설 『마지막 잎새』의 배경 한복판으로 들어와 있는 것만 같다. 게다가 박노수, 이상, 윤동주, 이중섭, 이상범 등 많은 예술가들이 사랑했던 곳이라니, 서촌은 한국판 그리니치빌리지라는 말이 딱 어울린다. 북촌한옥마을과 삼청동이 이제는 너무 ‘흔한’ 동네로 느껴진다면, 당신에게 새로움을 선사해줄 예술가의 골목, 서촌으로 당신을 초대한다.

 
 
그들이 사랑했던 이름, 서촌
 
  경복궁 2번 출구에서 나와 거리를 따라 쭉 걷다 보면 예상치 못한 곳에서 ‘세종대왕 나신 곳’이라고 적 힌 비석과 마주치게 된다. 복잡한 길 한 쪽에 덩그러니 놓여있어 까딱 잘못하면 못 보고 지나 칠 수 있으나 이 비석이 바로 서촌을 안내하는 길잡이와 같은 존재다. 비석을 지나 곧바로 올라오면 서촌의 명물 통인시장 입구가 보인다. 길쭉한 통인시장을 따라 쭉 들어오면 이제 당신은 서촌의 가운데로 들어온 셈이다.
  그런데 서촌은 왜 서촌이 된 것일까? 서촌이라는 지명은 조선시대 서울의 행정구역에서 그 유래가 시작된다. 당시 백성들은 각 부에 속하는 마을을 ‘○촌’이라는 식으로 편하게 불렀는데, 서촌의 경우, 북부에 속하는 지역도 있었지만 백성들에게는 경복궁의 서쪽마을이란 이미지가 강해 서촌으로 불렸다고 한다. 또 서산으로 불리던 인왕산 밑에 자리 잡은 동네라 서촌으로 불렸다는 설도 있다. 지난 2010년부터는 세종대왕이 태어난 곳이라는 의미로 ‘세종마을’이라고 불리기 시작했다. 그래도 제일 정감이 가고 포근하게 느껴지는 이름은 역시, 서촌인 듯하다.
 
 
어린 시절 꿈꿨던 그 곳, 서촌의 선물가게
 
  통인시장 골목을 빠져 나오면 왼쪽에 정자각이 보이는데 정자각 반대편의 골목이 바로 옥인길이다. 옥인길에 들어서면 여기저기 선물가게나 공방이 눈에 띈다. 제대로 된 간판도 없는 가게 안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삼삼오오 손님들이 물건을 구경하거나 작업을 하는 모습이 보인다. 
  길을 따라 걷다 보면 ‘안잡아먹옹, 들어오라옹, 구경하라옹’이라며 지나가는 사람의 발목을 붙잡는 안내판을 만나게 된다. 바로 옥인길에서 가장 유명한 선물가게 중 하나인 ‘우연수집’이다. 우연히 만나는 상품을 수집하여 판매한다는 뜻의 우연수집은 이야기가 많은 동네에 살고 싶었던 이곳 주인의 뜻에 따라 서촌에 생기게 됐다고. 비행기가 달린 오르골, 빈티지 접시, 감각적인 포스터 등 아기자기한 소품들로 가득 찬 이곳은 주말에는 손님이 끊이지 않는다. 
  옥인길의 상점들은 이처럼 튀지 않아도 나름의 존재감으로 사람들을 유혹하고 있다. 당신도 이곳에 간다면 어렸을 적 선물가게 앞을 서성이던 추억에 빠져 어느새 가게에 들어서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가게를 나서면 또 다른 가게가 당신에게 말을 건넬 것이다. 한번쯤 들어와 보라고.
 
 
동·서양 예술의 만남 박노수 미술관
 
  공방 가득한 거리를 지나오면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선 박노수 미술관이 보인다. 남정 박노수 화백은 전통적인 화풍을 유지하면서도 현대적인 요소를 가미해 미술계에서 큰 사랑을 받았던 화가다. 현재 미술관으로 사용되고 있는 건물은 박 화백이 실제로 살았던 집으로 작가가 사회에 환원하는 의미로 종로구에 기증한 것이다. 박 화백의 화풍을 보여주듯 그의 가옥은 한옥과 양옥이 어우러진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1층은 온돌, 2층은 마루, 3층은 벽난로라니! 누가 이런 조화를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그렇게 들어선 미술관에서는 개관전시회 ‘달과 소년’이 열리고 있었다. 동양화라는 말에 긴장하고 관람을 시작했지만 그의 그림은 평소에 보던 동양화와 느낌이 달랐다. 강렬한 색감과 대담한 터치로 전통적인 화제를 표현하는 그의 그림은 고즈넉한 분위기를 풍겼다. 그의 작품이 시종일관 정적인 아름다움을 보여준 덕에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전시관을 나설 수 있었다. 하지만 볼거리는 여기서 끝나지 않으니, 미술관 밖 아기자기한 정원구경도 쏠쏠한 재미를 제공한다. 
 
 
서촌, 예술가들의 안식처
 
  과연 서촌은 예술가들의 마을이었다. 우리 동문이기도 한 윤동주는 연희전문학교에 재학하던 시절, 존경하던 소설가 김송이 살던 이곳 서촌에서 하숙을 했다. 그의 대표작 「별 헤는 밤」도 바로 이 시절 쓴 것이라고. 그의 하숙집은 이미 허물어지고 지금은 안내판만이 이곳이 윤동주의 안식처였음을 알려주지만, 하늘을 올려다보며 그를 떠올린 순간 그는 분명 그곳에 살아 숨 쉬고 있었다. 그렇게 윤동주의 하숙집을 떠나 발길 닿는 대로 한참을 걸었다.
  『마지막 잎새』의 마을을 떠올렸을 만큼 길은 구불구불했고 계단은 가팔랐지만 골목마다 정겨운 냄새가 났다. 한참을 정처 없이 걷다 발길이 멈춘 곳은 화가 이중섭이 살았던 자택. 서촌 안내 지도엔 이중섭 자택이 표시돼 있었지만, 막상 도착하니 아무런 안내판도 붙어있지 않아 다소 썰렁했다. 우리나라 대표 서양화가인 이중섭의 자택이 소홀이 관리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은 잠시. 알고 보니 그 곳은 이중섭 자택으로 잘못 알려져 이미 문화재 등록이 말소된 곳이었다. 지도에 속아 아쉽기는 했지만 이중섭 화백이 부근에 살았다는 사실에 만족하기로 했다. 이후 다른 예술가들의 집을 마저 둘러보면서 지금의 서촌은 과거에 선배 예술가들이 마련한 터전 위에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 곳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서촌의 첫인상은 『마지막 잎새』의 그것과 다를 바 없는 쓸쓸함이었다. 하지만 골목골목 묻어나는 예술가들의 정취 덕분에 서촌을 나설 때쯤엔 여유로운 마음으로 하루를 정리할 수 있었다.
 

 

  가을이 왔다는 생각도 잠시, 어느새 스산한 겨울바람이 찾아온 요즘. 처음으로 찾은 예술가들의 마을 서촌은 따스한 온기로 스며들고 있었다. 이 겨울, 마지막 잎새를 떨어트릴 것만 같은 매서운 바람을 피해 서촌으로 오시라, 멋진 예술가들이 당신을 다채로운 색으로 물들여줄 것이니.
 
김가원, 김지민 수습기자
chunchu@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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