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신촌, 연대생의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 ‘응답하라 1994’가 화제다. 이 드라마가 많은 시청자들에게 사랑을 받는 이유는 그것이 낭만적이기 때문이리라. 사실 이 당시 우리는 10살도 채 안 됐을 나이이기 때문에 거대한 컴퓨터, 삐삐, 40:40 과팅을 추억이라 하기엔 무리가 있다. 어쩌면 우리에게 낭만은 과거에 대한 그리움이 아니라 통기타, 롤러장, 삐삐와 같은 어른들의 추억들로 정형화되어있기 때문은 아닐까. 그래서 ‘요즘에는 낭만이 없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것일지도. 그런데 여기 “우리도 낭만의 시대에 살고 있다”며 낭만을 노래하는 젊은(?)사람이 있다. 수식어조차 디지털 느낌이 팍팍나는 SNS시인, 하상욱이 대학생들에게 ‘낭만’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낭만을 아날로그에서 찾아야 한다는 생각, 
그거 강박관념 아닌가요? 
 
  “제겐 인터넷이 낭만입니다” 
  하상욱 시인은 ‘낭만=아날로그’라는 일반적인 인식을 뒤엎는 말로 강연을 시작했다. 어렸을 때부터 MP3를 들어온 우리세대에게 통기타의 낭만이 있다고는 하기 어려워도, 디지털의 대표격인 인터넷에서 낭만을 찾는다는 말은 왠지 낯설다. 의아해하는 청중들에게 그는 9년 전, 자신이 쓴 싸이월드의 다이어리를 보여준다. 검은색 나시를 입고 한껏 진지한 표정의 셀카 사진과 ‘나는 될 거다. 멋쟁이가’라는 글귀. 한껏 허세를 부린 글이 화면에 나타나자 객석은 웃음바다가 됐다. 이어지는 또 다른 허세 사진과 글을 보며 한참을 웃고 있는데 그가 객석을 향해 질문한다. “어때요, 예전 생각나지 않으세요?” 코믹한 요소가 있지 않은 진지(?)한 글임에도 크게 웃을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청중들 또한 몇 년 전에 자신의 미니홈피에 썼던 글이 떠올랐기 때문이리라. 시간이 지난 뒤 그 시절이 그리워하며 품는 것이 낭만이라면, 우리세대에게 낭만은 통기타, 청바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인터넷에 있다고 그는 말했다. 컴퓨터 채팅을 하는 우리에게 “우리 때는 편지를 주고받았지. 그때가 참 낭만적이었는데”라고 말하며 이 시대의 낭만의 부재(不在)를 안타까워하는 어른들에게 이젠 당당히 말해보자. 우리의 낭만은 세이클럽, 버디버디, 싸이월드에 있다고!
 
100m달리기vs산책
 
  그는 ‘도전은 성공의 어머니’라는 명언은 낭만을 죽이는 말이라고 말한다. ‘무엇을 이루자, 어떤 사람이 되자’와 같은 목표의식은 사람들을 열심히 살도록 채찍질 하지만 동시에 앞만 보고 달려가게끔 한다. 앞만 보고 가는 것과 낭만이 무슨 상관이냐고? 상관이 있다! 낭만은 바쁠 때 나오는 것이 아니라 쉴 때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잉여’일 때) 나오기 때문이다. 친구와 장난을 치기도 하고, 훌쩍 어딘가 떠나기도 하고, 말도 안 되는 공상을 하며 웃음 짓는 ‘잉여’의 순간, 그 때가 바로 낭만이라는 것! 이 말이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면 고등학교 때를 잠시 떠올려보자. 그 시절이 우리에게 낭만으로 기억되는 장면은 매일 반복되던 수업 시간들보단, 야자 땡땡이 치고 놀러 나갔던 순간, 4교시 종이 치자마자 급식실로 뛰어가는 순간일 것이다. 이렇듯 치열하게 달려갈 때보다는 잠시 멈춰 숨을 고르고 가벼운 생각을 하며 주위를 돌아볼 때 낭만의 순간은 찾아온다.
당신은 지금 문학을 즐기고 있다.
 
  분명히 강연이라고 했는데 화면에는 딱딱한 PPT대신 보기만 해도 ‘빵’터지는 짤방*과 웃긴 댓글을 캡쳐한 사진이 연달아 나온다. 정신없이 웃고 난 뒤 객석에게 던지는 의미심장한 감탄사! “얼마나 낭만적입니까?” 
  어느 순간부터 인터넷에는 아름다운 풍경사진보다는 재미있는 사진이 더 많아졌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나만 재밌으려고 인터넷에 사진을 올리지는 않는다”고 말한다. 사람들이 재밌는 사진을 찍고, 재치 있는 댓글을 다는 이유가 ‘내가 이것을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리면 사람들이 얼마나 좋아할까?’라는 생각에서 비롯된다. 이는 받는 사람이 기분 좋아질 것을 상상하며 쓰는 연애편지와 다를 바가 없다. 더 나아가 그는 “이런 것들이 문학 아니고 뭐겠어요?”라고 묻는다. 그래 맞다, 책에 있는 시보다는 트위터에 올린 2줄의 짧은 문장에 격한(?)공감을 하는 우리에게 문학은 이제 예전의 그것과는 조금 다른 모습일지 모른다. 
 
  사회는 우리에게 말한다. 지금의 20대는 예전의 낭만이 없다고, 성공만 생각한다고, 스펙 쌓기에 혈안이 되어있다고 말이다. 그러나 어느 시대든 기성세대는 늘 젊음이들의 삶을 걱정하는 입장이니, 이런 말들에 너무 상처받지는 말자. (고대 그리스 시대에도 '요즘 것들'을 한탄하는 모 철학자의 글이 있었단다.) 88만원 세대라는 수식어 아래 이전의 청춘보다 팍팍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는 우리 나름의 낭만을 찾아 살아가고 있다. 다만 그 낭만이 예전의 모습과는 다를 뿐이다. 통기타와 청바지 대신 인터넷과 스마트폰으로, 롤러장이 아닌 SNS에서 펼쳐지는 우리의 삶 또한 꽤나 낭만적이지 않은가?
 
*짤방: ‘짤림 방지’의 줄임말. 인터넷 게시판에 사진이나 동영상이 아닌 글을 올렸을 경우 삭제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내용과 아무런 상관없는 사진이나 동영상을 올리는 것을 말한다
 
 
글·사진 오도영 기자  
doyoungs92@yonsei.ac.kr
자료사진 하상욱 단편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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