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무대, 빛나는 조명, 배우들의 열연, 세밀한 소품. 연극 혹은 영화에서 하나의 장면을 이루는 것들이다. 조명 아래 혹은 화면 안 배우들의 열연에 관객은 울고 웃으며 감성을 충전한다. 그러나 이처럼 하나의 무대가 완성되기까지 어떤 사람들의 노력이 있는지, 어떤 과정을 거치는지 알 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관객이 잘 꾸며진 무대 바깥에서 공연을 관람하는 동안, 보이지 않는 수많은 사람들이 무대 뒤에서 작품을 위해 힘쓰고 있다. 바로 이곳은 관객이 결코 발을 들여놓을 수 없는 금단의 공간, ‘백스테이지’. 함부로 볼 수 없어 더욱 신비롭고 궁금한 이곳을 연극 『바냐 아저씨』와 단편영화 『마리아』를 통해 엿봤다.

 
#1. 지난 10월 26일부터 오는 11월 24일까지 명동예술극장에서는 『바냐 아저씨』가 공연된다. 이 연극은 러시아 극작가 안톤 체홉이 원작자인 4막 희곡으로, 극단 ‘백수광부’의 이성열 감독이 연출을, 하동기, 최원정 감독이 조연출을, 김승철 감독이 무대감독을 맡았다. 연극의 줄거리는 조카 소냐, 노모와 함께 매부의 영지를 돌보며 살고 있던 바냐를 매부와 매부의 젊은 새 부인이 방문하면서 일어나는 감정적 충돌들에 관한 이야기다.

  


『바냐 아저씨』의 분장실에 들어서니 색색의 화장품들이 일렬로 늘어선 화장대를 가득 채우고 있다. 그 앞에서 분장감독 이동민 씨가 배우를 마주하고 분주히 브러쉬를 놀리고 있다. 극 중 연기에 담기는 감정이 더 뚜렷이 전달될 수 있도록 배우의 얼굴에 분명한 명암과 개성을 입히는 작업이다. 분장실을 나와 무대 뒷 편으로 입장하자 높은 천장에 매달린 수십 개의 조명, 길게 드리운 암막, 그 사이로 보이는 크지만 정교한 무대가 대규모의 연극임을 실감하게 한다. 무대와 배우를 비추는 조명 외의 모든 빛을 차단하기 위해 벽면은 온통 검게 칠해져 있다.

 

 
   
 
 

 

무대를 기준으로 백스테이지는 오른쪽의 넓은 공간인 상수(stage right), 왼쪽의 공간인 하수(stage left), 상수와 하수를 잇는 긴 통로인 레어 스테이지(rear stage) 로 나뉜다. 어두운 백스테이지 곳곳엔 야광 물질이 들어있는 케미라이트가 붙어 빛나고 있다. “케미라이트는 원래 낚시에 사용되는 짧은 막대인데 배우들과 스텝들의 안전을 위해 사용하고 있다”고 현장에서 인턴 일을 하고 있는 이세영(22)씨가 설명한다. 이씨는 손전등을 항상 소지하며 배우들이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도록 안내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공연 시작 30분 전입니다. 모두 위치로 가 주세요.” 『바냐 아저씨』는 공연 시작 30분 전부터 관객을 관객석에 들인다. 백스테이지에는 긴장이 흐르기 시작한다. 무대 뒤의 상황은 관객에게 노출되면 안 되기 때문에 스텝들은 말소리와 발걸음을 더욱 조심한다. 다시 30분의 시간이 지나고, 설레는 표정의 관객들로 객석이 가득 차자 무대감독이 헤드셋을 통해 조용히 지시를 내린다. “시작하겠습니다. 라이트, 동시스탠바이...고(go).” 무대감독은 하수 한 켠에 자리한 데스크에서 세 개의 모니터를 마주하고 공연 전반의 흐름을 관리한다. “계슈?”하는 연극의 첫 대사가 관객석과 백스테이지의 적막을 깨고 연극이 시작된다.

“잠시 후에 ‘장면전환’이 있을 겁니다. 암전이 되지만 무대감독 데스크 오른편의 모니터로 관찰할 수 있을 거예요.” 공연이 시작된 지 20여 분이 흘러 조연출 최원정 감독이 속삭였다. 얼마간의 시간이 더 흐르고, 장면전환을 알리는 노래가 흘러나오자 모든 조명이 꺼지고 케미라이트만 반짝인다. 스텝들은 분주히 무대를 재배치한다. 30초가 안 되는 짧은 시간이 지나고 다시 조명이 켜지자 장면전환 이전과 완전히 다른 공간이 펼쳐져 있었다.

연극의 장면전환은 이가람 장면전환팀장에 의해 총괄되고 있다. “장면전환은 극의 흐름이 끊기지 않고 원활하게 진행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역시 가장 신경을 쓰는 부분은 스텝과 배우의 안전”이라고 이 팀장은 설명했다. 극이 마침표를 찍을 때까지 이 팀장을 비롯해 쉴 새 없이 애쓰는 스텝들 모두는 무대에 집중한 관객만큼이나 배우들에게 큰 응원의 에너지를 전하고 있었다.

