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적거리는 도심 속에 숨어있는 조용한 비밀동네, 부암동

  가슴 한 편마저 시리게 하는 가을의 끝자락. 11월의 쌀쌀한 바람과 마주할 때면 우리의 생각은 더욱 깊어진다. 이미 지나온 것들에 먹먹해하고 다가오지 않은 것들에 막막해하는 그대. 잠시 시간의 흐름을 멈춰 놓고 ‘지금’에만 취하고 싶은 당신을 위해 부암동을 소개한다.
 
 
당신을 천천히 맞이하는 부암동
 
  도심 속에 조용히 숨어있는 부암동은 시청이나 광화문에서 1020번, 1711번 버스로 15분 거리에 있다. 부암동에 들어서기 시작하면 고요한 산과 마을 그리고 간간히 보이는 사람들이 창 밖 풍경을 수놓는다. 그 순간 그대는 서울 속 또 다른 서울을 경험할 것이다. 부암동 주민센터 정류장에서 내려 주위를 둘러보면 아기자기한 꽃집과 독특한 카페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독특한 카페들로 유명한 삼청동과 사뭇 비슷하다. 그러나 부암동에는 다른 곳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그 옛날 그 시절 서울의 투박함의 온기가 여전히 남아있다. 카페들이 이루는 분위기 자체도 소박하고, 시골 동네에나 있을 법한 허름한 외관의 구멍가게와 세탁소들 역시 그 분위기를 더한다. 
  예스러움과 멋스러움이 조화를 이루는 부암동 거리를 차분히 걷다보면 어여쁜 벽화들이 하나씩 보인다. 벽화 위에 쓰인 ‘천천히 가도 괜찮아 길만 제대로 알고 있다면’이라는 문구가 부암동의 분위기를 그대로 담고 있다.
 
옹기종기 카페들 사이를 거닐며 온기를 느끼다
 
  벽화에 눈길을 사로잡혀 걷다보면 어느새 부암동 카페거리가 나타난다. 부암동 카페거리에는 다양하고 이색적인 카페와 음식점 그리고 술집들이 즐비해 있다. 고층건물에 자리 잡고 있는 도심의 프렌차이즈 가게와는 다르게 이곳의 가게들은 다소 아담한 편이지만, 나름의 멋스러운 개성을 살려 존재감을 드러낸다. 획일적인 외관에서 벗어나 제각각 개성 넘치는 모습이다. 골목 사이에 있어서 ‘사이’라는 이름을 가진 카페가 있는가 하면, ‘마술’이라는 간판을 내걸고 직원들이 직접 마술쇼를 선보이는 가게도 있다. 모던한 느낌의 편집숍과 수공예 액세서리 전문점도 우리의 눈을 더욱 즐겁게 해준다. 

  음식점들의 경우 겉모습뿐만 아니라 맛으로 이미 유명세를 탄 곳도 적지 않다. 최근 생활다큐멘터리 프로그램 ‘vj특공대’에 소개된 치킨 가게, 오랜 기간에 걸쳐 그 명맥을 유지해온 만두집도 있으며 드라마 ‘커피프린스’에 등장해 명성을 얻은 카페도 있다. 이 가게들이 옹기종기 모여서 어우러진 모습은 복잡하기보다 오히려 포근하다. 마치 우리네 사는 모습과 닮은 듯하다. 한적하게 여유를 즐길 수 있는 곳, 부암동의 분위기는 밤과 함께 더욱 깊어간다. 
 
 
산책을 하며 거닐 때 드러나는 부암동의 진면목
 
  카페거리를 지나 좀 더 걷다보면 ‘북악산 산책길’이라는 표지판이 눈에 띈다. 표지판을 따라 부암동 일대를 한 바퀴 돌면 부암동의 산책로가 유명한 이유를 좀 더 알 게 될 것이다. 이 길에서는 산과 나무 그리고 부암동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특색 있는 건물들이 한 데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이 된다. 그 수려함을 바라보고 있다보면 어느새 고민이 사라지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산책로 중간 중간에 놓인 귀여운 조각상과 기와집들도 우리의 눈을 더욱 즐겁게 한다. 이 곳 주민들이 산책을 더욱 즐기는 이유 중 하나는 곳곳에 숨어있는 미술관 때문이다. 산책을 하다 편안한 마음으로 들려 다양한 예술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게다가 특정 요일마다 무료 전시를 하는 곳도 있으니 일석이조다.  

시와 경관, 이 두 가지의 조화
 
  산책로를 한 바퀴 돌았다면 이번에는 ‘윤동주 시인의 언덕’을 향해 걸어보자. 이곳은 위치상 청운동에 속하지만 부암동과 마주하고 있어 부암동에 들렸다면 반드시 가봐야 할 명소 중에 하나이다. 이곳에 있는 ‘윤동주 문학관’에서는 윤동주 시인의 시와 논문을 비롯한 다양한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다. 그가 아침마다 오르며 영감을 얻었던 바로 이곳, 윤동주 시인의 언덕에 올라서니 그의 대표작인 『별 헤는 밤』이 절로 떠올라 한밤의 정취를 더한다. 

  언덕 위에서 잠시 서울 도심을 내려다보면 문학가의 감수성에 취한 그대 앞에 화려한 불빛들이 펼쳐진다. 종로의 야경을 한 눈에 조망하며 움츠렸던 가슴을 피는 순간 당신은 비로소 깨닫게 될 것이다. 지금 이 순간이 무심코 흘려보내기에 너무나도 아름답다는 것을. 그리고 당신을 짓눌렀던 콧대 높은 도심이 그대의 발밑에선 사실 너무나 희미하고 자그마한 존재라는 사실을 말이다. 이곳을 ‘힐링 동네’라고 일컫는 것은 이곳에서 우리가 잊고 지냈던 것들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부암동을 다 돌아보고 나면 잠시 메말랐던 감성이 채워지고 여유로웠던 어린 시절의 나를 되찾는 듯하다. 매일 바쁜 일상 속에서 무심코 흘려보냈던 ‘오늘’, 그리고 ‘지금’을 되돌아보게 해주는 소중한 동네, 부암동. 낮이든, 밤이든 항상 여유를 갖고 있는 부암동으로 가서 부암동을 닮아 오자.

강달해, 홍문령 수습기자
chunchu@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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