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학생이 되고 수학을 마스터하겠다는 야심찬 마음을 가지고 구입한 『수학의 정석』. 한 학기가 지나도록 1단원 집합부분만 펴보다가 결국 1만 7천500원짜리 냄비 받침대가 되고 말았다.

- 요즘 서점에서 베스트셀러인 『아무 책』. ‘나도 한번 읽어볼까?’하는 마음으로 구입했지만……. 구입했지만…….
선반의 먼지가 뿌옇게 쌓인 책들, 기자 본인에게는 종종 일어나는 일이다. 당신은 어떠한가. 만약 당신도 그렇다면? 여기 책을 펼치고 두 달이 지나면 글씨가 서서히 사라지는 책이 있다.
 
글씨가 사라지는 신기한 책
 
『Ei Libro que No Puede Esperar(기다릴 수 없어)』는 제목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어느 시점이 지나면 더 이상 독자를 기다리지 않는다. 개봉 후 2개월이 지나면 책의 글씨가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해 4개월 뒤면 완전히 사라져버리기 때문.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바로 아르헨티나의 출판사이자 서점인 'Eterna Cadencia'사(아래 Cadencia사)가 개발한 보라색 특수잉크를 사용했기 때문이다. (Cadencia사는 회사 기밀이라 특수잉크 제조법을 공개하지 않았다) 그래서 책의 제작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스피드라고 한다. 글자가 찍히자마자 산화작용을 막기 위해 책은 바로 밀봉포장돼 공기와 햇빛의 접촉을 최소화하게 되고 독자가 책의 포장지를 벗기는 순간부터 산화작용이 시작된다. 

  그렇다면 Cadencia사는 왜 이 특수잉크를 개발했을까? 다름 아닌 라틴아메리카의 신예 작가들을 후원하기 위해서다. 즉, 특수잉크를 사용해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켜 독자들이 책을 구매하도록 유도한 것. Cadencia사는 이 책을 먼저 언론사와 비평가들에게 홍보목적으로 배부했고 신예 작가들의 이름을 알리는데 성공했다. 이런 마케팅 전략은 Cadencia사의 예상대로 독자들에게 또한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냈다. 4개월 뒤에는 글씨가 모두 사라져 소장가치가 없다는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이자 단점(?)에도 불구하고 독자들은 이 책이 소장가치가 있다고 판단, 수백 명이 서점에서 줄을 서서 사는 진풍경이 연출됐다.
 
  만약 서점에서 이 책의 한국어판을 구매했다면, 당신에겐 4개월의 시간밖에 남지 않았다. ‘후~하~’ 심호흡을 하고 이 책을 펼쳐보자. 보라색 글씨라 눈이 아플지라도 글씨가 사라지기 전에 재빨리 종이를 넘기며 책을 읽어 내려가야 할 것이다. 
 

염지선 기자 
jsyeom@yonsei.ac.kr
사진출처 designbo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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