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는 나의 주치의가 나의 뇌 기능이 정지했다고 단정할 때가 올 것입니다. 살아 있을 때의 나의 목적과 의욕이 정지되었다고 선언할 것입니다. 그때 나의 침상을 죽은 자의 것으로 만들지 말고 산 자의 것으로 만들어 주십시오.
-로버트 테스트, 「나는 영원히 살 것입니다」-

 

질병관리본부 장기이식관리센터(Korean Network for Organ Sharing, KONOS)에 따르면 장기기증이란 기능이 소실된 다른 사람의 장기기능 회복을 위해 대가 없이 자신의 특정한 장기 등을 제공하는 행위로 뇌사기증, 사후기증, 생체기증의 3가지 종류로 나뉜다. ▲뇌사기증은 뇌의 모든 기능이 정지돼 회복될 수 없는 상태에 빠지고 결국 죽음에 이르게 되는 환자가 ▲사후기증은 사망한 사람이 ▲생체기증은 19세 이상의 살아있는 사람이 장기를 기증하는 것을 의미한다.

 

   
 

장기기증, 생명의 불씨를 되살리다

장기기증은 어떠한 가치를 지닐까. 기증을 통해 받은 장기로 이뤄지는 장기이식은 장기의 기능이 5~10% 이하로 떨어진 말기 장기 부전증 환자에게 건강한 사람의 장기를 이식하는 것이다. 장기이식은 크게 ▲환자들의 목숨을 살리는 심장, 폐, 간, 소장 이식 ▲삶의 질을 높이는 콩팥(신장), 췌장 이식 2가지로 나뉜다. 세브란스 장기이식센터 소장 김순일 교수(의과대·외과학)는 “만성 신부전환자의 경우 신장을 이식하지 않으면 투석을 해야 하는데 투석치료로는 본연 신장 기능의 20% 정도 밖에 하지 못한다”며 “간 부전 환자의 경우에는 간의 기능이 100여 가지에 이르러 투석이 장기적으로 불가능하며, 콩팥 투석의 경우도 일주일에 3번 병원에 와서 4~5시간씩을 투자해야 하므로 일상생활에 큰 불편을 겪는다”고 말했다. 장기이식은 위와 같이 장기 기능 저하로 고통받던 환자들이 건강을 회복하고 일상생활로 돌아가 정상적인 삶을 살도록 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해준다.
장기이식은 국가적 차원에서의 경제적 비용 절감 효과도 가져온다. 투석은 매년 3천만 원씩 드는 반면 장기이식은 첫해에만 3천만 원이 들어가고 그다음 해부터는 1천만 원 이내로 줄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투석비용의 경우 개인이 부담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의 세금으로 충당되는 보험에서 지급해주는 것”이라며 “1년에 1천500명 이상이 신장 이식을 하는 현 상황에 비춰봤을 때 2천만 원의 차이는 엄청나게 크다”라고 전했다.

장기기증, 무엇이 문제인가

하지만 현재 우리나라에서 장기기증은 여러가지 문제점을 갖고 있다. 지난 7월, KONOS에서 발표한 『2012 장기이식 통계연보』에 따르면 2012년 이식대기자는 2만 850명, 장기기증자는 2천561명으로 이식자의 평균 대기시간은 535일에 달해 이식대기자에 비해 장기기증자가 현저히 부족한 현황이다. 그 원인에 대해서 재단법인 ‘사랑의 장기기증 운동본부’ 사랑홍보팀 김소정 팀장은 “우리나라에 장기기증 문화가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사람들이 장기기증 정보에 노출된 것 자체가 오래되지 않았다”며 “10여 년 전만 해도 장기기증과 장기매매가 혼동되는 경우도 많았고 미디어에서도 장기기증에 대한 자극적인 소재를 다뤄 장기기증이 위험하고 두려운 일이라는 인식이 퍼진 것이 그 원인”이라고 전했다.
또한 장기기증과 관련한 정책적·제도적 측면의 문제점도 지적됐다. 청소년의 경우 장기기증 서약을 위해서는 부모의 동의가 있어야 하고 동의한 부모가 실제 부모라는 가족 증빙서를 제출해야 하는 등 절차가 복잡해 등록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청소년들은 성인이 돼서도 장기기증 자체가 어렵다고 인식하게 되기 쉽다. 성인의 기증 서약 절차 자체는 청소년만큼 복잡한 편은 아니지만 실제로 장기를 기증할 때는 가족 한 명의 동의가 필요하기 때문에 가족이 반대할 경우 서약이 기증으로 이뤄지지 못하는 사례도 있다. 김 교수는 “유럽의 경우는 가족의 의사와 관계없이 장기기증이 이뤄지지만 미국, 한국은 원칙적으로 가족이 원치 않으면 대부분 장기기증을 강행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장기기증을 둘러싸고 제기되는 문제점 중에는 장기기증자들이 직장에서 또는 보험 가입 시에 겪는 차별 대우도 있다. 실제로 1~2년 전에 기성언론에서는 장기기증자들이 건강상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오해를 받아 취업이나 승진에 있어 불이익을 당하거나 보험 가입 시 기증한 장기는 제외되는 차별 사례를 보도한 적이 있다. 이에 보건복지부는 지난 2011년부터 ‘차별신고센터’를 설치해 장기기증으로 인해 차별을 받을 시에 신고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했다. 김 팀장은 “장기기증을 하고서 차별 대우를 받는 경우는 사전 준비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가족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기증한 경우가 많다”며 “차별신고센터가 세워지면서 이전보다는 차별 사례가 많이 준 편”이라고 전했다.


지속적인 홍보를 통한 인식 변화 필요해

한국에서 장기기증이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장기기증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을 변화시키고 관심을 끌기 위한 지속적인 홍보가 가장 중요하다. 김 교수는 “현재 한국의 장기이식 의료수준은 세계 최고 수준으로 신장 이식의 경우 세계 1위”라며 “한국의 뛰어난 장기이식 의료수준과 장기기증이 환자에게 새 삶을 줄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경제적 비용 절감 효과 등을 정부와 국민들에게 지속적으로 알리려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라고 전했다. 또한 김 팀장은 “한국의 미디어는 장기기증에 대해 자극적 요소를 많이 써서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경우가 많다”며 “미디어에서 보다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고 정부 차원에서도 공익광고를 펼치는 등의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덧붙여 “제도·정책적 부분에서도 장기기증에 보다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방향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장기기증은 세간의 인식처럼 두렵거나 위험한 일이 결코 아니다. 고통 속에서 죽어가는 환자에게 새 삶을 선물할 수 있는 가치 있고 숭고한 일이다. 지금도 어디선가 꺼져가는 생명을 살리고 싶다면 직접 그 불씨가 돼보는 것은 어떨까.

 

 

이한슬 기자
ganjistorm@yonsei.ac.kr
그림 김진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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