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루한 등굣길, 스마트폰을 켜고 페이스북 어플을 눌렀다. 오늘도 여전히 새 소식들이 가득했다. 그런데 어느 샌가 뉴스피드에는 ‘페친’들의 글보다 ‘OO님의 좋아요’가 더 많은 지분을 차지하기 시작했다. ‘이게 뭐람’하고 불평하려다 누른 게시물, 그런데 어 이거 좀 웃기다. 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해 돌아다니던 재밌는 이야기들이 SNS라는 공간에도 이제 본격적으로 자리를 잡은 것 같다.

 

재미 = 자극? 
 
  시대가 바뀌고 기술이 변해도 ‘재미’를 찾는 사람들의 심리는 여전하다. 기쁨의 원천이라고 불리는 ‘재미’. 각종 자극과 감상에 의해 우리는 짜릿한 즐거움을 느낀다. 우리의 몸과 마음을 색다른 차원으로 초대하는 그 마력. 연일 ‘핫’한 제목의 기사들이 쏟아지고, TV와 인터넷에는 우리의 동공을 2배로 만들어주는 영상들이 가득하다. 나쁜 남자에게 끌리는 여자들의 심리가 이런 것일까. 기분 묘하게 만드는 프로그램에 끌리는 이유도 ‘재미’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재밌다 못해 자극적이고 ‘쎈’ 콘텐츠에 종종 눈살이 찌푸려질 때가 있다. 결과는 선정성, 폭력성에 대한 질타가 쏟아지는 세상.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습관처럼 “뭐 재밌는 거 없어?”라는 말을 내뱉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다면 ‘재미’를 쫓는 이 세상, 날선 비판을 잠시 내려두고 좀 더 ‘재밌게’ 바라보자.
 
욕먹어도 괜찮아
 
  ‘쌍욕라떼’로 유명한 통영의 ‘울라봉’ 카페. 술집도 아닌 카페의 메뉴판에는 ‘미성년자 판매 불가’라는 19금 문구가 적혀있다. 다름 아닌 거품 가득한 커피 위에 얹힌 구수한 욕 때문. 아름다운 그림을 그려주는 라떼아트가 ‘촌X’, ‘몬생긴X'이라는 문구로 재탄생했다. 사람들은 커피가 아니라 그 위의 ‘욕’을 먹기 위해 이곳을 찾는다. 항상 자리가 만석이라 대기번호 40번대가 기본이라고 하니, 줄서서 욕먹는 우스꽝스러운 광경이다. 재미를 뜻하는 영어 단어 'fun'은 어리석음을 뜻하는 'fonne'과 다른 사람을 놀리는 것이라는 의미의 ‘fonnen'에서 나왔다는데, 그 이유가 명확하게 이해된다. 그러니 완벽주의 사회의 긴장감을 내려두고 어리석어질 필요도 있지 않을까싶다. 웃으면서 한껏 ’재미‘를 만끽할 때의 그 느낌을 우리는 아니까. 
재미, 정체가 뭘까
 
  색다른 경험을 하거나 자극을 받은 후에 느끼는 전율은 코카인, 오르가즘, 초콜릿에 의해 생성되는 것과 동일한 종류의 화학 작용이라고 한다. 재미있는 그 순간, 우리의 뇌는 마약에 취해있는 것과도 같다. 게임의 전문가 라프 코스터는 이 마약 같은 ‘재미’를 이론으로 정리했다. 그는 우리의 뇌는 ‘학습의지로 가득해 언제나 새로운 것을 갈망하며 자신의 세계관에 통합하고자 하는 욕심쟁이’라고 정의했다.
  이 뇌라는 것은 도도하게도 어렵고 낯선 일들을 거절 한다. ‘감각의 과부하 현상’이라고 들어는 봤는가. 처리할 수 있는 정보의 수준을 넘어가면 지루함을 느끼게 되는 것이 바로 이 때문이다. 새롭고 더 자극적인 재미를 원하면서도 지나치게 낯선 것은 거부하는 모순덩어리, 뇌. 그래서 우리는 일정 한계에 도달하면 기다렸다는 듯이 밀려오는 권태를 경험한다. 이렇듯 형식적일수록 제한되는 재미를 극복하기 위해 라프 코스터는 다양하고 예측할 수 없는 변수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는 가상의 게임 세계가 아닌 현실에서도 똑같이 적용된다. 재미란 단기적이고 예측 불가하며, 비형식적이고, 목적 없이 생겨날 때 온전히 ‘힘’을 발휘한다. 
 
  다양한 ‘재미’들을 한껏 즐길수록 달콤해지는 우리의 인생. 하지만 먹으면 먹을수록 찾게 되는 MSG의 매력처럼 오늘도 내일도 당신은 ‘재미있는’ 무언가를 원하고 있을 것이다. 실시간으로 바뀌는 인기 키워드들을 보고 있자면 세상에는 재밌는 것들이 넘쳐나는 것 같지만, 이 재미있는 순간들은 물에 가루를 탄 것처럼 스르르 희석되고 만다. 순간의 기쁨이 아닌 담백한 진짜 음식 같은 내면의 ‘진정한 즐거움’을 발견한다면 그 무엇보다 맛있는 ‘재미’를 한없이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장미 기자
mmmi08@yonsei.ac.kr
일러스트 김진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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