 

 #2. “레디.” “스핏.” “씬넘버 식스, 세훈, 지우 투 샷. 테이크 세븐……, 액션!”
슬레이트가 닫히는 소리가 촬영장을 울리고 카메라 앞에 선 배우들이 열연을 시작한다. 그러나 카메라 뒤에는 배우들보다 더 불타고 있는 스텝들이 있다. 연출, 조연출 할 것 없이 눈을 빛내며 장면을 카메라에 담고 있는 이곳은 서울대 영상동아리 ‘이미지밴드’의 11월 교내 영상제 출품작, 『마리아』의 촬영현장이다. 『마리아』는 성녀 마리아와 같은 존재에 의해 이해받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 사랑하는 마음과 행위 사이의 간극에서 오는 좌절에 대해 이야기하는 단편 작품이다.

오늘의 첫 씬(scene)은 서울대 인근 카페에서 시작됐다. 카페 안 손님들이 흘끔거리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마리아』 팀은 한 장면 한 장면을 만들어내고 있다.
『마리아』를 만드는 스텝들은 네 명의 학생들로 이루어진 소규모의 팀이다. 따라서 이들은 일인 다역을 소화해야만 한다. 조연출을 맡은 서울대 김지원(언론정보학·12)씨는 수많은 촬영본 중 오케이가 내려진 장면을 고르고 기록하는 스크립터이다. 그녀는 섬세한 감각으로 촬영장의 소품과 배치 등을 살피는 일을 해 디테일 요정, 이른바 ‘디요’로 통한다. 김씨는 본래 FD(Floor Director)의 업무인 슬레이트를 치는 역할을 맡고 있으며, 씬 마다 조명이 필요한 순간 조명장비 대신 핸드폰 플래시를 켜고 배우의 얼굴을 비추는 역할도 같이 하고 있다.

 “컷, 오케이!” 각본과 연출을 담당하는 서울대 곽청아(외교학/언론정보학·10) 감독의 오케이 사인을 끝으로 카페 씬 촬영이 마무리된다. 다음 장소는 인근 건물 옥상. 촬영할 장소를 구하는 ‘로케이션’작업도 조연출이 맡은 부분이다. 조연출 서울대 소인지(체육교육학/언론정보학·12)씨는 “로케이션을 하며 촬영에 대한 양해를 구하다 보면 거절을 당하는 경우가 많은데, 오히려 그럴 때마다 오기가 생겨서 더 열심히 일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며 웃었다. 소씨가 본래 맡은 역할은 조연출이지만, 당일 카페씬에서 세훈의 전 여자친구인 혜진 역을 대신하기도 했다. 전날 본래 해당 역을 맡은 여배우의 개성이 인물과 잘 맞아떨어지지 않아 내린 감독의 특단의 조치였다. “이런 일이 있을 때 해당 배우에 대한 도덕적인 미안함과 영상의 작품성 사이에서 고민하게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곽 감독은 설명했다.

 


이 날 촬영의 마지막 씬은 이수역의 한 포장마차에서 마무리됐다. 모든 촬영 현장의 카메라 뒤에 곽 감독이 있다면, 다른 한 쪽에는 마이크를 든 음향감독 서울대 박준하(외교학/미학·10)씨가 있다. 촬영이 길어질수록 길고 무거운 마이크를 화면에 잡히지 않게 높이 치켜든 박씨의 양 팔은 덜덜 떨려오기 시작한다. 배우들의 연기가 점점 고조되는 찰나, ‘부와아앙-’하는 오토바이 소리가 대사를 덮으며 섞여든다. “아~!” 모든 스텝과 배우의 입에서 안타까움의 함성이 터져나온다. “영화를 만드는 것은 영상이 반, 음향이 반이라고 할 수 있다. 잡음이 섞여들거나 음향이 아주 잘 잡혔는데 감독이 오케이 사인을 내리지 않거나 음향이 좋지 않은데 오케이가 나면 항상 아쉬운 마음이 든다”며 박씨는 음향감독으로서의 고민을 털어놓았다.


관객과 스텝은 결코 서로의 공간을 침범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닮아있다. 관객에게 무대 뒤가 금단의 구역이라면, 스텝들에겐 무대 위와 관객석이 다시 백스테이지가 되는 셈이다. 서로의 자리에서 작품을 감상하고, 혹은 작품을 만들며 같은 무대를 마주하는 그들이 있어 작품은 더 빛을 발한다. 백스테이지의 스텝들은 언제나 조용히 하나의 무대를 만들기 위해 힘을 쓰고 있다. 그들의 백스테이지는 어느 무대 위보다 화려하다.

 

 

 

글 ·사진 김경윤 기자
sunnynoon@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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