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장애 사진작가 김태훈을 만나다

 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이 피사체를 ‘보고’ 사진을 찍는다? 눈에 보이는 순간을 포착해야하는 사진작가와 시각장애인의 만남은 역설적이다. 그러나 왠지 그들의 사진에는 정안인*이 볼 수 없는 ‘무엇’인가 담겨있을 것만 같다. 얼마 전 ‘memories’라는 주제로 전시회를 연 김태훈씨는 15년 전 추락사고로 시력을 잃은 시각장애인 사진작가이다. 그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Q. 시력을 어쩌다 잃게 됐나요?
A. 추락사고였어요. 산업재해이기 때문에 구체적인 설명은 들을 수 없지만, 꽤나 심한 사고여서 14개월이나 입원을 해야 했어요. 사고 이후 시력만 잃은 것이 아니라 몸이 전체적으로 많이 상했습니다. 폐기능이 일반인의 30%밖에 안 돼 심한 운동은 불가능하구요, 뇌두통, 심근경색, 외상성 스트레스 장애증후군, 선상공포증, 공황장애, 고소공포증, 호르몬 분비 장애, 환통, 환청, 환각 등의 후유증도 앓고 있어요. 실제로 심장이 멎었던 적도 있으니, 의사들은 지금 제가 살아있는 것 자체가 기적이라고 해요. 인터뷰 하다 갑자기 죽어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다는 말이죠. 
 
Q. 눈이 안 보이는데 사진을 어떻게 찍을 수 있나요?
A. 시력을 잃기 전 전문적으로 사진을 배웠기 때문에 촬영이 익숙하기도 하지만, 카메라가 디지털화 되면서 과거처럼 오토포커스로 힘겹게 찍지 않아도 형체만 잡히면 사진은 잘 찍을 수 있어요. 또한 전맹**이 아닌 가변시력***이라 어느 정도 제약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날씨나 컨디션이 좋을 때는 앞이 보이거든요. 중요한 것은 지금의 저는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의미’를 담은 사진을 찍는다는 점이에요. 예전에는 인증, 화보, 구도적 개념으로 멋있는 사진(커머셜 포토)을 찍었죠. 이런 사진들은 볼 때는 “와!”하며 감탄이 나지만, 그 순간뿐이잖아요? 그러나 요즘에는 가만히 집중할 때야 비로소 나타나는 ‘의미’를 포착하는 편이에요. 처음보다는 볼수록 새로운 메시지를 주는 사진 말이죠. 
 
Q. 시력을 잃고 사진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A. 잘나가던 IT업계 유망주였던 삶이 사고로 한순간에 엉망진창이 됐어요. 직업, 재산, 그리고 결혼을 약속한 여자마저 잃어버린 후 삶의 의미를 상실했고, 7번의 자해와 자살시도를 했죠. 그 후 정신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중 의사가 제 과거 취미를 알아본 뒤 “퇴원을 시켜 줄 테니 2주간 사진을 찍어보라”고 제안했어요. 감옥 보다 싫었던 병원을 탈출하고자 하는 생각만으로 시작한 사진이었는데, 제 사진을 보고 다른 환자들이 공감하고, 눈물 흘리고, 치유를 받더라고요. 그제서야 나의 역할이 보이기 시작했어요. 제 사진은 다른 사람의 상처를 어루만질 수 있었거든요. 거기에서 저는 존재의 이유와 목적을 갖게 되었고, 그 후 미혼모, 장애인, 마약중독자, 전과자 등을 치유하는 포토케어프로그램을 시작했어요. 
 
Q. 다른 사진작가와 비교할 때 자신만의 강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A.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상업적인 측면인데, 제 경우 후천적 장애이기 때문에 비장애인일 때 배웠던 전문적 촬영기술로 사진을 찍지만, 동시에 현재 장애인이기 때문에 ‘장애인이 찍은 사진’이라며 주목을 받을 수 있어요.(웃음) 둘째, 저는 죽었다 살아난 사람이에요. 때문에 사진의 무게감이 달라지고, 사진 자체에 의미가 자연스럽게 들어가더라고요. 셋째, 저는 지금 당장 죽어도 이상할 것이 전혀 없는 시한부 인생이잖아요. 일분일초 살기 위해 절실하게 매달려야 하는데, 사진에는 그것이 담겨요. 절실한 만큼 강한 것은 없지 않을까요? 
 
Q. 어떤 사진을 주로 찍나요?
A. 제 사진 중 대부분은 자화상입니다. 역설적이지만 제 자화상에는 제 얼굴이 들어가 있지 않아요. 그냥 일상적인 물건들을 주로 찍어요. 그 피사체에서 제 모습이 느껴지면 그 사진 자체가 제 자화상이 되는 것이죠. 예를 들어 지나가다 본 잡초에서 내 삶의 절실함이 느껴지고, 키보드에서 고독함이 느껴진다면, 그것들은 곧 ‘나’의 모습이 되는 거예요. 이건 단순한 비유를 넘어섭니다. 상실감과 자괴감이 큰 저는 저를 닮은 피사체를 통해 자신을 찾아가고 있으며, 이 사진들은 다른 상처받은 이들에게 큰 공감과 치유를 불러일으키기 때문이죠.
 
Q. 앞으로의 꿈은 무엇인가요?
A. 시각장애인사진작가 협회와 전용 스튜디오를 만드는 것이에요. 현재는 재정적으로 열악하여 협회를 못 만들고 있는 상황이죠. 그런데 협회 창설 자금을 모으기 위해 전시를 열고자 하면 ‘협회가 아니므로 국가지원과 전시 후원이 불가하다’는 대답이 들려와요. 알에서 나오려는 병아리에게 닭이 아니라고 매몰차게 구는 셈입니다.
  현재 베트남, 태국, 일본, 말레이시에는 국가와 지방정부에서 지원을 아끼지 않는 덕에 세계적으로 유명한 시각장애인작가가 많아요. 반면 우리나라는 나와 같은 시각장애 작가들의 활동에 대해 봉사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지 않아 이 분야에 대한 발전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어요. 우리나라에서도 시각장애인 예술가가 활발히 활동하는 모습을 구현하는 것이 제 꿈입니다. 
 
어쩌면 눈 먼 사람들의 세상에서만 비로소 모든 것이 진실한 모습을 드러내는지도 모르겠다.인터뷰가 끝나고 난 뒤, 소설 ‘눈 먼 자들의 도시’에 나온 문구 하나가 생각났다. 시력을 잃고 나서 세상의 더 아름다운 것을 카메라에 담을 수 있었다는 김씨의 말에서 ‘본다’는 말의 진정한 의미를 생각하게 된다. 그는 보지 못하지만, 분명 더 많은 것을 보고 있었다. 
 
* 정안인 : 맹인의 반대말로, 정상 시력을 갖고 있는 사람
** 전맹 : 시력을 완전히 잃어버린 상태
*** 가변시력 : 기온, 습도 등에 따라 변하는 시력

글·사진 오도영 기자
doyoungs92@yonsei.ac.kr
사진제공 김태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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