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등학교 학창시절 어른들 몰래 야동을 처음 접했던 순간을 기억하는가. 빨간 원 안에 검정색 볼드체로 쓰인 19라는 숫자는 우리의 호기심을 자극하기 충분했다. 어쩌면 우리는 어른들의 세계가 궁금했던 것이 아니라 19세만 넘을 수 있다는 그 선을 넘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성인이 된 지금, ‘19세를 넘으면 당당하게 볼 수 있겠지…….’ 라는 어린 시절의 생각이 까마득하게 느껴질 정도로 우리는 성을 어렵게 느끼고 있다. 

  이처럼 성문화에 쉽게 다가가지 못하는 우리에게 조금씩 손을 내밀어 오는 것들이 있다. 바로 화정박물관의 동아시아 춘화 특별 전시회 ‘LUST 2’와 홍대거리에 위치한 신개념 콘돔 전문숍 ‘콘도마니아’이다. 
 
때로는 발칙하게 때로는 깜찍하게
 
  홍익대 정문을 나와 왼쪽 번화가를 따라 쭉 내려가다 보면 눈에 띄는 한 팬시점이 있다. 바나나를 닮은, 아기자기하게 그려진 귀여운 캐릭터와 쇼윈도 넘어 보이는 알록달록한 팬시용품들이 눈에 띈다. “심심한데 한 번 구경이나 해볼까?”하고 들어간다면 당신은 충격에 휩싸여 뒷걸음질을 칠지도 모른다. 사실 이곳은 팬시점이 아니라 성생활을 위한 콘돔 등의 섹스용품을 판매하는 전문적인 신개념 콘돔숍, '콘도마니아'다.   콘도마니아에 들어서면 화려한 색깔의 비닐로 포장된 사탕 모양의 무언가가 가장 먼저 눈을 사로잡는다. ‘어 막대사탕이네’라고 집어 드는 순간 화들짝 놀라 당신이 집은 물건을 내려놓을 수도 있다. 바로 사탕모양으로 꾸민 콘돔상품이기 때문. 하지만 실망할 필요는 없다. 가게 안에는 실제로 먹을 수 있는 다양한 상품들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 먹을 수 있는 속옷에서부터 사과, 바나나, 딸기 등의 상큼한 과일 맛을 내는 콘돔까지. 몸에 바르는 초콜릿도 인기가 상당하다고 한다. 성에 대한 인간의 끝없는 호기심과 도전정신(?)은 콘돔에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콘도마니아의 콘돔은 맛뿐만 아니라 그 ‘형태’에서도 다양함을 한껏 뽐낸다. 꽃모양으로 화분에 심어진 콘돔에서부터 우유 패키지 안에 포장된 콘돔, 앙증맞은 스파이더맨 모양 콘돔, 피카츄 모양 콘돔까지. 다양한 콘돔들을 구경하고 있노라면 여기가 팬시점인지 콘돔숍인지 헷갈릴 정도이다.
  그렇다고 화려한 콘돔의 향연에 이곳을 찾은 당신의 본분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 중간 매대 양쪽으로는 실제로 많은 이들이 찾는다는 베스트셀러 콘돔들이 벽면을 가득히 채우고 있다. 매장 입구를 기준으로 왼쪽에는 남성 전용, 오른쪽에는 여성 전용 콘돔이 있어 고객들이 알아보기 쉽도록 구분해 놨다. 콘돔이 남성의 전유물이라더니, 왼쪽 진열대가 유독 빼곡한 이유를 그제야 알 것만 같았다. 남성 전용 진열대는 명품, 특수형, 야광형, 일반형, 사정지연형으로 분류해 고객들이 민망하게 묻지 않아도 원하는 콘돔을 쉽게 찾을 수 있도록 했다. 그중에서도 제일 인기가 많은 상품은 명품 진열대에 놓인 ‘재질이 얇은’ 콘돔이라고 하니 남성들은 참고 바란다. 
  반면 여성 전용 진열대는 명품 중심의 여성 선호형과 향기 콘돔으로 다소 간단하게 구성돼 있다. 주된 고객이 남성일 것 같다는 기자의 말에 콘도마니아 직원 김상희(35)씨는 “남성 제품의 종류가 많지만 주 고객층이 남성인 것은 아니다”며 “실제로 커플들이 함께 방문하는 경우가 가장 많다”고 말했다. 매장을 방문한 외국인 가브리엘(26)씨는 “한국에 온지 3년이 되었지만 콘돔을 구매하기 쉽지 않았다”며 “홍대에 다양한 콘돔을 판매하는 곳이 있다 해서 들리게 됐는데 신선한 상품들이 많아 만족스럽다”고 말했다. 
 
욕망을 엿보다.
 
