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광장’을 찾아 거제로 떠나는 여행

바다는 크레파스보다 진한 푸르고 육중한 비늘을 무겁게 뒤채면서 숨을 쉰다.

중립국으로 가는 석방포로를 실은 인도 배 타고르호는, 흰 페인트로 말쑥하게 칠한 삼천톤의 몸을 떨면서, 물건처럼 빼곡이 들어찬 동지나 바다의 훈김을 헤치며 미끄러져 간다.’ - 『광장』 中

최인훈의 대표작인 『광장』의 첫 대목이다. 남북한의 이데올로기를 동시에 비판한 최초의 소설인 『광장』은 지난 1960년에 출간돼 전후소설 시대를 마무리하고 6, 70년대 황금문학기의 문을 연 작품이라 평가되고 있다. 작품 속에서 ‘광장’을 찾아 월북했지만 좌절하고 결국 포로가 된 이명준의 포로생활과 중립국으로 향하던 그의 발자취를 따라 거제도로 향했다. 연고도 없는 거제도로 가는 버스 안에서 타고르호에 몸을 싣고 중립국으로 가던 명준의 모습을 떠올려봤다. 어디로 가는지는 알고 있으나 어떤 곳을 향하고 있는지는 전혀 알 수 없었던 명준의 마음이 이랬을까?
4시간 30분. 대한민국의 북서쪽 서울에서 남단의 거제까지 꼬박 4시간 반이 걸렸다.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난 것인지 가늠도 못한 채 버스에 몸을 싣고 있다 보니 금세 해가 지고 창밖이 깜깜해졌다. 통영을 지나 거제로 가는 마지막 관문인 거제대교를 지나다 보니 칠흑 같은 어둠 속에 어스름하게 빛나고 있는 작은 섬들의 불빛만이 저 멀리 바다가 있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지난 1971년 완공된 700m 남짓한 다리를 건너 드디어 거제에 도착했다. 밤 버스를 타고 온 여행객을 반겨준 것은 늦은 시간에도 불이 꺼지지 않는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였다. 육지의 끝자락에 위치한 배 형상의 조선소는 마치 땅이 한 채의 배를 잉태해 바다로 내보내는 듯했다.

거제포로수용소, 사람과 짐승이 섞이는 광장

 

사람과 짐승이 섞이는 광장. 그러나 거기서도 사람은 짐승일 수는 없다. 그 여름 수풀의 풍류객은, 다시는 그의 베티를 또는 순희를 그전처럼 깨끗한 손으로 보듬을 수는 없다. 어쩌면 죽을 때까지 그를 괴롭힐 거다. 그렇다면 그는 짐승이 아니다. 그것이 그의 죄를 덜지도 더하지도 않지만, 거제도 바닷가를 때리는 파도소리가 들리는 곳에도 수용소는 있었다.

날이 밝고 포로 신분이었던 명준을 찾아 거제포로수용소로 발길을 돌렸다. ‘사람과 짐승이 섞이는 광장’, 명준이 머물렀던 이 포로수용소는 ‘거제도 바닷가를 때리는 파도소리가 들리는’ 고현동에 위치해 있다. 바다에서 약 2km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포로수용소는 지난 1951년 건설됐다. 부산의 포로수용소에 수용인원이 점차 늘어나자 제2의 포로수용소의 건립이 불가피해졌기 때문이다. 전선에서 멀리 떨어지고 육지와 격리된 섬이라는 지역적 조건으로 거제도와 제주도가 언급됐지만, 육지로부터의 이동과 물 공급이 어렵고 당시 피난민들이 몰렸던 제주도의 상황을 고려해 거제도가 최종 선택됐다. 거제포로수용수는 1953년 5월 3일에 있었던 송환과 6월 18일 반공 포로 석방 전까지 총 17만 3천여 명의 포로를 수용했다.
지난 1983년 12월 20일에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99호로 지정된 거제포로수용소의 자리에는 현재 거제포로수용소유적공원(아래 공원)이 위치해있다. 공원에는 포로생활관, 무기전시장 등 전쟁 당시 포로들의 생활을 엿볼 수 있는 자료와 모형을 전시하고 있다. 공원을 한 바퀴 돌며 전시물들을 구경하다보니 저기 두 손을 들고 서있는 저 마네킹이 명준인 듯하다.
공원 한쪽에는 50년대의 고현지구의 모습을 담은 사진과 현재 고현동 일대의 전경을 비교할 수 있는 코너가 있다. 눈앞에 펼쳐진 같은 장소 다른 시간의 모습이 60여 년의 힘을 보여주는 것 같다. 낮은 초가집이 드리워져 있는 누우런 사진이 뿌우연 하늘아래 높이 올라온 시멘트 색 빌딩들로 꽉 찬 도시가 됐다. 사진 속에 터를 잡고 있었던 땟물이 꾀죄죄 흐르던 포로들은 사라지고 스마트폰을 손에 든 사람들을 태운 버스와 차가 도시를 오간다. 한때 포로수용소가 위치했던 거제는 조선 산업의 중심이 됐다. 이곳에 위치한 삼성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 등은 우리나라를 세계 조선업계 1위 반열에 올려놓았다.