  우리 조상들의 성문화는 어땠을까. 그 시대의 성문화를 직접 본 적은 없지만 대부분 ‘그 때에 비하면 요즘은 정말 개방적이지’라는 생각을 할 것이다. 기자 또한 화정박물관의 'LUST 2' 전시회에 오기 전까지만 해도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 중 하나였다.
  평창동 파출소 근처를 지나다 보면 황토색으로 지어진 거대한 건물하나가 눈에 띈다. 이곳이 바로 거기서 거기였던 전시회들에 질려버린 당신을 위한 공간, 화정박물관이다. 화정박물관에서는 지난 4월부터 19금 특별전을 진행해오고 있다. 예정대로라면 9월에 끝났어야 할 특별전이지만 관객들의 성원에 올해 연말까지 연장했다고 하니 말하지 않아도 그 인기를 짐작할 수 있다.
  특별한 설명 없이도 전시회장의 그림들을 둘러보다 보면 어느 순간 ‘이 배경은 중국 같은데?’, ‘기모노를 입고 있네?’하면서 적어도 우리나라의 춘화는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 이번 전시는 크게 중국과 일본의 춘화로 구성돼 있다. 한나라시대부터 존재했다고 알려진 중국의 춘화는 대부분 두루마리 또는 화첩형식으로 제작되었는데 언제든지 손쉽게 보기 위해서였다. 일본의 경우 헤이안 시대에 춘화가 처음 유입됐으며 에도 시대에 이르러서는 서민의 경제·문화 발전과 더불어 대중적인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중국의 춘화는 은근하게 에로티시즘을 표현하는 것이 특징인 반면 일본의 춘화는 남녀의 성기를 과장되게 표현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춘화를 자극적이고 적나라한 성행위를 묘사한 그림으로만 생각한다. 하지만 춘화는 단순히 야한 그림을 넘어 당시 사회상을 반영하는 그림이다. 전시에 대한 사전 배경이 없는 사람이 봐도 쉽게 알아차릴 수 있을 만큼 춘화는 그 시대의 일상을 담아낸다. 정원이나 찻집 등 일상적인 배경이 주로 보이는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다. 또한 신분 계급이 엄격했던 전통사회에서 춘화는 유일하게 남녀노소 귀천에 상관없이 즐겼던 그림이었다. 때문에 전 세대 모든 신분을 아우르는 성생활에 대한 묘사를 볼 수 있다.
  춘화에는 크게 ‘해학’과 ‘은유’라는 두 가지 요소가 녹아들어 있다. 수많은 춘화 작품들 중에 해학의 정수를 보여주는 작품은 일본의 ‘소원의 단서’다. 그림 속 남녀를 얼핏 살펴보면 이들이 부부로 보이겠지만 그림의 여백에 쓰인 남녀의 대화를 읽어 내려가다 보면 이들의 심상치 않은 관계를 금세 알아차릴 수 있다.
“나는 당신의 아내가 부러워요. 우리 남편은 못생기고 짧기만 해서 싫어요.”
“우리 아내가 곧 집에 올 텐데 아내와도 해야 하니 빨리 끝냅시다.” 
  그림 한 폭 속에 음을 상징하는 화병, 연꽃과 양을 상징하는 소나무 등을 그려 넣어 음양오행의 관점을 풀어낸 것은 ‘은유’의 대표적 예다. 사물이 아닌 사람을 통해 은유를 전달하는 작품들도 있다. 중국의 민국풍속춘궁화첩은 남녀가 관계를 가지는 모습을 정중앙에 배치해 음을 상징하는 여성과 양을 상징하는 남성의 조화를 직설적으로 보여준다. 그렇다고 모든 춘화가 음양오행의 조화에 기준을 두고 남녀의 관계만을 담은 것은 아니다. 중국의 일부 춘화에서는 동성 간의 성행위를 묘사한 작품도 찾아볼 수 있다. 이런 점만 보면 오히려 요즘보다는 그 시절이 성문화에 대해 개방적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욕망이란 부족을 느껴 무엇을 가지거나 누리고자 탐하는 것 또는 그런 마음을 뜻한다고 한다. 성을 드러내는 것을 불편해 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이를 더욱 궁금해 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 모른다. 하지만 욕망을 드러내고자 하는 시도는 예부터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춘화에 묘사된 일상처럼, 홍대 거리에 위치한 콘도마니아처럼 늘 우리의 곁에 있었던 것을 우리가 어렵게 밀어냈을 뿐. 이제 당신은 두려워 말고 그저 한걸음 내딛기만 하면 된다. 당당하게. 더 이상 그 시절 야동을 처음 접했던 그 소년 소녀가 아니기에. 
 
 
글·사진 남채경 기자 
skacorud2478@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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