 

나를 아는 사람이 없는 땅, ‘중립국’을 향하여

 

개인의 밀실과 광장이 맞뚫렸던 시절에, 사람은 속이 편했다. 광장만이 있고 밀실이 없었던 중들과 임금의 시절에, 세상은 아무 일 없었다. 밀실과 광장이 갈라지던 날부터, 괴로움이 비롯했다. 그 속에 목숨을 묻고 싶은 광장을 끝내 찾지 못할 때,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석방된 명준은 남한도 북한도 아닌 제3국을 택한다. 남한과 북한 그 어느 곳에서도 그의 ‘광장’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배를 타고 제3국으로 향한 명준을 따라 고현항으로 발길을 돌렸다. 거제시 가장 깊숙이 바닷물이 닿아있는 곳, 깊은 만에 위치한 고현항에서는 항만재개발사업이 진행될 예정이다. 아직 공사가 착수되지는 않았지만 내년으로 예정된 공사가 진행되면 거제는 또 한 번 그 모습을 바꾸게 될 것이다.
바다는 고현항을 따라 달리는 거제대로에 바로 맞닿아 있다. 바다가 손에 닿을 듯 항 바로 옆으로 이어져있는 인도를 걷다보니 다리 난간 위 화분에 심어져 있는 분홍꽃과 함께 저 멀리 펄럭이고 있는 만국기가 눈에 띈다. 문득 ‘저 많은 나라 중 명준은 그의 ‘광장’이 돼줄 나라는 정말 없었을까?’, ‘국가란 그에게 어떤 의미였을까?’하는 생각이 스쳐 지나간다. 분홍빛 꽃과 흩날리는 만국기 뒤로 시원하게 펼쳐져 있는 바다. 깊은 만은 육지에 포옥 안겨있다. 제3국을 향하던 배에서 몸을 던진 명준을 포근하게 품어줬을 것만 같다. 명준이 선택한 그 만의 광장 ‘바다’. 흐린 하늘아래 펼쳐진 바다가 오늘따라 든든해 보인다. 그는 바다에서 그의 ‘광장’을 찾았을까?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을 남기고도 항구를 떠나야 할 때가 있으니까.”
…중략…
“바다에 서면 그대로 어디든지 가고 싶어요.”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광장’과 ‘밀실’이 필요하다. 여행, 특히 바다로의 여행은 우리에게 이 두 가지를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 준다. 매 순간 ‘광장’에 노출돼 있는 현대인들에게 바다를 바라보며 앉아 있는 이 시간은 온전히 혼자일 수 있는 ‘밀실’을 제공한다. 

 

중립국. 아무도 나를 아는 사람이 없는 땅. 하루 종일 거리를 싸다닌대도 어깨 한번 치는 사람이 없는 거리. 내가 어떤 사람이었던 지도 모를뿐더러 알려고 하는 사람도 없다.

여행은 일상적인 생활 반경에서 멀리 떠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똑같아 보이는 일상에 지칠 때 여행을 떠나고 싶어 하는 것은 아닐까? 거제에서 ‘중립국’을 찾았다. 아무도 나를 아는 사람이 없는, 내가 어떤 사람이었던 지도 모를뿐더러 알려하는 사람도 없는 거제는 그렇게 나에게 ‘중립국’이 됐다.
이데올로기의 이해관계와 사랑의 얽힘 속에서 그만의 광장을 찾기를 바랐던 명준. 그의 고뇌가 고스란히 녹아있는 최인훈의 『광장』을 품에 안고 나만의 광장, 중립국을 찾아 거제로 떠나보는 것은 어떤가?

 


글·사진 최지연 기자
geechoi@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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